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선수 생활 2 주 만에 마담이 되고 1 년 만에 사장이 됐는지 보여주겠다며
초짜 마담을 데리고 백화점에 외상 받으러 간 장면은
그가 왜 들개에게 한쪽 팔이라도 뜯어 먹히고 싶어하며 자신을 학대하는지
간단히 정리해준다 . 그는 막살았다 .
그래서 어느 날 지하세계에 강림한 순수와 마주친 그의 뇌는 정지되어 버렸다 .
어떤 미친놈이 술집으로 데려온 7~8 개월쯤의 애기 ,
자기 사무실 맞은편 소파에 앉아 쭉쭉이를 빠는 그 무구한 생명체를 보고 놀라
위스키 한 잔 든 채 정지돼 버린 그의 모습은 안쓰럽다 .
그는 산포를 떠나 생명 , 탄생 , 성장이 없는 지하 세계에서
신회장의 개가 되어 살았다 .
아기를 본 후 고구마순 김치까지 마주한 그는
한살짜리 자신을 업어주고 싶다던 미정이를 떠올리며
깊어진 가을 다시 산포로 간다 .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생명력으로 충만하던 그 집은 없다 .
갑자기 엄마가 죽은 미정이네 집은 더 이상 풍성한 식탁도 없고 아이들은 서울로 떠나버렸다 .
벽에 가득 걸렸던 가족사진은 사라지고 아이들의 흔적 , 일상의 온기가 사라져버린 집에는
한쪽 손과 발을 저는 노쇠한 아버지만 남아있다 .
삼남매가 그토록 지겨워하던
산포의 밭일과 출퇴근의 분주함과 부모의 잔소리가 사라진 풍경은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하다 .
엄마가 온 힘을 다해 만들었던 그 지겨운 천국은 다시 복원될 수 있을까 ?
만약 복원된다면 그것은 미정이와 함께일 수밖에 없다
자연의 이치에 통달하고 미적 감각이 탁월한 미정이가 산포로 다소 돌아와 구씨와 씽크대를 만들고
소소하게 텃밭을 가꾸는 풍경은
해방의 시청자들이 대동단결하여 바라는 바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
누군가의 미래는 그 사람이 걸었던 길과 지금 서 있는 자리. .
그 괴랄한 악의 관성을 멈추고 그가 산포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소망인지 ,
또 가족들을 모이게 했던 원동력이었던 엄마의 부재가 어떻게 가족을 해체시키는지
경험적으로 알만한 나이의 시청자들은 우울하다 .
그토록 다시 보기를 원했던 여름날 평상 위 평화로운 식탁과 건강한 노동은 사라져버리고,
매일 공장에서 밭에서 집에서 뼈빠지게 일만 하느라 하루라도 쉬고 싶어 교회라도 다니고 싶어했던 엄마의 일상은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 .
이제 미정이는 이해할까 ? 아들 , 딸의 속을 세심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정서적 지지를 주지 못했던 엄마의 피로 , 그게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부모의 안간힘이었던 것을 .
미정이처럼 사려 깊은 아이도 부모의 속을 다 모른다 . 관계의 소통은 왜 이리 어려운가 . 갑자기 찾아오는 불행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아마 구자경도 대물림된 가난을 돌파하기 위해 그런 험한 세계에 발을 디뎠을 것이다 .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옆에는 그가 인생을 망쳐서라도 지키려했을 집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
그래서 껍데기뿐인 구사장의 서울 집은 노출되지 않는다 .
그가 지키주려고 떠났던 미정이네 집도 황폐해졌다 .
그는 집이 없다.
그래서 제대로 이름도 안 불러주고 구박하던 삼식이에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걸 아는 순간 구사장은 부러웠을것이다.
모르겠다 .
남은 3 회 , 그는 신회장의 세계 , 죄로 가득한 지하 감옥에서 살아서 해방될 수 있을까 ?
그녀는 서울에서 돌아와 시청자들이 그리워 마지않는 산포의 천국을 다시 복원해낼까 .
쉴만한 안식처 , 해방의 공간 . 구자경의 집은 어디일까 ?.
2019 년의 미정이와 2021 년의 구씨를 동시에 편집해 시청자를 혼란스럽게한 뒤 ,
재혼까지 한 ( 것으로 여겨지는 ) 아버지의 모습을 어둠 속에서 불러내어
시청자들을 패닉에 빠트린 박해영 작가 .
13 회 한 편에 타란티노와 왕가위 , 거침없이 하이킥과 베이비 드라이버 , 유주얼 서스펙트 와 곡성을 다 섞어놓은
드라마의 조물주 그녀 .
현란한 플래쉬백으로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안 주고 휘몰아치는 대본과
캐릭터의 심리를 대변하는 촬영 ,
산포라는 가상의 동네에서 살아 돌아다닐 것 같은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시청자의 평범한 예상 따윈 구씨처럼 가볍게 뛰어넘어버리는 제작진을 추앙하며 ,
인생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한드 역사상 걸작으로 남지 말고
그저 그런 신파로 끝나더라도
어느 여름 저녁, 구씨랑 미정이가 평상 위에서 맛있는 밥 한끼 먹는거 보고 싶은
나약한 시청자들은
오늘 밤도 박해영 작가의 펜끝만 쳐다볼 뿐이다 .
(자게 타임라인글 보고 구씨 산포 방문 2022에서 21년으로 일단 수정했어요. 이것도 추측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