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스텐 밥공기를 꺼낼 일이 있습니다.
우리 엄마는 그때마다 아련한 표정이 되어 그러지요.
"이 스텐그릇 보니까 너희 외할머니 생각난다.
스텐 그릇이 비쌀 때 밥그릇하고 셋트로 열벌 사 주었잖아 .그때는 정말 귀한 것이었는데......"
막걸리 잔으로 쓰려고 어쩌다 불려 나오면 그때도 엄마는 같은 말을 시작합니다.
"이거 보면 외할머니 생각난다........."
그때 엄마는 며느리 사위 볼 준비하는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고
꼬물꼬물 어린 자식들 치닥거리하느라 종종거리던 젊은 어느날에 가 계시는 것이겠지요.
그러면서 종갓집 맏손녀로 제삿떡 김올리며 두손 모아 떡이 잘 쪄지길 빌던 그 어린 소녀로 돌아가계신 것일까요.
도깨비 시장에서 비싸게 사서 쓰시던 그 애틋한 파이렉스 셋트도 있는데
멋진 유기 신선로도 있는데,
왜 엄마는 이 스텐 그릇의 시간으로 돌아가실까요.
저는
엄마가 늘 외할머니를 떠 올리는 저 그릇을 가지고 싶지 않습니다.
사그라지는 촛불 같은 엄마의 모습만 떠 오를 것 같아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