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캘리포니아의 리치몬드 고등학교에서 Homecomings 댄스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는 한 여학생이 술에 취해 여러 명의 남학생들에게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을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이 20 여명이 있었는데 모두들 방관만 하고, 뒤늦게 도착한 몇 몇 여학생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생명까지도 위급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경찰에 의해 병원에 옮겨진 아이도 몸과 마음의 상처가 크지만, 사건의 여파로 온 국민의 비난을 한꺼번에 받는 학교와 학생들의 마음의 상처도 만만치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당 학교 학생들의 방관을 비도덕성과 연관짓기도 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요즘 세대의 타락성이라고까지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해당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그 지역의 특성상 아이들이 자존감이 낮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서 애로사항이 많은데 이런 사건의 후유증으로 더욱 빗나가는 아이들이 생길까봐 걱정을 하고 있다.
폭력에 대한 군중심리는 보통 네 가지 정도로 나뉜다. 첫째는 폭력 행위에 참여하는 경우, 둘째는 동조도 반대도 안하고 구경만 하는 경우, 셋째는 반대는 하지만 드러내놓고 반대를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 마지막으로는 적극적으로 동조는 하지만 참여하지는 않는 경우이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에 관련된 학생들은 대다수가 같이 즐거워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것에서 마지막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신고를 한 여학생들은 현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파티에 참석중이었는데 범행 현장을 보고 온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가면서 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셋째 경우로서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보인 경우에 해당된다.
사춘기 아이들을 기르는 많은 학부모들이 며칠 동안 뒤숭숭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고 있다. 그 중 가장 설득력있는 것은 사회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성과 폭력에 대한 잘못된 메세지를 가르치고 있다는 반성이다. 성과 폭력에 대한 왜곡된 경험을 해 온 아이들이 그 부작용으로 위기 상황에 처한 동급생을 보고도 아무도 일어나 돕지 않았다는 것이다.
70년 대 미국에서 여성운동의 뒤를 이어 성혁명이 일어난 뒤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는 물밀듯이 밀고 들어오는 성과의 전쟁을 겪고 있다. 존 에프 케네디가 벌인 여배우와의 스캔들도 그의 능력에 대한 평가에 가리어 그다지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고, 클린튼 대통령때에 불거져 나온 도덕성의 논란 또한 남의 가정사라고 덮어버리면서, 기성세대들은 무의식중에 도덕을 내려놓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속속들이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바마 대선 중에도 수없이 불거져 나온 몇 몇 정치인들의 숨겨진 스캔들을 이제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감출 수도 없고 그 영향을 막자니 역부족인 상태이다. 초등학교 정도만 되어도 어느 의원이 여자 친구가 있었더는 얘기들을 쉽게 주고 받는 모습에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가슴이 먹먹할 따름이다.
여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섹시해야만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을 거라는 세태에 영향을 받아 어린 여자 아이들도 어른들의 옷 못지 않게 야한 디자인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고 불티나게 팔린다. 부모들도 정도 이상의 노출이 있는 옷들을 어려서부터 귀엽다는 핑계로 입혀오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그제서야 제재를 하려고 하면 아이들은 들을 리가 만무하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원조교제로 인한 범죄는 심심치 않게 보도가 된다. 집에서 멀쩡하게 딸을 기르는 자상한 아버지가 밖에서는 딸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 비밀스러운 만남을 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가는 세상이 되었다.
남자 아이들 또한 성이 남자의 능력이고 과시할 대상이라는 왜곡된 생각이 주입되어 자라난다. 수많은 매스컴과 각종 광고들이 남성성이란 성적 능력으로 좌우된다는 그릇된 생각으로 사회를 몰고 가다보니 나이 어린 아이들은 그것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만다. 컴퓨터만 틀어도, TV 만 틀어도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낯뜨거운 광경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아이들에게 금욕을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또한 각종 게임을 통해 정도를 넘어설만큼의 폭력을 경험하면서 자라는 것도 이미 큰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게임에서 경험한 잔혹한 폭력에 익숙한 아이들은 현실에서 같은 수위의 폭력이 일어나도 그다지 예민하게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고 한다.
성문화만큼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그대로 내려가는 것이 없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남자 아이들이 포르노 영화를 처음 접한 곳이 가정이라고 말을 하는지 모른다. 포르노 영화를 즐기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보다 더 즐기는 아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얼마나 많은 여자 아이들이 여자의 외모가 학습 능력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정에서부터 느끼는지 모른다. 외모를 꾸미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는 엄마를 보면서, 딸들이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은 허락하지 않아도 다른 여자들의 미끈한 다리에는 시선이 꽂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여자 아이들은 자기의 외모에 좌절하거나 아니면 내면보다는 외모로 방향을 전환하게 마련이다. 인권에 대해 열린 생각들이 생겨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여성과 남성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물리적인 힘이 강조되고 여자아이에게는 신체적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내 아이를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남자 아이들은 여자들을 보호해주고 배려해주는 것을 어려서부터 집에서 보고 듣게 가르쳐야만 한다. 그저 힘세고 약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는 것이 멋진 것이 아니고 힘을 함부로 쓰지 않고 약한 사람들을 보호할 줄 아는 남자가 진정한 남자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아직도 유교 사상의 지배를 받기에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과만 어울린다거나 거칠지 않으면 오히려 부모들이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 걱정을 한다. 거칠고 힘세고 자기가 가진 힘으로 남을 조정하는 남자는 못난 남자라는 것을 가정에서부터 배워야 한다.
큰 아이가 5살 무렵 옆 집에 한 살 위의 백인 남자 아이와 단짝이 되어 놀곤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그 집에 가서 놀고 돌아올 때면 반드시 그 아이의 아빠가 자기 아들과 우리 아이의 손을 붙잡고 우리 집 앞 길에 서서 아들에게 우리 아이를 에스코트하라고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집 아이가 우리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 대문 앞까지 같이 올라와서 자기가 벨을 무르고 내가 나오면 우리 아이가 자기 집에 와서 놀게 허락해줘서 감사했다고 깍듯하게 인사를 했고, 아이 아빠는 멀지감치 떨어져서 팔짱을 끼고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겨우 여섯 살짜리가 무얼 알까 싶어서 감탄하는 얘기를 아이 엄마에게 하니까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를 때부터 버릇이 들지 않으면 평생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 것인지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란 아이와 날마다 아버지에게 무시 당하고 매를 맞는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의 여성관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여자 아이들에게는 자기를 보호할 줄 알고 남자를 제대로 알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하고 집 밖에서는 잘못된 지식만 범람하는 상황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쳐 줄 역할을 다 해야 한다. 패션 모델처럼 입고 나가는 옷이 그저 미적 가치로만 볼 것이 아니고 성적 욕구를 건강하게 해소하고 절제할 수 없는 사람들의 폭력의 대상이 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엄마 아빠에게밖에는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이다. 남자들에게 예쁘다고 소리를 듣지 못하면 삶의 가치도 떨어지는 것처럼 느끼지 않을 수 있게 자존감을 길러주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 성과 폭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나를 보호할 능력도 생기는 것이고, 상대를 보호하려는 마음도 생기는 것이고, 위기 상황에 처한 남을 구해줄 마음도 건강하게 생겨나는 것이다. 상황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도 서지 않는데 무조건 남과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서 의의 편에 선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어려운 결정이다. 리치몬드 고등학교 사건의 희생자가 된 여학생은 귀가 길에 자기를 예쁘다고 불러 술마시는 파티로 초대해주는 남학생들에게 자기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 자리에 참석했는지도 모른다. 수 많은 남학생들이 자기의 미모를 추켜세워주면서 한 잔씩 따라줄 때 안된다고 박차고 나오는 것은 그 나이의 여자 아이에게는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애당초 그 자리에 가지 않을 용기가 더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예쁜 여학생을 보며 느끼는 욕망 또한 제어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미성년자라는 신분을 잘 인식하고 그런 자리를 가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유혹의 자리에 앉아 유혹을 이기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그것은 만용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 가지 않았어야 했다.
무엇이 되는 것이고 무엇이 안되는 것임을 가르쳐 주는 일이 참 어렵다. 우리 세대의 상식이 더이상 아이들 세대에서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모로서 자괴감도 든다. 딸 아이만 넷을 기르는 엄마로서 이런 사건을 보면 한 아이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고 당장 내일부터 홈스쿨이라도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까지 들면서 착잡해진다. 숙제와 시험 준비로 분주한 큰 아이가 못 미더워 지나가는 소리로 사건에 대해 아느냐고 물으니 아는 내색을 한다.
"너 학교 파티라고 방심하고 같은 학교 애들이라고 믿으면 절대 안돼"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참 싫어지는 순간이다.
"엄마ㅡ 왜 걱정을 하세요? 난 원래 댄스 파티 안 가잖아요. 이번 Homecomings 에 가보려고 했는데 아무도 나한테 데이트 신청 안해서 못갔잖아요. 벌써 잊었어요? 그리고 학생이 술을 왜 마셔요?"
"그리고 누가 나쁜 짓 하는 거 보면 꼭 신고를 해야 돼.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다가 큰 일 날 수도 있잖아."
말을 하고 나니 더 못 미덥다.
"그런데 나쁜 짓 하는 아이들 보는 앞에서는 신고하지 말고 어디 멀리 가서 네가 신고한 거 모르게 하라는 말이야."
"아유, 엄마, 내가 애기에요?"
눈을 흘기면서 안심을 나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딸 아이에게 안심이 되는 마음도 한 조각 있지만 이렇게 험한 세상에 아이를 날마다 내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맷돌을 얹은 듯 무겁기만 하다. 일일히 보호해줄 수도 없고, 행동마다 지표를 제시해주기도 어려운 세상에서의 부모 노릇이란 말 만으로도 참으로 어려운 역할임에는 분명하다.
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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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남과 여
동경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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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11-02 14: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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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아라미르
'09.11.3 9:28 AM안녕하세요. 동경미님..^^ 오늘 처음 글을 읽었어요.. 엄마기질 아이기질..
긴 글이라 무심히 보다보니 너무 좋아 이름검색해서 처음부터 읽고있네요.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드려요..^^2. 동경미
'09.11.3 1:52 PM아라미르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읽어주시고 좋은 얘기도 써주세요.3. 션와이프
'09.11.3 3:01 PM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고 있는데, 어려서부터 건전한 성역할을 가르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특히 부모들의 성문화가 자녀들에게 대물림되는 건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자기는 컴퓨터에 온갖 음란물을 저장해 놓고 즐기면서, 자녀들이 건전하게 자라기를 바라고
강요하는 요즘 부모들부터 각성해야 한다고 봅니다.4. 동경미
'09.11.3 3:47 PM션와이프님,
부모들이 먼저 자신의 생활을 잘 돌아봐야 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에요. 보고 듣는 그대로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다 스폰지처럼 흡수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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