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5 km 떨어진 지리산 서쪽 자락 끝에 위치.
544년(백제 성왕) 연기조사가 창건.
643년(선덕여왕) 자장율사에 의해 중 창.
876년 도선국사가 또 다시 증축.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에 벽암선사가 절을 다시 세움.
절의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그 화엄 .
화엄사 계곡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기도.
왼쪽으로 부도밭 .
본격 화엄사 경내 시작
브람스 교향곡 4번
레너드 번스타인
빈필
길바닥이 통째로 석재임.
배롱나무는 당나라 때 관공서에 많이 심었죠.
그 영향으로 사찰에도.
만개
할 때는 정말 멋짐.
중창불사의 모범답안이랄까요.
근래 석축이지만 자연스럼움을 살린 미적인 조성.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보제루.
보제루는 휴식공간이자 강학공간이기도.
보제루는 보통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데
여긴 누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네요.
보제루와 종각(옆) 너머에 지존이 기거하는 대웅전과 각황전이.
저 공간 내에 국보만 4점, 보물 5점이 있어요.
먼저 보이는 석등,각황전이 국보.
국보 67호 각황전.
임진왜난 때 불타고 숙종 때 신 축.
각황전(覺皇展)이라는 이름도 숙종이 하사.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그 웅장함
이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하죠.
좌로 각황전,우로 대웅전.
여말선초 작품인 5층 석탑이 대웅전 좌우로.
각황전 앞 5층
석탑은
가까이서 보면 사천왕상등이 조각되어 있는 등 더 화려함.
각황전은 외국인이 특히 감탄하는 걸작.
중층이지만 석축까지 포함하면 시각적으로는 마치 3층같이 보이죠 .
국보12호 석등
높이 6.3m, 직경 2.8m 로 국내 최대 규모.
nba선수 세명을 세워놓은 것 보다 높음.
통일 신라시대 불교 중흥기 작품.
건강한 다이어트 허리로 저 육중한 본체를
받치
고 있음
각황전 오른쪽 작은 나무 보이시죠?
한이름 하는 흑매화(黑梅花)입니다.
천연기념물.
남도 지역서 순천 금둔사의 홍매화가 스타트를 끊으면
순천 선암사 청매화가 바톤을 받고 끝으로 저 흑매화가 갈무리를 합니다
참고 사진.
홍매화지만 검붉어 흑매화라는 애칭이 붙
은 거죠.
각황전 처마 아래 각각의 공포 위로 멧 비둘 기들이 둥지를 틀었 네요.
각황전에만 수십마리로
멧비둘
기 상주처!
각황전 내부
기둥 둘레만 2미터.
임란때 불타기 전까진 벽면을 빙둘러 화엄석경(보물)이 있었다네요.
그 잔편이 성보
박불관에 남아
있습니다.
각황전 외부는 2층이지만 내부는 이리 통층.
불상 뒤로도 공간이 있어요 .
뒷편.
내부 후편에 걸려있는 영산회
괘불탱은 국보 301호(지금은 경내 성보박물관에)
각황전 뒷뜰.
바로 뒷쪽 3분 거리에 국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일명 효대.
지금은 보수중이라 출입금지,
몇년전 초봄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4사자 3층석탑(국보)
다보탑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2대 이형석탑.
4사자 3층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세운 탑으로
특이한 의장과 세련된 조각솜씨를 자랑하는 걸작.
3층석탑 아래 사사자(四獅子) 안에는 승려 차림의 인물상이 있음 .
앞 석등 안에도 있죠.
그럼 누굴까요?
부처? 아니요!
무릎을 꿇고 꽃을 공양하는 모습.
전설에 의하면 화엄사 창건자인 연기조사가 어머니에 꽃을 공양하는 모습이라나네요.
그러니 석탑 안은 연기조사 어머니일터.
그리고 4백년이 흘렀어요.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은 이를 두고 효대(孝臺)라 불렀는데 이 효대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어.....?
상층 몸돌은 사라졌지만 사사자( 四獅子) 석탑하고 비슷하지 않나요?
후대에 모방작을 원통전(우측 건물) 앞에 세운 것.
9세기 경 작품으로 추정.
보물.
원통전 계단 소멧돌.
원통전 앞에서 바라본 사사자탑과 석등
대웅전(보물)
조일전쟁 때 불타고 인조 때 새로 지음.
목조 건물의 시대구분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각황전에서 바라본 동서5층석탑
위치한 마당이 전각들 보다 4미터 아래여서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나 앞에 서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걸작이죠.
사천왕상등 돋을새김이 두드러지고.
어디서 많이 본 미소.
옛 와당의 그 모습을 모방한 것.
활주(活柱)
활주란 추녀뿌리를 가볍게 받치는 기둥을 말합니다.
인조 때 그 활주 그대로를 보수해 사용하다 보니 가까이 보면 조각 조각 맞춰져 있어요 .
대웅전 뒤편 5분거리 구층암으로 이동.
산죽이 푸릇푸릇.
사찰 주변에 산죽,벗나무가 많은 이유는?
산죽으로 화살을 만들고 단단한 벗나무는 창자루로 쓰여졌기 때문이죠.
군비증강에 힘썼던 효종의 손자 숙종은 친히 사찰에 벗나무를 심으라고 명하기도.
(숙종은 북한산성을 쌓고,강화도를 53 돈대로 요새화 한 군주)
조선 조 사찰은 승병들의 아지트였습니다
.
구층암 바깥마당 삼층석탑.
부서진 석탑 부재를 그냥 얹져놓음.
구층암은 화엄사 모태라는 설도 있으니 아마 초기엔 구층탑이 있었겠죠.
앞마당에 당시 석조물을 모아두었네요.
천불보전~~
천불보전 좌우로 요사채가 있습니다.
구층암하면,
자연 그대로 휘어진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쓴 요사채가 유명해요.
천불보전 화단엔 저리 수백년된 모과나무 고목이 아직도 자라고있고.
저 모과나무를 잘라 사용한거죠.
요사채의 모과나무 기둥
울퉁불퉁한 자연석 위로 맞닿는 면에 맞춰
석재를 다듬어 얹는 공법을 '그렝이법'이라 하죠
저 모과나무 기둥도 그리.
천연덕스럽게 자연 모양대로 짜맞추었네요.
이제 화엄사를 떠납니다.
각황전 검은 모발이 풍성하죠?
부도전을 지나고
개울가에서
세월을 망각한 귀룽나무 한그루가 꽃을 피웠네요.
주차장서 바라본 화엄사 쪽 지리산.
역광을 피하니 푸른 하늘이 드러나네요 .
이제 지리산 횡단도로를 타고 우회해 저 너머 노고단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