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점 커피숍에 질린 요즘 ,
뭔가 색다른 커피전문점이 없을까 찾던 찰나에
아예 ‘ 다방 ’ 에 가볼까 ?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태어나서 한 번도 ‘ 다방 ’ 이란 곳을 가본 적이 없고 ( 별다방 , 콩다방은 당연히 제외하고요 ^^)
‘ 라디오 스타 ’ 나 ‘ 너는 내 운명 ’ 같은 영화에 간간이 나온 다방 풍경을
한 번쯤은 실제로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
그렇게 해서 다방을 서치하던 중에 대구에 ‘ 미도다방 ’ 이란 곳이 아주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요 ,
대구에 사는 친구에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가 며칠 전 드디어 미도 다방에 다녀오게 됐습니다 .
미도다방은 대구 진골목길과 종로 ( 서울 종로 아님 ) 에 자리잡고 있었는데요 ,
진골목이란 긴골목이란 뜻 ( 어른들이 쓰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 길다 ’ 를 ‘ 질다 ’ 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 입니다 ,
몇 년전 1 박 2 일에서 대구투어할 때 근대골목으로 소개됐던 곳이기도 하죠 .
진골목은 대구의 부자들이 모여 살던 부촌이었다고 하는데요 ,
여기에 위치한 미도다방은 무려 80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
그리고 지금 계신 정인숙 사장님 , 그러니까 다방마남 분께서는 30 년을 운영해 오고 있는 것이라고요 .
미도다방은 간판부터 옛날스러웠는데요 ,
안에 들어서자 1 인용 노래방 소파를 두세자리씩 붙여놓은 것하며
고속버스 자리에나 있을 법한 의자덮개와 대나무방석까지 … 영락없는 다방 그 자체였습니다 .
소파 옆에 위치한 큰 수족관도 인상적이었는데 ,
저는 이걸 보는데 왜 자꾸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오르던지 . ^^
그리고 , 자리마다 앉아 계신 어르신들의 위엄이란 …
괜히 숙연해지면서 커피숍같이 떠들썩하게 수다를 떨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하지만 , 저는 이런 고즈넉함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
우선 물도 하이트 맥주컵에 나옵니다 …^^ 하하
여기에서 제일 유명한 건 약차와 쌍화차인데요 ,
약차를 시키니 어렸을 때 자주 먹던 옛날과자전병이랑 웨하스 ( 양이 엄청 많아요 !),
생강을 같이 주시더라구요 . 이 생강을 사장님 설명대로
설탕에 콕 찍어서 먹으니 매운맛도 덜하고 달콤하니 맛있었습니다 .
처음으로 먹어보았던 쌍화차는 무슨 만능 영양차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
곡물도 한 가득 들어있고 , 노른자도 들어 있고요 .
차에 노른자를 넣는다는 거 상상으로 잘 그려지지않았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제법 맛있더라구요 .
커피는 역시 다방 커피답게 ( 다방 커피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으면서 ^^;;)
찐 - 했습니다 . 그냥 ‘ 내가 다방 커피다 !’ 외치는 듯한ㅋㅋ
미도다방에 와서 느낀 건 제가 생각했던 다방의 이미지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는 건데요 .
다방 분위기나 인테리어도 , 손님도 , 커피 맛도 , 제 상상 속의 다방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
미도다방에는 벽에 걸려져 있는 ( 서예로 적힌 ) 시가 엄청 유명한데요 .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상열 시인이 쓰신 거라고 합니다 .
‘ 종로 2 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 정인숙여사가 햇살을 쓸어모은다 ’ 로
시작되는 이 시는 미도다방의 분위기를 그 - 대로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
누군가의 시에 다방이름과 마담이름까지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다는 게 뭔가 신기했어요 .
늘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계신다는 정인숙 사장님의 별명은 ‘ 만인의 연인 ’ 이라는데 ,
모든 손님들에게 평등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그런 별명이 붙으셨다고 해요 .
이미 30 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 때문에
저처럼 멀리서도 미도다방을 찾는 손님들이 많은 거 아닐까요 ?
본래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분들만 오셨는데 , 요즘엔 소문이 많이 나서 젊은 분들도 많이 온다고 하는데요 .
노인분들도 젊은이들이 찾아오면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 시끄러워서 싫어하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
뭔가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다 – 똑 같은 거 투성이인 체인점 커피의 기계적인 맛을 잠깐 떨쳐내고 ,
아날로그의 맛을 느끼고 싶으신 분은 , 대구의 미도다방에 들러보시길 강추합니다 .
영양 가득 맛있고 값싼 차는 기본 , 사투리 섞인 조근조근한 목소리의 사장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