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 막살놔 이 사람아~
사람은 그냥 남 하는대로 해야 하는기라~“
내가 날씨에 따라 곶감 채반을 들고
하우스와 냉동고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을 보고 곶감 일을 도와주는 절터댁이
고개를 저으며 하던 말이다.
날씨 변화에 맞춰 곶감을 이리저리 옮기는 것은
곶감의 때깔을 곱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유황 훈증을 안 하고 말리는 곶감은
마지막 단계인 하우스 숙성과정에서
대부분 때깔이 검게 되어 버린다.
날씨가 맑으면 괜찮지만 흐리거니 비가 오면
곶감이 수분을 먹고 때깔이 한순간에
검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날씨가 궂으면 반드시 곶감을 냉동실로
옮겨두어야 한다.
뭐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햇볕과 바람을 이용하는
자연 숙성방식은 그렇다는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 맞춰
곶감 채반을 옮기는 일은 확실히 힘이 들어서
어떤 때는 내가 괜한 고생을 사서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절터댁 말대로 남들처럼 유황 한번 피우면
이 고생 저 난리 안쳐도
연예인처럼 고운 곶감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생얼로 때깔 좋은 곶감을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일이 힘들 때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드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농부는
무유황으로 곶감을 말리는데
때깔이 까만 곶감을 오시라는 이름으로
두배 비싸게 팔고 있다.
곶감이 까마귀처럼 검다고 까마귀 烏,
오시라는 기발한 상표로 파는데,
곶감 말리기가 힘이 들 때면
나도 오시라는 기가 막힌 이름으로
두배 가격에 팔아볼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든다.
하지만 무유황 곶감도 하기에 따라
때깔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나로서는 그런 배짱을 부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절터댁 말대로 정말 사람은
남 하는 대로 해야 하는 건데
똥고집 부리다가 그만 사달이 나 버렸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날 비가 온다고 하여
2층 하우스에서 후숙 중인 곶감 채반을
1층 냉동고에 옮기다가 내가 낙상사고를 당한 것이다.
119 도움으로 다리에 부목을 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갈 때만 해도
이로써 곶감 농사는 종치는 줄 알았다.
내가 십년 곶감 경력에 나름 노하우가 생겨
소위 말하는 명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만하고 있던 차에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이건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고는 분명 인재였고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기에 억울하다는 생각 자체가
지극히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 사람 사는 게 이런 거구나...하는 깨달음(?)이 들었고
나는 남몰래 눈물을 삼켰다.
두 세 시간 걸리겠다던 수술이 끝이 나지를 않자
나는 살짝 지루해졌다.
한쪽 다리만 부분 마취하고 의식이 말똥말똥한 상태에서
퍼즐 맞추기를 하는데 마취라는 마법의 힘 덕분에
하나도 아프지 않으니 꿈을 꾸는 것 같았고,
7~8명의 수술 팀이 주고받는 대화를 곰씹어보는 여유도 생겼다.
“어허이~ 이 사람아~ 그건 이리 줘야지~”
(저건 무슨 시츄에이션일까?
전공의가 내 뼈 하나를 슬쩍 하다가 들킨 걸까?)
“어허이~ 이 사람 정말 큰일 날 사람이네~”
(헐~저건 또 어떤 상황일까?
인턴이 뭔가 중대한 실수를 한 모양인데...)
집도의는 수술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호랑이처럼 으르릉 거리더니 두배로 길어진 수술이 끝나자
“제발 똑바로 해~”하고는 먼저 수술실을 나갔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