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트레일 마지막 날 두번째
아구아 칼리엔테스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가니, 오늘 여기 머무르기로 했던 일행들도 모두 쿠스코로 돌아가겠단다. 내일이 새해 첫날이니 만큼, 쿠스코에서 축제가 있을 거라나..
결국 부랴부랴 기차표를 교환.
숙소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식사도 맛있긴 했지만, 역시 산속 캠프장에서 먹던 것만 못하다.
그 때는 힘든 등반 뒤였다는 것과, 주변에 멋진 경관을 보면서 식사를 했던 게 최고의 조미료였던 것 같다.
식사를 한 뒤,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기차역 부근의 재래 시장을 구경했다. 뭔가 선물로 사갈 게 없나 싶어서 둘러봤지만, 마땅한 것도 없고, 가격가지고 장난 치는 것도 여전하다.
한참 구경을 하다 보니, 앞에 가는 사람의 배낭 입구가 조금 열려 있고, 그 사이로 카메라가 보인다. 저건 완전히 훔쳐가 주쇼 하는 거 아닌가.. 이 동네선..
보다 못해 쫓아가서 가방이 열렸어요~ 하고 말해주니, 아까 만났던 그 일본인 청년...
하루에 세번을 보게 될 줄이야. 서로 어이없이 빤히 쳐다보다가 결국 웃고, 이번엔 통성명까지 하고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같이 시장 구경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성은 요시다. 2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인상 좋은 사람으로, 일본에서 직장 생활 멀쩡히 하다가 접고 2년동안은 해외 자원 봉사를 하기로 했단다. 그것도 몽골 오지에서 학교를 짓는 일을...
2주 후 몽골로 떠난다는데, 그 짬을 이용해서 오랫동안 꿈이었던 마추픽추에 온 거라고..
하던 일 접고, 봉사활동을 택한 그에게 대단하다고 말했더니, 멋쩍게 웃으며 뒷통수만 긁는다.
자기 뿐만 아니라 이런 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꽤 있댄다. 나라면 과연 직장까지 때려 치우면서 힘든 길을 택할 수 있을까..
그의 기차 시간이 나보다 먼저 였기에 기차역에서 작별 인사를 한 뒤, 일행과 합류
아구아 칼리엔테스와 오얀따이 땀보를 왕복하는 관광 기차.
기차 안에서는 저렇게 승무원들이 음료수를 서비스 해준다
오얀따이 땀보 역에 도착.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행상인들이 우루루 몰려들고, 택시 호객도 장난이 아니다. 그 사람들을 헤치고 역을 나서자, 여행사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일행들과 새해를 같이 맞자는 데 의기투합해서 저녁에 만날 바와 시간을 정하느라 잠시 떠들썩. 약속이 정해지자, 그 동안의 피로들이 몰려오는지, 하나 둘씩 잠들어버렸다.
나도 어느샌가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바깥은 어둑어둑, 버스는 이미 쿠스코 시내로 접어들고 있었다. 버스가 호스텔 앞을 지날 때 기사에게 부탁해서, 냉큼 내려서 호스텔로 다다다 뛰어 들어가니, 카운터를 보는 사람이 아주머니로 바뀌어 있다.
엥? 그 흑인 아저씨는 어디 간건가? 했더니, 금방 안에서 나오면서 야단스럽게 반가워해준다.
맡겼던 짐을 찼고, 다시 예전의 방으로 들어갔더니, 브라질에서 온 여학생이 동거인이 되어 있었다. 그 여학생도 2틀 후면 잉카 트레일에 도전한다고.
그래도 며칠 선배라고, 내가 썼던 손전등을 넘겨 주면서 손짓 발짓 섞어가며 필요한 것들과 팁을 알려주다가 친해져 버렸다. 이게 호스텔의 좋은 점이지. 여행 정보가 생생히 오가고, 금방 사람들을 사귈 수 있으니..
샤워를 하고 잠깐 한숨 돌리고 있으니, 새해 파티를 한다고 투숙객을 전부 로비로 불러 모은다.
간단한 샴페인과 과자, 카나페, 과일..
모인 사람들도 일본 사람, 브라질, 미국 가지가지 지만 잔을 높이 들어 서로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붙임성 좋은 호스텔 아저씨.. 어찌나 쾌활하고 투숙객들에게 일일이 신경을 써주는지, 참 좋은 분이었다. 솔직히 호스텔 시설은 별로 였지만, 이분 덕에 머무는 내내 유쾌하게 지냈다.
새해 이브에는 광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이는데, 우리도 빠질 수 없다!며 호스텔에 있던 사람들과 광장으로 향했다. 나는 광장 근처의 바에서 트레일 팀과 약속도 있었고.
아르마스 광장 근처로 갈 수록 휘황찬란한 조명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불꽃 소리, 그리고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분위기에 취해 있다가 일행과 헤어지고, 약속 장소인 바로 가니, 벌써들 모여 있었다.
마실 것을 뭐를 시킬까하며 메뉴판을 보자, 모두들 피스코 사워를 시키라고 입을 모은다. 페루에 오면 꼭 마셔봐야 된다나?
좋아 마셔주마 하고 한 잔 시켰는데, 이건 피스코라고 포도로 빚은 술을 이용해 만든 칵테일의 일종이다. 피스코는 도수가 거의 45도를 넘는 독주인데,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는 부담스럽고, 이를 이용해 만든 피스코 사워가 바로 페루의 명물 중 하나.
꽤 부담없이 잘 넘어가지만, 피스코 자체가 도수가 높은 만큼 많이 마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바에서 모인 일행들과 함께 서로의 여행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며 12시 무렵까지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부러웠던 건, 남자친구와 세계 일주중인 헤더 커플..ㅜ.ㅜ
슬슬 시간이 되서, 모두들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섰는데, 인파는 더욱 늘어나고 여기저기서 노랫소리에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다. 야경으로 찍었는데, 카메라가 흔들리는 바람에..ㅜ.ㅜ
드디어 새해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2005년의 시작을 올리는 종이 울림과 동시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Happy New Year!!"
곧이어 여기저기서 동시 다발로 터져대는 폭죽소리에 옆 사람 목소리가 잘 안들릴 지경이다.
광장 주변은 사람들로 꽉 차고, 곧 사람들이 서로서로 어깨 동무를 하거나 춤을 추며 광장을 한바퀴 돌며 행진을 시작했다. 선동하는 사람도 없고, 누군가가 조직해서 하는 것도 아닌 자발적인 행진.. 누군가는 흥에 겨워 큰 소리로 노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는 빠지지 않는 길거리의 군것질~ 예의 감자와 소고기 꼬치 구이도 건재..
바람을 타고 풍기는 고기와 감자 굽는 냄새는 약간의 비위생적인 면도 감수하게 만들지만.. 아까 바에서 먹은 게 많은 관계로 패스
누군가가 준비해 온 목마에 탄 아가씨^^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쓸 것 없이 모두들 자기 식 대로 새해의 시작을 즐긴다.
나 역시 마음껏 소리높여 외친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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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여행의 기록 - 열 세번째 이야기
첫비행 |
조회수 : 1,006 |
추천수 : 17
작성일 : 2005-06-24 12: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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