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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 추억
비닐도 안 뜯은 채 선반에 올려져 있던 거
이 밤에 갑자기 뜯어서
역시나 돌려따는 병뚜껑을 못 따서 고무장갑 끼고 겨우 따서는
사실 제가 결혼 해서 좋은 이유 중의 하나가 병뚜껑 따 줄 사람이 있는 겁니다.
남편이 없을 때는 어린 아들에게라도 부탁을 하죠
지금은 모두 코 자고 있어요...
난 왜 이리 병뚜껑을 못 여는지...손아귀 힘이 약한 건지...
하여간에 보덤 큰 주스잔에 얼음을 잔뜩 채우고
밀크커피 빛깔의 베일리스를 조금 따르고 흰우유를 아주 약간만..
살짝 흔들어 마시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깊은 알코올의 느낌을
차갑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우유가 감싸고 있는 듯한 ...
이게 이리 뵈도 조금만 마셔도 알딸딸 해 지거든요...
전 십수년 전 홀로 처음 도착한 런던 공항에 마중 나와 준 친구 오빠가
큰 짐을 낑낑 거리며 하숙집에 들어다 주고
나를 데려갔던 소호 거리의 작은 바에서
나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미리 답사와서 골라 놓았다던
그 술이 베일리스 였지요...
새벽 두 시까지 잠 못이루고 홀로 지내던 시절
테스코에서 산 솔트 앤 비니거 감자칩과 늘 사 놓고 조금씩 홀짝이던 베일리스...
우리나라에도 솔트 앤 비니거 감자칩이 나오면 좋을텐데...
그리로 오랜 시간이 또 흘러 남편에게 알려 준 술...
남편도 좋아라 해서 늘 떨어지지 않던 술인데
언제부터인가...안 먹었어요...왜 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와인도 있고 진달래주도 있고 인삼주등 얻어 논 술 들도 많아서
잊고 지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베일리스를 사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사놓고는 또 잊어 버린거죠...
마시고 있자니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옛일들이 어제같이 몰려 옵니다...
내 청춘의 끝...희망도 더 이상의 절망도 없던 진공 상태 같았던 그 시절...
그저 하루 하루 견디어 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웠던 그 시절을 같이 했던 베일리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꼭 맛을 보고 싶었던 칼바도스...
그런데 엄청 독한 술이란 이야길 듣고 엄두가 안 났더랬죠...
그리고 랭보가 즐겨 먹었다던 녹색 요정이라 불리우는 앱생트...그 치명적인 매력의 전설이 많아서
한번 먹어보고도 싶은데...어디서 어떤 걸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한잔의 추억을 이야기 하다 갑자기 술 이야기만 하게 되네요....
역시 전 술꾼인가 봅니다 ㅎㅎㅎㅎ
여러분들은 어떤 술에 얽힌 추억이 있으신가요....
1. ...
'09.11.21 11:46 PM (203.128.xxx.54)테스코랑 솔트앤비네거 감자칩이랑 소호랑 ~~넘 그리운 단어들이네요~~
2. 원글
'09.11.22 12:41 AM (116.39.xxx.5)맞아요...그리운 단어들이죠...그리고 전 그 솔트앤비니거 칩에 중독되다시피 해서 한국 돌아와서 농심 홈페이지에 그런 감자칩 만들어 달라고 글까지 남겼더랬어요...코스트코에서 팔면 너무 좋을텐데...
3. 술..
'09.11.22 3:28 AM (59.10.xxx.124)저도 그 술 한잔이 주는 여운이 너무 좋아요.
종류도 넘넘 많고 다양한 술.. 우리나라 전통주에서부터...칵테일까지.
베일리스 한병 사두어야겠네요, 그 찐덕한 느낌...^^
울남편은 술을 안마셔서 저도 결혼후 거의 안마시니 지금은 맥주 한잔으로 완전 알딸딸해지네요4. 전
'09.11.22 3:45 AM (121.130.xxx.42)막걸리요.
막걸리에 설탕 달달하게 탄 걸 아 글쎄 울 할머니 다섯살인 저한테 주셨다는..ㅋㅋ
참 달고 시원하고 맛있었어요.
그 느낌이 요구르트맛으로 남아있어요. ^ ^
그리고 개선문에 나오는 칼바도스는 저도 꼭 맛보고 싶어요.
제가 상상하는 맛은 애플 써니텐 같은 맛이랍니다.
사과주라니깐 독주라고 해도 괜히 내가 좋아했던 애플써니텐 맛으로 상상하는 거죠.
또 대학때 친구들과 마셨던 파전에 동동주. 쵝오~~!!
사실 저나 친구들이나 술 별로 못마셔서 하나 시켜놓고 두 세잔 마시면 다들 알딸딸해서..
근데도 그 분위기가 넘 좋았답니다.
어제는 남편하고 막걸리 한병, 동동주 한 병 비웠네요. 딸꾹~!5. 쟈크라깡
'09.11.22 4:23 PM (119.192.xxx.245)저는 술을 못 마셔요.
정말이지 소주를 잘 마시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예전에 광고에서 김정은이 "술 못 먹는게 무슨 죄야!!" 하고 발악을 하며 소리를 지른 광고를 보며 온몸으로 공감했더랬죠.
그 술도 저에겐 술로 느껴질만큼 술을 못 마시는데
신랑은 주당을 만났으니......국물있는 반찬을 못 해요. 꼭 술안주로 생각을해서리.
여하튼 술 한 잔씩 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부럽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