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그리스도신학대 김상봉교수님이 영호남 갈등에 대한 의견을 기술하신 글입니다. 현재 일본의 행태와 비교되는 독일의 입장이 잘 나타나 있어 앞부분을 발췌하여 올렸습니다. 전문이 필요하신분은 쪽지나 댓글로 이멜주소 알려 주세요.
1. 이스라엘에도 책임이 있다
1991년 초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걸프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 나는 독일에서 유학 중 이었다. 그 때 그 전쟁의 정당성을 놓고 독일에서는 여러 가지 비관적인 목소리들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강대국들에게 향해진 것이었는데, 비판의 요지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 서방세계가 정당한 응징의 한도를 넘어 지나친 보복을 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런 비판의 목소리들은 개신 교회를 비롯해 일부 진보적인 양심세력에 국한된 것이었고 대다수 사람들은 이라크에 대한 서방세계의 군사적 행위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정하는 편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는 사담 후세인의 위협이 단순한 엄포로 그치지 않고 실제상황으로 나타나자, 이런 분위기는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 독일의 녹색당(Die Gr"unen) 외교위원장 일행이 이스라엘을 공식 방문하여, 기자회견장에서 던진 말 한마디가 독일 정가(政街)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라 정확한 발언의 경위와 내용까지를 기억할 수는 없으나, 그들 발언의 요지는 이스라엘을 향해 스커드 미사일이 날아오게 된 데에는 이스라엘의 책임도 없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넌지시 비판했던 것이다. 그들의 기자회견이 이스라엘 국민들을 얼마나 분노케 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미사일이 날아드는 전쟁상황에서 긴장할 대로 긴장해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친선방문차 왔다는 외국 손님이 "너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훈계를 늘어놓았으니 그들이 어떻게 경악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물며 분노를 느낄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도리어 내겐 녹색당 일행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잘못을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 참신하고 용기 있는 행위로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독일에서 보고 느끼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존권이 위협 받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마치 그들이 남에게 박해 받은 것이 그들에게 남을 박해해도 된다는 권리를 주기라도 했다는 듯이, 자기만 살겠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박해하는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내겐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뒤부터는 그들이 나치 독일에 의해 박해 받았던 것을 입에 올리는 것을 볼 때조차, 박해 받은 역사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현재의 범죄를 정당화하려 한다는 생각에 때로는 그런 말들이 역겹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니까 녹색당 외교위원장 일행의 지적대로 사담 후세인이 이스라엘을 향해 스커드 미사일을 쏘게 된 데는 이스라엘의 책임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울 때부터, 수천 년 동안 그곳에 살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더라면 어떻게 사담 후세인이 아랍 세계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의도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들의 발언이 전파를 타고 독일에 전해졌을 때, 독일의 조야(朝野)는 마치 미사일을 얻어맞은 것처럼 경악했다. 그리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릴 것 없이 한 목소리로 그들의 발언을 부적절하고 미숙한 발언이라고 규탄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참으로 놀랍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녹색당 일행의 발언 내용은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아주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 발언의 옳고 그름은 뒤로 밀쳐둔 채 무작정 그들을 책망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그들 발언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길래, 미숙하다, 부적절하다, 야단들인지 도무지 불만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남의 나라를 공식 방문한 외교사절이 그 나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외교적으로 결례가 되는 일이라서 이들이 녹색당 일행의 발언을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비판하는가 보다'라고만 추측할 뿐이었다.
2. 옳은 말이라도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의 추측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온 나라가 시끄러운 상태에서 며칠이 지났을 때, 당시 야당이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의 총재 한스-요헨 포겔(Hans-Jochen Vogel) 박사가 녹색당 외교위원장 일행의 이스라엘 발언에 대해 점잖은 어조로 행한 짤막한 비평은 나에겐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는 "독일인은 그가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비록 객관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쩌면 한 정치가의 영혼 속에 그토록 깊은 지혜와 순결한 양심이 깃들일 수 있는지, 전율스러운 감동으로 한동안 말을 잃은 채 망연히 있었다.
아마도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녹색당의 젊은 정치가는 자기들이 더 이상 나치의 범죄에 대해서 아무런 직접적 책임도 없으며, 그런 만큼 이스라엘의 잘못에 대해 당당하게 할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누가 말하느냐가 아니라, 그 말이 그 자체로서 옳은가 그른가 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녹색당 일행의 말이 백번 옳은 말인데 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비판하고 나서는지 의아하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은, 그가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비록 옳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객관적으로 옳은 말에 대해 독일의 조야가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녹색당 일행의 발언을 부적절하다 비판했던 것은 단순히 외교적인 고려에 따른 것이 아니라 독일 사람들의 양심과 도덕에 따른 판단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때로는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옳은 말이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할 말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비록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이치가 어떻게 독일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는가? 누구든 역사 속에서 가해자의 집단에 속하는 사람은 피해자인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삼갈 줄 알아야 한다. 그가 앞에 나서서 그 피해자들을 박해한 장본인이 아니라고 해서 이런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의 집단에 속하여 피해자의 설움을 몸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피해자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록 그것이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말과 행동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사람이 가져야 할 마땅한 염치인 것이다. 하물며 가해자 된 사람이 피해자들에 대하여 있지도 않은 말로 거짓선전을 늘어놓는다면, 이런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야 더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 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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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이스라엘 그리고 독일
餘心 |
조회수 : 841 |
추천수 : 13
작성일 : 2008-07-18 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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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해바라기 아내
'08.7.19 9:16 AM독일 사람들은 여기 써있는 글의 내용처럼 대다수가 양심과 합리성에 의거하여
말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성도 잘하고, 자신의 잘못도 스스럼 없이 인정합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1900년대 초, 중반에는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엄청난 역사가 있어서 현재의 독일인들이 이렇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된 것일까요?
우리나라를 무시하며 정도에서 벗어난 외교를 펴고 있는 주변국에게 우리가 아무리
"독일을 봐라"고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독일인들과 유전자가 다릅니다.
스스로 반성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비판을 들어도 들어도 자신들의 버전으로 고쳐서
입력합니다.
국민들의 의식을 개선하고, 그러면 국력이 키워질 것이고, 그러면 깊이 없는 민족인 주변국은
우리에게 스스로 무릎 꿇습니다.
제가 대통령이라면 저는 장기적 비젼으로 이런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선진국을 향한) 국민 의식개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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