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질문 하나를 하겠습니다.
님께서는 님이 살고 계신 지역의 국회의원이 누군지 아십니까? 만약 아신다면 그 분이 님의 의견을 100%는 아니더라도 60~70%는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엔 많은 분들이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누군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 사람은 나의 의견을 100%는 커녕 20%도 대변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 심각한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양비론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대뜸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 하는 것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소위 보수신문(이들이 실제로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지의 논의는 일단 차치하더라도)이 주로 구사하는 양비론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오늘과 같은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양비론(兩非論)은 말 그대로 대립되는 두 정치현상을 시시비비 가림없이 양쪽 모두가 다 잘못했다고 싸잡아 비판하는 이론입니다. 특히 정치를 다루는 신문기사에서 양비론을 다룰 때 그 가장 큰 특징은 독자들이 각종 정치현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3인칭이 되게 한다는 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A와 B가 싸우는 모습을 제3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결국은 "A와 B, 둘 다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하는 이론이 바로 양비론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쁜 A당" 과 "더 나쁜 B당" 이라는 두 정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자금법 위반사건이 터져서 검찰이 수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사결과 "나쁜 A당"은 총 10억의 불법정치자금을, "더 나쁜 B당" 총 100억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발표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조선일보를 비롯한 찌라시들은 이렇게 보도합니다.
<"오늘 "나쁜 A당"과 "더 나쁜 B당"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사건에 관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수사결과 이들 두 당은 각각 10억과 100억의 정치자금을 불법수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불법정치자금을 이렇게 많이 받은 정치인들은 정말 나쁜 놈들이다... 주절주절.. > 뭐 이런 식입니다.
물론 불법자금을 10억이나 받은 것은 정말 잘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100억을 받은 것은 훨씬 더 잘못한 일이죠. 그런데 10억이든 100억이든 양비론에서는 똑같이 잘못한 겁니다. 결국 이런 식의 보도로 인해 지금까지 한국의 모든 정당은 국민들에게 아주 나쁜 정치집단으로 각인될 수 밖에 없고,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서 결국 국민들은 정치라는 단어 자체를 혐오하게 된 겁니다.
이런 양비론 기사들은 독자들이 제대로 정치현상을 보도록 돕지 못합니다. 대의 민주주의라는 것은 국민의 뜻이 정당의 뜻과 100% 일치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 60~70% 수준은 돼야 그 제도의 의미가 있는데 양비론 기사는 모든 정치행위를 3인칭 관점에서 보게 하기 때문에 정치현상 자체를 독자로부터 더 멀어지게만 합니다.
A당이든 B당이든 국민은 지지정당을 정하고 그 당의 입장이 곧 국민의 입장이 되도록 열심히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국민은 정치행위의 제3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본인이 선택한 당이 나쁜 짓을 하면 비판하고 다시는 그렇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바로 잡으면서 정치의 선진화를 진행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즉 A당은 A당을 지지하는 국민과 같은 시점을, B당은 B당을 지지하는 국민과 같은 시점이 되어야지, A당 = B당(쉽게 이야기 해서 그 놈이 그 놈) 이렇게 되면서 국민은 제3의 시점에서 이들 정당을 보게 하는 것은 정치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정당들이 아무리 개판을 쳐서 국민들은 대의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나더라도 그 중에서도 가장 "덜" 개판을 치는 정당을 골라야만 합니다. 물론 개판을 안치게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런 걸 기대하기엔 지금 정치권의 현실이 너무 한심하니까요, 일단 차근차근 시작을 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양비론 기사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정치기사를 너무 현상적인 측면에만 매몰시켜서 보도 한다는 것입니다.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동네에 불난 걸 중계하듯 "이렇게 저렇게 싸웠다" 이렇게 끝나는 기사가 부지기수라는 거죠.
진정한 언론인이라면 정치인들이 비자금을 만들어 썼다면 '이것이 과연 정치인 개인만의 문제인가', '정치자금을 다루는 환경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비자금 없이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찌라시들은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긴 조선일보는 정치가 깨끗해져서 국민들이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두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지도 모르죠.
만약 국민들이 앞으로도 이런 찌라시들의 노림수에 속아 그런 계속 정치와 무관심하게 지낸다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처럼 국민들의 뜻과는 너무도 다른 그야말로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무색해지는 그런 국회가 또 다시 구성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의민주주의 최종목표는 "국민의 뜻이 = 정당의 뜻" 즉 "국민 = 정당" 이 되어야 하는데 양비론 기사로는 그런 미래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차이는 조선일보와 한겨레 신문의 차이 만큼이나 큰 데도 양비론을 주장하는 신문에 의하면 이들 정당들은 다 똑같이 나쁜 정당들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정책을 들고 나와도 결과적으로는 "그 놈이 그 놈"인 정치환경이 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즉 "정치인은 모두 다 나쁘다" 라는 말은 곧 "조선일보는 한겨레 신문과 같다" 이 말과 동일한 것입니다. 님은 이 말에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왜 모든 정치현상을 가장 부패한 한나라당의 기준으로 생각해야만 합니까?
그런데 조선일보는 자꾸 이걸 똑같다고 말합니다. 모든 정치인은 똑같이 나쁜 정치인이니까 , 그리고 모든 정치행위는 다 나쁘니까, 그런 정치는 더러운 정치인들한테 맡겨두고, 국민들은 머리 아프고 짜증나는 정치일랑 생각하지 말고, 그냥 선거 때 투표나 잘하고(특히 한나라당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어르신들께), 평소에는 조선일보 보면서 정치인들 욕이나 진탕 하면서 보내라 이겁니다.
결국 국민이 정치현상을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은 정치의 주인인 국민을 주변인으로, 혹은 들러리로 전락시키려는 일종의 고도의 술책인 것입니다.
양비론으로 만들어진 정치기사를 보면 나름 통쾌한 맛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신문기사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참 나쁜 놈들이구만" 하시면 잠깐 속이 시원하실 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잠깐 시원하라고 양비론으로 모든 정치현상을 폄하하기에는 국민이 그 후에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나 큽니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가 양비론으로 얻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혹 님께서는 조선일보의 시각이 보편적인 국민의 시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조선일보가 대부분의 국민들을 대변하지 못하며 대신 한나라당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제3의 입장에서 교묘히 양비론을 펴면서 마치 그들이 대부분의 국민들을 대변하는 양 국민들을 착각하게 합니다.
조선일보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원래 우리나라 언론은 지지정당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조선일보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지,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밀었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즉, "조선일보 = 국민"이 아니라 "조선일보 = 한나라당" 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싫어하시는 만큼 조선일보를 싫어하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조선일보가 그 동안 교묘한 양비론으로 자신들이 마치 국민을 대변하는 양 국민들에게 지금껏 사기를 쳐왔기 때문입니다. 아주 고도의 사기를요...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보다 더 나쁩니다. 아주 위선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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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양비론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 서프 펌글
여름서리 조회수 : 342
작성일 : 2008-06-27 00:25:10
IP : 218.147.xxx.199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여름서리
'08.6.27 12:33 AM (218.147.xxx.199)센티오 에르고 숨 님의 2008. 6.8자 아고라 정치 토론방에 게시된 글입니다.
2. 셀프계몽중
'08.6.27 1:24 AM (211.211.xxx.188)제 양비론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올려주신..거지요?^^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설명할 수 없을거 같아서 내일 프린트 해두었다가 전해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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