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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해맑고 건강해 보이는 영정 속 사진은 기륭전자 입사원서에 붙였던 2004년의 사진입니다. 고 권명희 조합원은 워낙 말수가 적고 수줍지만 꼼꼼한 성격으로 기륭전자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부심을 갖고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노조 가입으로 인해 해고된 이후에도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투병 중에도 계속 농성장을 찾으셨다고 합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기륭전자로 돌아가 다시 일하는게 고인의 소원이었기에 유족들도 기륭전자 앞에서의 노제를 찬성하셨습니다.
화장을 기다리는 동안 고인의 가족들을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키만 웃자랐을 뿐, 아직은 어린 중1, 중2의 딸, 아들을 남겨두고 어떤 심정으로 눈을 감으셨을 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하는 모습들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왜 이리 애처롭게 보이는지요. 고개 숙인 채 눈감고 계신 남편 분의 낡은 운동화에서 보살피는 손길이 부재했던 짧지 않은 시간이 느껴졌습니다.
모란공원 납골당은 작은 방 안에 열쇠가 꽂힌 물품보관함처럼 생긴 납골함이 자리잡고 있는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봉인식을 짧막하게 치르고 유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남은 음식을 나눠먹으며 고인에 대해 담소를 나눴습니다. 멀리 계시던 유족들도 적적하리라던 예상과 달리 마지막 가시는 길 많은 이들이 함께 한 것에 대해 고마워하셨습니다.
거리도 멀고 길도 막혀서 농성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이 다 됐지만 그 자리에서는 추도 미사와 촛불문화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촛불을 들고 앉아 계신 수녀님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봉인식 끝나고 우스갯소리를 들었던 게 떠올랐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천당으로 오라 하실 거고 부처님은 극락왕생하라 하실 거다, 두 분 다 오라하시니 이번엔 골라서 가실 거다 라고요. 어느 곳이던 이미 편히 쉬고 계시겠죠.
시간이 늦어 딸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오는 내내 고인 남편분의 낡은 운동화와 뽀송뽀송 아이처럼 어린 따님의 얼굴이 어른거렸습니다. 조합원분들이 이모처럼 보살피겠다 하시지만 저 역시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란공원 납골당 앞에서 등돌리고 서 계시던 분회장님 앙상한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뼈 밖에 안 남아도 똥배는 그대로라고 농담까지 던지며 담담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겹치며 많은 것을 책임진 자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문득 애틋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분회장 복귀 후 첫 집회가 있다고 합니다. 다시 현장을 찾아 이제 무엇을 해야할 지 차분하게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아, 그날은 얼마 전 다시 딸아이 유치원 앞으로 돌아와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비스킷 나눠먹기'도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고 구본주 작가의 조각전도 열린다고 하고요. 마침 딸아이 유치원 개교기념일이기도 해서 하루 종일 머무를까 합니다. 그날도 어제처럼 햇살이 좋았으면 합니다.
1. ,
'08.9.28 1:30 PM (220.122.xxx.155)가족들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아프네요. 어린것들을 놔두고 가는 마음이 어땠을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2. 치열하게
'08.9.28 1:34 PM (121.188.xxx.77)사시다 가신 님. ..좋은데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3. .
'08.9.28 2:23 PM (121.166.xxx.133)그렇게 어린 아들 딸을 두고 어찌 눈을 감으셨을까... 일면식도 없는 저도 한없이 슬퍼집니다. 살아남은 이들이 더 좋은 세상 만들어서 가신 님의 한을 풀어드려야겠습니다.
4. ⓧPianiste
'08.9.28 2:31 PM (221.151.xxx.234)수고많으셨어요. 분명 좋은곳으로 가셨을거에요.
가시는 길 외롭지않게 많은 분들께서 가주셨다니 너무 감사할 따름이네요.
기상청 날씨정보 보니까 월요일에 강수확률 20% 에요. (살짝 흐릴거같네요.)
풀빵님의 바램처럼 햇살이 좋길 기원합니다.5. idiot
'08.9.29 1:45 AM (124.63.xxx.79)잊고 지냈는데, 이곳에서 '모란공원'이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됩니다. 그 이름을 들으니 여러가지 기억이 한꺼번에 확 밀려왔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한 음식점에서, 20년 전에 가리봉동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재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법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사람들. 우리가 한참 열심히 만날 땅시에는 모두 순수하고 푸른 청춘들이었는데.. 세월 참 많이 흘러갔더군요.
그들과 함께 모란공원에 가야 할 일이 가끔 있었지요.
기륭전자 앞에 가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20년 전에 비해 무엇이 변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더 무서운 세상이 열려 있을 뿐이라는 생각뿐이지요.6. ..
'08.9.29 12:58 PM (219.255.xxx.59)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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