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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내 아이의 만병통치약 (ADHD와 관련하여)

| 조회수 : 3,119 | 추천수 : 166
작성일 : 2009-11-23 14:21:31
얼마 전 만나게 된 6학년 남자 아이는 ADHD 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약물을 거부하는 부모때문에 우선은 상담치료와 놀이치료부터 받고 있다고 했다. 처음 만나보니 아이가 한 곳을 바라보지도 않고 눈을 마주치지를 못하는 모습이 ADHD 아동의 모습이었다. 얘기를 시켜보니 한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이 얘기 저 얘기로 화제가 수 십번 바뀌었고 호기심도 매우 왕성한 아이였다. 엄마의 얘기로는 아이가 유일하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때는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라고 했다. 학교에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여 지적을 받기가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놀림을 받은 때도 있어서 아이가 자라면서 자존감에도 심하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가 없을 때 엄마와 얘기를 해보니 엄마의 눈시울이 금방 젖어든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낮이고 밤이고 아이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그거 하나 믿고 무슨 고생도 다 감수했는데 아이가 이런 병이라니까 살고 싶질 않아요. 남편은 이게 다 내가 잘못 길러서 그렇다고 원망하고 저도 아이의 산만한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나기도 해요."
엄마는 아이의 병을 몹시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약물을 반대하는 이유의 이면에는 약물까지 복용하게 되면 정말 심각한 병인 것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 두려워서라고도 했다.
"정신병도 아니고 약까지 먹는다면 나는 미치고 말지도 몰라요. 우리 집안에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아이를 기르는 엄마이니 그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실 엄마의 이기심이 느껴져서 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이 누구일 것같아요?"
아이의 엄마가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는 채 엄마는 내 질문의 의도를 전혀 알아채리지 못했다.
"제가 볼 때에는 지금 위로가 필요하고 지지가 필요한 것은 부모님도 그렇겠지만 누구보다도 아이일 거에요. 세상의 한가운데에 서서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느낌만큼 힘든 게 있을까요. 아이는 어쩌면 그렇게 느낄 지도 모르겠어요. 엄마도 아빠도 자기를 부끄러워한다면  아이는 얼마나 더 힘이 들까요."
그래도 엄마는 자신의 고통을 한참 더 하소연하고 돌아갔다. 주차장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니 아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엄마는 그런 아이에게 끊임없이 야단을 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ADHD 처럼 한국인에게 낯선 병명이 있을까 싶게 이 병은 참으로 많은 부모들이 부인하고 싶어하는 병이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는 부인에서부터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부모까지 많은 부모들이 이 병이 처음 발견되면 우선은 자신들의 수치심과 분노를 해결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본다. 어쩌면 이민 사회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민자들의 의식은 자신이 본국을 떠나온 그 때에 멈춘다고 한다. 때로는 한국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한국적이고 보수적인 한국사람들을 나는 이민 사회에서 자주 만난다. 그로 인해 한국에서는 이미 서구화가 되어 개방된 부분들이 이민사회에서는 아직도 금기사항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숱하게 본다. 정신 건강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이 개방되고 변혁되게 된 데에는 선진국들의 영향이 많이 있었다. 3년 전 내가 한국을 떠나올 때에는 심리 상담이라는 용어가 이미 그렇게 낯선 얘기가 아닌 많이 개방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으로 돌아왔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이 그 영향을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의 이민사회에서는 아직도 정신 건강이라는 말이 낯설기만 한 얘기이라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우선은 한국말을 편하게 하면서 찾아갈 수 있는 심리 상담소가 그리 많지 않고 또 있다 해도 교포들의 의식이 상담을 받아들일만큼 깨이지 못한 상태인 것도 문제의 일부이다.  

언젠가 한국의 어느 소아정신과 의사의 책을 읽다 보니 똑같이 ADHD 로 진단을 받은 아이들도 부모의 성향이나 기질, 육아법등을 살펴보고 그 아이의 치료법을 정한다고 한 말이 인상깊었다. 미국에서도 좀 느긋하고 아이를 지지해줄 줄 아는 부모라면 아무리  ADHD 인 아이라도 아이의 산만함이 두드러지지 않고 아이의 호기심 많은 부분이 오히려 잘 계발되어 장점이 드러나게 할 수도 있으니 약물부터 시작하게 하지는 않지만, 감정조절이 어렵고 안달증이 있는 부모라면 아예 처음부터도 약물을 권한다고 한다. 부모 자신들의 감정 조절능력의 미숙 때문에 아이를 위해 느긋하게 아이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만 주고 그로 인해 증상이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DHD 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부딪쳐야 할 문제들은 또래 아이들의 시선이다. 특히 획일화된 것을 선호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회 환경이라면 아이는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의 행동에 자꾸 또래 아이들이 주목하고 손가락질하는 환경을 아이가 견뎌가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90년 대에는 무조건 약물을 선호하고 특히 공립학교에서는 ADHD 라는 진단이 내려지면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는 등교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유는 물론 수업을 방해할 요소가 있다는 것이었지만 당하는 아이와 부모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였는지 모른다. 이런 저런 대우를 받으면서 아이도 힘들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들이 많이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서로가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며 아이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부모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경우 상담 치료가 병행될 것이고 또 부모들도 함께 상담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것은 내 아이를 온전히 지지하고 수호해줄 사람은 부모뿐이라는 것이다. 내 아이가 병에서 해방될 때까지, 또는 증상이 어느 정도 잦아들 때까지 아이의 편에서 힘을 주고 위로해줄 아군은 아이의 주치의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부모이다. 그외의 사람들은 아이에게 있어서 부수적인 원조를 주는 사람들일 뿐이지 전적인 지지는 오직 부모로부터 와야 한다. 내 아이가 ADHD 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부모의 마음보다는 ADHD 라는 복잡한 증상을 가지고 어쩌면 평생을 긴 싸움을 해야 하는 아이의 마음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게 나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나 자신은 정말로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다른 아이들처럼 지적받지 않으면서 학교 생활을 하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내 몸과 마음이 말을 듣지 않음으로 인해 수없이 지적을 받고 아이들에게도 놀림을 받는다면 아이는 얼마나 수시로 자신에게 화가 나겠는가. 그 아픈 마음을 받아주는 일은 부모의 몫이다. 놀이치료나 상담치료는 절대로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받는 상처들이 놀이치료로 씻은 듯이 낫는다면 세상에 정신건강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옳을 것이다.  

ADHD 를 위해서는 매 해 수많은 치료법과 약물이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마다 맞는 치료법도 다르고 호과를 보는 약물도 다양하니 어느 것이 제일 좋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의학과 심리학을 다 초월해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만병통치약은 아마도 부모의 따뜻한 이해와 수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내 아이이고 인물이 부족한 아이도 내 아이이고 운동을 못하는 아이도 내 아이임에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무언가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이유로 친자를 거부하는 부모는 있을 수 없다는 말에는 모두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아이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아이와 함께 출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가. ADHD는 생명을 앗아가는 병도 아니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 정신병도 아니다. 꾸준한 치료와 필요에 따라 약물을 복용하면서 잘 관리한다면 아이는 아무 지장 없이 학교 생활과 사회 생활을 잘 지켜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부모의 몰이해와 자기 연민이다. 나는 그것을 이기심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 아이의 삶에 지지자가 되기보다는 내 아이가 남보다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가슴이 아픈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연민에 시달리는 부모라면 아이는 자기 병을 미처 살필 여유도 없이 남은 인생 동안 부모의 꼭두각시로 이중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조건 서구의 생활방식을 선망할 것만도 아니지만 아이들의 질병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선진국 부모들을 조금은 닮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오래 전 읽었던 책 중에 ADHD 를 가진 아이를 기르는 엄마의 이야기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었다. 한시도 한 곳을 쳐다보지 않는 아이이기에 말할 때마다 그녀는 늘 아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붙들고 '엄마를 쳐다보렴'하고 말하면서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가 산만힘의 극을 보일 때에도 절대로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계속적으로 감정조절을 연습히고 훈련하며 노력을 했다. 아무리 화가 날만한 짓을 해도 '내 아이는 장애가 있다. 이 아이에게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어느 날인가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긴 자기가 가장 아끼는 레시피 상자를 아이가 꺼내어 거기에 색종이를 붙이고 색칠까지 해서 엄마 선물을 담는 상자로 만들어 가져오는 걸 보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그 화를 참고 아이의 마음을 읽고자 했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고 이제는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준 상자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오후 내내 그 산만함 속에서 이걸 만드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고 지금 엄마 앞에 가져와서 칭찬을 기대하면서 수줍게 엄마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가슴 뭉클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를 하나도 야단치지 않고 고맙다는 말만 수십번을 하면서 아이를 계속 안고 있었다는 귀절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아이를 안고서 그녀는 또 되뇌었다고 한다. '이 아이는 그 부족함을 이기고 나를 위해 최고의 집중력으로 선물을 만들었다. 이것은 기적이다' 라고.

내 아이에게는 어쩌면 수많은 단점과 부족함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부족함과 단점들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주느냐 아니면 그것들로 인해 아이의 인생이 내리막길로 가게 하느냐는 부모의 수용 능력에 있다. 에디슨도 ADHD 였다고 한다.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한 에디슨을 그의 어머니가 홈스쿨로 가르쳐서 세계적인 발명가가 되게 도와준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만일 아이의 퇴학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산만한 아이로 인해 늘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의 발명품의 부재로 인해 암흑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에디슨의 어머니도 호기심 많고 산만히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들이 늘 이쁘고 자랑스럽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직 한 가지 사실에 더 많이 주목했다. 산만하고 쓸데없어보이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 아이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아들이라는 것에 말이다.

오늘도 또 다짐해본다. 내 아이의 모든 문제도, 모든 슬픔도 그리고 모든 외로움도 다 끌어안아보리라고. 때로는 한번 한 다짐의 생명이 너무나 짧은 것에 자괴감을 느끼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단 한순간의 다짐이라고 해도, 또 어렵게 한 그 다짐이 단 하루이거나 혹은 그도 안되는 반나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해도 내 아이를 위한 노력이라면 그보다 더 가치있는 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나를 위로하는 일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열 번을 다짐해서 한 번만이라도 내가 변화했다면 그것은 아홉번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한 번 성공한 것에 촛점을 맞춰야 할 일이다. 나자신에게 너그러워야만 내 아이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으니 말이다.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바다
    '09.11.24 1:43 PM

    좋은글 감사합니다.

  • 2. 생강빵
    '09.11.24 2:57 PM

    아이를 잘 키워보려 육아서들과 강의들을 기웃거려보았지만 결국 제가 얻는 깨달음은 바로 '(아이가 아닌) 나 자신이 성장해야한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동경미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깨달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3. 동경미
    '09.11.25 1:14 AM

    바다님,
    감사합니다.

    생강빵님,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고 부모의 것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지요.
    엄마의 문제들이 먼저 해결이 되어야 비로소 건강한 육아가 시작됩니다.
    물론 그 문제들이 완벽하게 다 사라지지는 않지만 나의 문제들에 대한 성찰이 먼저 이루어지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것과 무조건 아이의 문제만 바라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요.

  • 4. sugar
    '09.11.25 9:54 AM

    저는 오히려 반대의 말을 들었어요.
    한국에서는 요즈음 공부잘하는 약'으로 둔갑하여 아이가 조금만 집중을 못하고 산만해도 부모님들이 원한다고 들었어요.
    그나이이때 또래보다 더 부산한 남자 아이들이 때때로 그 타겟이 된다고요.
    너무 무심한 것도 너무 유난을 떠는 것도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이 육아인듯 싶어요.

  • 5. 안개꽃
    '09.11.25 4:59 PM

    마직막 절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아서 수첩에 옮겨 적어보았어요.
    육아서를 많이 읽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아서 좌절하기도 했거든요.

  • 6. 동경미
    '09.11.26 9:24 AM

    Thanksgiving 휴가가 시작되어서 이번 주가 아주 분주하네요^^
    Sugar님,
    영국도 이번 주는 쉬지 않으세요?
    저도 그런 경우 많이 봤어요.
    사실은 ADHD 가 아닌데 부모가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여서 아이를 힘들게 하는 거지요.
    어떤 분들은 의사가 아니라고 해도 기뻐하는 게 아니라 의사 말을 안 믿고 계속 다른 의사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게 열쇠인데 그게 쉽지가 않지요.
    Happy Thanksgiving!!!

    안개꽃님,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아이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나에게 너그러우면 아이에게도 너그럽다고 해요.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욕심을 내면 엄마의 정신 건강이 너무나 피폐해져요.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고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아요.
    조절하지 마세요.
    누구나 다 실패를 더 많이 한답니다.
    아무리 하나도 힘 안들이고 키우는 것같은 엄마도 가슴 속은 남들처럼 다 타들어가있게 마련이에요^^

  • 7. 동경미
    '09.11.26 5:20 PM

    급히 썼더니 오타가 있네요^^
    위에 조절이 아니고 좌절이에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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