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뜬금없이 남편이 낮에 전화를 했더군요
집에 온다, 늦는다.. 평소 이런 전화도 없는 사람인데 회사에서 일할 시간에 전화를 하니 갑자기 놀랐죠
-왜?
-응, 외근 나왔는데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걸었어
앞에 임산부가 지나가서...
-임산부가 지나가는데 왜 내가 생각나? 공장 문 닫은지가 언젠데?
-당신 임신했을 때가 생각나서.. 그 때 참 예뻤는데...
-이제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드는 모양이지?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
끊어!!! 바빠!
하고 전화를 확 끊어버렸어요
남편은 울 친정에서 고지식한 울 친정아버지를 아들들 다 놔두고 사위가 쏙 빼닮았다고 할 정도로 남성우월주의자에요
그런데 자기는 페미니스트라고 착각하고 살거든요
울고, 화내고, 달래봐도 잘 안고쳐지네요
가족 (오로지 자기네 가족) 지향주의에 마눌은 시모 도우미로 여기고 있던 사람이거든요
뭐 한국 남자 절반은 저런 정도니까 그러려니 할 수도 있죠 뭐..
이런 저런 걸로 속상하다고 하면 세상을 어찌 살겠어요 그냥 참고 살죠
저 임신했을 때 날마다 울고만 살았어요
임산부가 울면 애기 눈이 작다던데.. 먹고싶은거 못 먹어도 눈이 작다던데..그래서..
입덧하는 마눌이 뭐가 먹고싶다고 해도 뭘 사다 준 적이 없네요
먹으러 데리러 나간 적도 없고요
아.. 뭘 사다 준 적이 있어요
지하철 역에서 집에 오다보면 시장이 있는데
과일 가게에서 사과를 한 봉지 사왔어요
푸.르.딩.딩.한 꼬.마.사과요
그걸 한자루 담아서 싸게 파는 그 사과요
성의가 고맙다고 양많고 싼걸로 잘 사왔다고 하기엔 "맛없음"하고 표가 확 나게 보이는 맛없는 떫은 사과요...
너무 맛이 없어서 어째 이런걸 사왔냐고 하니 자긴 맛있을 줄 알았다나요?
그럼 너무 맛이 없으면 좀 미안해하고 다음에 맛있는걸로 사다줄게~ 해야 정상이죠 (임신한 아내잖아요...)
설사 맛이 없더라도 남편이 사다주면 고맙게 먹지 그걸 그렇게 화를 내냐고 더 난리더군요
임신하면 더 이쁜거 먹고 바른거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구 했더니 맛있고 양 많으면 되잖냐더군요
그건 맛있고 양 많은게 아니잖아 이사람아.. 맛없고(액면으로도 맛없음인데) 양많은걸 어찌 다 먹냐구..
나중에는 버렸어요
너무 맛이 없어서..
먹으러 데리러 나간 적은 없는 것 같군요
학교 앞에서 먹던 그 냉면맛이 생각난다고 하니
한 말이..
"시집에는 못 가면서 먹으러는 다닐 기운이 있나보지?" 였어요
네.. 드라마 타이틀 나오고 광고하는 동안 집으로 뛰어와서 본방 시작에 들어올 거리에 살면서
매주 시가에 가자고 하더군요
같이 살면서 제가 하던 집안일을 시모가 하니 그게 안쓰럽다고 분가하고 절 보고 평일중 이틀은 가서 일하고 오라는걸 제가 잘랐어요
나도 내 살림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랬더니 못된 여자 취급하더군요
뭐 못되고 몸 편한 여자가 착하고 몸 힘든 여자보다 나으니 못된 여자 하기로 했지요
어쨋든..
맛있는 것도 사준 적도 없고
임신한 마눌 얼굴 상한게 보기싫다고 자기 모임에 안데리고 간다고 집에 있으라던 그 시절은
생각만해도 눈물이 나오네요
임신했을 때 서운한거 평생을 간다는데 정말 평생 못잊고 있거든요
그 이야기를 꺼내면 정말 힘든 임신 육아 시절이라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신혼, 임신, 출산, 육아.. 이런 시기가 제 인생에서 트라우마에요
그래서 잊고 살려고 노력하죠
전 사진도 안꺼내 봐요. 좋았던 것도 있지만 눈물부터 나서..
그런데 그 전화 한 통으로 남편이 과거의 스위치를 켜 버리네요
그게요..
지금와서 생각하니 정말 미안했다.. 이렇게 한마디만 하면 또 잊고 살 건데
"내가 그때 얼마나 잘해줬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이렇게 말하니
그 때의 남편이 미운게 아니라 지금의 남편이 더 밉네요
그 때야 자기도 초보라서 잘 몰랐을테니 용서가 될 수 있지만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한 남편을 보니
내가 왜 이 인간하고 이렇게 오래 살아왔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들인 공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기분을 남편에게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결혼하고 십년만 지나면 바뀐다? 전혀요..
애들이 고딩입니다
그런데 저 마초기질에다가... 이제는 자기를 돌봐달라는 응석까지 더 보태서는...
주말이 지나면 남편 뒤치닥거리가 힘들어 월요일이 기다려져요
오늘 자게에 배려심 없는 남편 이야기 나오는데..
그게 딱 제 남편 이야기에요
자기 기준으로 사는 거..
울 딸이 해산물 싫어해요
비린내가 싫대요
그런데 해물탕 시켜놓고는 왜 이렇게 맛있는거 안먹냐구 뭐라 합니다
저 장어 좋아해서 장어집을 갔는데 울 딸 여전히 장어는 안먹어요
이 좋은 장어를 왜 안먹냐고 뭐라 합니다
아니 자기가 좋으면 남들에게도 다 좋은 건가요?
그게 반백을 살면서도 고쳐지지 않나봐요....
괜히 전화해서 남의 속을 뒤집어놓으니
우울해져서 힘들어요...ㅠㅠ
그런데 왜 마눌이 우울해하는지 모르면서 자기가 더 짜증내고 난리에요..
이런 우울한 기분에는 친구를 만나도 친구한테 미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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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말할 줄 모르는 게 더 미워요
주말부부 부럽삼 조회수 : 307
작성일 : 2011-05-17 10:19:30
IP : 110.15.xxx.248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대놓고
'11.5.17 10:32 AM (58.120.xxx.243)한바탕하세요.
인간 당해봐야안다고..
늙음 그때 그 설움 다 꼭 갚을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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