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의 아가씨가 어느날 눈에 콩깍지가 씌인 채 32살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결혼을 앞둔 신혼부분에겐 누구나 꿈꾸는 신혼생활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남편될 사람이 너무 좋아 남자쪽의 환경따위는 무시한 채 덜컥 결혼이라는걸
하고 말았지요.
시어른들과 함께 10평도 안되는 집에서 아가씨에서 며느리로 바뀌어 시댁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어요.
꿈같던 신혼생활? 모두 물건너 갔었어요....
시간은 흘러흘러 28살의 새댁에서 32살이 되었을 때 모든 사연을 뒤로 한 채,이 철부지 여인은 꿈같은 분가를
하게 되었답니다.
13평 작은 아파트!
어른들과 함께 살면서 신혼살림은 꿈도 못꾸고,어른들이 쓰시던 하얀 도자기그릇만 보고 살던 여인의 눈에
분가를 기회로 예쁜 그릇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답니다.
분가하기 며칠전, 신혼은 아니지만 신혼의 기분으로 돌아가 그동안 꿈에만 그리던 꽃그림이 가득한
예쁜 그릇들을 하나하나 구경하고 다녔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 눈을 사로잡은 아이는 바로 이 커피잔이었어요.
혹시 이 커피잔 가지고 계신 분들도 분명 계실거예요.
이 커피잔을 사서 꿈같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뽀드득 소리나면서 씻고 또 씻고..
남편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는지 몰라요.
이런 아내의 마음도 모른 채 밤 12시가 다 되어 들어온 남편에게 시간따위는 저 멀리 내다버리고 카페에서
마시는 기분으로 이 예쁜잔에 커피를 타서 커피향과 행복함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질 못했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힘든줄 전혀 모르고 남대문시장을 또 나갔어요.
홈세트가 있긴 했지만 너무 비싸 만지작거리기를 수십번... 결국엔 뚜껑달린 밥그릇과 국그릇을 2개씩
사들고 왔어요.
이 그릇에 처음으로 밥을 먹는 날, 정말 반찬없이도 밥이 술술 넘어가더라구요.
식사후에 마시는 커피..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콤함이 오래동안 사라지지 않는 기분으로
때늦은 신혼기분을 내며 제일 행복했었던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시간이 흐르면 다른 그릇이 눈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이 장미그릇의 접시와 반찬그릇들이
포함된 세트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다른 일이 손에 안잡히는거 있죠?
<<<82쿡에서 저의 이런 기분을 이해해주실 분들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어요~^^>>>
제 친구들은 30,40평대에서 남들이 부러울만큼 예쁘게 꾸며 살고 있었지만, 저한테 비록 전세이지만
13평의 제 보금자리가 제일 예쁘고 사랑스러운 곳이었어요.
더구나 싱크대 찬장에 들어있는 이 예쁜 그릇을 하루에 수십번씩 더 쳐다보면서 말이예요.
2년뒤에 만삭의 몸으로 아기용품을 준비하기 위해 넓은 시장으로 가야 된다면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남대문시장을 가게 되었어요.
2년동안 잊지 않고 있었던 제 그릇들이 잘 있나 확인도 할겸 친정어머니와 함께 아기용품은 뒷전이고,
제일 먼저 그릇가게를 들렀어요.
친정어머니께서 너무 어이없어 하셨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 이 예쁜그릇이 없어지지 않고 그릇가게의 제일 구석자리에 쳐박혀 있는걸 보는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만지고 또 만지기를 수십번...
그릇가게 주인께서 저를 알아보시며 아직도 이 그릇을 잊지 않았냐고 너무 반기시더라구요.
반찬그릇과 접시 몇개만 사려고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께서 싸게 줄테니 세트로 다 가져
가라고 권하시는거예요.
아니라고...반찬그릇 몇개만 구입하겠노라고 말씀드리고 있는데 친정어머니께서 속바지에서 쌈짓돈을
꺼내시며 이 그릇 세트로 포장해 달라고 하시는거예요.
순간 친정어머니의 꼬깃꼬깃 구겨진 돈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그때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만삭의 몸으로 그릇을 만지며 울고 있는 여자..
남들이 보면 저 그릇을 보며 친정어머니가 생각나서 우는줄 알았을거예요.
만삭의 몸으로 이 그릇이 모두 제 것이라고 생각하니 무겁다는 생각이 들기는 커녕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몇개의 비닐봉지에 나눠 담아 전철을 갈아 타며 집까지 오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더라구요.
너무 좋아하는 저를 쳐다보며 친정어머니께서 결혼할때 형편이 좋지 않아 예쁜그릇 하나 변변히 해주지 못해
그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오늘에서야 엄마의 막힌 속이 뻥 뚫린 것 같다며 빙그레 웃어 주시며
제 손을 꼬옥 잡아 주셨어요.
그때 친정어머니의 눈에도 저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답니다.
이 그릇을 모두 모으는데 2년이 넘게 걸렸어요.
한꺼번에 모두 사면 더 좋았겠지만 2년동안의 시간동안 잊지못할 저만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20대에서 이젠 아이들의 뒷모습만 봐도 쓸쓸함을 가끔 느끼게 되는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 그릇을 바라볼 때마다 저는 20대에 머물고 있답니다.
제가 20년동안 저의 첫사랑이자 지금까지도 소중한 저의 영원한 사랑인 보물 1호,
이 그릇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내내 마음이 찡해 오네요.
친정어머니의 쌈짓돈과 함께 제 손을 꼬옥 잡아 주시던 투박한 어머니의 손이 자꾸만 생각나는게...
20년동안 힘든 일이 왜 없었겠어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 둘 곳이 없어 허전할 때 이 그릇을 모두 꺼내 세재로 닦고
나면 힘이 불쑥 쏟는 그런 존재로 제 옆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지요.
그런데 참 희한한게 한가지 있어요.
몇달전에 친정어머니께서 너무 연로하셔서 함께 살고 있답니다.
친정어머니께서도 이 그릇에 식사를 하시면 저처럼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어요.
20년동안 그릇을 한개도 깨지 않고 이렇게 잘 쓰고 있는게 신기하다면서 너무나 맛있게 식사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오랫동안 이 그릇에 함께 식사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을 제 곁에 오래오래 붙잡고
싶다는 기원을 하면서 제 이야기의 마무리하렵니다.
<보너스 이야기...>
미국에 사는 막내동서가 힘든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며 비싼 비행기값을
물어가며 선물해준거예요.
다른분들은 이미 오래전에 가지고 있는 커피잔이겠지만,저에게는 또다른 특별한 커피잔이예요.
동서말로는 제가 가지고 있는게 언니커피잔, 동서가 선물한건 동생커피잔 이라는데 잘 어울리나요?
그래서 제가 이름을 붙였어요.
<<자매 커피잔>>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