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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꿈을 찾아서

| 조회수 : 1,807 | 추천수 : 148
작성일 : 2009-11-01 13:55:09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예고를 가고 싶어서 엄마를 한동안 졸라댔다. 학교 미술 선생님도 적극 권해서 한동안 선생님의 화실에서 입시를 준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엄마가 미술을 전공하는 것을 결사반대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화실을 그만 두고 공부로 마음을 돌려야 했다. 그 당시 엄마의 반대 이유는 돈벌이가 하나도 안되는 미술은 취미로나 해야지 전공은 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고 나는 엄마가 너무나 돈만 생각한다고 큰 원망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엄마가 원하는 문과 계통으로 공부를 했고 장학금이 없으면 형편이 안되었기 때문이 학부는 국문학을 했지만 대학원에서는 엄마가 그리도 바라던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나는 엄마가 바라는 착한 딸 노릇을 잘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그림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었고 그럴 때면 꼭 엄마에 대한 원망도 같이 따라 나왔다.  

결혼하고 취미 생활을 해보라는 남편의 권유에 따라 새로 화구를 준비하고 이젤 앞에 앉았을 때의 그 감격은 이산가족이 상봉했을 때마냥 감개무량함 그자체였다. 시간이 없어서 직접 나가 풍경을 그리진 못하기에 시작한 것이 명화를 따라 그려보는 것이었다. 이름 모를 어느 화가의 사과 광주리와 마띠스의 명화를 따라 그리면서 내 마음 속에 오랫만의 과거와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같았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마음에 접어두었던 미진함과의 새로운 만남이다.  

한국으로 이사를 갔을 때 엄마가 내 그림을 보시면서 아직도 그림을 그리냐고 물으셔서 나는 오래전부터 묻어온 불만 덩어리를 감추지 못하고 내보였다. 엄마가 그만 두게 해서 전공을 못해서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고, 그때 계속해서 화가가 되었다면 또 다른 인생을 살 거였다고. 아이 넷을 낳고도 철이 안들은 딸에게 느닷없이 수 십년 전의 불만의 화살을 맞은 엄마는 아무 말도 안하시고 내 그림을 쓰다듬기만 하셨다.  

며칠 후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미술에 재질이 있는 둘째가 미술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는 일이 있어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함께 칭찬을 하고 축하를 했다. 엄마가 둘째의 그림을 쓰다듬으시면서 그러셨다.
"제 엄마를 꼭 닮은 게 하나는 나왔구나. 은선아, 네 엄마도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 몰라. 엄마는 어려서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너만큼이나 각종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고 그랬어. 중학교에 가서도 예술고등학교에 가서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말 가난했거든. 그래서 다른 이유를 대고 못 보냈어. 우리 은선이는 할머니가 엄마더러 꼭 밀어주라고 할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그려야 돼. 알았지?"
둘째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시면서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었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는 존재이다. 말을 해줘도 오해를 하기 일쑤이고, 말을 안해주면 그나마 더 큰 오해로 상처가 되기 마련이다. 엄마의 반대 이유 한마디만 평생을 마음에 담고 한 조각 원망을 품고 살아 온 나를 보면 정말 그런가 보다.

나도 자식을 기르면서 다른 이유도 아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자르게 될 때처럼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다른 이유는 다 사실이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말도 사실은 어줍잖은 변명이고, 그저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을 하기에는 나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다 말을 못해줄 때가 더 많았다. 그러나 엄마의 고백을 들은 그 날 이후, 나는 경제적 정직을 하나의 육아의 철칙으로 삼게 되었다. 그것이 당장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이들에게도 어쩌면 더 아프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헛된 원망이나 헛된 희망을 불러일으켜 더 큰 상처와 더 큰 실망을 안겨주는 일만큼은 막아준다는 믿음때문이다.

미술에 재질이 남다른 둘째가 나를 닮았으니 이쁘기보다는 나역시 엄마와 꼭같이 미술보다는 다른 것을 전공했으면 하는 마음이 한동안 있었다. 돈벌이라는 이유보다는 예술을 하는 것이 살아가면서 힘든 요소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엄마로서의 노파심과 내가 잘 뒷바라지를 할만큼의 능력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한 세대가 지났지만 엄마의 걱정의 색깔은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 학기부터 둘째를 미술 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아이는 순수미술보다는 건축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는데 무엇을 하든 제 꿈을 이루는 것이라면 힘을 다해 도와야겠고 그러다 보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지난 주에 완성했다고 독수리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는 둘째의 얼굴이 그 무엇을 할 때보다 더 행복해보인다. 나의 꿈을 위해 땀을 흘릴 때가 가장 행복한 때이고 가장 아름다울 때라는 것을 둘째는 엄마보다 훨씬 일찍 건강하게 배워가면 좋겠다.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동경미
    '09.11.1 4:46 PM

    그림을 올릴 수가 없어서 그림들은 줌인 줌 아웃에 같이 올렸습니다^^

  • 2. 사과쨈
    '09.11.2 12:15 AM

    제가 검색을 하다가 이 홈피에 들어왔는데요..

    글을 참 잘올리세요..

    열심히 배우려고 들어온만큼 열심히 활동하고 배워야겠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3. 델몬트
    '09.11.2 10:17 AM

    일부러 그림 보고 왔어요.
    정말 훌륭하시네요. 전업주부 아니시죠? ㅎㅎ.
    피카소가 그림처럼 강렬함이 엿보여요.
    동경미님은 못하시는게 뭐에요?
    너무 멋지세요.

  • 4. 동경미
    '09.11.2 10:53 AM

    사과쨈님,
    감사합니다. 종종 들러주세요.

    델몬트님,
    일하는 엄마에요.
    저...못하는 거 아주 많아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5. 뚝섬 아줌마
    '09.11.2 3:33 PM

    저는 1남 4녀중 차녀에요,,,,어릴적에 저는 항상 뭐든지 돈이 없어서 못 했는데 남동생과 막내 여동생은 다 해주시더라구요~~어릴때는 그게 참 불만 이었는데 나이 차가 나다 보니 저 한참 학교 다닐때는 저희집 형편이 어려웠고 동생들은 형편이 좋아서 그랬는데도..그게 불만 이었어요~~~ 아이 낳고 키우다 보니 참이나도 철 없던 딸래미 였어요~전 음악 미술 너무 문외한이라서 그림 잘 그리시는분들 너무 부러워요~~~

  • 6. 동경미
    '09.11.2 11:22 PM

    뚝섬아줌마님,
    맏딸이셨군요. 많이 서운하셨겠어요.
    부모님들도 큰 딸한테 많이 미안하고 안쓰러우셨을 거에요.
    저도 큰 아이와 둘째는 초등학교를 사립에 보냈었는데 뒤에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셋째와 막내는 그렇게 못해줬어요. 저희는 거꾸로지요? 그런데 그게 별 거 아닌데도, 아이들은 오히려 잘 다니고 있는데도, 늘 미안하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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