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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세상에서 가장 귀한 역할은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기억하면 좋을 12가지)
비교적 여권이 신장되어있는 미국이지만 그래도 사회 곳곳에 스며있는 성차별은 한국보다 덜하다는 것이지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위로 올라갈수록 보수적이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고루하게 여겨질만큼 경직된 원칙주의를 신봉하기에 이곳 미국에서도 여성으로서 자기 길을 곧게 가는 데에는 많은 부가적인 노력과 여정이 필요하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다.
우연한 기회에 공직에서 일을 하게 된 지도 벌써 두 해가 넘어가고 있는데 미국 공무원들이 한국 공무원들보다도 몇 배는 더 융통성도 없고 원칙주위자들이고 그리고 편법을 지양한다는 것을 매 순간 깨닫곤 한다.
미국에서 생활터전을 잡은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엄마가 삶에서 느낀 것은 여자라는 이유로 주어지는 특권은 아마도 미국이 한국에 비해 훨씬 덜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신체적 기운이 좀 더 딸린다는 이유 하나로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무언가 가산점을 가지고 시작하려 한다면 미국은 그다지 좋은 경기장이 아닌지도 모른다.
남녀평등이란 여자가 남자보다 약하다는 것을 고려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남자와 여자를 차별없이 대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일하는 직장에서도 여자라고 일을 덜하거나 몸을 덜 쓰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부분을 조금이라도 바라는 기색을 보였다가는 남자 동료들에게 미운 털이 박히기 일쑤일 뿐이다.
70년 대 미국을 뒤흔들었던 feminism 이 80년 대 엄마가 공부할 때에는 한국에서 한창 그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엄마도 그 물결을 따라 UC Berkeley 앞에서 속옷을 던지고 불태우던 여권운동가들을 생각하면서 여성학에 몰두했고 압박받은 존재로서의 여성의 권리를 공부하면서 젊은 날의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새롭다.
미국 흑인 여성문학을 전공하면서 흑인여성들은 피부색이라는 이유로 압박받았지만 우리는 왜 꼭같은 생김새와 피부색을 가지고도 억압을 받는가를 생각하면서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들도 있다.
그 때 젊고 철없던 엄마가 생각했던 여권신장이란 아마도 억세고 드센 여성으로서의 이미지였던 것같다.
부드러움이란 말로는 여성의 권리를 찾을 수 없다고 믿었고 언제나 권력의 하위에 머물 수 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후 취업을 하고 서비스직인 항공사 기내 통역관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초고속 승진으로 유명하던 미국인 여자 선배가 내게 그런 얘기를 해주었다.
여성이 남성과 일로 겨룰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여성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성을 굳게 지키면서 여성 특유의 방법론을 개척해야 한다. 억세고 드세게 겨뤄봤자 힘으로 겨루면 질 것이 뻔한데 그 방법은 먹히지 않는다. 정말 이기고 싶다면 여성으로서 남성들이 터치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고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20대 중반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 현실에 부딪치고 있던 나에게 얼마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얘기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을 엄마는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지금도 도전을 받는다.
남자들과 함께 어깨를 겨루고 경쟁하는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여자여야 한다.
언제 어느 때에나 내가 여성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성적인 의미에서의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특별한 은사와 재능을 스스로 찾아내고 발견하는 작업이 신중하게 이루어지는 사람만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남자들을 닮아가려고 한다고 남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란다.
남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여성임을 기뻐하여라.
사랑하는 딸들아,
학교 밖에서는 얼마나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잊고 싶어하면서 드넓은 현실의 바다에 뛰어들다가 큰 실패를 경험하는지 모른다.
한 인간임을 잊지 않듯이 언제 어디서나 너희들이 한 여성임을 잊지 말아라.
남녀평등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여성성을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내 자리를 잘 아는 것이라고 엄마는 믿는다.
내가 속한 곳, 내가 가야 할 곳, 내가 가서는 안될 곳을 잘 아는 사람만이 진정하게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결혼 전에는 오직 나라는 존재 하나만 생각하고 계산하면 되지만, 결혼을 했다면 엄마이고 아내임을 잊지 말아라.
엄마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한다는 고루한 생각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만일 결혼을 한다면 너희들이 하고 있는 일만큼이나 가정에서의 엄마와 아내의 자리도 중요하고 귀한 것임을 한순간도 마음에서 내려놓지 말아라.
엄마는 결혼 후에도 언제나 일을 하면서 너희 네 자매를 길러왔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이룬 것들도 있었고 잃은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잃고 싶지 않았던 것들은 절대로 사회적 명성이나 성공이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이었단다.
때로는 나의 어리석음이 극에 달하여 가정과 일을 저울에 놓고 고심햇던 순간들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언제나 엄마는 가정을 선택했고, 조금 천천히 가고, 조금 덜 윤택해지더라도 가정이 편안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려고 애써왔단다.
그리고 그 선택들을 후회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따금 엄마에게 과분한 좋은 기회들이 왔을 때 마음의 갈등도 되고 엄마나 아내가 아닌 한 직장인으로서의 욕심도 올라왔지만 그러다가도 환하게 웃으면서 내 품에 달려와 안기는 너희 자매들의 얼굴을 마주하면 결론은 참으로 쉽게 얻어지곤 했었다.
내가 사회적으로 이루어내는 그 어느 성공보다도 너희들의 아름다운 성장과 남편과의 편안한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때마다 들어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조금만 한눈을 팔고 가정을 2순위로 놓았었다면 지금 엄마의 인생은 얼마나 더 힘들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너희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릴 때쯤이면 아마도 모두들 일하는 엄마가 되어있을 것같다.
각자 자기의 꿈들을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저마다 의사, 수의사, 심리학자 등등 갖가지 다양한 직업에 관심을 보이고 전업주부가 되겠다는 아이는 하나도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엄마는 한번도 전업주부로서 있어보질 못했지만, 엄마 주변에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훌륭한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잘 길러내고 남편에게 든든한 아내가 되어주는 것을 보면서 늘 부러웠거든.
엄마가 평생 일하는 엄마였기에 너희들도 모두들 일하는 엄마가 되려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도 생긴다.
그러나 일하는 엄마라 할지라도 가정은 고스란히 너희들의 몫이다.
가사일 도우미나 육아 도우미가 있다 해도 가장 중심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은 엄마이자 아내인 너희들의 몫이 될 것이다.
어느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엄마와 아내라는 자리를 소홀히 하지 말아라.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은 내 몫이라는 것을 잊고 살다가 가슴을 칠 일을 겪어야 한다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알게 마련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엄마 노릇이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남편은 내가 잘 알아야 한다.
내 남편이 낯설고 잘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나의 책임이다.
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가와 관계없이 나라는 사람의 평가는 오직 가족들로부터 나온 것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밖에서는 유능하고 일잘하는 직원이라는 평가를 받더라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비슷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50점짜리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50점이라면 가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 더 나은 것이라고 엄마는 믿는다.
결혼한 여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엄마 노릇이고 아내 노릇이다.
그 부분이 건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밖에서도 일을 잘할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지게 마련이다.
최선을 다해서 너희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펼쳐 보아라.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을 다해 노력하고 뛰어라.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남편과 아이들의 손을 놓지 말아라.
그들이 붙들어주는 손에서만 제대로 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라.
엄마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일년에 20시간 정도 아이들 학교에 가서 봉사를 한다거나 아이들 학교 각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유급 휴가시간이 있다. 엄마의 회사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들은 일반 휴가 외에도 이런 휴가 시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본인의 병가 외에도 가족의 질병을 보살필 수 있는 휴가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어찌 보면 온전히 일에만 더 쏟아부어야만 일의 능률이 오를텐데 왜 그런 제도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신경을 분산시키는지 의문을 가질 법도 하지만 사실 가정이 편안해야 일의 능률도 오른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진리이다.
아이들 학교에서 오라 하는데 눈치가 보여 가지 못한다거나 아픈 아이를 두고 나온 엄마나 아빠들이 제대로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오히려 능률이 떨어진다는 것을 잘 인정하고 반영한 정책이라고 보여진다.
수 년 전에 함께 일하던 다른 회사의 임원 아줌마 생각이 난다.
50대 초반의 엘리트 코스만 거쳐서 초고속 승진으로 임원까지 올라간 금발의 미인 아줌마였는데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매녀도 좋아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 때문에 전화를 했더니 비서가 침통한 목소리로 그녀의 장례식 일자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전날까지도 멀쩡하게 만나 회의를 했었는데 영문을 몰라 아무리 물어도 다들 해주려고 하질 않았다.
장례식에 가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이혼한 남편과의 사이에 입양한 아들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이혼으로 충격을 받아 비행청소년이 되었는데 그녀가 새로 사귀기 시작한 남자 친구와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돈을 훔쳐 달아났다가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사건 전말만 듣는다면 아들 아이가 입양해서 길러준 부모의 은혜를 모르고 엄청난 죄를 지은 것이라고만 말하겠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아이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양아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의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을까.
파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날마다 숨막히는 하루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혼의 아픔을 잊기 위해 국내외 출장으로 분주한 엄마에게 원망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빚어낸 끔찍한 사건이라는 생각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가슴아픈 기억이다.
회사 안에서는 능력을 인정받고 위로만 올라가고 있던 그녀였지만 엄마 노릇과 아내 노릇이 녹록치 않은 이유로 어이없이 운명을 달리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딸들아,
엄마 아빠가 인생의 바닥을 칠만큼의 고난을 겪은 뒤에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단다.
우리 조금 덜 먹고 덜 윤택하고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가족이 절대로 떨어지지 말고, 가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자고.
위로 올라갈 기회가 있을 때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절대로 성공만이 아니라 가족이다.
이루고자 하는 성공이 과연 가족에게도 기쁜 일이며 가정의 평화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인가를 철저하게 고려하여라.
그리고 가족을 아프게 하고 가정의 평화가 깨어지는 성공이라면 과감하게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와 지혜를 갖추기를 엄마는 기도한다.
며칠 전 엄마의 동료가 우스개소리로 물어왔다.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날 거냐고.
엄마는 단번에 대답했단다. 다시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고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고 싶다고.
거기에 축복을 더한다면, 다시 태어나도 너희들의 엄마이고싶고 아빠의 아내이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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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햇님한나
'10.2.4 9:10 AM동경미님 글기다려서 읽고갑니다.
전업주부로서 또다시 맘다잡을수있게 됐어요 고맙습니다^^2. 동경미
'10.2.4 9:38 AM햇님한나님,
전업주부처럼 귀한 직분이 없답니다.
흔들리지 마시고 아이들과 남편 곁에서 든든하게 서계시길 바래요^^3. sinavro
'10.2.5 5:35 PM저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경미님처럼 한 때는 일에 너무 치중해서 남편으로부터 불평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승진도 포기하고 아이들 위해서 해외근무하고 있습니다. 좀 더 유익한 고등학교 생활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교육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들 나름대로 교육에 대한 잣대는 갖고 있는데 저희 부부와 저의 아이들은 다른 교육을 선호하는 것이지요.
남자아이들은 성장이 느립니다. 그리하여 11학년이 되어서야 철 들어 학교 생활 재미있게 하네요. 저는 저의 아이가 정말 열심히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아 준 것이 제가 승진한 것 보다 더 소중합니다.
명예, 돈, 권력이 우선일 경우 승진 가족을 우선하여 사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가족만이 나를 기다리지요.
그리고 저는 전업주부가 가장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늘 같은 고객을 대상으로 혼자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남자 직원들이 아내에 대해서 불평하면 저는 당장 역할을 바꾸어서 해 보라고 합니다. 정말 가장 소중한 일이 가정주부,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이지요.
동경미 님은 직장생활도 잘 하시고 자녀도 잘 키우시네요. 예쁜 따님들이 엄마 아빠의 정성과 사랑을 뜸뿍 받아서 잘 성장하여 사회에 꼭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될 겁니다.4. sugar
'10.2.6 11:29 AM전업 주부일도 겨우 근근히 해내고 있는 저로서는 직장까지 병행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지만 (가끔씩 제가 친구들에게 물어요, 제 24시간은 왜이리 짧냐고, 혹시 누가 내 하루중 일부분을 떼어간 것 아니냐고요) 아이가 자라 이러저러한 이유로 제가 일을 할 경우, 그 목표와 방향은 무엇이 돼어야 할까를 생각해 보곤 하는데 동경미님의 중심을 잡아 주는 글이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5. 동경미
'10.2.7 8:42 AMsinavro님,
정말 귀한 선택을 하셨네요. 그런데 그 결정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공감이 가네요.
그래도 자녀분들이 엄마의 용감한 선택을 평생토록 감사하고 귀하게 생각할 거에요.
11학년 남자아이인데 재미있는 학교 생활을 한다고 얘기한다면 정말 잘자란 거에요.
그 시기가 그런 얘기가 나오기가 아주 어려운 시기이잖아요.
저도 전업주부처럼 힘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요.
일의 양도 엄청나고, 표가 안나기가 쉬우니 동기부여가 어러워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일처럼 귀하고 커다란 파장을 가져오는 일도 없지요.
저는 일은 잘하는 것도 같은데 (^^;;) 주부로는 그다지 성적이 높지 않은 것같아요 ㅎㅎ
sugar님~
전업주부일을 잘하고 계신다는 것처럼 능력있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직장생활은 아주 위로 가지 않는 이상 사실 그 능력의 폭이 거기서 거기지만, 전업주부 일처럼 편차가 큰 일이 없다는 생각이에요.
얼마나 바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지 모르는 게 전업주부의 일이잖아요.
자신을 대견하다 생각하시고 귀한 일에 종사한다 믿으세요.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 관계없이 가정의 평화를 깨야 할만큼 일을 한다면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