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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그녀를 위한 변명

다시마 조회수 : 1,902
작성일 : 2004-04-16 10:46:03
그녀는 오늘도 역시 사건을 내고야 말았다.

아이들의 등교 30분전에야 깨달은 것이다.

어제 세탁기에 넣고 돌려논 체육복이 아직도...



으악!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세탁기쪽으로 뛸 때

식구들은 슬며시 마른 침을 살킨다.

베베 꼬인 큰아이의 체육복을 펴면서 울상 짓는 그녀를 보고

식구들은 오마이갓을 연발한다.

괜한 부지런을 떨면 이런 좋지 못한 결과가

뒤따른다는 징크스를 알면서...한번 더 입히고 빨걸.

변명아닌 변명을 듣던 큰아이, 털썩 주저앉는다.



후라이팬에서 조기는 타고 있고,,, 남편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후라이팬

앞으로 튄다. ' 여긴 내가 맡을게. 어떻게 대책 좀 세워 봐'

오래 숙달된 조교답게  담담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남편이

대견스럽다.

그녀는 다리미와 드라이기 두 개 중에  어떤 걸 꽂을 것인지 고민한다.



그녀의 명석한 두뇌는 즉각 해답을 내놓는다.

체육, 몇 째 시간이냐?

시간표 확인하고 네 째 시간이라 대답하는 아이.

좋아. 세째 시간 끝나고 점심시간이니까  충분해.

가져다주마. 혹시 모르니 비상연락 때려라.

만약의 사태를 모르니 신발장 수시 확인하라. 숙지시키고

투덜대는 아이를 아침먹이고 다독여 일단 학교에 보낸다.



그녀의 일상에서 이런 일은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칫 무고한 식구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지경... 경지에

이를 즈음이면 그녀는 반성, 또 반성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노라

다짐하곤 한다 .  하지만 얼마나 가겠는가.



그녀는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공언하지만 보라! 그녀의 살림살이 행태를...



양말통에 양말이 짝짝이로 제각각 돌아다니니 아이들은 그 비싼 외제장난감

없이도 인지력, 공간감각이 저절로 길러졌고. 마지막 한 짝은 겨우겨우

신었던 양말 중에서 조합하여 신길 즈음에야 몰아서 양말세탁에 돌입한다.

환경을 위해 물절약을 실천하는 주부의 모습은 그야말로 산교육이 아니고 무에랴.



식구들, 발바닥을 교대로 털면서 돌아다니는 걸 목격한 연후에야

청소기를 돌리는 그녀의 여유.

식구들이 슬리퍼 찾아 깽깽이발로 뛰어다니며 평형감각을

드높일 무렵, 그나마 마른 걸레가 있으면 다행. 그도 없으면

애꿎은 행주가 영문 모른 채 걸레로 전락한다.



식사 후....  화장실 갈 때 맘과 나올 때 맘 그 비스무레하다.

두어 시간이 흐른 후 식탁 불려서 닦느라 어깨에 무리가 온다.

무서운 습관의 힘을 어쩌지 못해 밥풀이 사정없이 눌어붙은 그릇과 냄비

담가 놓고 자기 일쑤, 아침이면 왠지 눈뜨기가 싫다.



화장실이나 베란다에서 심기를 편치 못하게 하는 냄새가 연일 지속될 때 (2-3일)

원인은 애써 생각지 않으려 한다.  뜨거운 물이나 뿌리는 방향제로 2-3일을 더

버티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 한번 닦지' 소리가 나면 '끄응' 앓는 소리 내며

대충대충 닦아놓고  '아이구' 드러눕는다.  식구들의 인내력은 나날이 증대한다.





새 옷은 건조대에서 바로 찾아 입는다.

둔 곳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 덕분에 식구들의 관찰력과 추리력 날로 향상된다.  

그나마

새로운 요리법을 발굴하고 실험하는 그녀 덕분에 식구들의 미각은

편향되지 않고....  발달된다기 보다는 둔해진다는 표현이 알맞다.

배낭여행이나 해외 오지파견에 막대한 이바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는  자칫 권태스러워질수 있는 전업주부의  일상에 간간이 양념쳐가며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체육복은 점심시간 전에 마를라나? 아효~





IP : 222.101.xxx.98
1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세실리아
    '04.4.16 11:03 AM (152.99.xxx.63)

    존경스러운 "그녀"이신데요?

    저두 아이들 생긴후 요정도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 체육복이 세탁기에 들어가있는 것도 기억못할까봐 걱정입니당 -_-;

  • 2. 이 글 보고
    '04.4.16 11:12 AM (211.212.xxx.42)

    바로 세탁기로 달려갔슴다.
    세탁기 돌리려고 급탕 눌러 놓은 지 두 시간 됐다는....

  • 3. 푸른토마토
    '04.4.16 11:40 AM (165.141.xxx.248)

    체육복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젖어있는 상태에 따라 돌리고, 바로 꺼내서 열심히 털고를 반복하시면 다림질보다 빠릅니다. 옆에 언니가 알려줬는데... 가끔 잘 써먹어요.
    한번 해보시지요!!

  • 4. ...
    '04.4.16 1:04 PM (211.227.xxx.209)

    저랑 비슷하시네요. 밥만 먹고 나면 부엌 쪽을 쳐다보기도 싫어진다는...
    전자레인지에 빨래 말리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는 양말 태워먹은 전력이 있습니다.

    집안일을 할 때 빈둥대는 식구들 보면 어찌나 배가 아픈지...^^

  • 5. 다시마
    '04.4.16 1:06 PM (222.101.xxx.98)

    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했답니다.(선그라스끼고 종이백 든 그녀)
    나간 김에 내쳐 뒷산에도 다녀왔지요.
    하루가 바쁘네요. 일을 맹그니까 바쁠수 밖에. 82쿡도 들어와야 하고..
    전 살림 잘하고 야무지고 지혜로운 분들 존경해요.
    여기서 자극좀 받을 줄 알았는데 그냥 입만 떡떡 벌리고 좌절하고 말 때가
    많다지요. .
    푸른 토마토님의 응급조치법 아무래도 넘 자주 써먹을 거 같아요.
    전자렌지에는 이상 없겠죠? 그러다 태울라치면... ㅎㅎ
    다시 읽어보니 그녀가 참으로 한심스럽긴 하군요. 요즘 부쩍 더 심하다네요.

  • 6. 밴댕이
    '04.4.16 1:15 PM (68.78.xxx.202)

    하하하...너무 재밌습니다.
    그리고 남편분의 대처능력 너무 멋지십니당! 부러버...
    울남편은 조만간 제가 밖에 나가서 얼라들 잊어먹고 올 사람이라고 한심해 한다죠...흑...

  • 7. 금빛새
    '04.4.16 1:27 PM (61.42.xxx.61)

    헉!!
    제가 쓴 글인지 알았어요..
    얼마나 저하고 똑같으신지.....
    반갑습니다 꾸벅!

  • 8. 싱아
    '04.4.16 1:51 PM (221.155.xxx.15)

    여기에도 그녀가 있어요.
    그래도 남편분은 착하시네요.

  • 9. 이진희
    '04.4.16 1:51 PM (221.151.xxx.10)

    항상 위와 같은 생활에 죄책감비슷한 걸 ?느끼구 살았는데
    동지를 만난것 같아 반갑습니다..실은 제 주위에 저같은 날라리주부가 없걸랑요
    어찌되었건 방가방가..ㅋㅋ

  • 10. 쵸콜릿
    '04.4.16 2:01 PM (218.235.xxx.25)

    남편분 멋지네요^^
    요럴때 건조기가 요긴하게 쓰입니다 ㅎㅎㅎ
    전 가끔 울신랑 와이셔츠, 큰애 원복을 그럽니다.

  • 11. 아임오케이
    '04.4.16 2:24 PM (222.99.xxx.110)

    이 글 복사해서 울 남편한테 보내야겠어요.
    다시마님 글보니까 저의 건망증도 어쩌면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의 것인데...
    우리집 온 식구들 절 마치 환자 대하듯...

    엄마의 건망증은 대한민국 평균수준이라구!!!!
    오늘부터 당당히 외치겠습니다.

  • 12. 아라레
    '04.4.16 2:31 PM (221.149.xxx.112)

    어제 투표하러 집에 갔더니(면목동) 욕실에 해조가 살고 있더군여.... 푸른 크로렐라 같은 것들이..

  • 13.
    '04.4.16 4:08 PM (218.154.xxx.57)

    ㅋㅋㅋ 어쩜 저리두^^ 너무 이뿌셔용 상상이가요^^
    다시마님 이리뛰고 저리뛰고 둥둥거리시는 모습^^넘귀여울것^^~~ㅎㅎㅎ
    저두 그런경험 헐--;;; 울딸 교복 와이셔츠 스쿨 버스 탈시간10분 남겨놓고
    우리남푠 딸아이 밥챙겨주고 난 와이셔츠 다리느라 땀;;; 찔찔 하여간ㅋㅋㅋ

  • 14. yooky
    '04.4.16 5:40 PM (211.53.xxx.170)

    저도 제 얘기인 것 같아 읽으면서 웃음이 나오네요.

  • 15. 안양댁^^..
    '04.4.16 6:04 PM (211.211.xxx.163)

    ㅋㅋㅋ...ㅍ푸하하핳하...........저녘해야할텐데...클났네...ㅋㅋㅋ

  • 16. 키세스
    '04.4.16 6:14 PM (211.176.xxx.151)

    동지가 많아 좋네요. ^^;;
    미혼녀 번개도 하는데 게으름뱅이 번개는 안하나요? ㅋㅋ

  • 17. 경빈마마
    '04.4.16 7:02 PM (211.36.xxx.98)

    역시....
    예상대로 다시마님이 미역 되었다는,,,

    82땜에...^^

  • 18. joy
    '04.4.16 7:21 PM (219.241.xxx.24)

    저두 체육복, 실내화 때문에 학교 다니면서 맘 좀 상했었죠.
    엄마, 미안!
    저 역시 엄마의 산 교육 덕분에 뭐든 전날 싹 챙겨놓아야 하는 놀라운 준비성이 생겼고
    제 동생 준비성이 발달하지 못한 대신 옷이 좀 안 말라도 입을 수 있고 하루 쯤 없어도 알아서 학교에서 해결하는 무던한 성격이 발달 되었답니다.
    문제는 엄마의 건망증 무지하게 원망하며
    내가 얼마나 좋은 엄마 되나 두고 보라고 했는데
    도무지 엄마가 안 되서 아직 실력 발휘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외출 한번 하려면 몇 번씩 잠깐만을 외쳐서 남편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딱 엄마 딸이 되지 않을 지...
    아이 낳고 나면 그렇게 건망증이 심해진다면서요?

  • 19. 나르빅
    '04.4.17 1:35 AM (211.160.xxx.1)

    다시마님 식구들은 인내하며 착하게 응수하시네요.. ㅋㅋ
    전 학교다닐때 엄마가 모 준비 안해놓으면..
    맨날 짜증내고 까탈부리던 게 생각나서 너무 맘이 아파요.(ㅠ.ㅠ)

    참.. 도와드리진 못할망정 왜그랬는지..
    왜 그땐 엄마의 그런 일들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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