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말러

| 조회수 : 1,419 | 추천수 : 0
작성일 : 2017-12-15 08:50:03

 

가을의 꼬리를 밟으며 시작한 곶감 작업은
겨울 내내 이어진다.
그럴 수만 있다면 차라리 포근한 봄날이나
시원한 가을에 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 일 년 농사인 이 일은
유감스럽게도 추운 겨울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곶감이 호된 추위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야
제 맛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요가 구정 전에 집중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명절 전까지는
말리고 숙성시켜 포장하고 판매까지 마쳐야 한다.


곶감 깍는 농가의 하루는
차가운 겨울 해가 솟기도 전에 시작된다.
나는 엄천강 건너 이웃 마을에서 놉을 태워 오는데,
이 이른 시간이 나에게는 조금 힘이 든다.
엄천골의 양파 모종 심기나 곶감 작업은
보통 아침 7시에 시작하는데
이건 일반적인 이야기고
사정에 따라 더 일찍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일찍 시작하고 일찍 마치면
오후에 다른 볼일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새벽잠이 없는 사람에겐 차라리
일찍 시작하는 게 낫긴 하다.


“내일은 새벽 5시에 데리러 와~
어차피 내는 그 시간에 깨어 잇응께로~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자고~”
“ 아이고~ 아지매~너무 빨라요~
5시는 넘 힘들어요~”
이렇게 작업 개시 시간 가지고 밀당을 한다.
오후에 병원에 가야 한다든지 다른 볼 일이 있는 날에는
형편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올해 곶감 작업은 건장한 아들이
둘이나 거들어 주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들은 일손만 더해준 게 아니라
스맛폰으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성능 좋은
무선 스피커를 하나 가지고 왔다.
음악은 스맛폰에서 나오지만
무선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새로 나온 주먹만한, 별로 비싸지도 않는
스피커 하나가 작업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스맛폰 유튜브에서 말러 1번 교향곡을 잡았더니
덕장 안이 국립극장이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울림에
국립덕장에 가득 매달린 곶감도 전율한다.
나는 곶감 일을 하며 말러를 즐겨 듣는다.
아내는 말러를 듣고 곶감이 잘 말러라고
말러를 듣고 또 듣느냐고 놀리는데,
사실은 말러의 1번 교향곡을 들으면
봄기운이 느껴져 반복되는 단순작업을 하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겨울 추위에 떨며 일을 하는데
마음까지 겨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젖소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우유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오이에게도 음악을 들려주면
오이가 더 잘 자란다고 한다.
귀가 있는 동물은 그럴 수도 있다 치더라도
귀가 없는 식물이 음악을 듣고 반응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록 귀는 없지만 음악의 파동이
식물의 세포벽을 자극하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듣는 말러의 음악이
덕장에 매달린 곶감의 세포벽을 자극하여
곶감의 맛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곶감은 입이 없어 말을 못하니
그렇다 아니다 라는 대답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객에게 한번 물어볼 참이다.
“이 곶감은 말러 음악을 들려주고 말렸는데

일반 곶감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하고.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말러 음악을 들려주고 말린 곶감을 먹으니 

입안에 교향곡이 울려 퍼지네요~” 이지만, 

“음악을 듣고 말린 곶감이라니~

참 장삿속도 가지가지네요~”라고 해도 불만은 없다. 

어차피 추운 겨울에 일도 힘들고 

한번 웃자고 너스레를 떨어보는 거니까.

쉐어그린 (sharegreen)

시골에서 농사짓기 시작한 지 13년입니다. 지리산 자연속에서 먹거리를 구해, 시골스런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곶감만든지 1..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혀니랑
    '17.12.17 8:38 PM

    철학적인 곶감인 듯..
    철학이 빈곤한 정치권인사들 헛소리들에
    짜증 만발인 요즘인데
    그 곶감 맛보고 싶으네요.ㅎㅎ
    궁금..말러 곡을 들으며 숙성된곶감..
    지나친 단맛은 아닐 듯하고 무언가 뒷맛이
    담백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맨날 위장탈 나서 고생하던 울집 콩이는
    곶감먹고 정상이 됐네요.
    말러곡 듣고 말려진 곶감은 어떻게 해야
    먹을 수 있을까..

  • 2. 쉐어그린
    '17.12.18 7:08 AM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ㅎㅎ
    한 때 파리쿡에 장터가 있을 때는 파리쿡에서 제가 만든 곶감 대부분을 판매한 적도 잇엇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0247 바트네 겨울 산책 9 프리스카 2018.01.03 2,488 0
20246 우리 집 죠이 3 도도/道導 2018.01.02 2,306 0
20245 [스크랩] 영화 1987 실존 인물과 만난 배우들 3 카렌튤라 2018.01.01 4,314 2
20244 2018년 1월1일 새해 평화의 일출입니다 2 어부현종 2018.01.01 1,087 0
20243 1987 vs 2017 1 카렌튤라 2017.12.30 1,692 2
20242 영화 1987 1 카렌튤라 2017.12.30 1,756 1
20241 송구영신 도도/道導 2017.12.30 1,237 0
20240 잠시 동심으로 어부현종 2017.12.28 1,538 0
20239 장인인 만든 프로폴리스 3 철리향 2017.12.27 1,942 0
20238 대구 문파 냥이 1호 율무... ^^ 13 뿌니맘 2017.12.26 3,383 6
20237 성탄절 북한산 몇컷 9 wrtour 2017.12.26 1,603 3
20236 문대통령을 끝까지 믿고 지지해야하는 이유라네요. 꼭 나누고 싶어.. 7 무국 2017.12.25 1,602 4
20235 농협 가계부 필요하신 분 있나요? 8 농협 2017.12.24 1,824 0
20234 모두가 즐거워하는 아름다운 장식 2 도도/道導 2017.12.24 1,632 0
20233 전주 마중길 도도/道導 2017.12.23 1,351 0
20232 함께사는 세상에는 1 도도/道導 2017.12.19 1,482 0
20231 대봉감 만오천어치 2 평정 2017.12.16 8,895 0
20230 잊었을지 모를, 82쿡 사람들의 눈물 세월호, 416합창단 공연.. 5 우리는 2017.12.16 1,513 3
20229 말러 2 쉐어그린 2017.12.15 1,419 0
20228 상쾌한 겨울 해변 도도/道導 2017.12.14 1,564 0
20227 여기서 추천받은 레깅스 샀더니 팔토시가 왔네요 3 심플라이프 2017.12.12 5,701 0
20226 나무타기 달냥이 11 철리향 2017.12.08 2,637 0
20225 어처구니가 없다 1 도도/道導 2017.12.07 1,741 0
20224 며칠전 구입한 프로폴리스 리퀴드입니다. 3 얼라리오 2017.12.06 2,319 0
20223 허상과 실상의 세상 도도/道導 2017.12.06 1,43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