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어서 일부러 방문하는 블로그가 거의 없는 제게 그나마 고정적으로 방문하는 곳이 두 곳 있는데요
하나는 캘리님 블로그, 그 이유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요즘 그 곳에 올라오는 불어 번역을 참조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유씨 블로그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은 님이고 다른 사람은 씨라고 부르는 이유가 뭘까 갑자기 멈칫하게 되는데
아마 은유씨는 (은유라는 것도 역시 아이디이거든요 ) 수유너머 공부모임에서 처음 만났고 그 곳에서는 다들 이름을 부르던 습관이
남아서 그녀도 자연히 씨라고 부르게 된 모양이네요. 이런 것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지난 금요일 모임에서 새로 등장한 두 사람의
호칭때문이었는데요 그 곳에서는 거의 다 인터넷 상에서 만난 인연으로 아이디로 누구누구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다른 인연으로
오게 된 사람들을 이름으로 부르자니 님이라는 말이 어색해서 이왕이면 같은 방식으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꼭 통일만이 바른 방식인가, 우리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다 같은 것이 더 바른 것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나 되돌아보게 되어서요.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은유씨의 블로그에 한영애의 노래가 올라와있더라고요. 오래 전 그녀의 음반 한 장을 사서 듣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 노래를 들으러가면 다 끝나고 다른 노래들도 골라서 들을 수 있어서 며칠간 계속 들어가서 듣고 있는 중이랍니다.
봄날은 가고 있으나 봄날에 참혹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 그 일로 인해서 가족이 겪는 고통속에서 봄날을 즐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저 재미있어서 심심해서 다른 친구를 괴롭힌 아이, 그 일로 생을 마감한 아이, 이런 일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나 많은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들을 동생을 보내고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가족들에게
그 일은 평생 얼마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인가? 이런 생각으로 참 어수선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네요.
어린 시절 학교에서 지식교육과 더불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법,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제대로 어울려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소중하듯이 타인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 이런 교육을 더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따라 웃고 따라 우는 이런 대사에 눈이 시큰해지는 아침에 모마에 걸린 그림들을 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서로 서로를 배려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외부에서 오는 압력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동시에 키워나가야 하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존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까 생각이 가지를 뻗어서 나가기도 하고요.
아이들의 현재 모습은 어른들의 삶의 방식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삶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는 수요일 아침, 대중가요의 가사가 절절히 마음에 스며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