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큰 놈의 주민번호는 78****로 시작한다.
70년대 후반 누구든지 비슷했겠지만 2차례의 에너지 쇼크 후 부동산값과 전세값의 동반상승으로 내 집 한 칸없이 3년 가까운 시간에 7번이나 집을 옮길 정도로 토굴집, 옥상에 방 한 칸 등등을 애를 업고 옮겨다녔다.
어떤 곳은 비가 오면 방 네 귀퉁이에 못을 박고 큰 비닐로 천장을 가리고 한쪽으로 작은 구멍을 뚫어 천을 길게 늘어뜨려 빗물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려운 가운데 태어난 놈은 부모를 도와주는지 다행히 먹성이 좋아 튼튼하게 자랐다.
놈은 대학 이전부터 애비의 사업부진으로 집이 어렵게 되자 부모 손을 빌리지 않고 알바로 공부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그 당시 IMF후유로 학생들의 군 입대가 많을 적에 4대1인 경쟁으로 해병대를 입대하여 1999년 6월, 1차 연평 해전 당시 연평도에 근무하였다.
제대 후 복학, 과대표를 맡아 동료들과의 돈독한 인간관계를 유지하였는지
지금의 리더쉽, 책임감등은 학교생활, 자기의 일상생활, 그리고 군 생활을 통해 다져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졸업 후 강동에 있는 학원에 영어강사로 나가면서 학교 다닐 당시 은행에서 빌렸던 자기 등록금과 동생(아들) 등록금을 갚아 나갔으며 다행히 수강하는 애들의 성적이 올랐던지 학원장이 따로 과외 그룹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아마도 활달한 녀석이 학원이라는 답답한 환경에 억매여 있는 게 싫었는지
2003년 12월초
“아빠 나 어학연수 좀 갔다가 올께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아빠는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놈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비싼 영국에서의 학비를 조달한단다.
영국으로 떠나는 12월 28일 새벽 아파트입구에서 애비한테 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빠 나는 눈밭에 발가벗겨 놓아도 얼어 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리고 아빠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나도 정신을 못 차렸을 텐데...
이렇게 정신 차린 것도 다 아빠 덕이에요“
놈이 떠난 후 엄마를 통하여 준 새 지갑에 편지 한 장, 놈의 사진, 그리고 십만원짜리 수표 한 장...,
편지를 읽으면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아빠를 울리고 간 놈이다.
녀석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주일간은 친구 방에서 신세를 졌고 그 안에 아르바이트 자리, 학교 등록 등을 했지.
연수가는 놈이 그 흔한 핸드폰도 없으니 연락도 안되고...
일주일 만인가 귀국하는 한국인이 쓰던 중고컴퓨터를 하나 사서 애비하고 MSN Messenger로 대화를 나누었다.
옥스퍼드에서 생활할 때 자전거와 가방에는 항상 태극기를 붙이고 다녔고 나름대로 한국인의 근면성을 외국인에게 발휘했단다.
어쨌든 놈은 미국에 본사를 둔 COMPASS(?)라는 식품유통매장에서 어떤 다른 팩터가 있었을 테지만 3개월 만에 매출이 2배 이상 늘었다는 소식을 전했고 Manager가 런던으로 학생비자로 불가능한 Manager교육을 보내줄 정도로 열심히 했단다.
“아빠 여기 와 보니까 정말 골빈 한국 애들 많아요”
그 튼튼한 놈이 학비를 대느라고 끼니를 굶어가며 거의 밤늦게까지 일을 하여 병까지 얻었을 때는 애비의 맘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같았다.
놈의 근면성을 보더니 현지에 있는 한국인이 비자변경을 위한 약 천만원이 드는 변호사비용을 제공할 테니 한국으로 가지 말고 자기와 같이 일을 하면서 수년 후에 MBA를 받고 가는 게 어떻냐고 제의가 들어왔단다. 외국에 있는 한국인은 믿지 못한다는 주위의 언질로 1년만의 귀국 후 대기업에 입사하여 영업을 담당했고 휴일없이 녹초가 되도록 일하는 것을 보고 아빠가 능력이 있다면 사내에서 자리이동이라도 시켜줄 텐데 하는 맘이 없지 않아 있었다.
촛불이 시작된 2008년 6월, KBS앞에서 천막 생활할 때인 당시, 아침 일찍 직장에 나가는 아내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빨래감을 갖다 놓느라고 일주일에 두번 낮에 집에 가곤 했지만 한번은 새벽녘에 귀가한 적이 있었다.
안자고 있었는지 안방 문을 열고 나온 아내가 한말이다.
“지금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나 알아요?” 혹시 무슨일인가 가슴이 덜컹했다.
이야기인즉슨 큰놈이 회사 내에서 한명 뽑는 사내공모했는데 천명 가까이 응모를 했는데 그 자리를 들어갔단다.
지금은 필드에서 익힌 경험을 밑거름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나이도 들고 결혼도 해야겠고 아빠 엄마한테는 기댈 것도 없고....
그사이 사귄, 그리고 집에도 들락거렸던 며느리 될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있고 아이가 있다
큰놈도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지만 요즈음은 부모가 재력이 없으면 결혼하기도 힘이 드는 모양이다.
돈푼께나 좀 있는지 모르지만 장모가 될 사람이 며느리 될 아이에게 이야기 한 모양이다.
‘얘! 부모님 봉양해야 한다고 그러더냐?’
물론 시대가 그렇듯 애들과 같이 살 맘은 없다.
“아빠 그 집과는 수준이 안 맞아서 안 되겠네요.”
놈이 말하는 수준이란 게 금전적인 수준이 아닌 삶의 가치의 수준이길 빌어본다.
얼마 전에 지난 금년 설은 부모로서 아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그래서 집에 있기에는 어렵던 시간들이었다.
(지금도 그 지갑속에 편지를 넣고 다니면서 가끔 꺼내 보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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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지금 가기 전날 밤입니다.
군대 가기 전에도 아빠한테 편지 한통 쓰지 않고 그냥 갔는데 군대 갈 때와는 좀 다르네요.
아빠 저는 아버지를 믿습니다.
세상에서 아버지 좋은 모습이 가장 존경스럽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존경하고
닮고 싶습니다.
제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아버지는 갖고 계십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많이 배워요.
아버지 돈 많이 못 번다고 기죽지 마시고 저희한테 미안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가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일시적이고
제가 아직 철이 안 들어서입니다. 앞으로는 아버지가 잘 되시건 안 되시건 간에 상관없습니다.
지금까지 따뜻한 집에서 우리 식구 모여 살아 온 것만 해도 저는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남자이시니까 그리고 남자다운 모습을 추구하시니까 모든 일 잘 참으시고 잘 하시리라 생각하고 믿습니다.
제가 아빠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술을 끊으시는 것이 아니고 자제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한 엄마 잘 보살펴 주세요.
엄마가 아빠 화나게 하고 짜증나게 하더라도 이해하시고 아버지가 엄마 말씀 따라 주세요.
아버지 잘 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힘이 드실 때면 이 편지 꺼내 보세요. 그리고 아빠 큰 아들 믿고 걱정마세요.
저는 잘할 자신 있습니다. 믿으세요.
저를 믿으시는 만큼 아버지도 저에게 믿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도 이제 클 만큼 컸고 엄마 아빠가 걱정 안하셔도 될 만큼 많이 성숙했어요.
그리고 형도 많이 따라 주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믿음직스러운 아들이 되는 것과 동시에
**이에게도 믿음직하고 든든한 형이 되도록 앞으로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몸은 떨어져있더라도 항상 엄마아빠 생각하고 있을것이며 실망스러운 행동 절대 안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비록 종이 한 장에 쓰는 글이지만 엄마 아빠가 읽으실 때마다 힘이 될 수 있는 편지이었으면 합니다.
성공하는 것을 약속드리기 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살 것을 약속드립니다.
엄마 아빠 두 아들을 멋지게 키워주셨으니까 이제는 보답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고 큰 아들 믿고 엄마 아빠 두 분이 즐겁게 지내 주세요.
그래야 저도 마음이 편하지요.
엄마 아빠 두 분이 외식도 하고 여행도 하고 부부답게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두 분 다 노력하셔야 해요. 믿고 있겠습니다.
가서 열심히 하고 많이 배우고 돌아올께요.
이제 줄일께요.
엄마 아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큰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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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7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송두율교수와 국정원과의 문제를 다룬 촬영에 무려 7년이나 걸린,
3월18일 개봉 예정인 다큐영화 '경계도시2'가 상영됩니다. 무료입니다.
오실 분은 연락주세요. 010-8716-8581 '용'입니다.
내일은 6.2지방선거 야권 후보 단일화 촉구 및 투표서약을 받기위한 서명운동을 벌립니다.
참여바랍니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애들이 이렇게 자랄 수도 있습니다.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어쩜 제가 팔불출인지도....
-용- 조회수 : 2,514
작성일 : 2010-03-09 13:02:37
IP : 119.192.xxx.64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축하드립니다.
'10.3.9 1:12 PM (58.237.xxx.221)글 읽으며 아버지 되시는 분이 훌륭한 분이실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축하드려요. 가장 힘들다고 하는 자식 농사 성공 하셨군요.
제 마음이 다 흐뭇합니다.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2. ?
'10.3.9 1:15 PM (121.164.xxx.141)뭉클하네요 자랑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요 충분히 자랑하실만한 아드님이시네요
글을 읽어보니 아드님이 말한 수준차이는 아마 삶의 가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 아무나 할 수 있는거 아닙니다 원글님 훌륭하십니다 짝짝짝3. ?
'10.3.9 1:16 PM (121.164.xxx.141)그런데 마이클럽의 룡이님 이신가요?? 맞으실것 같은데 여기서 뵈니 반갑네요 아니면 헛다리고요 ㅎㅎ
4. *^^*
'10.3.9 1:46 PM (61.32.xxx.50)자랑 맘껏 하셔도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5. ....
'10.3.9 2:05 PM (210.222.xxx.241)훌륭한이라기보다는 착하고자랑스러운 아드님을 두셔서 부럽구 편지글에서못내가슴한펴닝시립니다
6. .
'10.3.9 2:30 PM (221.155.xxx.250)편지 읽으면서 눈물 흘렸습니다.
너무 감동스럽고 대견합니다.
이런 자랑은 더 하셔도 됩니다.
아드님 정말 훌륭하네요.7. 부럽습니다
'10.3.9 3:55 PM (222.111.xxx.14)요즘은 건강한 사람과 자식농사 잘 지은 사람이 제일 부럽습니다.
8. 대견
'10.3.10 2:01 AM (124.50.xxx.162)인생에서 제일 크나큰 자식농사가 대풍이시군요.
항상 행복이 넘치시길 빕니다9. 장한아들
'10.3.10 9:45 AM (183.108.xxx.134)... 아이들 키우다 보니 저런 아이들 보면, 정말 박수쳐 주고 싶더군요. 부모들도 훌륭하고, 꿋꿋이 세상풍파 헤쳐나가는 그 아이들은 더 기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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