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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 내 아이의 실제 나이

| 조회수 : 2,074 | 추천수 : 145
작성일 : 2009-09-02 01:13:05
한국에 있을 때, 지방 출장이 있어서 남편과 함께 다녀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한쪽 코너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보니 어느 엄마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딸을 큰소리로 꾸짖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도 언성을 높여 야단을 치는 바람에 식사를 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모녀를 주목하게 되었다. 소동이 난 이유는 고속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저녁을 주문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엄마가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고 고속버스는 출발할 시간이 되고 해서 화가 난 엄마가 아이를 뒤쫓아 오게 된 것이다.

아이가 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아 초조해진 엄마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야단을 맞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계산대에서 억지로 음식값을 환불받고 주문했던 떡라면 그림만 돌아보며 나간 아이의 뒷모습은 안쓰럽기만 했다. 남의 아이이고 그 엄마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텐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줄곧 그 아이의 우는 얼굴이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커다란 게 바보같이...','챙피해서 못 데리고 다닌다'라는 말을 듣고 주린 배를 안고 엄마를 따라 버스에 올라 탄 그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목적지까지 갔을까. 버스 안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야단을 맞았을까. 내 눈에는 그저 배고파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떡라면 한그릇 먹으려고 줄서서 순서를 기다린 천진난만한 아이일뿐인데, 그 엄마의 눈에는 아마도 어른과 다를 바 없는 커다란 아이로 여겨졌나 보다. 그래서 아마도 따라 내려서 밥을 사주지 않고 혼자서 가서 알아서 사먹고 제 시간 내에 돌아오라고 했나 보다.

"아까 그 엄마, 좀 작은 소리로라도 말했으면 좋았을텐데...여자앤데...보기 안좋더라구...어디까지 가는 거였는지 배두 고플텐데"
남편도 내 생각을 읽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아이 얘기를 꺼냈다.  
"그치? 김밥이라도 사가게 해주지..."
아마도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얘기들을 하며 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대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나 특별히 목욕탕 등의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아이를 야단치는 광경은 그다지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를 맞는 아이들도 꽤 있었던 기억이 난다. 표면적 이유는 그때 그때 다르겠지만 사실은 엄마 눈에 비치는 아이가 늘 실제의 아이보다 더 나이가 많은 아이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눈에는 내 아이가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지는데 실제의 아이는 늘 엄마 마음만큼 해주질 못한다. 나혼자 보는 거라면 괜찮은데 남들이 다 보는 자리에서 엉뚱하게 실수를 하는 아이를 보고는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이다. 첫마디는 주로 "커다란 게..."라는 말이다.

몇 살의 나이가 정말로 커다란 아이가 되는 걸까. 어쩌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아이는 늘 어린 아이이고 싶은데 엄마는 자꾸만 큰 아이로 보고 싶어 조바심이 커지는 건 아닐까. 조금씩 서서히 자라는 것에는 성이 차지 않는 엄마의 재촉에 아이는 아이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누리기 전에 미리 어정쩡하게 애어른이 되어간다. 이렇게 실제의 나이와 주변의 기대나이가 일치되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어른들의 이기심이 빚어내는 일종의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동싱리학에서는 아이가 아이로 있는 이 시기(Childhood)가 길면 길수록 아이의 정서가 안정되고 성격도 원만한 성인이 된다고 한다. 반면에 너무 빨리 아이티를 벗고 어중간한 애어른이 되는 아이들일수록 정서가 불안하고 성인이 된 후에 여러가지 관계장애로 고생하게 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아이가 아이로 있는 것을 답답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재촉하지 않아도 세월은 흐르고 아이가 영원히 아이로 있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에 엄마는 내 아이에게 다른 것은 부족할망정 아이로 있을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확보해줘야 한다.
      
엄마 특유의 조바심이 내 경우에도 예외는 아이어서 나도 큰 아이와 두살 터울로 태어난 둘째가 만 두살이 되면서 비로소 큰 아이에게 얼마나 나이에 맞지 않는 기대를 하며 지냈는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두 돌이 지나자 마자 동생을 본 큰 아이는 병원에서 동생을 데리고 돌아온 엄마가 동생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만 보아도 시샘을 하며 떼를 썼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내 눈에는 그때 큰 아이가 '언니'라는 이름하나로 갑자기 제 나이보다 더 많이 훌쩍 커버린 아이처럼 여겨졌다. 동생을 보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아우를 타는 것에도 야단만 치고, 제딴에 이쁘게 보이려고 동생의 기저귀를 가져다주는 등의 잔심부름을 해도 대단하게 여겨지기 보다는 당연히 그러려니 생각하는 어리석은 엄마였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둘째가 그 나이가 되니 두살 짜리 아이가 사실은 얼마나 어리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눈의 깍지가 걷히게 되었다. 꼭같은 두돌짜리인데도 둘째는 그때 큰 아이에 비해 나의 기대도 줄어들고 세째를 낳았을 때에는 큰 아이때보다 아이를 괴롭히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나 언니가 된 아이나 사실은 모두 아기라는 깨달음이 뒤늦게 밀려들었다.

이제 아이들이 늘어나고 세월이 흘러 막내가 네돌이 가까워온다. 큰 아이가 네살일 때에 제 나이에 걸맞지 않는 이것저것을 시켜보려고 애쓰던 나는 막내에 이르러서는 때때로 제 나이보다도 어린 아이 취급을 하는 또다른 모습의 어리석은 엄마가 되어간다. 큰 아이가 자기 어렸을 때를 다 기억할 수 있다면 아마도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아이 넷을 낳고야 간신히 내 아이들의 나이를 올바르게 보는 법을 희미하게 알게 되어가니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막내가 네 살이 되던 무렵 썼던 글이네요. 지금 만 아홉 살인데 막내라서 그런지 아직도 어리광이 뚝뚝 떨어지지요. 큰 아이가 그 나이였을 때에는 일곱 살, 다섯 살, 세 살의 세 동생을 거느린 (^^) 언니였고, 엄마의 눈에는 열 아홉 살로 보였어요. 숙제도 말 안해도 제 힘으로, 방 정리도 알아서...무엇이든지 제 힘으로 알아서가 모토가 되다시피 했던 큰 아이에 비하면 막내는 무엇이든지 언니에게 해달라고 하는 악동이네요.

몇 년 전인가 큰 아이가 그랬어요. 자기 인생과 막내 동생의 인생이 천지차이라고요. 얼마나 미안하던지. 별 수 없이 사과했지요. 엄마가 그때는 너무 뭘 몰라서 그랬다고요. 동생들은 다 자기 인생이 있는 거고 엄마 아빠가 있는 한 너도 너의 인생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는 사과의 습관화가 되는가봐요. 늘 변명이 궁색하지만 그래도 우선 사과부터 합니다. 그랬더니 씨익 웃으면서 '그래도 그 덕에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할 줄 아는 게 많아졌어' 하고 또 엄마를 위로해줍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큰 아이가 정말 거인마냥 보이지요. 갓난 아이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다 지치는데 큰 아이까지 매달리니 힘든 것도 당연하고요. 그래도 큰 아이들 많이 안아주시고 이해해주세요. 어느 분이 동생에게 엄마를 뺏기는 마음을 바람난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는 기분과 다를 게 없다고 비유하시는 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둘째나 세째, 혹은 네째들은 세상에 나와보니 이미 언니나 형이 있으니까 나름대로 적응이 되지만 맏이들은 참 힘들다고 해요. 아무리 맏이가 가지는 특권이 있다해도 엄마 아빠가 온전히 내 꺼가 되는 것만 하겠어요.

큰 아이가 네 다섯 살 무렵 친정어머니가 동생한테 샘내는 것을 달래시느라고 그러셨어요. 너는 큰 언니니까 엄마는 동생들하고 나눠가져도 할머니는 네 꺼라고...그랬더니 아이가 할머니 손을 슬그머니 빼면서 그래도 난 엄마 가질래 하더군요. 우습기도 했지만 가슴이 짠하고 아이가 안쓰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세상의 큰 언니들, 동생에게 양보하느라고 힘들었던 마음이 풀어질 그 날이 올까요.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실이랑
    '09.9.2 9:15 AM

    정말 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 예민
    '09.9.2 10:08 AM

    엄마의 어깨가 무겁네요.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다들 비슷하지만
    매일 매 시간 부딪힐때면 기본을 잊을때도 많지요.
    반성합니다..

  • 3. 해피위니
    '09.9.2 10:52 AM

    정말 공감가는 좋은 글이네요..

    얼마전에 4살짜기 작은 아이가 블록을 가지고 논 후 정리를 안하길래,
    네가 정리하면 다음에 엄마가 또 꺼내주고, 이번에도 엄마가 정리하면 옆집 친구 줘버린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작은 아이가 "블록아, 안녕.. 다음에 만나"하면서 정리할 생각은 안하고 울면서 정말 블록과 헤어질 생각을 하더군요.
    그 모습이 귀여워서, 혼자서 조용히 웃으며 정리를 하는데,
    자기 방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던 7살 누나가 갑자기 훌쩍이는 소리가 나는거예요.
    깜짝 놀라서 아이 방에 가보니, 블록을 가지고 재밌게 놀았는데 이제 못논다고 생각하니
    슬퍼서 그런다고 하네요..

    그말을 듣고 참 아이한테 미안했어요.
    이렇게 아직 어린 아이인데, 누나라고 다 큰 아이 취급했던게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큰 아이도 좀 더 오래 아이로 있는 시기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 4. 달콩이네
    '09.9.3 10:12 PM

    저도 첫째예요...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저 어렸을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글 잘 읽었어요...엄마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것인가...새삼 깨닫고 갑니다.^^

  • 5. 82cook
    '09.10.19 7:51 PM

    82cook 관리자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글이라서 글 제목에 ★표 붙여두었습니다.

  • 6. 바람
    '09.10.23 6:55 PM

    아..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6살 4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안그래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큰아이를 나이보다 더 크게 대하게 되어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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