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저지르는 여러가지 잘못 중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거짓말이 아닌가 싶다. 천진난만해서 세상을 모를 것만 같던 내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며 엄마 아빠를 속여먹었음을 알았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무엇이 이 아이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했을까 라는 질문을 수없이 되뇌이며 자책감도 느낄 것이고 엄마로서 실패한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겨날 것이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두가지라고 한다. 첫째는 남들이 듣기에 대단해보이기 위해 지어서 얘기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자신이 빚어낸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거짓말하는 아이를 다룰 때에 부모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절대로 아이를 엄청난 잘못을 지른 범죄자처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좋지 않은 버릇이다. 하지만 아이의 거짓말이 살인죄나 강도죄에 해당하는 중범죄는 아니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현재 발생한 아이의 거짓말 그 자체만을 보고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이렇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이 아이가 어떻게 자라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에 함락된다. 그러한 미래에 대한(현실이 부풀려진)두려움때문에 아이를 다그치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말할 수 없이 추악한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이름표가 붙게 된다.
사실 아이를 불러 앉혀 놓고 왜 거짓말을 해야 했는지를 묻고 또 묻고 거듭해도 엄마가 원하는 시원한 대답은 나와주지 않는다.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 바로 "왜 그랬니?"라고 한다. 거짓말하는 아이를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면 물을 수록 아이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더욱 고도의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한다. 거짓말의 원인을 물을 때 정확한 원인을 말할 수 있는 아이도 없을 뿐더러 안다 해도 아이의 심리로는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이것은 어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결국 아이를 다그치면 다그칠수록 엄마는 아이를 더욱 더 큰 거짓말장이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잘못한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 본인이 극구 부인하며 거짓말을 할 때에 부모는 우선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도 시간을 주고 자신에게도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주어 작은 문제를 터무니 없이 크게 보지 않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얼마 동안 자기 방에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하고 시간이 지난 뒤 나오게 해서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진실을 말할 때에는 절대로 긴 연설을 하거나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는 진실을 말하기에 안전한 환경이 조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애써 용기를 내어 사실대로 말을 했는데도 정도 이상의 체벌이 주어지거나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이는 두번다시 사실을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아이에 대해서는 미리 정해놓은 거짓말에 대한 벌칙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각 가정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벌칙이 정해져 있으리라고 본다). 이 벌칙을 시행할 때에도 절대로 곁에 서서 비아냥거린다거나 길게 늘여서 야단을 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 어느 경우에도 아이에게 "너 이다음에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렇게 거짓말하면 이다음에 XX 가 된다" 등의 비하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미국의 각 주립교도소마다 죄수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90% 이상이 어려서부터 "너 이렇게 행동하면 이다음에 감옥에 간다"는 저주의 말을 듣고 자랐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물론 그 부모들이 모두 아이를 저주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말하는 것외에는 다른 방법이 아예 없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나름대로 아이를 겁주어서 바른 길로 이끌겠다고 한 말이었는데 아이에게는 평생의 상처가 되어 인생의 큰 흉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며칠 전, 둘째 아이가 제딴에는 완전범죄랍시고 해왔던 거짓말이 탄로가 났다. 방과 후 집으로 오는 길에 피아노 학원에 들러서 레슨을 받고 오는 것이 매일의 일과인데 이틀을 빠지고 놀이터에서 놀다 온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마다 물어보면 갔다왔다고 했는데 걱정이 된 피아노 선생님의 전화 한통으로 발각이 되었다. 모른 척하고 세째 날에도 피아노 잘 갔다왔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좀전에 피아노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었다는 말만 했더니 금방 얼굴색이 달라지더니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었다. 무슨 얘기를 했을 것같냐고 반문했더니 고개를 떨구고 말을 못한다.
마음 속으로는 여러가지 생각이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방법과 내 마음의 감정이 서로 부딪치니 말문이 막히는 것같았다. 우리 집에서는 거짓말을 할 경우, 5일 간 외출금지(친구 집이나 놀이터에 못가고 집에 있는 시간에도 주로 자기 방에만 있어야 한다), 5000원의 벌금, 혹은 5시간 동안의 집안 일(매우 다양한 일들이 포함되는데 하루에 5 시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 중의 하나를 정하게 되어 있다. 5 일간 외출금지를 벌칙으로 하기로 하고 아이를 자기 방으로 보냈다. 계속 마주보고 있으면 화가 난 마음에 사설이 길어질 것이고 아이는 아이 대로 반발심이 생겨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야단치는 시간을 극도로 줄이고 아이를 보내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 밤을 새서라도 거짓말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상했는지 말을 해도 모자랄 것같았지만 혀를 깨물고 한 마디만 덧붙였다.
"엄마는 은선이가 다음에는 정말 잘할 거라는 걸 믿어."
제 딴에도 민망했는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5일 동안 외출도 못하고 들어가 있어야 할 자기 방으로 갔다.
거짓말은 분명히 고쳐야 할 행동이다. 하지만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고 땅이 꺼지지도 않는다. 부모의 과민반응이 오히려 아이로 하여금 더욱 더 연마된 실력의 거짓말을 연구하게 몰아가는 것이다. 아이의 성격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서 생겨나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시행착오 중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거짓말하는 아이
동경미 |
조회수 : 2,272 |
추천수 : 102
작성일 : 2009-09-06 04: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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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수류화개
'09.9.6 8:44 PM님이 쓰신 내용 ,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순간은 왜 그리 참지 못하고 설교로 시작하는지...
다시한 번 마음속에 새기며 이젠 그리하지 않을 거 같아요.
또 한 번 생활속의 팁으로 배우고 갑니다. ^-^2. 뉴트
'09.9.7 11:36 AM좋은 내용 감사하네요. 부모교육 수업중에 들었는데요, 아이들은 거짓말 할 줄 모른다고 하네요/
그저 사실과 다른 말을 한다는 거죠. "너 왜 거짓말 하니?" 가 아니라 사실과 다른 이야기인것 같으니 사실을 말해 줄래.. 라고 하면 아이가 상처를 덜 받는다고 하네요. 대화도 서로 부드러워 지고... 아이를 키우는 일엔 정답도 없는것 같고 매사 막힘이 있는 듯 해요. 그치만 아이와 내가 맘이 통하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3. 바람
'09.10.23 6:47 PM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요즘 아이가 눈에 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곤 해서, 어찌해야하나.. 고민이 되었었는데.. ^^
좋은 지침이 되었어요.
동경미님께서 괜찮으시면 여기 출처를 밝히고, 제 싸이에 이 글을 퍼가고 싶은데..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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