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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니 꿈꾸는 것들이 미뤄지게 되네요.
제 나이 꽉찬 서른,
막 서른이 되기 전 결혼을 했지요.
오늘 끊임없이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결혼은 매일의 일상이다 보니 낭만과는 조금 거리가 생기는 구나.. 하는 것.
결혼 전에는 빗소리를 들으면 향긋한 커피향이 퍼지는 통유리 카페를 떠올리고,
마주 앉은, 혹은 나란히 앉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던 것 같은데,
결혼 하고 나니, 빗소리를 들으면서 내일 장보러 가서 뭘 살까.. 리스트를 정리했답니다. ㅠ.ㅠ
저기 아래 어떤 분이 결혼하면서 시댁에서 아무것도 안 받은.. 뭐 이런 제목으로 쓰신 글을 보고,
당장 로그인해서 답글을 달고 싶었어요. 저는 안 받았을 뿐만 아니라,
카드 돌려막기 잘 못 해서 빚이 2천 남은 남편을 맞고, 집 장만하려고 제 이름으로 5천 대출받았습니다..라구요.
그렇게 결혼한 남편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공중이고 저는 매일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 퇴근합니다.. 라구요.
뭐.. 이런 생활에 큰 불만도, 고민도.. 별건 없는건 같으니 그나마 행복한 건가요.
오늘은 찬 바람이 피부에 느껴져 우동 한그릇에 소주 몇잔 했습니다.
가을이 오려면 늘 치루는 의식같은 제 버릇인데 저 비가 그치면 정말 가을이 오려나 봅니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매미 소리가 들리던데, 지금은 귀뚤귀뚤하는 소리가 들리네요.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나 봅니다.
살짝 취기가 도는 이런 밤이면 지난 제 20대가 늘 떠올라 마음 한켠이 시려오네요.
저는 불문학을 전공했답니다. 대학 졸업 무렵 부모님이 허락해 주셔서
1년쯤 남불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대학 졸업 후엔 운이 좋았는지 파리에서 2년쯤 직장생활을 했어요.
매 순간 순간이 너무 즐겁고 기쁜 프랑스에서의 생활이었지요.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는게,
그게 녹록치 않더라구요. 타지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님 곁으로 돌아와 이 곳 지방에서 일을 구하다보니
불문학과도, 프랑스와도, 제가 순간 순간 너무 행복하게 누리던 그 무엇과도 너무나 다른 일을 하고있답니다.
로맨틱 드라마를 보면서 잠시나마 떠올릴 옛애인도 없습니다.
지나간 내 청춘~ 하면서 회고할 시간도 딱히 없었던 것 같네요.
다만,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하는, 지난 시간 제가 머물렀던 장소에 대한 그리움만이 늘어나네요.
오늘 하루도 저는 집장만하면서 받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할겁니다.
연말에 시험을 앞둔 남편에게 어떻게 원기를 북돋워줄까 고민하면서도,
하루 하루 그렇게 닥치는 자잘한 상념들과 함께 보내게 되겠죠.
프랑스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들만의 문화속에서, 그들만의 메카니즘 속에서 잘 지낼지 자신도 없구요,
그저 꿈처럼, 내 물건들이 간신히 들어간 월세방 하나와 새벽무렵 코끝에 스치던 바게트향만이 떠오르네요.
어제는 신랑에게, 다달이 20만원쯤 적금 부어서 천만원이 만들어지면 나혼자 훌쩍 프랑스 갔다올께.. 했네요.
그 때까지 저는 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애를 기르고, 혹 둘째가 생기고.. 그렇게 지나가겠지요.
사실 다달이 20만원 여윳돈 만들 자신도 없는데, 혼자 괜히 계획을 세우고 즐거워 하네요.
문득, 혼자일 때는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결혼을 하고, 어딘가에 메이게 되고, 누군가와 더 관계를 맺게되고, 그러면서
제가 바라던 소소한 것들이 모두 차츰 미뤄지고만 있는것 같아 서글퍼 지네요.
누구라도 한사람 제 마음 알아줄 이가 있겠죠.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될거에요.
1. candy
'07.9.6 7:49 AM (24.17.xxx.119)꿈님의 글을 읽으니 제 가슴이 짠 해지네요.
하지만 나름 지금 이 순간에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을꺼예요.
그리고 그 낭만적인 꿈은 계속 꾸세요.
언젠가 이루어질테니.......
정말요.
나이가 들수록 내가 예전에 간절히 원하며 상상하던 일들이 일어나는 걸 경험해요.
그 땐 그 상상만으로 공연히 행복하곤 했었는데......2. 김명진
'07.9.6 8:28 AM (61.106.xxx.225)저는 결혼전에 꿈까진 아니어도..세계 다가 보자 였는데..
확실히 결혼하고 나니 힘들지요. 그래도 같이 가보자...고 마음 먹고 노력하고 있어여. 힘내세요.3. 원글님..
'07.9.6 8:53 AM (220.65.xxx.120)아침에 차 한잔 하면서 이 글을 읽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저는 서른셋이라는 나이에 사랑보다는 우정의 느낌으로 결혼했고 1년반의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너무 힘든 연애.. 고통스런 20대를 지나서 그런지 지금은 마냥 편안하고 이 평화로움이 모든 낭만을 다 커버해주듯 무념무상으로 살아가거든요..
결혼을 하면서 직장의 개념, 돈의 개념, 나 자신에 대한 사랑 등등 많은 것들이 바뀐것은 확실해요. 내가 꿈을 꾸었었는지 어떨땐 낯설게 느껴질때가 있고, 지금의 꿈은 원글님처럼 집을 사고, 대출을 갚고 아이를 낳는 현실적인 것들이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조금의 늦은 결혼을 하면서 평범하게 그 무리들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해요.. 제가 보기엔 원글님도 잠시의 센티한 감정이실꺼라 믿어요.. 희망은 그것이 무엇이든 살아갈 의미를 주고, 활력을 주니까 한달의 20만원 꼭 모으셔서 파리에 다녀온다는 계획은 잃지 마시길 바래요.. 그 꿈만으로 저는 님이 부럽습니다. 화이팅~4. ..
'07.9.6 10:07 AM (222.239.xxx.36)몇년 전 제 모습이 떠오르네요
가을 맞이 비는 내리고 ... 이런 날씨의 비는 마음 한켠이 싸아..해집니다.
(이때의 싸란 표현 좋지 않나요?외국인은 절대 이해 못할...)
여하튼 아이 둘을 출산하고 어찌 된건지 몸이 예전 같지 않구요. 특히 비오는 날 무릎 근방에 느껴지는 한기과 전신의 묵직한 찌뿌둥함.....서러움이 울컥 치밀고 ..
지금은 아이둘 학교로 유치원으로 보내고 나니 그저 육아에서 해방된 그 자유가 어찌나 감사한지 몸이 안좋은 것도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니 편하고 ...그렇게 저렇게 시간 가고 세월가나 봅니다.
뼈속은 시리나 이맘때의 비 여전히 근사해요.
원글님 건강이 최고예요.5. ....
'07.9.6 11:09 AM (59.4.xxx.191)여자들은 결혼하고나면 왜 이리 묶이는곳이 많을까요?어딜 훌쩍 떠나보고싶어도 남편이랑
아이랑 그외 잡다한 생활들이............
이젠 그런 그리움도 잊고 사는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