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우를 찾아 떠나는 여행, 영월 주천 다하누촌
옛날 어느 고을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 샘에서는 항시 술이 솟아 오른다고 해서 마을 이름마저 '주천(酒川)'이라 불리웠다. 그런데 이 우물은 신기하게도 신분이 낮은 사람이 마시면 탁주로 변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마시면 약주로 변했다고 한다.
어느 날 낮은 신분이었던 한 젊은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장원급제를 했다. 얼마 후 그는 고향인 주천으로 내려와 우물앞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도 이제는 신분이 높아졌으니 내가 이 우물을 뜨면 그 물은 약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우물물을 떳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젊은이의 신분은 지극히 상승됐는데도 떠 올린 물은 약주가 아닌 탁주였다. 젊은이는 몇 번을 거듭하여 퍼보았으나 계속해서 탁주만 나왔다. 화가 난 젊은이는 그만 커다란 돌멩이를 우물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후 우물은 젊은이가 던진 돌멩이에 막혀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메말라 버렸다고 한다.
주천의 이 전설을 대하면서, 사람이 무릇 눈에 보이는 신분만 높아졌다고해서 하늘이 알아 주고 땅이 알아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아무리 전설이라지만 돌멩이를 던져 우물을 막아 버리는 그 심보는 또 무엇인가. 만약에 그 젊은이가 현실 세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생각만 해도 참 끔찍하다.
애주가라면 술이 철철 샘솟는 땅이 있다면 그곳에서 살고 싶어지리라. 더우기 봄 향기 가득한 산나물을 데쳐 놓고 지글지글 구운 소고기 몇 점 함께 올린다면 그만한 안주상이 어디 있으랴. 강원도 영월땅 주천은 술이 나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들어서며 술샘의 전설 한 토막을 옮겨 보았다.
새로 뚫린 신작로 중앙고속도로를 내달려 신림나들목으로 내려와 주천 가는 길로 들어섰다. 내쳐 가면 심심해 도로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는 수주면으로 한바퀴 돌아 들어간다. 주천 가는 길 강가에는 무릉리와 도원리가 있어 이들을 합쳐 무릉도원이라 불린다. 사람 사는 이 땅에 이만한 무릉도원이 따로 있으랴. 계곡과 강이 어우려져 풍요가 흐르는 시골집 마당에는 끓는 물에 데쳐 펼쳐 놓은 산나물 위에 하얀 빨래가 부채질을 한다.
▲ 주천 한우마을 초입 전경, 정육점만 8곳에 전문식당 30곳이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주천면을 들어서니 온갖 간판이 한우 파는 매장이다. 주천에만 정육점이 8개소, 전문 식당이 30개소니 간판 그대로 '다하누촌'이라 불릴 만하다. 길거리에 늘어선 젊은 처자들이 지나는 객들에게 쇠고기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매장 안 냉장 유리 진열장에는 갖 잡아 썰어 놓은 싱싱한 쇠고기가 그득하다. 고기를 썰어대는 아줌마의 손길이 분주하고 한쪽에선 젊은 점원이 포장된 꼬리뼈와 사골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것이 미국 소의 어느 일부라면 어디 눈길이나 한 번 줬으랴만은 푹 고아 우려내 공부에 등골 빠지는 우리 아이들 아침상에 파 송송 썰어 올려 놓으면 좋으렸다.
▲ 생고기 포장육, 영월농협과 군수가 보증하는 청정한우
값 비싼 도심 갈비구이집에 가면 고등학생, 중학생 두 아들 거둬 먹이랴 간신히 맛만 보고 된장찌개나 시켜 먹는 마누라를 위해 질 좋아 보이는 놈으로 골라 두 근을 샀다. 반근, 300그램 평균 8천 원씩이니 두근이면 3만2천이나 하지만 어디가서 네 식구 이만한 가격으로 한우 쇠고기를 포식할 수 있으랴. 내친 김에 때깔 좋은 육회 반근까지 얹어 담았다. 냉동으로 들여오는 거무튀튀한 수입 쇠고기에 비해 한우는 고운 선홍색이 특징이다.
▲ 1등급 등심 밝은 선홍색이 지방이 적당하게 분포되어 있다
주천의 다하누촌은 근동 지역의 축산 농민들과 계약사육을 해 일반 시세보다 웃돈을 주고 사들여 판매 이익 15% 정도만 붙여 공급한다고 한다. 농민들은 더 좋은 가격으로 안정되게 판매할 수 있어 좋고 소비자는 좋은 가격에 안심하고 사 먹을 수 있으니, 이만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또 있겠는가.
주천면민들이 합심해 쇠고기를 상품화하여 6~7단계의 중간 유통구조를 배제한 직사육, 직가공, 직유통으로 가격의 거품을 빼고 이렇게 발품 팔지 않아도 인터넷을 이용해 안방에 앉아 안심하고 받아먹을 수 있도록 했다.
자, 이제 구워먹는 일이 문제다. 근처 야영장이나 예쁜 펜션에 들어 바베큐 그릴에 참숯 피워 폼 나게 지글지글 구워먹는 것도 좋겠지만 당일치기 여행이라 그럴 여유는 없다. 우리 같은 객이 많은지 주천에서는 근처 식당들과 협력하여 즉석에서 자리만 빌려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1인당 2천 원씩만 내면 불판 외에 기본 반찬에 양념장과 상추를 내준다. 노릇하게 지글지글 구워지는 쇠고기와 '쐬주' 한 잔에 일상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징글징글한 소용량 메모리의 답답함을 떨궈낸다. 그리고 고추장 양념에 찍어 먹는 쫄깃한 똘똘말이 육회 한 점을 들어 축산 농가의 수고로움에 고마움으로 맛있게 씹어 삼킨다.
▲ 등심구이, 구워지기가 무섭게 젖가락이 간다
▲ 한우 육회, 산지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쫄깃한 육회
선암마을 전망대에 올라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서강을 내려다 본다. 어찌 저리 동쪽은 가파르고 서쪽은 완만하니 우리네 땅과 똑 닮았을까. 영남 영동 지역은 지세가 험하여 쌀농사 밭농사가 힘들어 놓아 먹이는 축산업이 발달했다.
공장에서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싸구려 미국소가 들어와 그마저 떼로 받아 넘길까 우려된다. 하지만 이곳 주천처럼 협심하여 상품화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그리 겁날 일도 아니다. 다만, 그보다도 어린 학생들과 싸우는 미치박이가 더 우려될 뿐이다.
▲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을 닮은 선마을 주변 경관
영월땅을 두루 돌며 당일치기 여행을 마무리 한다.
"아들아 다음엔 정읍 산외의 한우마을을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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