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
- 염미정 . 이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 .
좀 이상하긴 했다 .
10 화가 넘을 때까지 손도 잡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고
연인인 두 주인공은 나란히 걷지를 않고
왜 그렇게 거리를 두고 앞뒤로 걸어 다니는 장면이 많을까?
특히 가로등을 깨트린 후 미정이가 살아서 천국에 갈 거라고
갈대밭을 지나 산을 올라가는 장면에서도 정상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들은 도대체 나란히 가질 않는다 .
그 밤에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말이다 .
전형적이지 않아서 더 흥미진진했고 매우 걸출하게 진행되던 이 드라마는
폭풍우치듯 몰아치는 중후반부의 역동적인 서사구조가
어느 순간 멈추어버린 느낌이 있다 .
15 화에선 이게 내일 끝나는 드라마가 맞나 싶더니
16 화는 뭔가 종잡을 수 없게 드라마가 끝나버렸다 .
전형적이지 않는 걸 떠나서 허무한 엔딩이다 .
주인공들을 괴롭힌 빌런들을 응징은 커녕 용서하고 도와주며
시청자들을 그토록 애타게 한 두 주인공은 함께 하지도 않는다 .
이런 걸 열린 결말이고 하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꽉 닫힌 서사이다 .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손 잡고 데려갈 수 없는 ,
신 앞에 단독자로 설 수 밖에 없는 인간 구원의 서사 .
16 화 중반 ,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 구자경을
술 그만 마시라는 잔소리 한마디 안 하고 그대로 지켜봐 주는 미정이를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지 ? 답답하기도 했다 .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응원만 하겠다 라는 마음으로 만났기 때문에
헤어진 뒤에도 계속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대사를 들으며 떠올랐다 .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인간은 그 자유의지로 계속 죄를 짓고 자기에게 상처를 주며 방황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기다리신다는 .
그리고 어느 밤 길거리에서 미정이에게 구자경은 문득 드는 생각을 고백한다 .
“ 난 ,,,..., 불행했습니다 . 그러니까 벌은 조금만 주세요 .
제발 ! 쪼금만 ! ( 중략 )
나느은 ~~~~~~ 너무 힘들고 ~~~ 너무 지쳤습니다 .
엄청 ~~~~ 나게 벌 받고 있습니다 . 제발 제발 좀 !”
왜 갑자기 오버스러운 연기일까 좀 이상했는데
어느새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이게 뭐지 ?
이것은 일종의 고해성사이고 기도이다 .
죄를 고백하고 심판을 받는 회개의 과정이다.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한 성도에게 “ 묵주기도 5 단을 바치세요 ” 하는 그런 과정인 것이다 .
미정이는 자경에게 아침에 (마음속으로) 찾아오는 원수를 환대하라고 하고
구자경은 드라마가 끝날 때쯤 자신을 배신한 현진이 형에게
“ 환대할게 , 살아서 보자 .” 라는 음성메시지를 보낸 후 ,
죄의식의 공간인 오피스텔을 벗어난다 .
그 장면 배경음악이 교회 성가대처럼 파이프 오르간으로 편곡된
‘ 일종의 고백 ’( 회심의 간증 ) 인 것은 덤 .
그래서 구자경이 어떻게 호빠의 세계로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
그렇다 . 예수님도 간음했던 자와 창녀와 살인자의 후손이었다 .
이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죄인 구원의 서사이다 .
요한복음 7 장에는 사람들이 예수께 음행한 여인을 잡아 와
심판을 요구하는 장면이 있다 .
예수는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 하셨다 .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결국 예수와 여인만 남는다 .
이처럼 구자경은 죄인이지만 우리 중에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그리고 드라마의 마지막 ,
염미정의 대사는 이 기독교적 서사의 결정판이다 .
”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
구씨의 추앙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 미정이는
배신한 애인을 도와주며 미움에서 해방되었고
사랑 그 자체가 되었다 .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는 요한 1 서 4장 8절의 말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