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은퇴하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냥 '꿈'만 꿔보는 것이지만요. 바로 바(bar)를 차리는 거에요. 한때는 만화방 주인이 '꿈'이었어요. 친한 수학과 형이 워낙 당구를 좋아해서 그 형은 나중에 당구장 차리고, 저는 같은 건물에서 당구장 옆에 만화방 차리기로 의기투합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일산에서 2년 정도 살았습니다. 마두역 근처에 살았었는데, 정발산 역 쪽으로 좀 걸어가면 오피스텔들이 많이 있어요. 그 오피스텔들 중에 '블루문'이라는 조그만 바가 있습니다. 남자 사장님 한 분이서 칵테일도 만들어주시고, 안주도 요리해주시는 작은 술집입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엔가 오랜만에 갔는데, 아르바이트 하는 남자 분도 한 분 계시는 것 같더군요. 한 2년만에 간 것 같은데, 전 먼저 가서 후배랑 맥주를 먹고 있었어요. 사장님이 좀 늦게 들어오셨는데, 안경을 안쓰셨더군요. 두리번두리번 안경을 찾으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어!!! 이 목소리는 **씨 목소린데? **씨 오셨어요?" 하시더군요. 왠지 너무 감사하더군요. 기억해주시는 것이. 뭐, 일산 살던 시절에 워낙 많이 가긴 했었지만요. 아무튼 그런 술집이 너무 좋아요. 오랜만에 가더라도 손님들을 하나하나 기억해주고(손님이 많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맥주 한 병을 시키든 칵테일 한 잔을 시키든 양주 한 병을 시키든 똑같이 친절하게 대해주고, 혼자 가더라도 심심하지 않게 말상대를 해주는 그런 술집.
저도 이런 술집을 한 번 해보고 싶더군요. 물론 술장사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리라는 건 쉽게 예상이 됩니다만. 술 취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니까요. 그게 어디 보통 일이겠어요? 그래도...
<히어로>라는 일본 드라마에도 특이한 바가 나옵니다. 뭐든지 다 있는 그런 술집이죠. 통신판매에서 파는 특이한 물건들도 뭐든 구비되어 있고, 어떤 요리도 주문하면 다 있는 그런 술집이죠. 게다가 주인 아저씨도 굉장히 특이하신 분이지요. "있어요." 이외에 다른 말은 아예 안하시는 분.
백석 역 근처에는 '마실'이라는 술집이 있습니다. ('마실' 맞나?) 한 번 밖에 안가봐서 정확하게 위치는 기억이 안나요. 다시 찾아가라면 못갈 것 같군요. 호프집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바라고 하기도 뭐한 좀 애매한 곳이죠. 한 켠에 무대 비슷한 것이 마련되어 있는데, 거기서 사장님이 기타치면서 노래를 부르십니다. '연주'를 한다거나 '공연'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사장님 기분에 따라 흥이 나실 때 한 번씩 노래를 부르신다고 하더군요. 근데, 엄청 잘부르시더라고요. 손님들 중에도 술이 좀 오르면 무대에 올라서 노래 부르는 분들도 있더군요. 사장님이 기타 반주를 해주시기도 하고.
<히어로>의 술집과 '마실'을 결합시킨 술집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습니다. 손님들이 가끔 흥이 나서 노래를 한 곡 부르고자 하면(물론 다른 손님들께 폐가 될 정도로 자기 흥에만 겨워서 부르는 노래여선 좀 곤란하겠죠.), 어떤 곡이든 연주해줄 수 있는 그런 사장님이 있는 바. '당신만 있어 준다면'에서부터 인순이의 '열정'이나 록키 주제가,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들까지. (그냥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열거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장님과 바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제가 가면 '늘 마시던 걸로 드릴까요?'라고 해주시는 그런 사장님이 있기까지 하면 금상첨화겠지요.ㅋ (제가 '블루문'에 가면 정말 사장님이 그렇게 이야길 하세요. '처음엔 벡스 다크 드리고, 그 다음부터는 카스 드릴까요?' 제가 시작은 좋은 맥주로 -'호가든'이나 '벡스 다크' 같은 거- 한 병 먹고 그 다음엔 계속 '카스'만 먹거든요.;;;) 그리고 단골인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간단히 맥주를 먹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바.
요즘엔 애 보느라 술은 꿈도 꾸기 힘들 지경이라 맥주 한 잔이 너무 그리워지네요. 술집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이토록 강렬하게 드는 걸 보면 알콜 금단 증상인 것 같아서 약간 걱정도 되는군요.
아~~~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쏘세지가 먹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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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면
하늘을 날자 조회수 : 258
작성일 : 2009-03-03 10: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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