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들어와서 everymonth에 들어가니
자하랑님이 올려놓으신 러시아에 유학하고 있는 어린
소녀 윤 아인양의 피아노 협주곡이 동영상으로 올라와 있네요.
궁금해서 듣다가 놀라서 *열살 짜리의 연주라고 하기엔
입이 쩍 벌어지네요.다른 연주까지 찾아들으면서
프라도 미술관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수르바란,혹은 주르바란 (어떤 이름이 더 정확한 지는
모르겠네요) 의 이름을 클릭했더니 미술사책에서 본
정물화가 나옵니다.


십자가상의 예수앞에 선 화가 루가라고 되어 있네요.
복음서의 저자 누가? 루가? 어느 것이 더 바른 표현인지요?
요즘 읽고 있는 최후의 카토에서
예수의 성십자가가 도난당해서 바티칸에서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읽고 있어서 그럴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어느 것이 진짜 예수가 매달렸던 십자가인가를 밝혀내기
위해서 실험을 했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그런데 죽은 사람을 매달아놓으니 성십자가에서는
그가 살아났더라는 기록이 있어서
반신반의하면서 믿음이란 이성에 반하는 것도
믿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
아니면 강력한 믿음이 실제 삶에서는 어려운
기적을 낳는 것일까 ?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교의 어원을 본다면 이어준다는 의미라고 하더군요.
서로 분리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삶속에서 이어진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에 갇히지 않고
밖으로 자신을 확대하면서 살아가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어제밤 아는 분과 통화를 하다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물었더니
선문답처럼 바람에도 걸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마치 망치로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프라도에 이 그림이 있네요.렘브란트 특유의 빛이 그야말로
빛나는 작품이라서 눈길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뒤러의 이 그림도 만날 수 있단 말이지,이렇게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서 행복한 밤이 깊어가고 있네요.
최근에 새로 보게 된 일본드라마에서
주인공 여학생이 언니만 예뻐하는 아버지에게 마음을 다치고
힘들어하자 할머니가 툭 던지던 말씀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소는 소대로,말은 말대로
생긴대로 사람에게 유익한 동물이라고
참 명대사로구나 감탄을 했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살아가면서 점점 덜어낼 수 있는 것
그래서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와지는 것


힘내서 갑시다,이것이 드라마 제목치곤 마치 연설조의
계몽소설같아서 망서리다 혹시 무슨 내용인가 한 편만
보자고 마음먹고 골랐는데
제목과는 달리 인상적인 대사가 많은 드라마네요.
일본드라마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혹은 카메라 작업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볼 만한
장면이 많은 그런 드라마라고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랍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가 거미가 된 사연
자만이 그리스신화에서는 가장 큰 죄라고 하지요?
벨라스케즈의 그림들입니다.
아래에서 세 작품이 (아니 세 작품은 아니고요
하나는 확대한 그림입니다.프라도가 최고로 자랑하는
시녀들이지요)
피아노 연주를 충분히 들었으니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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