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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내 아이의 한계

| 조회수 : 2,649 | 추천수 : 178
작성일 : 2009-11-05 23:04:31
어제 막내 학교에서 선생님과의 면담이 있어서 다녀왔다.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는 만일 선생님이 좋은 얘기만 하시면 햄스터를 한 마리 사달라고 졸라왔고, 나는 면담 결과를 보고 얘기하자고 미뤄왔었다. 미국 학교에서는 일년에 한 번씩 담임 선생님과 개별 면담이 있어서 전체 학생의 부모들이 다 참석하게 되어있다. 막내의 담임 선생님은 막내가 사교성이 아주 좋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데 때때로 친구들과 얘기를 하느라고 수업시간에 집중을 안할 때가 있다고 하셨다. 다른 것은 다 그만하지만 수학을 꾀를 부리면서 안하려고 하고 머리가 좋긴 한데 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무엇이든 자기가 잘하는 것은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하지만 좀 못한다 싶으면 아예 손을 놓아버린다고도 하셨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일하는 엄마의 자격지심이 올라와서 내가 좀 더 봐줬어야 했는데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처음에는 요령을 부리고 안한다는 말에 화도 났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언니들 뒷바라지에 치여서 막내에게까지 신경을 잘 못써주었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슬슬 들었다. 햄스터를 사러 가도 되냐고 묻는 아이에게 선생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당분간 수학을 열심히 하고 실력이 나아지면 그때 가야 한다고 했더니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와서 억지로 수학 문제집을 풀었다. 제가 잘못한 것이니 제가 미안한 마음을 보이는 것이 맞는 것인데 오히려 화를 내니 또다시 묻어놓은 화가 슬그머니 올라오면서 결국은 소리도 한번 지르고 억지로 수학 문제를 다 풀게 하는 것으로 우선은 일단락이 지어졌다. 문제를 풀기가 싫은데 참고 하려니 갖은 핑계와 불만이 다 쏟아져 나왔다. 배가 아파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해서 소화제도 먹었고, 이번에는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두통약을 먹겠냐고 했더니 낮잠을 자고 싶단다. 인내심 테스트인가 보다 하면서 문제를 다 풀고 자라고 했는데, 잠깐 화장실을 갔다와서 보니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결국 원래 하려던 양의 반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게 했는데 위의 세 아이와 너무도 다른 막내에 대해 걷잡을 수 없이 걱정이 올라왔다.  

오늘 아침에도 막내에 대한 걱정이 마음에 가득했지만 며칠 전 학교에서 문제가 있던 고등학생의 학교 면담에 가야 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다행히도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은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이 되어 다소나마 홀가분한 마음으로 긴 시간 운전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아이의 선생님이 아이 엄마에게 했던 얘기들이 줄곧 내 귀에서 맴을 돌았기 때문이었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컨닝을 하다 발각된 아이에 대한 징계를 의논하면서 하신 그 아이의 선생님의 말씀이 마치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다. .
"내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을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게 해줘야 엄마가 할 일을 다 하는 거에요. 아무리 부족한 아이라도 내 아이임에는 분명하잖아요. 부족한 엄마라도 엄마이듯이 부족한 아이도 내 자식이에요. 엄마의 사랑은 어떤 순간에도 변하지 않아야 해요. 아이가 가는 대학에 따라 엄마의 사랑이 달라질 수가 없지요. 아드님은 지금 엄마의 사랑이 흔들린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잘못을 저지른 거에요. 얘야, 엄마는 널 언제든지 사랑하실 거야. 네가 가는 대학이 어디든지 관계없이 말이야. 그걸 믿어보지 않을래?"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건만 엄마가 사랑한다는 얘기를 듣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파서 선생님도 나도 눈시울을 닦았다. 미국 학교에서는 컨닝이 심각한 잘못으로 여겨져서 원칙대로 하면 당연히 정학이라도 받아야 하는 아이를 사랑으로 포용하는 선생님의 마음에도 감동이 되었지만, 그 아이의 엄마 못지 않게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나자신이 죄스러워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나는 내 아이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는가. 내 아이는 내가 원하는 모습의 아이인가.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에도 나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는가. 내 아이가 공부에는 소질이 없는 아이라고 해도 나는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인가. 머리로는 늘 알고 있는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만큼 나는 아이의 한계도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아이는 그럴 리가 없다고 무조건 밀어부치는 건 아닌지. 말로는 공부가 다가 아니라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아이의 성적만 보고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직 어린 나이니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막내에게 나는 참 많이 미안했다. 미안하면 왜 더 화가 나는 걸까.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데 그게 이렇게 힘이 드는 걸 보니 나는 막내나 다름없이 미성숙한 사람인가 보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품에 안아 보니 내 품에 안겨서 머리를 부비는 애기이다. 그렇게 혼이 나고도 엄마가 팔을 벌리면 달려오는 속없는 막내는 나보다 더 마음이 넓은 거다.

"은영아. 엄마가 생각해봤는데 엄마가 공부를 잘 안봐줘서 우리 은영이가 요새 공부를 안하나봐. 그러니까 엄마 책임이 더 많은 것같아. 엄마가 수학 문제도 내주고 채점도 꼼꼼히 해야했는데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못 그랬어. 미안해, 은영아. 다 은영이 잘못이라고 화 낸 것도 용서해줄래?"
"엄마 그게 아니에요. 내 공분데 왜 엄마 잘못이에요. 내가 게으름 피우고 안한 거니까 내 잘못이에요."
성적표를 보면서 제가 더 화를 내더니 하루 사이에 생각이 바뀌었는지 나를 위로해준다.
"그래도 큰 언니가 그러는데 엄마가 큰 언니였다면 훨씬 더 야단 많이 쳤을 거래요. 나니까 엄마가 많이 봐주고 조금밖에 야단 안친 거래요. 언니는 나만할 때 나보다 훨씬 잘했는데도 엄마가 옛날에 야단 많이 쳤었대요. 나더러 편하게 살고 있는 거라고 했어요"
이래저래 나는 점수를 잘 받기는 애저녁에 틀린 엄마인가 보다. 막내를 달래고 구슬르다 보니 큰 아이의 기억에 있는 나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그때의 나는 또 얼마나 큰 욕심으로 아이를 힘들게 했던 걸까.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하고 아이만 아프게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큰 아이에게만 그랬을리 없고 둘째와 셋째도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인생의 과제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아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다. 나의 한계를 인정할 대에도 힘들지만 아이의 한계를 보면 엄마의 가슴은 더 무너진다. 그렇지만 아이의 한계를 그대로 수용할 줄 아는 엄마만이 아이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엄마이다.  

막내와 함께 앉아 일일 학습계획을 짜면서 나는 또 굳게 다짐을 해본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만 기대하기로. 현실적인 기대만 가지고 살기로. 그 어느 상황에서라도 변함없이 우리 아이를 사랑하기로. 이렇게 맹세를 하면서도 어느 틈에 돌아보면 가을하늘만큼 높은 기대를 하고 있는 나이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모서리도 깍여 나가주지 않을까.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꿈꾸는불꽃
    '09.11.6 4:21 AM

    잘 읽었습니다.

  • 2. 델몬트
    '09.11.6 10:13 AM

    저도 큰딸아이의 한계를 인정 못하는것 같아요.
    자꾸만 그 한계를 더 길게 높게 요구하지요.
    그런데 큰아이에 대해선 더더욱 인정 안되는것 같더라구요.
    님 글을 읽으니 정말 공감이 가요.
    엄마들의 공통점, 그리고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말.
    모두가 같네요.
    큰아이로 인해 3달 짧은 상담을 받으면서 매일 울었었거든요.
    모든 책임은 엄마라고 상담선생이 말할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엄마의 욕심. 그것이 문제였어요.

  • 3. 하나맘
    '09.11.6 11:07 AM

    감사합니다. 또 한번 저를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 또한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늘도 등교하기 전 아이에게 큰 소리 지르며 힘으로 진압(?)한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 4. 동경미
    '09.11.6 11:15 AM

    꿈꾸는 불꽃님, 감사합니다.

    델몬트님, 아이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엄마로서 가장 힘든 것같아요. 내가 믿고 싶은 아이의 한계가 늘 현실에서의 한계보다 두 세단 더 높은 곳에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에요 ㅠㅠ

    하나맘님, 아침에 서두르다 보면 꼭 한번씩 큰 소리가 나오지요? 저도 오늘 고등학생 딸과 한판 했네요 ㅠ.ㅠ 남편의 중재가 없으면 화해도 못하는 불량엄마에요^^;;

  • 5. 션와이프
    '09.11.6 1:19 PM

    구구절절히 제 이야기 같아 마음이 심하게 찔립니다.ㅡㅡ;;;

    아이에 대해 욕심을 내면서, 동시에 직장다니는 엄마의 자격지심까지 더해지니,...

    내년부턴 온전히 전업주부로 아이들 육아에만 전념하게 될텐데,
    정말 좋은 엄마 노릇 하고 싶어요.^^*

  • 6. 어진현민
    '09.11.6 2:16 PM

    내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 내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것을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게 해줘야 엄마가 할 일을 다 하는 거에요.
    아무리 부족한 아이라도 내 아이임에는 분명하잖아요.
    부족한 엄마라도 엄마이듯이 부족한 아이도 내 자식이에요. "

    너무나 와닿은 얘기네요...
    늘 좋은 글... 고맙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어떤 순간에도 변하지 않아야 해요

  • 7. 동경미
    '09.11.6 10:35 PM

    션와이프님,
    전업주부되신 것 축하드려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엄마가 곁에서 있어주는 게 꼭 필요해요.

    어진현민님,
    그 선생님 참 감동이었어요. 요즘 세상에 그런 선생님이 계시다는 게 너무 귀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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