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결혼7년차 5살아들 워킹맘입니다.
3개월전에 우리부서에, 아르바이트 남자아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그냥 그렇듯이,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가만 보니 정말 신기한 친구였어요. 저랑 띠동갑이나 되는 녀석이, 어찌나 정신연령이 높은지 저는 물론이고 부장이나 실장아저씨들이랑도 말을 잘 섞더군요. 아이가 경거망동을 하지도 않고, 말 한마디도 참 사려깊었어요.
또 얼마나 똑똑한지, 정말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더군요. 저의 반복적인 업무들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주기도 하고, 직장생활 10년하면서 그런 애 처음 보는 것 같았어요. 정말 뭘 해도 성공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제, 그 친구가 일을 마치게 되어 송별회식을 하였습니다. 원래 아들 핑계대고 회식같은 것 잘 끼지 않지만, 3개월동안 제 수발드느라 고생한 친구를 그냥 보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에 오랜만에 회식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회식이 끝나고, 어쩌다보니 그 아이랑 저만 남게되어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 잔 사주었는데요. 참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흐르던지...
맞선으로 결혼한 저에게, 살아오면서 그런 당돌한 말을 들은 것은 정말로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소소하게 자기 챙겨주었던 것들, 제 작은 버릇, 그냥 무심코 말했던 제 취미나 관심사들을 하나 둘씩 이야기하며 그 것들이 모두 다 좋아서 그렇답니다.
그래, 하지만 나는 가정이 있는 여자야. 너는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거야...이런 상투적인 이야기를 해 주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일어서더니, 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주고 싱긋 웃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총총 사라졌습니다. 저는 잠시동안 그 자리에서 창문 넘어 그 친구의 모습이 사라질때까지 홀로 앉아있었지요.
오늘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였습니다. 파티션 너머 그 친구의 빈 자리를 보니 갑자기 눈가가 따스해지더군요. 하루종일 손에 일이 잡히지 않더군요.
에휴...이게 무슨 주책인지...나이 서른여섯먹고...
오늘은 가정의 날이라고 5시에 퇴근하였습니다. 잠시나마 불경한 생각을 하여 그런지, 남편과 아들 보기가 미안하더군요. 근처 가게에 들러 한우고기랑, 남편이 좋아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한병 사들고 들어갔습니다. 남편 오는 시간 맞춰 지글지글 구어놓으고 와인한잔 따라놓으니 입이 찢어질려고 하더군요. 쿨쿨 자는 남편과 아들 모습 보니 다시 눈가가 따스해집니다.
그 친구 어디서나 잘 되길 바라며... 또
남편아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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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아 미안해
미안 조회수 : 915
작성일 : 2010-12-23 22:52:56
IP : 175.124.xxx.24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ㅎㅎㅎ
'10.12.23 11:04 PM (124.53.xxx.3)입가에 미소하나 그리며 잘 읽고 갑니다. 마음이 따둣해지네요. 살면서 이런 이야기 한장 없다면 어디 인생이 재미없어 살만하겠습니까!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2. ㅎ
'10.12.23 11:10 PM (121.159.xxx.27)ㅎㅎ~ 알콩달콩 가족간 서로 아끼며 잘 사세요~
띠동갑 그 아이는 그냥 얼핏 일어 지나간 바람일 뿐이고,
그냥 그렇게 기억에만 존재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혹여... 앞으로 전화가 온다거나 해도
단호한 입장 표명이 필요할 듯 합니다.3. gg
'10.12.23 11:18 PM (118.221.xxx.5)러브액추얼리 생각나네요. 크리스마스날 유부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둘이 입맞춤~
물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요.4. ^ ^
'10.12.23 11:46 PM (121.130.xxx.42)무슨 베스트극장 한 편 본 기분이예요.
원글님
다음에 베스트극장 극본 공모하면 제가 한번 써볼게요.
그때가서 표절했다고 고소하지 마시고 지금 허락해쥉~~ ^ ^5. ㅋㅋㅋㅋ
'10.12.24 1:06 AM (118.32.xxx.141)오늘 본 즐거운 나의집, 엔딩 크레딧이 막 생각난다는..ㅋㅋ
이런 이쁜 기억이 '즐거운 나의 집'에서의 생활을 견디게 해 주는거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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