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남부터미날 구례행 고속버스.
3시간 10분만에 구례터미날 도착.
지리산 등산객들 보통 용산역에서 무궁화 열차를 타는데 버스 이용한 이유는?
버스에서 잠이 잘 오기에.
구례터미날서 화엄사 경유 성삼재 행 군민버스 탑승,,,,20분만에 화엄사 주차장 도착.
주차장 인근 식당서 산채비빔밥 점심.
뙤약볕 속 20여분 거리 화엄사로.
지리산 대화엄사
천은사,쌍계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사찰 중 으뜸.
일주문 통과
우측으로 화엄계곡
여름 휴가들 즐기시고.
멀리 노고단 능선
부도밭 백일홍
망자의 처소에 생기가 돌고
지리산 화엄사.
바로 옆 등산로로 곧장 가지 않고
경내로 들어간 이유가 있으니,저 백일홍!
금강문
너머에도 백일홍 한그루
천왕문 지나고
보제루 앞.
왼쪽 동백나무 숲 안으로 4사자 삼층탑(국보) 및 석등이 있으니.
4사자 삼층석탑(국보)
삼층석탑 안엔 연기조사 어머니.
석등 안 승려는 연기조사.
연기조사는 화엄사 창건주.
어머니에 공양하는 포즈.
보제루(普濟樓)
지나면 부처님 처소 대웅전.
각황전과 석등은 국보.
궁궐 제외 단일 건물로는 최대.숙종 때 중창.
동서 석탑은 보물.
경내는 백일홍으로 더욱 화사해지고.
대웅전
花無十日紅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10일을 못넘긴다구요?
아뇨,백일홍은 초여름 부터 초가을까지 자잘한 꽃들이 연합전선을 폅니다.
그리고 석달 열흘을 견뎌내죠.
수많은 작은 꽃들이 뭉쳐있다가 하나가 지면 옆에서 피여나고를 반복하는 거죠.
결국 전체적으로는 100여일 계속 피어 있는듯한.
각황전 에서 바라본 보제루(우측)
普濟樓,,,,널리 중생을 구제한다는.
보통 주전 마당 끝에 2층 누를 세워 사부대중들의 강학,휴식,담소 공간으로 사용하죠.
주전으로 들어오는 입구 역할도.,,,누하진입.
보제루 이름에 맞춤한.
여느 사찰에서는 볼수없는 전시공간에 중생들의 쉼터가 되었네요.
여름 대청마루 한옥 체험중.
대웅전 뒤로 노고단 자락이 보이네요.
대웅전 뒷뜰로 난 등산로를 따라 본격 산행을 시 작해 보죠.
45리터 짜리 내 배낭 위에 걸터 앉으시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노고단고개 까지는 7키로.
정상 천왕봉은 32,5키로
네,드디여 지리산 2박3일 종주길에 들어섰습니다 .
그냥 산행이
아니라 종주
.
화대종주라고 들어보셨는지?
지리산을 동서를 완전 종단하는 것.
서쪽 구례 화엄사를 출발,
천왕봉 찍고 동쪽 산청 대원사에 이르는 46.3km 종주산행을 말합 니다 .
주차장 까지 포함하면 53키로.
지리산 종주 산행은 크게 셋이 있어요.
1.가장 보편적인 주능선 종주(노고단-천왕봉...25키로...하산까지는 32키로)
2. 구례 화엄사에서 산청 대원사까지 일명 화대종주(46.3km).
지리산을 서에서 걸어 올라가서 동으로 걸어 내려 오는거죠.
3.태극종주(산청 덕산-남원 인월.90,5km)도 있어요.특별한 이벤트 성격.
4.남북 종주(하동군 악양면 ~ 남원시 인월면 실상사.약 52km)
보통은 주능선 종주를 즐기지만,
진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 로망 '으로서 화대 종주입니다.
연기암 까지는 시누대가 터널을 이루고. 사찰에서 심었겠죠.
비상시에 승병들의 화살로 사용.
연기암 도착.
화엄사 창건주가 연기조사인데 최초 화엄사가 여기서 시작했다네요.
연기조사는 화대종주의 도착지 산청 대원사 창건주이기도.
연기암 앞마당서 바라본 구례읍 & 섬진강.
건물벽,,, 뭘까요?
나무가지?
두눈 보이시죠?
가지 매듭 사이에서 두눈을 새순으로 위장했네요.
대자연의 놀라운 적응력,그리고 진화!
핸펀으로 살짝 건들어 봅니다.
나무가지인양 다리를 꺽고누워버리는.
그런데 본격 시작도 전에 피로감이 밀려와요.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성삼재(1000미터) 까지 택시를 탈까 ........생각도.
일단 연기암 입구 찻집에 들어가 상태를 체크하기로.
복숭아 티 한잔,,,어떻게 온 길인데?
그래 어서 가자!
오늘 숙박지인 노고단 대피소까진 6.5키로.
지금 시간 3시,,,대피소 체크인은 7시.
화대종주 중 가장 힘든 구간으로 보통 4시간 소요.
시종일관 급오르막길 4시간을 쉼없이 걸어야.
일요일 오후라 내려오는 몇분 외엔 오르는 사람은 없고.
아~~무려 30년 전이네요.
졸업반 5명의 의기투합, 야! 우리 지리산 가자!!
청주,광주,부산,마산 각각1명에 서울 둘.
4.19 라 시기도 생생하고.
시작 지점이 바로 화엄사,그리고 노고단 거쳐 천왕봉.
그땐 몰랐지만 하산은 지금 유추해보 니 함양 백무동.
점심은 집선대 아래 계곡변(?) 어딘가.
모두들 계곡에 퍼질러 졌고
지극정성 어머니의 양념 불고기를 꺼낸 나.
가스도 아닌 석유 버너.
불을 지피게 위해 신나게 펌프질,,,그리고 묻어나는 그 석유 냄세.
배터지게 먹다보니 이후 다들 등산이 너무 힘들었던.
코재
코재 뜻을 모르는 모르는 자 도 화엄사 계곡을 오르다보면 쉽게 알게 되요.
비탈이 심해 코가 땅에 닿을 만큼 힘들다는.
성삼재 찻길(작전도로서 관광도로 허가는 1988년)이 나기 전엔
노고단과 반야봉을 오르거나 종주하는 등산객들은 죄다 이 길을 이용.
이후에도 버스를 탄 성삼재(1000미터) 부터가 아니라,
화엄사 출발 ' 코재 ' 를 통해 노고단에 오르는 것이 진정한 지리산 입산으로 여기는 이가 많았고.
그들에겐 일종의 통과의례로 현재진행형.
전화가 오네요.
공단 직원.....노고단 대피소입니다.
아무개씨죠? 늦네요,지금 어디쯤?
나.....헉헉~코재가 코앞이여요
공단직원.....늦네요,조심히 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끝은 있기 마련,드디여 보인다!
마지막 계단.
무넹기
물이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으로 무넹기는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 됩니다.
여하튼 화엄사 출발 5시간만에 노고단~성삼재~정령치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길에 도착한 것.
세월 때문인지 1시간 지체.
코가 땅에 닿게 올라 무넹기에 이르면 순간 세상은 달라져요.
비지땀 흠뻑 젖은 자와 슬리퍼 또는 구두 차림 탐방객들의 공존.
무넹기서 바라본 화엄사,구례
읍 & 섬진강(참고 사진)
무넹기서 바라본 종석대(비탐방 구간)
백두대간은 저 종석대~만복대~정령치로 이어 지고
종석대서 바라본 화엄사,구례읍,섬진강.
좌 멀리가 광양 백운산,,,좌측 우뚝 봉우리가 왕시루봉.
아래 계곡을 타고 올라왔어요
.
참고로 종석대서 바라본 구례 벌판.
왼쪽이 화엄사 계곡,,,우측으로 도로 보이시나요?
아래 사진을 다시 보시면,
구례 읍~천은사~성삼재 관광 도로(참고 사진)
구례 화엄사~천은사(계곡 끝)~성삼재~달궁~남원으로 이어지는.
보통 차량으로 저 도로를 타고 성삼재에 오른 후 노고단으로.
성삼재를 정상으로 한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전남 구례군 광의면(천은사)을 잇는 군작전도로로 시작해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지리산관광도로로 일반에 개방되었습니다.
그러니 나의 학창시절 첫 지리산 종주 시작점은 화엄사 일수 밖에요.
왼쪽 운무의 바다 너머 멀리 봉우리 보이시나요?
무등산입니다.
그 앞은 백아산.
감이 오시나요?
해방 전후 좌익 내지는 빨치산들의 지리산 진입 루트!
종석대서 바라본 노고단 대피소& 노고단 정상
성삼재서 이어진 길이 구불구불.
왼쪽 엉덩이는 반야 봉
바로 앞 도로(황토길)가 무넹기.
일제 강점기엔 서양 선교사 별장 50여 동이 노고단 일대(사진)에 있었어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국군토벌대에 의해 불태워졌고.
80년대 첫종주 그때도 부서진 건축 벽 잔재들이 있었던 기억이.
당시 선교사들은 대나무 들것이나 남여 또는 지게에 실려 이곳까지 올랐다죠.
물론 노고단엔 무더위란 없습니다.
700미터 평창 대관령 일대가 그럴진데 1500미터 노고단이야뭐.
성삼재~노고단 임도
성삼재에 주차하시고 노고단들 오르실 때 이용하는 그 길.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 정상까지는 왕복 7.2km.
5살 어린 아이도 오를수 있는
가족 산행지로 이만한 곳이 없어요.
사람은 때로는 익숙한 길에서 위안을 얻죠.
사브작 사브작 20분쯤 걸으면 이내 노고단 대피소.
7시 조금 넘어 대피소 도착.
노고단은 운무에 쌓였고.
내 숙소는 다락방 3층 23번
배낭 정리하고 버너,코펠을 꺼내 나오는데 종 석대 너머로 노을이.
종석대 우측 바로 아래가 성삼재.
낮달도 보이고.
저녁은 라면에 누릉지 조금 넣고 끊여서 해결.
반찬은 장조림,풀무원 1회용 막김치.
잠자리에 몹시 예민한 나,,, 9시 취침 들어갔는데 뒤척뒤척.
깜박 잠들다 자정 즈음 깨어나고.
밖으로 나오니 한기가.
근처 핸펀 불빛이 몇 보이는데 나같은 분이 더 있는듯.
아,이 얼마만인가?
하늘엔 촘촘한 은하수가 내려 앉을듯 동서로 길게.
1등성 별들은 그야말로 초롱초롱.
일부 서북쪽은 구름에 가렸고.
고작 1500미터 올랐을 뿐인데 별들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어요.
두시간 더 자고 4시에 일어나 노고단으로 출발.
*국립공원 대피소는 매달 1일,15일 오전 10시부터 인터넷 예약이 시작됨.
설악산,지리산의 경우 주말분은 열리는 순간 매진이니 10시 이전 부터 컴 켜놓고 대기타야.
숙박 13000원.
해뜨는 방향으로 반야봉이 보이고.
노고단의 아침.
5시 노고단 고개에서 정상까지는 너무나 편하고 상쾌한 나무 데크길.
예전엔 주변이 야영장으로 황폐화 되었는데
복원사업으로 아고산 지대의 야생화 천국으로 재탄생.
여기에 딱인 음악 하나.
전원교향곡 1악장.
음악적 선호도 상황에 따라 변하겠죠.
언제부턴지 여름이면 1악장만 들으면 이미 난 산에 들어와 있어요.
고전 음악 중 베스트를 하나만 뽑으라면 상황 따라 변하곤 했는데 이젠 단언할수 있어요.
베토벤 교향곡 6번 Pastorale!!
나에게 '전원'을 능가하는 음악은 이제 없습니다.
등산로가 아닌 그냥 가족 산책 코스.
노고단(老姑檀 1507m)
지리산을 동서로 잇는 노고단~반야봉~천왕봉을 3대 주봉이라.
백두산서 뻗어온 백두대간의 마지막 등줄기는 천왕봉서 대장정을 마감.
노고단(1507m,서)~천왕봉(1915m,동)을 잇는 주능선 길 25키로.
지리산 종주능선을 밟는다는 것은 산꾼(이 표현은 좀 부담스럽고 그냥 산 좋아하는 등산인)들의 로망.
거리는 25.5km지만 지금 내몸이 느끼는 거리는 두배.
기다려도 해는 안나오고.
구름 속에 숨었음.
남쪽을 보니 왕시루봉
우측으로 섬진강이 흐릅니다.
지리산 10경 중 하나가 '노고단 운해'
조정래 '태백산맥'에서 노고단은 소설의 주요 무대.
손승호의 눈을 빌려 노고단 일출,운해를 얘기하고 있는데
일몰은 무려 세 페이지에 걸쳐 묘사하고 있죠.
지금은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출입통제지만
왕시루봉엔 일제 강점기 선교사들의 휴양시설물 몇 동이 남아있습니다.
아래로 노고단 대피소,그 너머로 성삼재 대피소.
다시 그 너머로 남원시.
저 멀리 남원시(참고 사진)
노고단대피소 아래 삼각형이 성삼재.
어림잡아 남원시의
만복사지,교룡산성,광한루도 잡히네요.
원츄리
지금 노고단은 야생화 천지.
이질풀, 동자꽃, 모싯대, 노루오줌, 범의꼬리, 지리터리, 일월비비추, 원추리 ,말나리,어수리 등등.
예전엔 대피소 일대는 야영장 천국.
기타에 대형 카세트 까지 메고 올라왔던 이가 있었던 그 때 시절!!!
어수리
어린잎은 맛과 향이 좋아 임금님의 수랏상에 올랐다 하여 어수리라.
동자꽃
일월비비추
기린초
일월비비추&원츄리
노란 달맞이꽃
노고단 달맞이꽃 특징 하나.
난장이.
비바람에 견뎌야 하기에 50센치 이하.
둥근 이질풀.
아침 이슬 맺힌 연분홍은 순결 자체.
일월비비추
잎을 손으로 비벼서 부드럽게 한후 무쳐먹은 취나물 이라고 해서 ' 비비취'.
이게 '비비추'로 바뀐 것.
여기서 '취'는 곰취,참취 등등 나물 총칭.
구름패랭이 & 말나리
말나리
원츄리
노고단 대표 야생화.
과거 아낙네들이 아들을 낳길 기원하며 꽃봉우리를 따서 몸에 간직하고 다녔다고 하여 '득 남초'
꽃을 말려 담배 대용으로 피며
시름을 잊였다
해서 '망
우초(忘憂草)'라고도
.
구름패랭이
구름 형상에다, 구름이 머무는 높은 산지에서 자라던 꽃이라 구름패랭이라는.
내려 가는 도중 천왕봉 위쪽으로 해가 살짝 보이네요.
일출엔 별 관심없으니 패스.
왼쪽 봉우리는 반야봉.
반야봉 향해 출발.
미역줄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밤새 습기를 잔뜩 머금어 스치는 등산바지는 축축
길섶은 동자꽃 천지.
큰앵초
(
지난 5월 종주)
흰나비 ?
좌우 등산로는 산수국 천지.
습한 지역을 찾아 무리지어 피어나죠.
남보라 빛이 눈에 확 띠는.
모싯대
잎이 모시잎,줄기가 대나무를 닮아서.
말나리
돼지령
멧돼지가 자주 출몰해서.
일대가 원츄리 군락지인데 멧돼지들의 기호식품 중 하나가 원츄리,둥글레 뿌리랍니다.
큰까치수염
까치 꼬리 같이 생겼죠?
노고단서 임걸령까지는 3.2km.
큰 굴곡 없이 느긋한 길의 연속.
그래서 노고단에서 임걸령을 향해 화살을 쏘고 말을 타고 달리면
말이 화살 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는 전설이 있다네요.
임걸령 샘터
종주꾼들의 오아시스 임걸령 샘터.
가뭄에도 수량이 풍부해서죠.
차디찹니다.식수 보충.
미역줄나무 터널을 통과할 때면 향기가 코끝을
지금 지리산 주능선은
동자꽃, 일월비비추, 산수국, 모싯대, 말나리, 미역줄나무 세상.
이 중 3대장은 일월비비추,동자꽃 & 모싯대.
피아골 삼거리
천왕봉은 22.7키로 남았네요.
아래가 피아골 시작점,,, 우측은 왕시루봉
계곡 따라 내려가면 소설 '토지'의 주 배경지 연곡사가 나옵니다.
지리산 단풍 중 가장 아름다운 곳 .
왔던 길.
뒤쪽으로 노고단이 보이고
주능선과 반야봉의 갈림길 노루목.
반야봉 갈림길로 '반야봉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늘 망설이게 하는 곳.
노루목이란?
1.노루가 많이 출몰해서
2.주요 지역(반야봉)에 이르는 좁은 통로를 이르겠죠.
반야봉은 주능선에서 벗어난 왕복 1시간 반 거리.
종주길에서 살짝 비켜 있는 탓에 삼도봉으로 바로 가는냐, 반야봉을 경유하느냐로 고민하게 만들죠.
하지만 체력이 허락한다면 단언코 반야봉을 올라야.
지리산이 어머니 같은 덕을 지녔다면 아마 반야봉을 얘기할 겁니다.
전망이 일망무애.
(사진 3장은 지난 5월)
반야봉(1732)
실질적으로 천왕봉 다음 높이.
반야봉 정상서 펼쳐지는 전망이 예술.
동쪽으로 멀리 희미하게 천왕봉.
반야봉(般若峰) 낙조는 지리산 10경 중 하나
반야봉에 대한 이해는 조정래 태백산맥을 통하면 잘~~
지리산 ,
한량없이 크고 우람하고 골이 많은 산 , 명산의 산신령들은 다 남자 형상인데 어찌 하필 지리산만 여자일까 .
천왕봉 다음으로 높으면서 먼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반야봉이 바로 그 여신령을 상징하고 있다 .
‘ 반야 ’ 라는 말에는 불교적 의미 말고도 귀녀 ( 鬼女 ) 라는 뜻도 있는 것이다 .
그래서 그런지 반야봉은 흡사 여자의 봉긋하게 솟은 두 개의 젖무덤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
그 전설대로 하자면 지리산은 여신령이 폭넓은 치마를 펼치고 있는 형상이 되었고 ,
그 수없이 많은 골짜기들은 그 치마의 주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왜 옛날부터 세상을 바로잡으려던 사람들은 형편이 여의치 못하면
그때마다 이 산으로 밀려들어 그 최후를 마쳤던 것인가 .
남도땅에서는 제일 큰 산인 까닭이고 ,
더는 갈 때가 없는 마지막 산인 때문이었다 .
그러고 보면 이 지리산 골짜기들은 피신처였으며 도한 무덤이었다 .
무덤의 둥근 모양은 자궁을 상징하는 것이고 ,
죽음은 태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라는데 .....
지리산의 여신령은 자궁을 많이 지니고 의로운 사람들에게 죽음자리를 마련해 준 것인가 ....
글쎄 , 빨치산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인 생각이다 .
어쨌든 지리산은 역사 위에서 투쟁하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산이었고 , 죽음을 맡긴 산이었다 .
결국 지리산은 역사의 무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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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서남쪽으로 섬진강 물줄기가 보이고.
가운데 중앙 우뚝한게 백운산.
계곡 아래 쪽이 화개.
이제 삼도봉 쪽으로 하산해 주능선을 밟습니다.
삼도봉
반야봉을 내려와 20여분 지나니 삼도봉.
행정구역 상으로 전남,전북,경남이 만나는 곳.
너럭바위 아래 남쪽의 전망이 좋은.
아점을 여기서.
미숫가루 선식에 꿀좀 넣고 파이 두 쪽으로 해결.
삼도봉서 바라본 남쪽 화개 방면.
바로 아래가 구들장 아자방으로 유명한 칠불암.
명선봉,형제봉,영신봉에서 흘러온 빗점골,대성골의 물과 합쳐져 화개천을 이룬 후
화개장터 앞에서 섬진강에 합류.
큰산꼬리풀
연한 보랏빛 혹은 하늘빛이 청아한.
산 꼬리풀 , 긴 산 꼬리풀 , 큰 산 꼬리풀 등 여러 종류가 있네요.
적어도 해발 800m이상 되는 곳에서 자라며 다 크면 성인 허리 높이까지 .
큰산~~이란?
높은 산에서 자란다는 뜻
지리터리풀
먼지털이처럼 생겼나요? 그래서 털이풀.
지리산 1400미터 이상에서만 자라는 특산종이기에 '지리터리풀'.
삼도봉에서 나무데크길 200여미터 내려가면 화개재.
주능선의 특성이 바로 오르내림을 반목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힌다는 것.
화개재
지루한 오르락이 계속 이어지다 갑자기 너른 공터가 나타나니 바로 화개재.
예전 경남 하동의 소금과 해산물이 전북 운봉의 삼베,
산나물 등과 물물거래 되던 장소.
한국판 '차마고도' 같은 곳.
화개재서 북쪽으로 하산하면 남원 뱀사골. 남쪽으로 하산하면 하동 화개.
주능선이 백두대간 길이기에 뱀사골 물은 낙동강으로,화개 물은 섬진강 으로.
80년대 후반 그때가 생각나요.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주변에 뱀사골 산장이 있었거든요.
4.19일 인데도 주능선엔 20여센티 눈이 쌓였고.
(지금이라면 화엄사 입구부터 입산 통제되었을 터)
사전 지식이 없던 우리로선 복장도 그냥 춘추복.
산장에선 그냥 바람 피하고 누울수 있는 작은 공간만 주어질 뿐.
얼나나 춥던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는 서둘러 아침 해먹고 떠났던.
내 생에 가장 추웠던 밤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내게 뱀사골은 여전히 한여름 청류 뱀사골하곤 거리가 멀어요.
화개재 주변 야생화
|
꽃길~~따 라서~~
그 노래 뭐더라?
제목이 생각 안나요.
내려 왔으니 다시 오르막 길.
토끼봉 향해
아, 이 계단!!
지난 5월 말 1박2일 성삼재~천왕봉~백무동 종주 때네요
저녁 10시 40분 용산 출발 무궁화 열차,,,,구 례구역 새벽 3시 도착.
군내 버스 타고 40분만에 성삼재 도착.
그리고 새벽 4시부터 시작된 1박2일 종주.
오후 1시 쯤 체력이 급 방전된 느낌.
나무데크에 걸터 앉았어요.
정면으로 반야가 엉덩이를 드러내 보이데요.
셔터 한번 누르고 핸펀은 무릅 위로 .
한참을 쉬다 일 어서는데.....툭~툭~툭~ 탁!!!
벼랑으로 떨어진 것.
겨우 내려가 수습해 보니 먹통에 액정이 나갔고.
사진은 여기서 끝!!
5월 종주 사진 예고
하고 약속 못지킨 이유입니다.
틈틈히 구상나무, 분비나무 등 침엽수들도 나타나고.
멀리 뒷능선 중앙으로 촛대봉.
촛대봉 능선 바로 앞 능선이 쌍계사 쪽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
그 사이가
오늘 묵을 세석평전.
둥근 이질풀
예전 이질 등으로 설사하면 이를 달여 먹 었다네요.
닭 등 가축들에게도.
참취
나물로 먹던 그 참취.
토끼봉(1534)
방향이 반야봉 기준 묘시 방향이라 묘봉이라 불리다 토끼봉으로.
묘시는(卯時)는 12시의 넷째로 오전 5~7시.
묘는 토끼 묘.
주능선 종주산행의 첫 번째 고비가 이즈음서 일어난다는데 나도.
견디기 힘들면 연하천 삼각고지나 벽소령에서 마천면 삼정,혹은 화개면 의신 으로 하산들 하죠.
빨치산들은 여길 꽃대봉이라 불렀답니다.
국내 최고 무연탄 산지 정선 사북,고한.
그 백운산엔 정 선 사북에서 영월 상동으로 이어지는 옛길, 화절령( 花折嶺 ) 이 있어요.
남편을 막장에 보내고 시름을 달 래기 위해 진달래를 꺽으며 시름을 달랬다는.
묘하게 연상되는 꽃대봉에 화절령입니다.
정상 치고는 드물게 흙산.
꽃대봉 남쪽 아래가 바로 빨치산들의 최고 은거지자 최후지인 빗점골,대성골.
뒤돌아 보니
멀리 노고단이 보이고
어수리
아닐지도,뭐뭐 독천이라고 있던데....
2박 3일 동안 질리게 만난 일월비비추
순간 이 편한 길이 나타나 면 미소가 돌고.
노고단서 10키로 왔어요.
연하천 대피소가 지척.
연하천 대피소.
주능선이 정서로 꺽
이며서
만들어낸 분지에 포근하게 쌓였고.
그런데 방전된 느낌이 확.
어제 일찍 서울 출발해, 오후 2시 부터 시작한 화엄사 코스를 넘으면서 체력이 소진된듯.
그리고 오늘 새벽부터 지금 정오까지,,,,
원래 2박은 세석대피소로 예약했으나 6키로 전인 벽소령 대피소 로 땡기 기로.
국립공원 대피소 예약 사이트에 접속합니다.
먼저 세석을 취소하고 벽소령으로 예약하려는데 문제가... 이미 벽소령은 만석.
당일 오후 늦게 취소분이 생길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적 있어 이동 중 접속을 몇차례.
벽소령 거의 다와서 예약 성공 !!
휴우~~노숙할뻔.
연하천 샘물
연하천 샘물은 임걸령 샘물과 더불어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아 사막의 오아시스.
종주산행에서는 식수 나는 곳이 최고죠.
배냥 무게를 많이 줄일수 있기에.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면 제발 오시지 마시라/
반가운 신영복 선생의 서체
'남부군 피의 능선'
연하천 대피소 뒷 봉우리인 명선봉에서 바라본 피의 능선.
보이는 저 능선을 밟으며 천왕봉으로 향합니다.
왼쪽 멀리 우뚝 천왕봉,우측 우뚝 촛대봉.
우측 사면으로 빗점골,대성골 등등이 합수해 화개천 거쳐 섬진강으로.
주능선은 바로 앞 삼각고지를 시작으로 형제봉,벽소령으로 이어지는데
일대의 울창한 수림은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들의 주 은신처.
삼각고지(바로 앞 첫 봉우리)엔 군사용 벙커 흔적이 남아 있어요.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바로 아래 빗점골에서 최후를 맞이하기 전까지 일대를 주요 저항 무대로 활약.
때문에 주능선 중 명선봉~연하천 ~삼각고지~벽소령 구간 을 '피의 능선'이라 부릅니다.
피의능선 남사면
빗점골
위 두사진을 구글 어스에서 부감법으로 보면
~~
삼도봉~토끼봉~연하천대피소~삼각고지~형제봉~벽소령대피소가 주능선(나의 산행 코스)
(지도 음영부분이 주능선 북사면).
주능선 너머는 남서쪽으로 화개면,뒤쪽은 북쪽으로 함양군 마천면.
저 삼각고지는 주능선 상에 있으면서 남북을 잇는 주요 길목으로
북쪽으로는 함양,덕유산,남원 운봉,거창 까지 곧바로 연결되는 요지 중 요지 .
정상에 서면 남북이 훤히 보이고 .
지금도 삼각고지에서 화개면,마천면,산내면(전북) 3개 행정구역이 만니죠 .
전직 빨치산 종군기자 이태는 '남부군(80년대 후반 베스트셀러)'이라는 회상기에서
한국전 전후로
2만 여명이 숨졌다 했죠.
그리고 대부분이 저 아래 화개쪽에서.
네,지리산은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산이었고 ,
죽음을 맡긴 산이었으며,
역사의 무덤이었습니다.
삼각고지 이정표
체력 저하가 일어나면 북쪽인 함양군 마천의 음정으로 하산.
당시 삼각고지의 이런 이점이 현재는 등산로로.
빗점골
저 너럭 바위 위에서 한참을 쉬고 놀아요.
그때 죽은자든 지금 산자든,
'피의 능선' 저 암릉에 걸터 앉아 지리산 그늘에서 편히 쉬시라!
Andreas Scholl(
countertenor
)
Ombra mai fu (그리운 나무 그늘 이여)
뒤돌아 보니
멀리 반야봉.토끼봉,명선봉이.
명선봉~ 삼각고지~ 형제봉~ 벽소령 구간은 구간구간 암릉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남쪽 사면을 보노라면 한폭의 수묵화.
빗점골은 빨치산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1905~1953)의 최후지.
멀리 하늘과 맞닿은 하늘금이 광양 백운산.
바로 앞으로 섬진강이 흐르죠.
한시간 여 '피의 능선' 등줄기 를 탑니다.
천왕봉은 운무에 쌓였고.
세잎 종덩굴은 벌써 씨방을
참고로,세잎종덩굴 꽃
이건 누른종덩굴 꽃
종덩굴,자주종덩굴,세잎종덩굴,누른종덩굴 등등 종류가 많아요.
저걸 구분한다는 게 피곤도 하고 난 그냥 종덩굴로 통일!!
습하고 그늘진 곳이면 어김없이 산수국이.
멀리 남부능선
능선 남쪽 끝에
청학동,쌍계사 등등이.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는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고 바위등걸이 많아 피곤함이 극에 달해요 .
하지만 전망 좋은 암릉 구간이 많아 절묘한 산행의 맛을 느끼게도 해줍니다.
특히나 우측으로 펼쳐지는 깊고,넓고,포근한 남사면은 피로를
씻겨주죠.
아~~드디여 오늘의 안식처 벽소령 대피소가 눈에 잡히 네요.
앞 암릉은 형제바위.
벽소령(碧宵嶺,1,350m)~~~
옛사람들의 눈엔 벽소령에서 바라보는 달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나 봅니다.
이를 벽소명월(碧霄明月)이라,,, 지리 10경 중 하나.
자,벽소령 위치를 보실레요?
우리말로 풀면 '푸른 하늘재'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르다는.
움푹 파인 저곳에 서면 그리 보일지도...
지난 5월 벽소령 서 1박했을 때입니다.
선잠에서 깨어 12시쯤 밖으로 나왔어요.
마침 하늘엔 구름이 흐르고 , 푸르슴한 하늘에 박힌 별들,,,,그리고 구름 사이로 반달.
순간 순간 습기 를 잔뜩 머금은 운무가 벽소령을 넘어 가고 .
그런데 이상하죠?
분명 지금 벽소령 은 명월.
나는 뭔가 모를 무서움증에 쫏기듯 금방 들어오고 말았고 .
하늘에 박힌 별들이 그들이였기를...
그리고 왼쪽 사면으로 임도 보이시나요?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활동이 두드러진 곳이였기에 한국전쟁 후 뚫은 군작전도로입니다.
북쪽 마천면 음정에서 남쪽 화계면 의신 까지.
지리산 주능선 정중앙을 삼팔선 처럼 동서로 갈라놓은 거죠.
두 길이 만나는 곳이 벽소령 대피소,,,물론 현재는 있는듯 없는 듯 폐도로.
자치단체서는 관광도로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일고 있으나 번번히 실패.
그리 될 날은 아마 없을 듯.
왜?
지리산이기에.
넉넉하게 품어준 지리산에서 하루는 저물고 있고,
나는
드디어 벽소령대피소에.
5시 좀 넘었는 데 벌써들 도착 하셨네요.
나의 현 위치
세속의 근심거리서 벗어나서일까?
시끌벅적 흥들 나셨네요
그 무거운 삼겸살에 오리고기 팩들은 어떻게 가져오셨는지들.
2천원 햇반 하나 사고,물 끊이고,
분말 시레기된장국 풀어 밥 말아 후루루 마시고 8시 서둘러 취침에 들어갑니다.
역시나 11시쯤 깼어요.
밖으로 나오니 짙은 운무가 세차게 벽소령을 넘고.
서둘러 들어와 잠을 청합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1962~)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 중략 )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 중략 )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지리산 시인 이원규에
벽소령이란 이런 것.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
다음주에
하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