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기 싫은게 아니라, 내가 마냥 서럽기까지 하면서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어느 날...
아마 피곤했거나 머리 아픈 일이 있었을게다.
널다란 개수대 안에 가득 쌓인 설거지와 그 옆으로 놓여있는 남비며 크고 작은 그릇
쟁반을 보면서 울컥 울고 싶었었다. 이유없이 나오는 긴 한숨 소리를 뒤로 하고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켰다.
지금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놔두고 아침에 할까?
애들에게 소리 빽~질러 엄마가 설거지 순이냐? 너네도 밥 먹었으니 설거지 해~ 할까?
아이들도 이렇게 많은 설거지를 보는 순간 얼마나 심란스럽겠나?
나도 하기 싫어 죽겠는데, 아이들 보고 하라하면 그 아이들도 나와 같은 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겠나? 이유없이 모든게 싫어지지 않겠나~
내가 왜 이거 해야하나? 그릇은 왜 이렇게 많은거야..정말 싫어!
안 할 수도 없고,억지로 하노라면 얼굴이 맑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이렇게 싫은데 말이다.
잠시 한 발자욱 물러서 개수대를 보면서 5 분 가량 생각을 했다.
힘들어도 지금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에이~ 몰라 ~ 그냥 눈 딱 감고 자버릴까? 말까? 그런데 내일 아침 밥 하러 나왔을때
이 설거지 더미를 보면?? 에이 그건 아니다.
아마 밥 하기 싫을 게다.
설거지 앞에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 보기는 또 처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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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자!
머릿속에 이쁜 그림 그려가면서 천천히 하자.
다른 생각하지 말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그림을 그려 보자.
이 모든게 어차피 다~내 몫이 아니던가...
팔 목을 걷어 부치고 수세미를 집어 들고 주방 세제를 묻힌다.
커다란 남비 부터 씻어본다. 오래 된 그릇들이라 가볍기도 하다.
내 손 안에서 많이 익숙해져 있어 착착 달라 붙는다.
내 머릿속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손은 혼자 돌아가는 기계처럼 하나 하나 씻어간다.
남편을 만났을 때 생각을 했다. 내 나이 꽃 다운 24살. 신기하다.
내게도 이런 나이가 있었구나..(피식 혼자 웃는다.)
나이 많은 남자가 얼마나 순박한지...나는 그 남자를 아저씨라 불렀었다.^^*
세상을 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나.
내 마음이 사랑이면 다른 사람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나이다.
내가 둥글면 세상도 다 둥글다고 생각했던 나이다.
내가 꽃이고 하늘이면 다른이도 꽃이고 하늘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면에서는 세상과 맞서는데는 아직 서투른 아줌마이다.
큰 그릇들이 하나 하나 씻겨져 제 자리로 찿아 든다.
큰 그릇들이 없어지니 작은 그릇은 일도 아니네. 기분이 말끔해 지면서
내 손은 자동세척기 마냥 척척 혼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국수 먹고 싶다면 정말 국수만 사 주던 남자이다. ^^
그렇게 철없이 가난하고 이쁘게 사랑을 키워갔던 것 같다. 때로는 많이 아프면서 말이다.
결혼하고 아이 가지고, 아이 가지면 다 낳아야 하고,
일이 많으면 당연히 해야된다고 생각한 나였다.
희망을 꿈꾸며 자기 일 해 보겠다고 무모하게 사업에 뛰어든 남자.
그 남자를 또 당연스레 열심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나였었다.
세상은 다 그렇게 사는거구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드리면서...
남들이 보기에 어쩌면 내가 바보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보처럼 단순하게 생각을 했기에
내가 무너지지 않고 예까지 살아왔는지 모른다.
내가 무너진다?
즉 나와 내 주변을 포기 하지 않았다고 말하련다.
보여지는 것에 연연해 할 시간도 없이 예까지 살아 와서 인지 모르겠다.
세상을 지혜롭고 편안하게 사는데는 때론 바보가 될 필요도 있다고 본다.
너무 똑똑하고 야무져서 아프고 지치는 법인지도 모른다고 내 맘대로 생각해 본다.
아마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작은 그릇들도 다 마무리 되어가고, 수저와 젓가락 까지도 각 각 제 자리로 들어간다.
늘어 놓기 시작하면 한 없이 늘어져야 하고, 정리 하려 들면 또 한 없이 정리 할수
있어 우리들 손은 마법의 손이다.
개수대 찌거기 통도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내고 그 것 마저도 수세미로 박박 닦아낸다.
이것만 하면 마무리가 다 되어간다는 것이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컵도 제 자리에...
그릇들도 제 자리에...
쟁반도 제 자리에 들어가니 다 정리가 되어 버렸다.
제 자리.
그렇다. 우리가 제 자리만 잘 찿아도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힘들어 지는 것은 각자가 제 자리를 찿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음일 게다.
그 자리가 어디던 자기가 올 곧게 서 있으면 이 세상이 행복해 질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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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산더미 였을까 할 정도로 말끔히 치워졌다.
젖은 행주 깨끗히 빨아 헹구어 탈탈 털어 준다.내 마음도 탈탈 털어졌다.
반듯하게 그릇 선반위에 착~펴서 널어주고
마른 행주로 싱크대 주변 물기를 마무리 해준다.
아~
이 순간이 마냥 좋다!
하룻밤만 지나면 또 산더미가 될지라도 말이다.
설거지 하면서 내 인생의 글을 읽어가면서
웃기도 하고,마음 저려 아파 하기도 하고,고개도 절레절레 흔들어 보면서
심란했던 설거지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