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학교에서 매년 학생들과 교수진들이 모여서 그간의 노고를 자축하는 파티가 있었어요.
이 파티에서는 매년 전 년의 성적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에게 각종 상장과 장학금을 수여하지요.
저는 주말이 사실 주중보다 더 바쁜 사람인지라 (애들 넷에 밀린 집안 일에 정신없거든요) 파티에 참석할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느닷없이 학장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상을 받아야 하니까 무조건 참석하라고요.
무슨 상인지도 모른 채 일단 참석을 했는데, 우등상은 물론이고 학업 성적 장학금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더군요.
정말 쿨하게 웃으면서 받고 손도 우아하게 흔들었어야 했는데...촌스러움의 극치도 잊은 채 마흔 여덟 살의 늙은 아줌마 학생은 눈물이 그치질 않아서 많이 많이 울었답니다.
그동안의 일들이 슬라이드처럼 한 장면 한 장면씩 스쳐지나갔어요.
아이들 하나하나 제대로 보살피지도 못한 채 수업과 회사 일에 쫓겨 뛰어나갈 때 가슴 한 복판에 느껴지던 미안함...작년에 6개월 동안 남편이 실직을 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다 너무나 힘들게 지나가고 있는 중에도 수업에 가면서 차 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아 학교 앞에 차를 세우고도 곧 들어가지 못하고 눈물을 다 닦고 들어갔던 것...남편이 실직으로 힘들어 할 때 수업에 쫓겨 제대로 위로해주지도 못하고 그저 남편의 도움만 받고 지나가던 일들...엄마가 못 챙겨주는 데도 불평 하나 없이 함께 둘러앉아 공부하고 엄마의 간식까지 챙겨주던 딸들...엄마 무릎에 앉아 볼 기회도 제대로 못가져서 애가 타던 우리 막내...울어도 울어도 감격이 가시질 않았어요.
이번 주만 다니고 정 안되면 학교를 그만 둘 수 밖에 없다는 결심도 수 천 번 했고, 작년엔 학비가 없어 학교를 휴학할까도 생각했었지요.
지난 학기 어느 날 결국 큰 맘을 먹고 학장님을 찾아갔었어요.
옹색하고 초라한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남편의 실직과 네 아이를 기르면서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으니 학교를 당분간 쉬어야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학장님께서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시면서 학비를 걱정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시면서 그 조건으로 한 가지 약속을 할 수 있겠냐는 거에요. 제 속으로는 뭔가 봉사활동 같은 걸 시키시려나 보다 했지요.
그런데, "앞으로 두 번 다시 학비가 없으면 공부를 그만두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말라" 고 하셨어요.
돈은 어떻게든 만들면 되는 거지만 공부는 그리 쉽게 그만 두는 게 아니라고요. 당신은 좋은 사람인데, 좋은 사람이 변호사가 되어야 세상이 어려워지지 않는다는 의미 깊은 말씀도 하셨지요.
목이 메어 뭐라 감사할 말을 찾지 못하면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는가. 나는 나이가 많은 학생이라 크게 성공하는 변호사가 될 것을 자신할 수도 없다고 했더니, "수임료 백만불 짜리 사건을 맡으면 꼭 학교에 기부해라" 하시면서 껄껄 웃으셨어요.
저신도 오남매를 기르다가 늦공부를 시작해서 변호사가 되었다시면서 용기를 잃지 말라는 노변호사님의 사랑과 은혜에 체면도 잊고 펑펑 울고 돌아와 새롭게 맘을 다지고 공부를 했지요.
우리 학년 장학생 삼총사입니다. 가운데에 있는 친구는 싱글 마더인데 일등을 한 친구이고, 왼쪽은 저랍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가 3등을 한 친구에요. 이렇게 웃고 함께 안고 사진을 찍었지만, 사실 멋모르는 저만 빼고 이 친구들 경쟁 장난 아니지요
3등을 한 친구가 저를 좀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가끔 속을 뒤집어 놓기도 하지만 반 백을 바라보는 제가 참아야지요...
어떤 때에는 뭐라고 했는데, 제대로 못알아들어 웃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면 저를 비꼬는 얘기더라구요 ㅠ.ㅠ 언어장벽이 있으니 성격도 좋아보일 듯 해요 ㅠ.ㅠ
그래도 파티에서는 서로 축하해주고 함께 사진도 잘 찍었답니다.
우리 학교의 모든 장학금들은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이 되는데, 저의 장학금은 아도랄리다 파디야 라는 판사님의 이름을 딴 장학금이었어요. 누군지도 모르고 엉겁결에 받았는데, 판사님이 나중에 장학금 수여식이 끝나고 저를 직접 찾아오셨네요. 우리 학교 졸업생이시라 더욱 뜻깊은 만남이었지요.
두려움과 의혹 속에 시작한 로스쿨. 마흔 여섯살에 시작하는 저로서는 정말 많은 걱정이 날마다 저를 괴롭혔어요. 아무리 공부를 해도 못따라갈 것같고, 어떤 때에는 정말 한 페이지 전체가 다 해석이 안되는 기막힌 상황도 숱하게 지나갔지요. 인종차별도 어렴풋이나마 느껴봤고요. 산전수전 다 겪었네요 ^^
벌써 2학년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게 실감나질 않아요. 어제 제 테이블 옆 자리에 앉으셔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눌 기회가 생겼던 모 교수님의 부인께서 저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I bet on your success! Trust me (난 네가 성공할 것을 믿어. 내 말 믿어봐!)" 얼마나 감사하도록 마음에 와닿았는지요.
꼭 쉬흔이 되어야 학교를 마치고 변호사가 되겠지만, 그래도 남은 여생 동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단 1년을 해도 괜찮다고 어제 집으로 돌아오면서 새로 맘을 다졌어요. 남편의 외조와 우리 딸들의 사랑에 보답하려면 정말 좋은 일에 저의 달란트를 많이 써야지요.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자 마자 바로 또 다음 주 수업 준비를 위해 밤을 밝히면서 공부를 해야했지만 이젠 그래도 조금은 적어진 두려움과 아직도 미세하지만 작은 자신감이 생겨난 것같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정말 많은 분들, 계속 기도해주시고요. 저와 같이 어려운 시간을 지나시는 분들에게도 함께 손을 모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