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서 태백선 무궁화 열차를 타고 정동진을 가고 있어요.
떠난다는 행위는 목적지 못지않게 과정이 참 중요하죠.
과정이 좋은 곳이 바로 태백선 기차를 타고 정동진 가는 것.
정동진은 정말이지 기차를 타야 재맛.
바로 청량리~정동진 간 태백선 무궁화 열차입니다.
청량리 발 정동진 행 열차 오후 시간은 2시 13분,4시13분,23시 25분(금토일 22시10분 추가) 이리 세번.
오후 2시 13분 기차를 탑니다. 정동진엔 저녁 7시 30분 도착 예정.
1시간 만에 원주역 도착합니다.
우측 멀리 치악산 비로봉이 우뚝하네요.
치악산 자락은 터널로 지나면 제천이요, 다음이 영월.
원주는 강원도,제천은 충북,영월은 다시 강원도.
이리 제천은 강원도 땅으로 서북쪽이 깊게 파고든 형국이죠.
우측 직각으로 새로운 선로가 다가오네요.
충주서 오는 충북선입니다.
둘은 봉양역에서 만나죠.
제천역 직전 봉양역(鳳陽驛)~~~
이곳 봉양역에서 중앙선과 충북선이 만나죠.
봉양역은 조치원서 출발한 충북선의 종착역.
충북선이라??
경부선의 조치원역을 시발해 청주~증평~음성~충주를 거쳐 이곳 봉양역(제천시) 까지로 1950년대에 완공되었습니다.
지금은 복선화 되어 충북 내륙 주민들에 솔솔한 편의를 주고 있죠.
충주,,,하면 지금은 충주댐이 먼저 떠오르지만 예전엔 충주비료.
북한에 흥남비료가 있었다면 남한엔 충주비료가 있었습니다.
분단으로 흥남비료를 남한에선 쓸수없게 되자 미국 원조물자로 급히 지은 게 충주비료.
모든 운영은 미국 기술에 의존했는데 미국인 기술자 집단 거주지에서 어려서 영어를 배운 자가 바로 반기문.
그 충주비료는 저 충북선을 통해 전국으로 운송되었습니다.
지금 충주비료는 없어지고 모든 비료는 여수시 여천공단 내 남해화학에서 생산.
제천역이네요~~
제천역에서 중앙선 선로를 버리고 태백선으로 들어섭니다.
이리 제천은 태백선의 시발점.
제천은 동남쪽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북쪽으로 의림지가 있듯 제천은 물의 고을입니다.
조선조 땐 충청지역을 호서(湖西)지방이라 했는데 의림지 서쪽에 있는 고을이라는 뜻.
제천 하면, 시멘트!
영월,제천,단양은 세계적인 시멘트 생산 지역...더불어 동해시,삼척시 까지.
한국은 시멘트 생산 5위에 소비 5위.
무연탄과 시멘트를 실어나르는 태백선은 이렇게 산업철도인게죠.
제천역 지나면 시멘트와 직접 관련된 역들이 연이여 나오는데 입석리역,쌍룡역도 그런 역입니다.
입석리역(立石里驛)~~
충청북도 제천시 소재로 인근에 시멘트 공장이 둘 있어요.
아세아 시멘트공장과 현대 시멘트 공장.
이곳 입석리역에선 태백선과 아세아 시멘트 전용선 그리고 현대시멘트 전용선이 연결됩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죠.
현대시멘트 공장과 입석리역을 오가는 '시멘트 전용 디젤기관차'~~
둥글둥글 큰 건전지 수십개를 뒤에 달고 달리는 디젤전동차의 모습이 이국적이죠.
쌍룡역(雙龍驛)~~
영월군 한반도면 쌍용리 소재.
쌍용 그룹의 모태가 되는 곳입니다.쌍룡그룹 이름도 여기서.
태백선 철도는 쌍룡시멘트 공장 부지 내를 가로 지르고~~
쌍룡시멘트 진면목은 동해시 두타산 변 쌍용양회를 가면 잘 보여주죠.
제천,단양 일대 시멘트 공장의 규모는 상상 초월.
시멘트 산업 자체가 규모적으로 장대하죠.
다음 사진을 보면 금방 이해가 옵니다.
석회석 광산으로
보통 산 자체가 완전히 잘려나갑니다.
제천 금수산에서 바라본 삼천리표 한일 시멘트(단양군 매포읍)~~
현대 시멘트(단양군 매포읍)~~
열차는 영월읍을 향해 달리고~~
서강을 가로 지르네요.저 산 지질도 전형적인 석회암.
터널을 지나면 영월읍.
우측으로 단종이 최초로 유배된 청령포가 보이고.
폐역 청령포역~
우측 창가로 강이 하나 보이네요.
치악산,오대산서 발원 후 청령포 등 영월읍 서쪽을 흐르는 서강(西江)입니다.
연이여 동강(東江)이 보이고~~
영월읍 동쪽을 흐르기에 동강..서쪽은 서강.
서강과 동강~~
둘은 이리 영월읍에서 만나 남한강을 만드네요..... 'Y' 형으로.
동강 너머로 영월읍~~
서강과 동강이 합수하면서 만들어낸 충적토 위의 강변 마을.
영월은 첩첩산중 정선,태백으로 가는 초입이기도.
단종은 서강 변 청룡포로 안치된 후 6개월만에 읍내 동헌 객사로 옮겼습니다.그리고 곧바로 피살.
왜 급히 옮겼을까요?
저 물 보니 감이 오시죠?
두 강물이 만나는 곳이 영월읍내다 보니 홍수 피해가 많았던 거죠.
영월 객사도 홍수로 수차례 이전을 거듭했습니다.
김삿갓이 어릴 때 조부 김조순을 비난한 글로 장원했죠.
바로 영월 동헌 앞 원님 앞에서 치뤄진 백일장에서 입니다.
영월읍 & 봉래산 ~~
뒷산은 영월읍 진산인 봉래산입니다.
봉래산 하니 생각 나는 군요.
사육신 성상문의 단심가~~
/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이셔
백설이 만건곤 할 때 독야청청하리라/
영월군에서는 성삼문 시조에 나오는 봉래산이 영월 봉래산이라며 정상에 시비도 세우고 그랬다네요.
허나 좀 웃겨요.
성삼문이 새남터에서 부모,세 아들 까지 거열형을 당한 때가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된 후 그 이듬해.
단종은 1년 후 영월에 유배되어 1년만에 피살되었으니 성상문하고 영월 봉래산하곤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중국에는 발해만 동쪽 바다에 솟아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三神山)이 있죠.
바로 봉래산,방장산,영주산 이리 셋.우리나라에서도 그 영향으로 삼신산을 섬기는 신앙까지 생겼고.
여름 금강산을 봉래산이라 하는 데 성산문 봉래산은 이 삼신산에서 유래할 터.
참고로 봉래산 정상서 바라본 영월읍~~~
영월역~
열차는 연하천(蓮下川) 계곡을 따라 기어 오르고~~
영월 막 지나면서 열차는 본격적으로 고도를 높입니다.
4차선으로 확장된 38번 국도도 보이고.
38번 국도는 삼척시 직전까지 태백선과 거의 동무 되어 달립니다.
연하역(蓮下驛)~~
인근 지형이 연꽃 형상이여서.
그리고 그 연꽃 아래 마을이 생겼는데 이름을 연하리라.
영월역을 지나니 이름도 예쁜 예미역~~~~.
뒷산 이름이 예미산.
함백탄광 지대의 핵심 역으로 고도는 390미터.
수능 당사자라면 예미산이 좀 중요한게,
예미산부터 새비재,두위봉,화절령,백운산,함백산으로 이어지는 32키로 산줄기가 남한 최대 무연탄맥이여서죠 .
지금은 모두 폐광 후 운탄고도(運炭高道)라는 힐링루트로 재개발되어 힐링객,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하이원 cc 등도 이 곳에.
그래서 90년대 초만해도 예미역은 함백,사북,고한,태백으로 이어지는 무연탄 철로의 시발점으로 북적였고.
요즘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예미산,두위봉으로 가는 들머리.
예미역 막 지나 정선 함백 탄광촌이~~
맞은편 산자락으로 운탄 선로인 함백선 철도가 보이네요.
태백선(제천~태백)은 단계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제천서 영월까지 영월선이 제일 먼저 놓이고,
이후 무연탄 운송을 위해 신동읍(함백)까지 이어지니 이게 함백선입니다.
이어 사북,고한에서 탄맥이 발견되자 고한까지 증설하니 고한선,
지선으로 증산역(현 민둥산역)에서 정선 구절리까지 정선선,
마지막으로 고한서 태백시까지 완전 개통 될 때는 1972년입니다.
지금 열차는 그 길을 달리고 있죠.
함백탄광으로 유명해진 함백~~
함백이라 불리지만 함백이란 지명은 없고 정선군 신동읍이 정확한 지명.
함백탄광(함백산에서 유래)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학교도 신동중학교,신동고등학교가 아닌 함백중학교,함백고등학교.
사람들은 신동읍(사진)을 그냥 함백이라 부릅니다.
함백역~~
폐역으로 철거되었다가 최근 복원되었습니다.
함백은 태백 함백산에서 유래.여기서 부터 태백 함백산 까지 탄맥이 이여졌고.
따라서 태백선은 계곡이든 산중턱이든 무연탄 채광지를 따라 이어졌다는.
그런데 함백선 노선이 좀 이상해요.아래 사진이요.
마을을 기준으로 위쪽 선로가 신설 태백선,아래쪽이 기존 함백선~~~
그런데 함백선은 산밑을 원을 그리며 지나네요.
노선 고도가 심하게 차이가 나 화차가 직진할수 없자 산밑으로 빙돌아가며 조금씩 고도를 높여간 거죠.
그래서 태백선을 신설 할 때는 비경제적인 기존 함백 노선을 포기한 것.
그리고 둘은 바로 위 조동역에서 만나게 했고.
이런 터널을 영어로는 루프터널,표준어로는 똬리굴이라합니다.
이땅에 똬리굴은 네군데 있는데 한시간 전 지나온 원주 치악산 자락 치악터널,
또 중앙선 죽령 아래 대강터널, 그리고 2012년에 뚤린 태백시 솔안터널(후술)입니다.
조동(鳥洞)역~~
인근 매봉산에 매가 많아 새들이 피해서 온 곳이 바로 이 골짜기라네요.
새가 많이 모인 골짜기라 鳥洞!
조동역 고도는 579미터,390미터 예미역 과는 5키 거리인데 많이 고도를 높혔군요.
예전엔 일대가 죄다 탄광촌~
강은 산을 따라, 길은 강을 따라 열리고~~
음악과 더불어 여행맛을 느껴 볼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fNU-XAZjhzA
Mozart - Piano Concerto No. 21, K.467 ,,,,,손열음
연하천을 따라 달리는 열차는 고도를 더욱 높이니 여기는 700여미터.
고랭지 채소밭~~
우측 창가로 예미산,질운산(1172) 고랭지 채소밭도 보이고~~
예전엔 감자 아니면 옥수수였는데 지금은 한철 배추,무우 심고 한해 농사 끝냅니다.
저곳이 <엽기적인 그녀>에서 타임캡술을 난 뭍은 곳으로 함백역 뒷편으로 자동차 도로(사진) 따라 가면 됩니다.
열차로 갈 경우에는 예미역에서 하차.(함백역은 폐역).
타임캡술공원에서 태백산 함백산 만항재까지 능선 따라 32키로는 운탄고도(運炭高道)라는 이름으로 힐링루트로 개발.
타임캡술공원 가는 길~~
왼쪽 선로가 함백선,우측은 태백선...둘은 조동역에서 도킹.
자미원역~~
추전역( 668미터) 이어 두번재로 높은 역입니다.
예전 자미원이라는 원(院)이 있어서.
자미원역은 열차 메니아, 간이역 관광객들이 찾아오곤합니다.
열차는 두위봉 자락을 헤치고~~
난 여기에 이르면 좌석을 좌측으로 이동합니다.
열차 승객도 절반 정도는 내렸는 지라 이동이 간편하죠.
이땅 철도 구간 중 드라마틱한 곳 중 하나입니다.
자미원역을 떠난 열차는 '터널~산자락~터널~산자락...'하며 700여 미터 두위봉 자락을 붙잡으며 고도를 높이죠.
창가로는 와이드 스크린에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열차가 지나는 곳은 두위봉 자락이요, 맞은편 스크린은 민둥산~~
두위봉과 민둥산이 만들어낸 계곡 저 아래 38번 국도를 달리는 차량은 장남감이 되고맙니다.
시선을 눈높이로 맞추면 민둥산 7,8부 능선 암릉들이 다가오고.
형형색색 곱게 단장한 가을이면 자체로 유화 한폭이요,
사이 사이 운무라도 끼면 채색 산수화로 변합니다.
연두빛 봄이면 봄대로,짓푸른 녹음진 여름은 여름대로,설산의 겨울은 겨울대로....
태백선이 산악열차임을 여기서 맛베기로 보여주죠,,그리고 관광열차.
민둥산~~
정확히 열차에서 바라본 눈높이 앵글.
두 산 사이 저 아래 계곡 따라 38번 국도와 정선선이 지나죠.
가을 억새하면 민둥산이죠. 왜 민둥산일까??
산록이 발달해서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습니다.해마다 불을 놓고는 농사를 지었죠.
화전이 금지된 이후 일대는 억새밭 으로 변했고. 정상 인근은 억새들의 향연입니다.
먼 옛날 화전민들이 떠났고...막장의 광부들이 들어왔고....다시 광부들 떠난 그곳엔 억새들이.
민둥산역~~~~
예전엔 증산역이였으나 민둥산이 억새로 인기를 끌자 개명.
민둥산역은 정선 구절리까지 이어지는 정선선의 분기역이기도~~
그러나 정선선도 산업철로서 역할을 마치고 지금은 청량리서 1달에 두번 레져열차로 운행(인기 좋아 예약 필수).
예전엔 저탄소였는데 저리 농공,물류,숙박단지로 탈바꿈했네요.
정선군 사북읍 사북역~~
사북읍~~
탄광촌에서 숙박,음식점,위락업소 등 강원랜드 배후지로.
그 유명한 사북 동원탄좌 터~~~
뒷산은 백운산 자락의 지장산(地藏山)
당시 동원탄좌는 민영으로 전국 석탄 채광 10%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 갱만 20여개가 넘었고.
80년 발생한 사북사태(사북항쟁)가 저기서.
강원랜드는 그 동원탄좌 사택 터에 들어섰습니다.
지장산(地藏山)은 백운산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이지만 말그대로 석탄보물을 수장하고 있어서.
태백선은 애시당초 무연탄 운송 목적으로 깔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 열차는 채광 지점 간 연결이였고 결국 구절양장.
1955년 이후 70년대에 전구간이 개통되었고.
제천서 출발해 영월 지나 정선의 함백~사북~고한 거처 태백시 동백산역 까지.
그리고 동백산역에서 영주서 출발해 봉화,춘양을 지나온 영동선과 만나는 데 여기서는 태백선은 끝나고 영동선이됩니다.
영동선은 동해,정동진,강릉까지.
그러니까 난,
정동진 행 무궁화열차에 몸을 실은 후 중앙선 선로 위를 달려오다 제천서 태백선 선로로 갈아탔고,
앞으로 30여분 후엔 태백시 지나 동백산 역에서 영동선 선로로 들어가겠네요.
정선군 고한읍 고한역~~
강원랜드와 가장 가까운 역.
강원랜드 & 골프와 스키장의 복합 리조트 '하이원'이 바로 고한의 진산인 백운산 자락에 있습니다.
강원랜드는 고한역과 사북역 사이에.
고한읍~~
계곡변 아이 이마만한 산록에 겨우 위치한 고한이지만 당시 초등학교가 둘이나 있으니 고한초등과 갈래초등.
당시 탄광 산업의 흥청망청을 엿볼수있네요.
멀리 보이는게 새로 지은 고한 초등.
그럼 예전 사진을 한번 볼까요.
갈래초등학교~~
고한초등학교~~
학생들 모습이 도회적이지않나요??
네,막장 광부만 사는 게 아니라 수입 높은 임직원,중간 사무직에다 운수업 등 관련 사업이 번창해서.
상갈래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지척에 정암사가 있어서 정암광업소.
추전역( 杻田) ~~
열차는 정암사를 옆으로 하고 백두대간 길 은대봉~금대봉을 땅 속으로 가로 지르는 정암터널을 지나니 추전역이 나오네요.
옛부터 싸리밭골이라 불리다 싸리 추(杻), 밭 전(田)을 따서 추전역으로.
철도 역 중 가장 높은 해발고도 855미터.
관악산,청계산 보다 높고 북한산 정상 백운대 고도와 같네요.
그런데 사람들은 정암터널을 그냥 지나 가지만 터널 위가 인문지리적인 흥미를 끌죠.
1)백두대간 길이요,
2)점봉산 곰배령과 함께 이땅 최고 야생화 군락지며,
3)고찰 정암사가 있네요.
그러나 무었 보다도 중요한 건,
4)7,80년대 산업화의 용광로였다는 것.
겸제 정선이 부감법으로(헬기를 타고 위에서 조망하듯) 금강산 전도를 그렸듯
몇년전 함백산 줄기 중함백(1505미터)서 찍은 사진을 통해 용광로를 조망해 보겠습니다.
저 아래가 한 때는 한국 산업화의 심장이였네요.
아마 자본주의적 가치로 따진다면 지리산,설악산,한라산,,,그 어떤 산과도 비교불가!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지명을 표시해보죠.
7,80년대 남한 무연탄 생산량 대부분은 저곳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함백산 뒤쪽 태백시 황지,장성,철암 까지 이어지죠.
70년대 오일쇼크 후 무연탄의 중요함이란...
탄맥은 예미산(함백탄광)~두위봉~백운산~함백산 만항재~태백산 남동사면 철암,장성 까지 이어졌습니다.
80년 당시 최고 민영탄광인 동원탄좌가 백운산 자락에서 캐낸 무연탄은 전국생산량의 10%를 차지.
그래서 동원탄좌 일대는 지장산(地藏山)이라는 이름이 따로 생겼고.
백운산( 1400미터) 일대는 산자락서 정상까지 운탄로가 얽히고 섥혀 총길이만도 100키로가 넘었다는.
당시 이곳 아이들은 하천을 그리면 물은 검게 채색했다죠.하천은 의례 그러하다는 것처럼.
지금은 폐광 후 생태계 복원사업으로 여느 산과 다름 없어 보이지만 다가 가 보면 흔적,상처들이 확연합니다.
그 동원탄좌 그 자리에는 강원랜드,하이원 스키장,리조트,골프장이.
기존 운탄로 일부는 오프로드,트래킹,산악자전거 코스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운탄고도(運炭高道)라고 들어보셨나요?
위 사진을 계곡이 아닌 뒷 백운산 능선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이건 은대봉서 찍은~~
저 능선길이 운탄고도(運炭高道)입니다.
함백산 만항재에서 백운산,두위봉을 거쳐 예미산 까지 정상을 따라 난 32키로 산길.
운탄고도 능선 너머는 영월군 상동면,중동면,,,우측은 정선군,,, 내 서있는 뒤쪽은 태백시.
내가 탄 열차는 예미산 앞 예미역을 시작으로 저 운탄고도 아랫 자락,혹은 계곡을 따라 30여분 달려왔고.
저 운탄 고도엔 많은 고갯길이 있지만 특히나 가슴 아린 고갯길 하나가 저 백운산 정상에 있어요.
이름하여 화절령!
꽃을 꺽는 花折嶺이라니? 사연은 이러합니다.
원래는 백운산을 사이에 두고 사북,고한 사람들과 영월 상동(텅스턴 산지로 세게적으로 유명) 사람들이
서로 넘나들던 고갯길로 옛적 초동들은 '꽃꺽기재'라.
60,70년대 부터는 백운산은 정상부터 산끝자락 까지 수십개 무연탄 갱도가 뚫렸고.
광부들이 사는 사택들도 정상 아랫까지 다달았습니다.
막장으로 향하는 광부들은 부적인양 진달래 꺽어 물고 막장으로 들어갔다는.
아내들도 집밖 지천으로 깔린 야생화를 꺽으며 현실을 잊였고.
백운산 정상 인근엔 80미터 길이의 '도롱이 연못'이 있습니다.
지하 갱도가 주저앉으면서 자연적으로 생긴 하늘 연못인데 물이 고이고 시나브로 도룡룡이 살기 시작.
남편들을 막장으로 보낸 후 아내들은 하나둘 이곳 '도롱이못'에 모여 수다를 떨곤했고.
그리고 도룡이 생사 여부를 살피면서 남편의 안전을 점쳤다는....
그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차는 두위봉 허리춤을 밟고는 민둥산역~사북역~고한역~정암터널~추전터널을 거쳐 태백역으로 달리고 있네요.
일반 철도 터널 중 두번째로 긴 정암터널(정암사에서 유래)을 지나고
추전 역을 빠져나오니 백두대간 길 매봉산(1300미터) 정상 '바람의 언덕'이 보이네요.
1300미터가 넘는데 정상이 지척으로 보이고.
이곳 또한 여름 운무,가을 단풍,겨울 설산으로 한목합니다.
아래로 태백시 초입 ~~
태백시~~
고원 도시(700미터)로
함백산과 매봉산,연화산 사이 좁은 협곡 따라 길쭉하게 형성.
예전엔 좌우 산자락이 죄다 시커먼 석탄 더미였죠.
현재 인구 5만으로 시(市) 중 가장 적지만 석탄산업 절정기 때는 12만명이 넘었고.
태백역~~
1980년 이전엔 황지역이라 했죠.
신군부에 의해 삼척군 황지읍,장성읍을 합하여 태백시가 되었고.
역 뒤쪽에 낙동강 시원인 황지가 있습니다.
함백산,매봉산,연화산에 스며든 빗물이 모였다가 솟아 오르는 곳이 바로 황지(黃池).
황지천(黃池) ~~
낙동간 시원인 황지에서 유래.
태백시에는 이 땅에서 6,7번째로 높은 산이 둘 있어요.
태백시 서쪽에 위치한 태백산(1567)과 함백산(1572)입니다.
태백은 태백산에 기대고 있다해도 과언은 아니죠.
시화(市花)는 태백산에 많은 함박꽃나무요,시목은 태백산 주목.
서 함백산,동북 매봉산,그리고 남 백병산을 연결한 삼각형 사이에 위치하는데
좁은 이마만한 땅떵이에 태백시가 있습니다.
물론 예전엔 일대가 죄다 채광지,저탄지,광부 사옥들로 채워졌고.
동백산역(태백시)~~
이곳에서 태백선과 영주에서 출발한 영동선이 만나죠.
그러니 태백선은 정식으로 여기 까지.
영동선이요??
1940년 일제강점기 묵호항에서 일본으로 석탄 반출을 위해 건설된 태백 철암~동해 묵호간(143.5㎞) 산업철도를 말합니다.
당시는 강원 남부의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였죠.
이어 영주시 부터 봉화,춘양을 거쳐 철암까지 연결되었고.
금강송을 춘양목이라고도 하죠.
바로 일제강점기 울진,춘양 일대 질 좋은 금강송이 춘양역에 집산 이곳 영동선 따라 동해 묵호항에 실려왔기에 붙혀진 이름.
솔안터널~~
동백산역은 역내에서 곧바로 솔안터널로 이어집니다.
터널 위로는 백두대간 매봉산서 분기한 낙동정맥이 지나가고.
왼쪽 입구는 추후 복선을 위해 남겨둔 것.
저 터널에 좀 스토리 서사( 敍事) 가 많아요.
<敍事 1>
태백시 통리와 삼척시 도계역을 잇는 터널로 장장 16.2Km 가 넘습니다.
작년 뚫린 강남구와 수선 간 율전터널,경부고속철 금정터널(20.1Km)에 이어 세번째로 긴 터널.
일반 철도로 한정하면 단연 으뜸.
그런데 저 터널이 특이해요.
열차의 속성인 직선이 아니라 연화산(태백시) 밑을 빙빙 타원을 그리며 나아간다는 점이죠.
아래 그래픽을 보시죠.
입구인 동백산역에서 출구인 도계역 까지 철길이 이상하죠?
사람이 걷는 데는 발바닥과 지면의 마찰력이 생기기 때문이죠.
같은 원리로 열차는 쇠바퀴와 철로의 마찰력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선로 기울기가 '3/100' 즉 100m 거리에 높이 차가 3m를 넘으면 기관차는 헛바퀴를 돌아요.
오르막에서는 아무리 출력을 높여도 제자리에 머물고 내리막은 브레이크를 걸어도 미끄러집니다.
쉽게 말해 열차가 30미터의 고도를 높이거나 낮추려면 1Km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런데 동백산역~도계역(고도 245m) 간 직선 거리는 7키로 정도인데 고도차는 387미터나 되요.
기울기 '3/100'을 고려하면 387미터 고도를 극복하기 위해서 적어도 15키로는 되어야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나온 해답이 루프터널,표준어로 또아리 터널로 만들어, 거리를 늘리면서 고도를 서서히 낮추는 것.
그래서 솔안터널 총길이는 직선거리 7키로 보다 훨씬 긴 16키로가 되었다는.
열차는 연화산(1171미터) 아래를 한바퀴 돌면서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도계역에 도달하게 됩니다.
무려 387m의 표고 차를 극복하고자 연화산 속을 나선형으로 한 바퀴 휘감아 오르내리는 방식을 택한 것.
난공사로 터널 굴착에만 13년이 소요.
워낙 길다보니 중간에 솔안역(신호장)도 있으며, 환기용 수직터널이 있어 비상시 외부탈출이 가능하다네요.
또한 중간 2곳에 비상용 사갱이 있어 응급시 차량 및 인력도 다닐 수 있고.
<敍事 2>
그리고 저 터널 위로 낙동정맥이 지나갑니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뻗다가 태백시 매봉산에서 방향을 잠시 서북으로 틉니다.
그리고 태백산으로 향하기 직전에 작은 산줄기를 하나 정남으로 뻗습니다.
낙동정맥(洛東正脈)!!!
정확한 분기점은 매봉산(1,303m) 허리인 삼수령(피재) 옆 일명 작은피재(1145봉).
이리 분기한 낙동정맥은 우보산,백병산(1259m),통고산(1067m), 백암산(1004m), 주왕산(720m),
울산의 가지산(1240m)을 거쳐 부산 금정산(802m)을 지나 다대포 몰운대에 이르러 낙동강과 하나된 후 남해로 떨어집니다.
그 낙동정맥의 우보산과 백병산 사이에 그 유명한 통리재(720미터)가 있어요.
그리고 통리재는 한국 철도사에 있어 전설이죠.
<敍事 3>
세번째 얘기는 바로 통리재 위에 새겨진 전설적인 철도역사 얘기입니다.
철도 매니아들 에겐 꿈결같은 얘기.
아래 사진을 보시죠.
낙동정맥 백병산 정상에서 본 통리역,도계역 일대~~~
매봉산에서 두타산,청옥산으로 동서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련하네요.
두타산 바로 아래가 동해시,삼척시.
매봉산에서 통리재로 남북 이어지는 산줄기가 낙동정맥으로 낙동정맥 우측(영동)이 삼척시,좌측(영서)이 태백시.
그리고 철길은 오십천과 38번 국도와 함께하는 길이기도.
윗 사진에서 보듯 지금부터는
통리역에서 도계역 까지 급한 경사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5키로도 안되는 짧은 거리에 터널 17개,역은 3개나 더 있어야 하는 이유 말이죠.
철도사에 있어 진짜 전설적인 곳
.
솔안터널 바로 위 통리재(720미터)~~
태백~삼척 도계읍 사이,
솔안터널이 완공되기 전 2012년 까진 영동선 열차가 이곳 통리재를 넘어 갔습니다.
통리재는 낙동정맥이 지나는 곳으로 우보산과 석병산 사이로 골이 길게 파여진게 흡사 '소여물 통처럼 생긴 곳'이라 하여
통리(桶里)라 부르게 되었죠.
통리재가 바로 철도역사의 산증인이라는 명제를 이해하시려면 먼저 일대 지리를 알아야 해요.
먼저 통리재 위치를 먼저 스캔해보죠.
(이순간 산을 좋아한게 참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고..)
경북 울진군과 태백시의 남쪽 경계 백병산 정상에서 본 통리재 일대~~
백병산은 낙동정맥 중 가장 높은 산으로 태백시 남쪽 끝이라 태백시를 한눈에 조망할수 있습니다.
먼저 백두대간은 태백선~함백산~은대,금대봉~매봉산~투타,청옥산으로 이어져요.
낙동정맥은 백두대간 매봉산에서 줄기쳐 나와 우보산~통리재~백병산으로 이어지고.
그러니까 지금 열차는 은대봉과 금대봉 사이 두문동재 아래 정암터널을 지나 태백역을 거쳐,
다시 연화산과 함백산 사이 태백시를 지나 연화산 자락 남쪽인 동백산역에 이르렀네요.
사진에서 처럼 태백시,통리,동백산역은 해발고도가 700여미터 내외로 비슷합니다.
그래서 예전 영동,태백선은 동백산역~통리~통리재까진 쉽게 올수 있었어요.
그러나 통리재 부터는 도계역 해발이 급격히 250미터로 낮아졌기에 고도를 급격히 낮춰야했고.
바로 급격한 경사로 인해 통리재~도계역 까지는 정상적인 철도 운행이 불가능했기에 특별한 철도 운행법을 사용했다는.
아래 사진은 통리재에서 바라본 통리재 동쪽입니다.
멀리 도계읍이 보이고.
열차는 저 계곡변을 따라 지나갑니다.
통리재서 바라본 도계읍~~
이곳은 오십천의 최상류로 오십천 따라 38번 국도,영동선이 함께 흐릅니다.
멀리 보이는게 도계읍,앞 도로가 38번국도,우측 산자락 밑으로 구 영동선 철도가 보이네요.
예전엔 철도와 38번 국도가 서로 교차하고 평행도 하며 도계역을 향해 함께 달렸습니다.
물론 저 철길은 2012년 솔안터널 개통으로 폐철도.
통리재에서 좀 빗겨난 우보산(牛甫山) 정상서 본 도계읍~~
전체적인 조망은 이리 낙동정맥의 통리재 바로 위쪽인 북서쪽 우보산에서 봐야.
여담으로,
서초구 우면산이 소가 잠자는 형상의 牛眠山인데 태백의 우보산은 牛甫山 이여요.소를 살찌우는 산.
우보산(牛甫山)이 통리(통은 여물 통)를 향해 여물을 먹고 있는 형상.
여물통,즉 통리에 여물이 차면 통리가 번창하고,여물통이 비면 통리가 피폐해진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우보산 정상서~~
1963년에 뚤린 38번 국도가 선명하고.
도계읍 남쪽으론(보이는 산) 육백산,응봉산 두리봉,삿갓봉 등 1천미터가 넘는 고산들이 즐비하죠.
이렇게 통리 일대 전체적인 지형을 보았으니 그 특별한 열차 운행법에 대해 얘기 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2012년 이전 심포리역(지금은 폐역)에서 통리역으로 오르는 열차의 모습입니다.
통리역(680미터)~~
영동선은 1940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석탄 반출을 위해 건설된 태백 철암~동해 묵호간(143.5㎞) 산업철도.
당시는 60여호의 산중 마을에 불과했는데 석탄수송기지인 통리역이 생기면서 팔도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숙박업소만 100여개에 달하는 번창기를.이때 통리 오일장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그런데 1939년 최초 선로 부설하는 데 통리재에서 문제가 생겼네요.
해발 680m 통리에 이른 열차는 도계로 내려가야 하는데 고도 차가 너무 커 철도 운행이 불가능한 것.
통리역은 680m,도계역 고도는 245m로 고도차는 무려 435m.
열차가 정상적으로 오르내리려면 적어도 직선 거리 15키로는 확보되야하나 두 역간 직선거리는 6.3㎞.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적용된 방식이 '인클라인'과 '스위치백'입니다.
2012년 개통한 솔안터널은 루프형 터널을 뚫어 두역 간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면서 문제를 완전해결했으나
당시에는 토목기술 한계가.
그럼 당시엔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먼저 1939년 영동선 개통 당시 통리와 도계 사이엔 3개의 역을 더 두었습니다.
그리고 두역 간 거리를 늘리기 위해 억지춘양격으로 만든 것으로 인클라인과 스위치백 설치에 필요했기 때문이죠.
통리역(680m)~심포리역(471m) 사이의 1.1㎞ 거리는 고도 차이가 너무 심해 철도를 연결하지 못했어요.
그럼 어떻게??
고도차가 209m나 되는 통리와 심포리 사이 1.1㎞에 인클라인이라는 산악철도를 설치했죠.
인클라인(Incline)이라???
스위스 알프스에서 운행하는 관광,등반 산악열차 그거요.
당시에는 강삭철도(鋼索鐵道,Cable Railway)라 불렀죠.
鋼索,,,,쇄줄을 쌔끼 꼬듯 엮은 로프를 이용해 열차를 끌어올리는 것.
아래 사진이 당시의 모습입니다.
위쪽이 통리역,아래가 심포리역~~
역간 거리는 1.1키로.
동해안에서 올라온 화차는 아래 심포리역에서 정차 후 한량씩 분리 후 강삭을 통해 통리역으로 올려집니다.
영서 쪽(태백)에서 올라온 화차는 통리역에서 정차 후 같은 방식으로 끌어내려 졌네요.
화물차 한대를 끌어올리고 내리는 데 통산 2시간이.
당시는 승객 열차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화차 뒤쪽에 3,4냥 정도 연결되었기에 승객들은 역에 도착하면
서둘러 1키로 산길을 걸어올라야 했고.
다음은 당시 애환이 서린 에피소드~~!!!
지정석이란게 없었기에 자리를 먼저 잡아 주는 것을 업으로 사는 신종 직업도 생겼고,
사람이 모이니 당연 촌락이 형성되고 감자 옥수수 장사에 여름에는 냉차를 파는 장사치도.
특히나 200여명이 넘는 짐꾼(지게꾼)이 상주했었는데 진기한 풍경들이 참 많았다죠.
여자 짐꾼 30~40명은 주로 어린 아이나 승객의 보따리 등을 업고,이고 날랐고,
남자 지게꾼은 화물 등을 지게에 지고 날랐고.
뾰족구두 신은 처녀가 지게에 걸터 앉아 올라오는 풍경도 틈틈히 볼수 있었고.
나중에는 지게꾼에게 정부에서 세금을 내게 하고 허가제 형식으로 완장을 착용하게 하였다나.
겨울에는 새끼를 신발에 동여멜수 있도록 '새끼줄 아이젠'을 파는 새끼줄 장수도.
이들은 심포에 한사람,통리에 한사람이 한조가 되어 한쪽에서 새끼줄을 대여해 주면 한쪽에서는 회수하는 묘수를.
야바위에 속아,색시촌에 빠져,,,여비를 탕비한 이도 부지기수였고.
젊은 짐꾼의 지게에 실려 오르내리던 어떤 여학생은 지게꾼에 귀밑머리를 올렸고,
힘좋은 어떤 지게꾼은 돈 많은 과수댁을 지고 오르다 정분이....등등
심포리 역에 하차한 승객들이 철도 옆길을 따라 통리역으로 오르고 있네요~~
여객 차량은 워낙 무거워 올리지 못하고 통리역에 준비된 다른 열차를 탔고.
그러다 드디여 1963년이 되었어요.
두 구간에 7개 터널을 뚫어 통리~심포리 구간을 잇는 우회철도가 생긴겁니다.
당시 박정희는 통리역 구내에서 침목과 궤도를 연결하는 스파이크를, 그것도 금빛 골드를 박았다네요.
최고 권력자가 오지를 찾아 스파이크를 박을 정도로 영동선 산악철도 개통은 철도사에 획을 긋는 사건.
문제는 통리~심포리 구간은 구절양장 터널들로 해결했으나 문제는 또 있었어요.
스위치백(switchback) 철로를 아시나요?
고딩 지리 시간에 배우긴 했으나 그때는 이해가 잘안되었던 기억이요.
(당시 한번만 태백,영동선을 탔으면 쉽게 이해했을 터)
switchback의 사전적 의미는 '자세를 반대로 바꾸다'.
열차가 직진하다 말고 후진하고, 다시 직진하고 후진하고를 반복하며 고도차를 극복하는 것을 스위치백 철도라 합니다.
앞이 머리였는데,순간 뒤가 머리가 되는 인생역전같은 거.
나아가는 모습이 마치 지그재그,갈 지(之) 모습이죠.
구영동선 철로를 한번 보시죠!!
편의상 신영동선도 동시에 그려진 그래픽입니다.
철도가 완전 지그재그네요.
흥전역과 나한정역을 보세요!!
달리는 열차안 승객 입장에서 보면 아인쉬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의 시공간 왜곡(?)을 맞보는 거죠.
시간은 분명 지났는데 공간은 후퇴해버리는 ㅋ
통리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먼저 직선거리로는 1키에 불과한 심포리역까지(1963년 까진 강삭철도가) 17개의 터널을 지나며 심포리 역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심포리역에서 도계역 까지 이르기에는 여전히 고도가 높아 직선 이동은 불가능한 상황이네요.
그래서 중간에 흥전역(349m)~나한정역(245m)이라는 우회노선을 통해 고도 차이를 다시 한번 극복합니다.
양 역의 직선거리는 1.8km 밖에 안되지만 고도차이는 104m나 된다는.(열차는 1km당 30m 정도만 올라갈수 있음)
그래서 해결 방식이 스위치백입니다.
열차는 우회하며 서서히 고도를 낮추다 흥전역에서 일단 정지합니다.
그리고 흥전역 앞 보조 선로를 통해 화차 머리를 떼어 뒤쪽으로 돌려 달고는 다시 하행 철로를 따라 나한정역으로 내려가죠.
흥전역 보다 뒤에 있는 심포리 방면의 나한정역으로 1.5km의 내리막 선로를 놓아 뒤로 살작 내려 갔다가
다시 앞으로 가는 방식을 취한 것이죠.... switchback 했다는.
그리고 이를 나한정역에서 한번 더 하면서 고도를 더 낮추고요.
이같은 두번의 switchback으로 어느 정도 고도를 낮췄으니
이재 나한정역에서 도계역까지는 정상적으로 직진하면 됩니다
그럼 2012년 이전에 실제로 switchback 하는 것을 사진으로 보겠습니다.
우측 선로 위쪽이 심포리역입니다.아래쪽은 흥전역.
그리고 아래쪽 선로가 나한정역 방향 선로이구요.
심포리역에서 열차가 흥전역으로 내려오네요.
그리고 흥전역에서 자세를 뒤로 바꾼 뒤(꼬리가 머리가 되어) 나한정역으로 내려가고~~
당시 흥전(興田)역~~
내려온 열차는 흥전역에서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는,즉 switchback 하느 곳으로 여객이 타고 내리는 역이 아니였고.
나한정역에서도 흥전역에서와 같이 자세를 한번 반대로 바꾼(switchback) 후 도계역으로 나아갑니다.
예전 5 0분 넘게 걸리던 시 간을 15분여로 단축하며 도계역 도착~~
참 많은 사연을 안고 도착한 도계역 이네요.
도계읍은 순전히 석탄 때문에 형성된 동네입니다.
지금도 동해 바다 해수면보다 200m나 아래서 채광 중이고.
현재 남한에서 무연탄 채광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세곳. 삼척 도계광업소 , 태백 장성광업소 . 전남 화순광업소 이리 .
한때는 도계는 5만이 상주했으나 ㅣ만으로 줄어들었고 .
무연탄 총 매장량은 4700만t.
이 가운데 기술적·경제적으로 캐낼 수 있는 가채매장량은 2900만t이라네요 .
도계읍~~
덕항산(1,071m)·응봉산(1,267m)·육백산(1,244m) 등 1천미터 넘은 준봉들이 곳곳에 솟아 있는 오지 중 오지.
당시 삶을 엿볼수 있는 흔적들~~
중앙으로 탄차를 수직으로 운반하는 강삭열차,즉 인클라인이 보이네요.
확대하면 이리~~
1963년 통리역~심포리역을 연결하던 인클라인을 아직도 이곳에선 운용합니다.
열차는 오십천을 이리 넘고 저리 건너며 동해를 향해~~
태백선엔 산악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있습니다.
바다는 곧~~
폐역 고사리역~~
이름이 소박해서 좋았는데 알고 보니 高士네요.
첨첩산중에 높은 선비와 무슨 연이 있다는 건지??
그런데 실제로 고사리가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설로는 앞산이 험난해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의미로 '고살(煞)'이라 했는데 한자로 옮기며 高士로.
'마차역'을 지나니 장남감 같은 '하고사리역'이 나오고~~ .
폐역된 간이역.
신기역~~
환선굴 가려면 여기서 내려야.
줄곧 내내 오십천을 가운데 두고 철도와 국도는 사이좋게 달립니다.
와중에도 논은 있고.
38번 국도~~
태백,사북,영월,제천(박달재),북충주로 이어 집니다.
오십천(五十川)~~~
오십천 이해 없이 삼척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그 만큼 삼척 사람들은 오십천에 기대어 살았다는.
삼척시와 태백시 경계인 백병산(白屛山, 1259m)에서 발원하여 48㎞를 흐르다 죽서루 지나고
삼척시 남쪽에서 동해로 빠집니다.
오십천 물줄기 따라 상류부터 동 으로 도계읍,신기면,미로면이 이어지고.
오십천은 강원도 남부 영서 사람과 영동사람을 이어주는 탯줄이기도 합니다.
삼척 사람들은 오십천 따라 거슬러 오른 후 도계읍 통리 고개를 넘거나 태백시 피재(현 삼수령)를 넘었네요.
(한강,낙동강,오십천이 갈리기에 三水嶺)
구절양장으로 흐르는 오십천을 따라 영서로 가던 한 나그네가 물을 건너는 횟수를 세어보았답니다.
50번!!.
영동선,38번 국도,오십천은 서로 벗삼아 삼척 까지 흐릅니다.
미로역(未老驛)~~
이승휴가 재왕운기 쓴 천은사 가려면 여기서 하차.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간이역으로 지금은 열차는 서지 않아요.
지금은 未老이지만 원래는 눈섭 '미'자를 써 眉老였다죠.
이같은 지명 변천엔 사대부들의 탐욕과 당쟁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예전 삼척 사람들은 전통으로 탑본 하나를 집에 걸어두었다죠 .
삼척시 정라항 옆 육향산에 있는 예서체로 쓰여진 진동비(鎭東碑) 탑본입니다.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라고도 하는데,
척주는 삼척의 옛 이름으로 비(碑)는 해일의 피해를 막아달라며 동해 신(神)을 예찬하는 내용.
비문은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이 삼척 부사로 있을 때 썼습니다.
미수는 남인의 대장이였고,당시 카운터 파트너는 노론의 대장 우암 송시열로 둘은 용호상박.
조선 당쟁의 서막을 열듯 미수와 우암은 예송논쟁을 시작으로 피튀기게 싸우기 시작합니다.
왕의 할머니가 죽었는데 '왕은 상복을 1년 입네,3년 입네',,,하는 것.
말이 '예송논쟁'이지 권력 투쟁으로 예송논쟁은 이후 기나긴 권력 투쟁의 전주곡.
그 미수 허목이 삼척 부사로 있을 즈음 그의 호를 따 미로(眉老)라는 지명이 생겼는데
이후 반대파가 부임하면서 아닐 미(未)로 바꾸었다네요 .
지금은 未老입니다.
도경리역~~
폐역이지만 일제강점기 지은 건물로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간이역입니다.
지금은 두메산골 홀로 외롭지만 영동선이 삼척을 살짝 비켜 동해시로 지나가기에
예전 삼척 사람들은 이곳에서 타고 내렸습니다.
동해시 동해역 지나고~~
어두워지면서 가량비가 내리네요.
동해시는 태백시처럼 1980년에 탄생한 도시.
위쪽으로 강릉 땅이였던 묵호항과 아래로는 삼척시였던 북평항을 떼어내 동해시로.
동해시는 북으로는 망상해수욕장에서 강릉시와 ,남으로는 추암에서 삼척시와 경계를 이루고.
동해역은 현제 강원 동부 지역의 중심역.
삼척선을 아시나요?
일제 강점기 때 북평역(현 동해역)에서 삼척시까지로 지하자원 수송을 위해 운행하던 열차.
예전엔 산업철도였지만 지금은 정동진~삼척역 까지 동해바다열차 운행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동해바다 쪽에서 바라본 동해항(옛북평항)~~
뒤로 동해시,삼척시의 진산 두타산이 우뚝하네요.
두타산 정상에 이은 청옥산 고적대,백봉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장엄하고
동해역이 영동지역 중심역이듯 동해항(옛북평항)도 영동지역 최고 항만입니다.
동해항 은 영동지방의 지하자원 개발과 시멘트 수송을 위해 70년대 말 건설된 신항구로 강원도 내 최대 무역항.
금강산 관광선이 취항하던 곳.
지금은 매주 일요일 한번 동해시~블라디보스톡 취항합니다.
이용객 80% 가 러시아인 .
묵호항 처럼 입지조건상 천연항이 아닌 인공으로 만든 항으로 바로 위쪽 묵호항의 한계에 따른 것.
동해시 삼화동 쌍룡양회~~
실질적으로 옛사람에게 이곳부터 무릉계곡 초입입니다.
두타산 무릉계곡 내 삼화사는 애초 이곳에 있었으나 쌍룡양회에 내주고 무릉계곡 초입으로 이전.
우측으로 42번 국도가 지나네요.
멀리 백두대간을 가로 지르는 백봉령 길도 보이고.
묵호역을 지나고~
우측 창가로 묵호항이 보이네요~~
일제 강점기 때는 철암,도계 탄광서 캐낸 석탄들이 영동선을 따라 이곳 묵호항으로.
그래서 墨湖가 되었습니다.
방파제 뒤 바다로 돌출한 지역에 유명한 달동네가 하나 있죠.
묵호 등대 주변 산기슭 벽화마을인 '논골마을'입니다.
묵호항을 찾는 관광객,특히 대학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 곳.
놀골마을은 바다와 맛닿는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작고 허름한 옛집들이 만들어낸 미로 같은 골목길들로 이뤄진 마을.
뱃일과 해산물 건조 등을 하며 살아온 주민들의 애환 등을 그린 벽화들이 촘촘히 이어집니다.
본디 묵호진동인 이곳이 논골로 불리게 된 이유가 있어요.
주민들이 건조시킬 오징어·명태를 져나르면서 길바닥이 항상 논바닥처럼 질퍽거렸기 때문.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고 빈집이 늘어가던 이곳에 벽화가 그려지면서 젊은이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던 거죠.
통영의 ~처럼.
묵호항,북평항(동해항) 정박 대기 배들이 보이고.
기차는 계속 바다를 벗삼아 달립니다.
망상해수욕장 간이역~~
해수
욕장이 개장한 한달여만 운용됩니다.
망상해수욕장~~
망상해수욕장은 강릉시와 동해시 경계.
옥계역을 지나 열차는 잠시 바다를 버리고 내륙으로 달리고~
5시 10분만에 정동진역 도착~~
모래시계 소나무~~
5분여 밀려오는 파도에 취해보다 숙소로 향합니다.
&&&....
1)상이 길어지다 보니 중,하를 먼저.
2)사진은 작년,금년 게 섞였습니다.
3)열차 안에서 핸펀으로 찍은거라
화질이 구질구질.
4)태백선의 장점은 5시간 열차로 산,강,바다를 다 즐길수 있다는 것.
5)여기에다 산업화 시기 지난했던 삶의 흔적을 진하게 느낄수 있는 곳...영월서 도계 까지 두시간 여.
6)그래서 일년에 두세번은 오는 곳...반드시 열차 타고.
7)동서울서 고속버스 타면 3시간 30분이면 족하지만 열차는 5시간 20분정도.
갈 때는 열차, 귀경은 고속버스도 괜찮고,,,역도 성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