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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여행의 기록 2
2004. 12. 25 쿠스코에서
내가 짐을 푼 곳은 Samei Washi 호스텔. 주로 배낭여행자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6인 1실에 아침포함해서 하루 7불이다. 물가 싼 동네가 좋긴 좋구나.... 시설은 그럭저럭 깨끗한 편인데, 방이 좀 추운게 단점이었다.
카운터를 보고 있던 호스텔 직원은 붙임성이 좋고 무척 친절한 흑인 아저씨로, 체크인이 끝나자마자, 로비에 앉아 있던 왠 여자를 데리고 오더니 소개를 시켜준다.
내가 묵을 방의 룸메이트라나.. 여행자들은 모두 친구라며, 넉살 좋게 악수까지 시키는 그 아저씨 덕분에 얼결에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호주에서 왔다는 브론은 20대 중반의 여성으로 하던 일을 쉬고 3개월 예정으로 남미를 돌고 있다고 했다. 부럽다..ㅡ.ㅜ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장기 여행은 꿈도 못꾸는데...
아마도..
나: "저.. 한 1달 정도 휴가 얻을 수...."
상사: "한 달? 계속 쉬게 해줄까?"
.... 일 거다. 하아..
환전도 해야 하고, 도시의 분위기도 대강 보고 싶던 참에, 마침 브론도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간다 하길래, 따라나섰다.
쿠스코는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가 구시가 쪽은 경사가 급한 골목이 많았다. 고산병이 조금 걱정되기는 했는데, 아직까지는 별 이상이 없다. 경사가 진 골목길을 2블럭 쯤 지나자.. 아르마스 광장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구시가는 깨끗했다.
브론의 안내로 환전을 하기 위해 은행 쪽으로 갔다. ATM 마다 무장한 경찰이 서 있고, 거리 곳곳에 경찰이 눈에 띈다. 덕분에, 관광객이 많은 구시가 쪽의 치안은 믿을만 하단다.
환전을 하고, 잠시 쉴겸 아르마스 광장의 노천 카페에 앉아서 카푸치노를 시켰다.
옆을 보니, 30대 초반? 아님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걸 보고, 브론이 말을 걸었다. 혼자라면 합석하자고..
그 언니는 네덜란드에서 온 마야. 여자 혼자 왔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순식간에 의기투합
저녁을 페루음식으로 해결해보자고 합의하고, 저녁에 다시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의 여행담들을 풀어놓으며 잠시 쉬는 사이에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엽서나, 조그만 기념품들을 팔려거나 구걸하려는 현지 아이들이 거의 분 단위로 접근한다... 하아... 거기에 넘어가서 뭐라도 하나 사게되면 곧장 아이들에게 포위당한 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바로바로 거절하긴 했지만 역시 안쓰러웠다.
저녁에 꼭 다시 만나기로 하고, 둘과 헤어지고 나서, 일단 아르마스 광장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오전.
광장을 따라서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90%)인 나라이긴 하지만.. 교황청과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고... 울 나라에 들어오는 거의 모든 종교가(기독교 포함) 기복신앙화 되어 버리는 것과 같이, 페루의 카톨릭도 토속신앙과 합체해 버려서 분위기 자체가 좀 이질적이다. 특히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경향이 강하다.
성탄절 맞이 행사였는데, 가운데 가마에 태워진 인형이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는 듯. 크리스마스가 옆에 선글래스 낀 여자가 들고 있는 것도 아기예수를 상징하는 인형으로 이맘때면 장식한 바구니에 아기예수를 상징하는 인형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쿠스코의 골목들...
잉카의 수도였다곤 하지만, 당시 건물들은 스페인에 의해 몽땅 파괴.. 지금은 식민지 양식 건물로 들어찬 거리가 되어 버렸다..
어딜 가나 싱글 염장 지르는 커플은 꼭 있다니까.... -- +
쿠스코에 남아 있는 잉카 시대의 벽들
잉카표 건축기술.. 특히 궁전이나 신전급 건물들의 벽은 그 견고함으로 이미 유명하긴 하지만 각기 크기가 다른 돌을 지그소 퍼즐 맞추듯이 다듬어서 짜 맞추어 놓은 걸 보면.. 경탄에 앞서 그 노력과 노가다에 질려 버릴 지도..
특히 중요한 건물들을 지을 때에는 돌 사이에 모르타르나 진흙같은 완충재를 쓰지 않는다. 순수한 돌들만을 짜맞추는데 돌 사이에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조차 없다.
(머리카락 하나 집어넣어 보려고 낑낑 거려봤는데... 진짜 안 들어가더군.. ㅡㅡ;;)
더더욱 경악스러운 건, 잉카 시대는 바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운반하는 것도 큰 일이었고, 돌을 깎고 다듬는 것도 철기 없이 흑요석이나 돌망치를 사용했기 때문에 얼마만한 공이 들어갔을 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특히 주요건물의 토대, 즉 건물을 지탱하는 부분은 각기 크기가 다른 돌을 다듬어서 맞춰 놓았기 때문에 서로 꽉 맞물려서 어떤 지진에도 까딱 없단다. 실제로 사진의 벽들은 잉카 시대에는 각각 궁전 및 신전의 토대였다. 스페인 인들이 그걸 허물고 위에 자기네들 건물을 지었었지만, 몇 번에 걸친 지진에 새로 지은 윗부분은 무너져 내려도 그 토대가 된 잉카 벽들은 까딱 없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 봐도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의 사진은 그 쿠스코에 남아 있는 잉카 벽 중 가장 유명한 12각돌로 본래 잉카 시대 아뚠루미욕(위대한 돌)의 담을 구성하는 돌 중 하나이다. (진짜 12각이다. 직접 세어보셔!)
잉카 벽 밑에 한가로이 누워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이 녀석에게는 벽에 달라붙어 사진이나 찍고 있는 인간들 자체가 구경거리겠지..
Iglesia de San Blas
전형적인 남미 식민지 양식의 교회.
앞에 주차되어 있는 것은 택시들..
티코가 보이는가!! 대부분의 택시들이 대우 티코임.. 나의 애차는 지금쯤 한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역시 티코)
교회까지 올라가는 길.. 꽤나 급경사.. -.-
안 그래도 고도가 높아서(해발 3000미터 이상임) 산소가 희박한 동넨데.. 죽는 줄 알았다.
산또 도밍고 성당
태양의 신전(Coricancha)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아래 기반부는 잉카 건물이다.
태양신교의 총본산으로 쿠스코의 잉카 건물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꼬리깐차는 꾸스코를 점령한 피사로의 동생인 후안에게 주어졌다가, 그의 사망 이후 도미니카 선교회에 기부되었다. 선교회에서는 이 건물을 대충 부순 뒤, 그 위에 산또 도밍고 성당을 세웠다. 1950년 지진 당시에 산또 도밍고 성당이 붕괴되면서 그 아래의 꼬리깐차의 검은 벽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잉카 속으로(권병조 지음)참조]
사진은 산또 도밍고 성당의 뒷부분 일부...
꼬리깐차 내부
지진 이후, 페루의 고고하계와 종교계는 꼬리깐차를 복원할 것인가 성당을 다시 지을 것인가 싸우다가, 결국 성당 내부에 관람코스를 두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이로 인해 꽤나 관광수입이 짭짤한 모양이다.
(쿠스코 부근의 유적을 볼 수 있는 티켓이 여기선 통하질 않아서 따로 입장권을 사야 했다.. --+)
사진에 보이는 두 건물은 각각 천둥번개의 신 이야빠의 신전과 무지개의 신 쿠이치의 신전이다.
금은으로 만든 장식이나 신상이 있었을테고, 신전 자체도 금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을 테지만... 스페인의 약탈에 의해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참고로 태양의 신전은 지금은 교회당이 차지하고 있고, 태양신상이 있던 자리에 바로 감실이 있다. 태양신전 중심에.. 성당의 중심에 해당하는 시설을 세워놓은 셈이니.... 이교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인다.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성당(La Cathedral)
유타카와의 만남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은 새로운 만남...
유타카라는 일본인으로, 일본에서 미시간으로 파견근무 중인데 마추픽추를 보는 것이 어릴 때부터의 꿈이라고 했다. 나와 비슷한 케이스다.
꼬리깐차 안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서 하루 시내 관광 동행 결정!
안 그래도 페루에선 사진기를 함부로 맡길 수가 없어서, 내 사진 찍는데 애로가 많았는데, 덕분에 뻔뻔한 사진들도 찍을 수 있었다~~
아르마스 광장 옆의 교회(La Compania)
시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니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슬슬 약속시간이 되어 가길래, 유타카에게도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더니, 반색을 한다.
하긴.. 혼자 하는 여행도 좋긴 하지만, 역시 밥은 여럿이서 먹어야 좋은 거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브론은 이미 와 있는데, 마야 언니가 오질 않았다.
20분 쯤을 더 기다리다가, 결국 나와 유타카, 브론 셋이서만 가게 되었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
그 한끼를 위해서, 며칠을 허접한 음식으로 때우는 것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더더군다나 새로운 만남과 그 자리를 할 수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
그 귀중한 자리를 어디서 가질 것인가.. 셋이서 한참 끙끙대다, 결국 론리 플래닛에서 소개한 페루 식당인 Macondo로 결정하고, 20분 정도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택시비 아끼느라고)
거기서 시킨 건...
브론이 주문한 페루의 야채 카레.. 약간 달달했지만, 정말 맛있었다.
유타카는 용감하게도 알파카 요리를 시켰다. 알파카 고기와 채썬 양파를 같이 익혀 만든 음식인데.. 알파카가 뭐냐고?
바로 이 녀석이다. 낙타의 일종으로, 라마(혹은 야마)의 일종인데, 식용과 털을 이용하기 위해 기른다.. 조금 얻어 먹어 봤는데.. 맛은.. 글쎄 --;;
마지막으로 내가 시킨 건 Juane(후아네). 닭고기와 밥을 양념해서, 뭔가의 잎으로 싸서 찐 요리인데, 이것도 담백하니 맛있었다!!
유타카는 자기가 시킨 것만 실패라며 투덜투덜...
레스토랑의 주인 아주머니... 디저트를 권하셨지만, 배낭여행자한테 디저트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소리랍니다.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해보니, 역시 셋 다 목적은 잉카 트레일이었다.
유타카가 내일 출발, 브론이 모레, 내가 그 다음날이다. 하하..
셋 다 전형적인 도시인에다가 운동부족이라면서, 걱정했지만, 뭐 사람.. 닥치면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으니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 10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오랜 비행으로 인해 슬슬 피곤도 몰려오고, 더더군다나 유타카는 내일 5시에 일어나야 한댄다.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빌어주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나중 덧붙임: 유타카와는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리마에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브론과 난 침대에 푹 쓰러져버렸다..
이렇게 첫날이 저물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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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totheself
'05.3.16 2:05 PM겨울까지는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처지라 조신하게 살려고 마음먹고 있는 중인데
줌인에 여행사진이 마구 올라오니 마구 들뜨는 기분이네요.
더구나 남미쪽은 시간이 다른 곳보다 더 많이 필요해서
아이들이 다 크고 제가 하는 일에서 제가 없어서 일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는 시기까지는
장기간의 여행은 그저 그림의 떡이로군요.
그래도 가고 싶은 곳중의 하나라
여행기속에서라도 대리체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배를 타고 하바나를 떠날 때란 글을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진도 좋고 무엇보다도 글 쓴 사람의 필력이 좋아서 자주 자주 감탄하면서요...2. emese
'05.3.16 5:06 PM아...익숙한 풍경..참 그립네요...남미가..
3. ripplet
'05.3.16 6:01 PM사진속의 커플이 아니라 첫비행님께서 염장을 지르시네요 ^^
시간여행님의 유럽여행에 이어 첫비행님의 페루여행...흑흑~~
처박아뒀던 여권만 조물딱거리고 있심다 ㅜㅜ4. 그린
'05.3.16 6:48 PM역시 제 기대대로....^^
사진과 어우러진 여행기를 찬찬히 보니
더욱더 그곳에 가고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82쿡 정신에 맞는 요리 사진도 빠뜨리지 않으시고...ㅎㅎ
다음 편 기다립니다~~*^^*5. 첫비행
'05.3.17 1:54 PMintotheself님>> 여행을 떠나실 날이 빨리 오셔서 가시고 싶은 곳 가셨음 좋겠어요^^
emese님>> 남미에 사셨었나 보군요. 어디서 사셨나요?
ripplet님>> 에고.. 제가 다른 분의 염장을 지르게 될 줄은..^^; 죄송합니다.
그린님>> 차근차근 올릴께요^^;;6. 여행
'05.3.29 12:29 PM사진 찍는 기술이 짱" 이시네요
여행에 같이 동행하는 기분이랍니다..
이 들뜬 가슴을 어찌 달래야하나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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