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언련 토론회 -
“왜 조선일보인가(Ⅱ)”
일시 : 2001. 11. 15 (목) 오후 2시 ~ 5시
장소 : 철학마당 ‘느티나무’
주최 :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토론회 구성
● 인사말 -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
● 토론회 사회 : 임종일(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집행위원장)
● 주 발제
- 테러․전쟁과 조선일보
: 김은주(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위원장)
● 보조 발제
- 남북관계․통일과 조선일보 - 김이경(통일연대 사무처장)
- MD와 조선일보 -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 미국과 조선일보 - 최민희(민언련 사무총장)
주 발제>>
테러와 조선일보
김 은 주(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위원장)
0. 들어가는 말
2001년 9월11일은 ‘사라예보의 총성이 20세기를 실제로 맞이했듯이 21세기를 실제 맞이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넘볼 수 없는 최강자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와 보복전쟁이 이어지면서 세계는 20세기를 지배했던 냉전이후 비어있던 세계질서는 반 테러라는 이름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편을 안 들면 적대국으로 간주’하겠다는 부시의 오만함과 각국의 이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이 구도가 얼마나 지속될 지는 미지수이나 한반도에 미칠 영향과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에 우리의 시각을 가진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미국의 시각으로 사건에 접근하고 있다. 범인을 예단하고 전쟁을 기정사실화 하는 가하면 평화나 인권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등 호전적이며 선정적인 보도, 부정확한 추측보도와 과장보도가 넘쳤다. 국내사정은 저만치 밀어둔 채 미국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베끼면서 연일 10개면이 넘는 지면을 배치하는가하면 정작 전쟁이 시작된 것은 3주가 지난 후인데도 테러발생 3일만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며 전쟁이 임박한 것처럼 보도했다. 개전 후에는 테러발생 당시보다는 차분했으나 아프간 난민들의 피해와 고통은 묻어둔 채 첨단무기와 전쟁시나리오로 채운 게임식 보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개전 이전 국제법 절차에 따른 처리를 요구하던 목소리가 사라진 채 전쟁을 당연시하는 것과 탄저균 피해와 관련된 보도에서 무책임한 추측보도가 난무했던 것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아울러 테러범에 국한된 공격에 한정할 것을 요구하던 사설 논조와 달리 기사에서는 근거도 없이 배후를 거론하며 확전불사를 외치는 미국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하는 이중적 태도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결국 우리의 시각은 완전히 실종된 가운데 미국언론 베끼기에 치중했다는 평이다.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미국에서 내는 한글신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미국적인’ 보도를 보였다. 미 보수세력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하며 전쟁을 부추겼으며 특히 북한의 위험을 과장하고 국내의 반전 움직임을 매도하는 등 가장 호전적인 보도를 보였다.
이 글은 9월12일부터 전쟁개시 한달 후인 11월 8일까지의 보도 분석을 통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긴장과 갈등을 조장하는 조선일보의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반대운동의 필연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1. 전쟁 부추기는 조선일보
먼저 사건발생이후 관련기사를 나타내는 ‘문패’의 변화를 살펴보자. 9월 14일 ‘공격당한 미국’으로 시작해서 15일 ‘전쟁나선 미국’으로 발빠르게 바꾸더니 개전이 늦어질 듯 하자 20일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웠다. 탄저균에 의한 피해가 확산되자 ‘생화학테러공포’로 문패를 바꾸었으나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는 쪽으로 방향이 잡히자 다시 ‘테러와의 전쟁’(10/29)으로 환원한다.
▲ 테러․전쟁 관련 조선일보 문패 변화
공격당한 미국 → 전쟁나선 미국 → 테러와의 전쟁 →생화학테러공포 → 테러와의 전쟁
위와같은 문패의 변화는 미국이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테러를 절대 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물론 그에 대한 보복에 정당성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테러발생 당일, 1면 머리제목을 <미국이 공격당했다>고 달고 1면 광고까지 포기한 채 타 신문들 보다 월등히 많은 지면을 할애, 미국과의 ‘일심(一心)’ 상태의 충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사건의 흐름을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테러발생 직후
테러발생 직후 대부분의 언론이 곧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조선은 특히 타 매체에 비해 자극적이고 아랍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가 하면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가 많았다.
12일 <미, 범인 밝혀지는 즉시 전면 보복>이라고 하여 가장 먼저 보복을 기정사실화했던 조선은 이후에도 <“테러세력 뿌리 뽑을 때까지 공격”><“미사일,공습,특수부대,지상군...모두 준비”(9/15)><부시 “산속,굴속까지 쫒아가 테러 응징”(9/17)>등 호전적인 제목들이 많았다.
또 타 매체들이 노암 촘스키나 귄터그라스를 비롯 미국내외의 신중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담으며 차분한 대응을 요구한 것과 달리 유독 미국내의 강경 보수세력의 입장 전달에 치중하며 응징을 부추겼다. 14일 7면에 <"테러리스트와 3차 대전 시작"/ "미 강력히 대응해야" 보수논객들 한 목소리>라며 강경세력의 전쟁주장을 실었다. 이 기사 바로 옆 만물상에서는 "진주만 폭격이후 미국의 진면목이 드러났다"고 전제한 후 "60년만에 다시 미국의 본성을 발휘할 기회가 온 셈"이라며 '보복'을 정당화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15일의 <"보복하려면 철저히"/강경한 미 지도층 여론>이라는 기사의 경우 '이라크 개입됐을 것' '법정 아닌 전쟁으로' '자유 위한 성전시작' 등 확인되지도 않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을 지도층의 여론으로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이규태씨는 칼럼을 통해 “극단을 오가는 기후 틀에 마음도 틀이 박혀 아랍사람들은 매사에 극단적”이며 “복수에 민감하고 호전적”이라고 전제한 후 “색출되고 있는 암살테러범들이 예외 없이 아랍인들(9/15)”이라고 주장, 극단적인 인종주의적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2) 보복전쟁 개시 이후
이번 보복전쟁은 라덴이 범인이고 탈레반정권이 그를 지원했다는 물증이 제시되지 않고 다만 ‘증거가 있다는 주장’만 반복된 채 시작되었다. 미국은 자위권의 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거치지 않았고 추가테러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한 것은 자위권 행사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높다. 그러나 언론은 미국의 발표와 주장, 공격장면을 충실히 따라가는 모습을 보일 뿐 이와 대비되는 이슬람지역의 목소리나 아픔을 보도하는 것에는 매우 소홀했다. 이런 문제를 가장 종합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은 9월의 테러보도에 비하면 차분한 태도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철저히 공격자의 시각에서 전쟁을 정당화하며 아프간주민의 피해와 고통은 외면한 채 미국정부와 혼연일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입장에 충실 - 난민피해 철저히 외면
난민의 피해상황은 외면한 채 공습위주의 보도로 전쟁의 참혹함이 가려지는 것은 언론의 공통적인 문제이다. 600만의 난민이 기아와 군사작전으로 인해 위험한 상태라는 국제기구의 호소가 있음에도 조선은 타 매체에 비해 특히 난민의 참상이나 탈레반측의 주장보도에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오폭으로 인한 피해사실이 계속 밝혀지고 있음에도 사진보도의 경우 가옥 파괴를 보도한 것은 극히 드물고 죽거나 다친 아프간 주민들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난민들의 모습조차도 23일 이후에야 가끔 보도되었다. 반면 시위를 하는 이유에 대한 별다른 설명을 달지 않으면서도 이슬람지역의 반미시위장면나 탈레반 병사들 모습은 빈번하게 보도되어 과격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특히 폭격피해와 관련된 기사들의 경우 <탈레반, 폭격참상 공개.외신에 언론 플레이(10/15)> <탈레반 측 “병원폭격 당해 100여명 사망”/민간인 100명 죽었다“미선 확인할 수 없어(10/23)”> 등 탈레반 측의 선전공세로 몰아가는 경향이 강했으며 미국이 오폭을 인정한 경우에도 하단에 작게 취급하고 있어 공습의 부정적인 부분을 덮으려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11월2일과 3일에는 연달아 탈레반정권이 공습 피해 상황을 공개했다는 사진 캡션이 실렸는데 정작 사진은 어린이들이나 안내병사의 모습이었다.
미국이 공습과 병행한 식량투하와 관련된 보도 역시 문제가 적지 않다. ‘국경 없는 의사회’ 등 국제단체들은 공습으로 인해 구호활동이 중단된 반면 투하되는 구호품은 극소량에 불과해 공습과 식량투하를 병행하는 것은 '인도적 지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보복공격에 대한 비난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조선은 <“아프간 난민에 식량공수 위해 미, 탈레반 방공망 공격계획“(10/6)><테러세력엔 미사일, 민간엔 구호품 투하(10/9)>이라고 하여 마치 식량을 공수하기 위해 공격이 필요하고 미국은 테러세력과 민간인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타 신문들이 병행투하의 기만성을 지적하는 국제단체의 비판으로 기사를 다루고 있는데 반해 조선은 <美 식량투하는 위선외교”(10/11)>라며 탈레반 대사가 인터뷰를 통해 비난하는 내용으로 보도, 국제사회의 질타가 아니라 탈레반 측의 주장으로 한정해버리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테러직후 미국의 편파적 중동정책이 원인임을 지적하기도 했던 조선은 개전 이후에는 미 항모의 발진모습이나 폭격장면 등 전황보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테러와 개전 직후 응징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무고한 피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제한적이고 신속’하게 끝낼 것을 주장했던 사설의 논조와도 배치된다. 무역센타 피해자들의 죽음을 애절해 하던 언론이 기아와 폭격속에서 죽음의 언저리를 헤매는 아프간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3) 탄저균 피해 관련 보도
미국은 물론 세계각국에서 탄저병 피해가 발생하면서 생화학무기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어가고 있다. 초기 라덴과 이라크 등이 배후로 제기되기도 했으나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문제의 균이 1980년 미국에서 제작된 에임즈균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2차 테러 가능성은 일단 접혀있는 상태다. 그러나 조선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마구잡이로 보도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17일 <빈라덴 조직 개입한 흔적/탄저균 공급자는 이라크 1차 지목>가 실렸으나 18일에는 <빈라덴 소행인가 ‘자생적 테러집단 ’소행인가 / 50년대 미국에서 채취된 것과 동종 일부 전문가 다른 테러집단에 혐의>라는 제목아래 “라덴이나 이라크와 연결시킬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며 “FBI는 자생적 테러집단”이 벌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그러나 같은 날 바로 앞면에는 <“조직적 테러다” FBI심증 굳혀>라는 제목아래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과 연결돼 있지 않은 지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널뛰기식 보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후에도 <“탄저균 이라크서 제조 가능성 커”/라덴조직은 기술상 제조 무리>라는 기사가 나오는가하면 20일에는 난테 없이 ‘천연두테러 가능성’을 제기하며 다시 라덴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9일에야 탄저균 배후수사가 국내제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으며 이날부터 ‘생화학테러공포’라는 문패가 사라지고 다시 ‘테러와의 전쟁’이 걸리게 된다. 그런가 운데 11월 1일에는 탈레반 포로의 발언을 실은 러시아신문내용을 보도하면서 <“탄저균 말고도 쓸 세균 많다”>는 제목을 달았다. 탄저균은 미국내에서 제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라덴이 생화학테러를 한 것같은 분위기를 주는 병사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탄저균과 관련된 보도가 이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미국내의 혼란과 제한된 정보가 일차적 원인이기는 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무리하게 지면메우기를 하기보다 차분하고 신중한 태도로 선별적인 보도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일 북의 생화학무기공격 가능성 보도
특히 조선일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를 빌미로 북한의 위험을 부풀리고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조선은 탄저균 테러가 일어나기 이전인 9월말부터 북한이 세계3위의 생화학무기 보유국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9월25일자 <북 테러 대비책 있나> 27일자 시론<생물테러에 대비하라> 10월11일자 만물상, 16일자 시론<화생 테러 남의 일 아니다> 17일자 테평로<테러는 심각한 안보문제>, 29일자 시론<바이오테러 대책 세워야>등에서 ‘생화학테러의 위험은 우리에게도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특히 10월 14일자 <생화학공포의 확산>이라는 사설은 미국 탄저균 공포에 대해 “테러에 의한 것이란 증거는 아직 없다지만 그렇지 않다는 증거 역시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전제한 뒤 북한이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생화학무기의 종류를 죽 나열하며 라덴이 북한으로부터 탄저균을 구입했다는 설을 다시금 강조, 위기의식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11월8일자에 의하면 주미한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확인한 결과 북한은 “지난 수년동안 어떤 테러행위에도 관련돼 있지 않”고 “오사마 빈 라덴과도 관계가 없”으며 99년보고서에 언급된 라덴과 북의 연계가능성은 “추정에 불과해 2000년보고서에는 빠졌다”고 한다.
더욱이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생화학무기의 위험은 집요하게 강조하면서도 정작 미국이 90년대 이후 대테러 예산을 크게 늘린 뒤 생화학무기를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는 는 것과 올 7월 생화학무기 금지조약을 강화하기 위한 조약초안에 서명을 거부했던 사실에 대해서 침묵, 사실을 가리고 있는 점은 특히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10월14일자에 실린 생물무기보유국 지도에도 미국은 빠져있다. 절대선과 절대악의 이분법으로 인해 객관성을 상실하고 있는 조선의 편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 ‘북 위험’ 부풀리기
조선일보가 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적대감이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미국이 테러에 대한 응징을 빌미로 뚜렷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1달이 넘게 아프간에 대한 공습을 하는가하면 제3국으로의 확전까지 주장하고 나서는 상황에서 북한을 테러의 배후나 지원국으로 연결짓는 것은 짚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 아닐 수 없다.
테러 직후 열린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정부는 남북공동의 반 테러선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대부분의 신문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입장을 밝혔다. 특히 북한이 테러 발생 당일 이례적이고도 신속하게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남북회담에 '반 테러' 암초(9/15)>라는 사설을 통해 선언을 정부의 제안을 ‘인기성 발상”이라고 일축한 채 "과거 북한이 저지른 각종 테러 사건에 대한 북측의 태도 표명 내지 사과 없이 북측과 공동으로 반테러를 선언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같은 날 <김정일 '美테러'에 침묵…카다피․카스트로 등 육성 애도표시와 대조적>이라는 기사를 실어 북한이 발표한 반 테러 입장을 깍아 내리려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북한의 테러비판성명을 “진기하고 희안”하며 “오래 살고 볼 발언”이라고 한 류근일 칼럼(10/13)에서 다시금 증명된다.
또 21일에는 북한이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돼 있다는 99년도 미국무부 보고서를 내용을 새삼 거론하는가 하면, <세계적 반테러동맹과 남북한(9/22)>사설과 <북테러 대비책 있나(9/25)>는 칼럼을 통해 “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끼여 있음”을 강조한 후 부시가 “테러리스트에 대한 지원 또는 보호를 계속하는 나라는 적대적 정권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한 발언을 인용하면서 북한이 이 범주에 “만약 해당된다면”이라는 가정법을 구사,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남북관계나 북미관계가 긴장되면 우리 경제가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 미국이 테러 지원국까지도 적으로 간주하며 별다른 근거 없이 이라크 공격의사를 밝히고 있는 시점에서 무분별하게 북을 테러와 연관시키는 것은 위험천만한 도박이라는 지적이다.
연합뉴스가 부시와 가진 단독인터뷰내용을 보도한 10월 18일자 역시 북한에 대한 불신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 인터뷰는 부시 취임이후 한국언론과의 최초의 인터뷰이지만 타사의 특종은 크게 취급하지 않는 언론사의 관례대로 대부분은 국제면 등에 기사를 배치,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연합뉴스의 보도는 오역에 의한 ‘오보에 가까운 왜곡’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은 이례적으로 1면과 5면에 배치하고 기사크기 역시 가장 크게 다루었으며 다음날 사설까지 실었다. 표제 역시 <“북 경거망동 말라”> <“김정일 도대체 알 수 없는 인물 미는 물론이고 한국과도 약속어겨>라고 달아 북한은 믿을 수 없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북 경거망동 말라”>라는 기사를 <미 의회 직원 31명 탄저균 감염>이라는 머리기사 바로 옆에 나란히 배치한 것은 미 탄저균 테러에 북한이 연관돼 있고 미국이 이를 경고하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교묘한 편집이라는 비판이다. ‘경거망동’을 어느 신문보다 대대적으로 부각시킨 조선일보는 이 용어가 오역이라는 점이 밝혀진 이후에도 ‘물론(?)’ 정정하지 않았다. 다음날인 20일에도 조선일보는 <“북, 테러지원 여부 갈림길”>이란 제목으로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김정일특집을 원문사진과 함께 싣고는 북한이 불법무기 밀매를 계속할 것이며 테러나 외국통신감청을 하고 있다는 의혹제기를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북한과 국제테러 네트워크의 연관성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증언청취를 목적으로 한 미 보수세력의 황장엽씨 초청을 성사시키기 위한 집요한 보도도 조선일보만의 특징이다. 이미 국내에 간첩이 5만명이 있다는 둥 송두율 교수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등 무책임한 발언의 주인공인 황씨를 미 보수세력과 만나게 하려는 조선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조선은 북한이 미국이 규정한 테러 지원국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과거의 행위에 대한 사과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북한 위험론을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테러지원국 규정이 미국과 우호적이거나 미국의 관심영역 밖에 있는 세력은 제외된 채 미국에 적대적인 단체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한겨레의 지적은 귀기울일 만하다. 실제 미국과 동맹관계인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정부가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급습해 1800명을 사살한 것이나 유엔병사를 살해한 친 이스라엘 민병대가 미국내에 거주하고 있어도 검거의지를 보이지 않는 점. 테러 지원국 중의 하나인 시리아가 미국의 지원으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임명된 점등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조선일보 10월17일자 칼럼에서 언급했듯 북한은 “최근 10년동안 이렇다하게 테러에 직접 연관된 일이 없다” 또 테러가 발생한 이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테러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으며 유엔에서 다시금 테러비난입장을 발표했다. 정작 조선이 문제삼아야 할 것은 북한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에 따라 편파적 태도를 보이는 미국이 아닐까?
3. 국내의 반전움직임 ‘단순 반미’로만 치부
한편 조선은 인터넷상에 개진된 일부 극단적인 주장을 진보세력의 일반적 주장인 것처럼 왜곡하거나 보복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테러지지주장으로 호도하며 테러사건에 대한 여론형성과정에서 또다시 사회갈등을 조장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9월15일자(토) 사외보의 <이번 테러, 미가 천벌 받은 것/오마이뉴스, 우리모두 게시판 일부 네티즌 반미성향 글 올려>라는 글은 "양 사이트의 게시판은 테러범에 대한 처벌이나 희생자 애도보다 미국의 외교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우세해 이곳을 주로 방문하는 이용자들의 성향이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17일(월)에는 <테러를 미화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설을 게제, "우리사회에 테러를 지지하거나 미화하는 사람들이 폭넓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두려운 일"이라며 익명공간인 온라인의 특성상 어디에나 있는 일부 극단적 주장을 일반적인 경향으로 부풀리고 있다. 특히 보편적으로 지적되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과 전쟁에 대한 반대까지 "테러 미화"나 "반미"로 몰아가는 단세포적 사고를 드러내고 있다. “테러의 동기를 헤아려야한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은 그야말로 헤아리기 어려운 노릇(22일자 만물상)”이라고 주장하는 조선의 이분법적 사고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18일자 사회 3면의 <미 테러참사 서울의 두 표정>이라는 사진보도. 이 사진은 희생자 추모위령제 모습과 미국의 보복전쟁을 반대하는 집회를 대비시켜 보복전쟁에 대한 반대가 희생자에 대한 추모나 테러반대와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교묘하게 사진편집을 하고 있다.
15일자 <증오의 면책 특권>이라는 류근일 칼럼 역시 우리사회가 극단적 증오의 싸움판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갈등을 부풀린 후 "총칼만 안든 내부적 증오가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의 장래는 보나마나 뻔한 쌍둥이 빌딩 신세일 것"이라는 섬뜩한 주장을 펴 오히려 대립과 반목을 증폭시키고 있다.
4. 선정적 보도 극심
9월19일에는 3차례나 아프간을 취재한 전쟁취재 전문가의 인터뷰기사를 실었는데 아프간의 실상과 주민들의 생각, 어려움을 담기보다는 외로움을 더 탄다거나 남자가 없다는 등의 개인적인 내용을 보도, 수준이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9월27일의 <“빈 라덴은 우울한 성격”영지 자필서명 분석>역시 흥미에 치중한 기사. 10월12일자 <돈많은 바람둥이가 냉혹한 테러리스트로>라는 기사는 오사마 빈 라덴의 전기내용을 요약한 것인데 ‘대학․청년시절 나이트클럽 창녀촌․카지노 드나들기도’‘러 마피아와 연계 마약․매춘 사업’‘97년 러서 휴대용핵 반입..북서 탄저균 들여와’등 자극적인 내용들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다른 신문들이 서평이나 북과 관련된 부분만을 ‘설’로 보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조선은 사실여부가 불확실한 내용임에도 전면에 걸쳐 보도하고 있다.
5. 맺는 말
‘전쟁이 발발하니 최초의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사건을 접한 일선 기자들의 말이다. 조선일보의 보도는 전쟁의 실체가 무엇이며 희생당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덮어버리고 있다. 균형보도, 진실보도는 간데 없이 오로지 미국의 이해와 요구를 충실히 대변하면서 냉전적 시각을 버리지 못한 채 끊임없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을 뿐이다. 조선일보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물론 세계 평화가 요원한 일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보조 발제1.
남북관계․통일문제와 조선일보
- 8.15민족통일대축전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기사! 무엇이 문제인가 -
“6.15공동선언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사무처장 김 이 경
통일연대가 조선일보의 반통일적 태도와 온갖 농간을 무력화시키지 않고서는 6.15공동선언실현과 한반도의 화해, 평화, 그리고 통일은 없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이번 2001 8.15민족통일대축전 평양공동행사를 둘러싼 수구반통일언론의 보도태도를 접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반 통일언론의 일차 공격의 초점은 ‘북이 남측대표단 지도부의 판단과 남쪽 정부의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3대헌장기념탑이 있는 개폐막식 장소에 남측대표단을 개별 개별적으로 선동하여 끌고 갔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대단히 상세하게 남쪽 정부가 3대헌장 기념탑에 가지 않는 조건으로 방북을 허락하게 된 과정과 남쪽 대표단의 일부인사가 각서를 썼다고 하는 점등을 정밀취재를 하여 보도하였다.
이 기사를 읽은 대부분의 남쪽 국민들은
<북의 태도가 남쪽 정부나 방북단 지도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대단히 무례한 태도였고 이렇게 무례한 태도를 지니게 된 것은 그들이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연방제를 선전선동하려는 통일전선전략의 일부로 민족통일대축전 행사를 이용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일보 등 수구반통일언론들은 이런 느낌들을 주기 위해 크게 두 가지의 수법을 쓰고 있다.
첫째는 마치 대단치 열심히 현장을 뛰어보고 정밀취재를 하는 듯 이런저런 자료들을 인용하면서도 실제는 어느 일방의 주장만을 편파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태도이다.
둘째로 내용의 일부를 일부러 왜곡시킨 채 그 글을 보는 독자들에게 북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갖게 하려는 태도이다.
다음기사를 참고로 하여 이 두 가지의 태도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도록 하자.
<2001년 8월 17일자 조선일보 기사>
북측은 이번에 ‘통일탑 주변에서의 행사에 일절 참석지 않겠다“는 남측 대표단의 의사를 무시하고 행사에 참석하도록 집요하게 요구했으며, 이에 남측 대표단은 참석파와 불참파로 갈리는 내분양상을 겪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고려연방제등을 상징하는 통일탑에서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쳐질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이를 허용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우리 정부의 입장과 남측대표단의 ’통일탑행사‘ 참석이 우리 정부를 곤경에 처하게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북한은 이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강곡으로 밀어붙였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린 계산된 행동이 아닐수 없다.......중략..........
.북측은 이번 행사의 취지가 ‘6.15공동선언 실천’에 있음에도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으로 갖자는 남측의 제안을 거부 ,평양행사만을 고집했고 우리 측이 기피해온 통일탑에서 공동으로 개, 폐막식을 갖자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 정부가 남측 대표단의 방북을 불허하자, 북측은 “개폐막식 행사는 우리 단독으로 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믿고 남측 대표단의 방북을 ‘통일탑 행사불참’을 조건으로 승인했으나 북측은 미리 평양시민들을 대기시켜놓고 있다가 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하자 ‘통일탑행사’ 참석을 종용했다.
여기서 조선일보는 마치 방북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실제 방북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실무회담에서 진행되었던 북의 입장과 고민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한번도 하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일방적으로 ‘북의 정치적 의도’를 운운한다.
① 북이 3대 헌장기념탑 앞에서의 행사를 고수한 것에 대한 북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려는 태도는 전혀 없다. 실무회담을 통하여 보여진 북의 고민은 이러한 것이었다.
북에서는 몇 년 전부터 올해의 통일행사장으로 3대헌장기념탑을 계획하여왔으며 올해의 통일대축전에 맞추어 그곳에서 행사를 치루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여 행사장을 만들고 가꾸어왔다. 이러한 조건에서 굳이 그 장소를 피하여할 이유가 없다고 보았다. 남쪽에서 ‘연방제’를 선동하기 위한 책략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나 북에서는 그런식으로 하자면 ‘주체사상탑’앞이라던가 ‘김일성 광장’이라던가 북에서 문제되지 않을 장소는 단 한군데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또 3대 헌장 기념탑 앞에서의 민족공동행사가 남쪽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여 정치적 행사가 되지 않고 그야말로 축전기념행사가 되도록 다양한 배려를 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② 북은 원래 3대헌장기념탑 제막식과 8.15대축전을 같은 날 바로 이어서 할 의도였다. 그러나 남쪽의 요구를 받아드려 제막식은 그 전날 하는 등 나름대로 남의 보수언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남쪽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을 상당히 보여주었다.
북도 이러한 노력과 고민이 있었으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남한의 수구 반통일 언론들은 이런 사실들에 대한 심층 취재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이처럼 마치 객관적으로 심층취재를 하는 듯하면서 어떤 한쪽의 입장만을 선택하여 대단히 일방적인 논조를 다각도로 부각시키는 조선일보의 상투적인 입장은 이번 통일대축전의 요소요소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번에는 조선일보의 인위적인 왜곡보도에 대하여 보도록 하자.
위의 기사를 읽으면 ①북이 남쪽 대표단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여 평양행사를 고수하였고 ② 개폐막식 행사를 단독으로 하겠다는 거짓말을 했다가 우리 정부가 이를 믿고 방북을 허가 남쪽의 대표단이 북에 오자마자 대표단을 통일탑행사 참석을 강요한 것처럼 되어있다.
사실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남과 북의 실무회담에서 북이 양보한 것도 상당히 많이 있고 남이 양보한 것도 상당히 많이 있다. 대회의 장소, 제목, 규모, 일정등과 관련하여 전반적으로 모든 부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장소문제와 관련하여서 남쪽은 처음에는 서울행사에도 평양의 대표가 파견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북쪽은 민족공동행사는 한 장소에서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며 올해 평양에서 행사를 하면 내년에는 서울에서 진행하는 식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이러한 수정안을 남이 받아들여 올해는 평양공동행사가 이루어진 것이었지 북이 남쪽 대표단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여 평양행사를 고수한 것이 아니었다. 또 개폐막식 행사를 단독으로 하겠다는 이야기를 북은 한번도 한적이 없다. 13일날 북으로부터 온 팩스에는 계폐막식 행사는 북의 단독 주최로 할터이니 남쪽 대표단은 작년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때와 같은 방식 즉 참관의 형식으로 와주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공동주최가 부담스러우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었던 것이지 남쪽 대표단이 오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남쪽의 국민들이 8.15민족통일대축전을 둘러싼 다양한 고민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지도 않았고 나아가 인위적인 왜곡보도를 함으로써 남쪽의 국민들이 북에 대한 옳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북과 화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참주선동을 보도하였다.
그런데 더욱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남쪽 대표단이 남쪽의 정부와 한 약속은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남쪽 대표단이 북쪽과 한 약속에 대한 신의문제에 대하여서는 단 한번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의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더구나 공식적인 대표와 대표사이의 약속은 반드시 존중되고 지켜져야만 한다. 실제로 3대헌장기념탑에서의 행사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정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인간에게 있어 약속에 대한 신의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신의문제가 공정하게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남쪽 정부와의 약속만이 아니라 북쪽과는 어떤 약속이 있었는지에 대하여서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8.15방북이전에 남쪽대표와 북측 민화협의 두 차례의 실무회담을 통하여 3대헌장기념탑이건 아니건 장소를 불문하고 평양에서의 민족공동행사에 참가하겠다는 합의를 한바 있다. 즉 3대헌장 기념탑 앞이 아니면 더욱 좋기는 하겠지만 설사 3대헌장기념탑이라고 할지라도 남측대표단은 그곳에서 민족공동행사를 한다는 것은 북과 남의 합의사항이었던 것이다.
남쪽으로 돌아와서도 추진본부 대표단은 이 입장을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밝힌바 있다. 8월 13일에 이어 14일 기자회견에서까지도 3대 헌장 기념탑 앞이라는 장소가 불허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밝히고 남쪽 정부가 이를 허락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쪽 정부는 이상한 조건부 허락을 하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3대헌장기념탑 앞에서의 장소에는 참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방북을 허락하였다.
북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남쪽대표단이 실무회담에서 3대헌장기념탑 앞에서의 행사장소를 바꾸지 않더라도 참가하겠다는 합의를 한 사실, 그리고 14일까지도 기자회견을 통하여 추진본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민족공동행사라고 명명해놓고 막상 당일 날 평양까지 와서 행사장에는 가지 않겠다니 이것이 상식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었을까? 남쪽의 수구 반통일 언론들은 하나같이 남쪽의 대표들이 남쪽 정부와 한 약속만 보도할 뿐 북과 어떤 약속을 하였는지에 대한 보도를 하는 곳은 없었다. 남쪽 정부와의 약속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남쪽의 대표로서 북에까지 와서 북과 한 약속에 대한 신의 문제는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한다면 이것은 전혀 객관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상에서 간단하게 이번 방북사건을 둘러싸고 조선일보가 얼마나 교묘하게 기사내용을 일방적으로 편파보도하고 또 심각하게 왜곡보도를 자행하였고 또 얼마나 일방적인 가치관만을 선정보도 하는 지에 대한 예를 들어보았다.
이번 8.15민족통일대축전은 56년만에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적인 민족공동행사였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지 않는 외세의 갖은 간섭과 정부의 동요속에서 이루어진 어려운 행사였다. 이 행사가 진정으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앞당기는 것으로 되기 위하여서는 이번 방북을 둘러싸고 어떤 어려움들이 존재하였으며 이에 대한 남과 북 그리고 추진본부내에서의 고민들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언론의 정말 깊이 있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신중한 접근들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는 6.15공동선언의 의미처럼 북을 민족의 반쪽,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함께 자주적으로 힘을 합하여 통일하겠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을 상식이 없는 집단, 일방적으로 자기네들의 입장만을 선전 선동하려는 불순한 무리라고 보는 전제자체가 6.15공동선언이후의 화해와 통일의 시대에 전혀 걸맞지 않는 태도이다. 6.15공동선언이 실현되기 위하여서는 북에 대해 좀더 유연한 태도의 변화를 요구하기 이전에 우리가 북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이 말은 단지 북을 무조건 존중하고 믿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56년동안 서로 다른 체제속에서 살아온 남과 북 사이에는 정서상 사회통념상의 많은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에 대해 우리 식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을 정말 주관적인 것이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번 평양대축전에 참가했을 때 남과 북의 체제와 가치의 차이는 상당히 많은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즉 남쪽의 다양한 사회단체의 대표들은 모두들 북의 자신과 비슷한 분야의 대표들을 만나보고 싶어하였다. 분단 56년만에 대중적으로 함께 하는 처음의 자리였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측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북은 남쪽보다 고도로 조직화되어있는 사회이기 떄문에 모든 일정과 역할이 미리 조직되지 않으면 당장에 그 누가 대표로 나와서 어떤 문제들에 대하여 자기 견해를 자유롭게 이야기 할수 있는 시스템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북측의 대표들은 남측의 자유분방하고 다양한 요구를 최대한 성의를 다해 수용하려는 태도가 역력하였으며 가능한 모든 요구를 수렴하고 싶어하였으나 북의 성격상 대단히 불가능한 측면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남쪽 학생들은 김일성 대학에를 가보고 싶어하여 여러 차례 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김일성 대학의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하여 전원이 농촌에 지원활동을 떠난 상태였고 학교는 텅텅 비어있었다. 남쪽의 대표들이 학교를 방문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행사를 함께 참가하고 환영해 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이유로 남쪽 대표단의 요구가 전부 수용된 것은 아니었다. 남쪽이라면 방중이라고 해도 학생들이 한 명도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외의 다양한 요구에 대해서도 전화한통이면 그 누구라도 금방 나올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이런 남쪽의 상식은 북으로서는 그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런 조건의 차이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북한의 대표들이 아마 대단히 관료적이고 불친절하게만 보일 것 같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남쪽만의 잣대로 북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북의 사고와 방식을 존중하고 남과 함께 할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것일 것이다.
필자가 여기에서 이렇게 지리한 예를 들은 것은 조선일보 등 수구․반통일 언론의 보도태도의 근본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조선일보는 북을 대화의 파트너로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없다. 조선일보는 2000년 7월 11일자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설에서 그들의 통일관을 밝힌바 있다. 잠깐 인용해보자.
조선일보는 정녕 통일에 반대하는가? 결코 아니다. 다만 저들이 말하는 통일과 조선일보가 말하는 통일이 다를 뿐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로 볼 때 통일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남쪽의 체제와 이념에 따른 통일이 있고 북쪽의 이념과 주의에 따른 통일이 있을 수 있다. 두 체제가 절충되어 중간에서 만나는 통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일 저들이 말하는 통일이 북의 체제와 이념이 주도하는 통일이라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런 통일에는 반대한다. 만일 저들이 말하는 통일이 남쪽에 의한 통일이라면 그것은 불감청 고소원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바라는 통일은 분명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단계를 거쳐 남북합의로 이루어가는 통일이다. 따라서 누구든 통일이냐 반통일 ...........중략.............
우리는 조선일보를 ‘반통일’로 매도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통일이 북에 의한 통일이라면 당신들은 대한민국을 들어먹자는 것밖에 되지 않으며 평화공존이라면 조선일보는 반통일이기는커녕 통일지향신문이 된다.........
지금 북에서도 그리고 남쪽의 어떤 통일단체에서도 북의 체제와 이념이 주도하는 통일을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로의 체제가 다른 조건에서도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존중하고 통일하는 방안을 찾자고 할 뿐이다. 오히려 대립구도는 이런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통일방식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남이 북을 흡수통일하는 형태를 주장할 것인가의 차이이다. 조선일보는 이것을 교묘하게 은폐시켜 북에 의한 통일인가 아니면 평화공존인가 하는 식으로 왜곡날조하고 있다. 백번천번 양보해서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평화 공존하는 통일이어야 한다고 못을 박고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평화공존하기 위한 대전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어야 하지 않을까? 존중하는 데서 기본은 서로의 차이점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같은 것은 어차피 이해가 되는 것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즉 평화공존하기 위해서도 북한 사회에 대해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태도는 너무나도 당연한 전제라는 말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율배반적으로 한번도 북한 사회를 이해하고 수용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여준적이 없다.
언제나 남쪽 보수층의 시각을 들이밀고 이것도 안 하는 북쪽과 무슨 대화냐고 윽박지를 뿐이다. 최근에 와서도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보복전쟁에 남쪽 정부가 찬동하여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걸고 북의 동향운운하며 대책회의를 일삼고 전방철책과 해안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남쪽의 태도가 북을 얼마나 긴장시키고 격노하게 하는 가에 대한 일정한 배려도 없이 오로지 이산가족연기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태도에서도 우리는 조선일보의 이 같은 태도를 잘 볼 수 있다.
북은 통일문제가 언제나 미국 등 외세에 의해 방해받아왔다고 믿고 있고 이것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지금 이순간에도 남과 북의 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것은 부시행정부의 등장이후 북미관계가 막혔기 때문이고 북을 테러 지원국이라고 명명하는 미국에 의해 남북관계가 방해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고 있는 사살이다. 미국은 아프칸사태마저 북과 연계시켜 보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이런 상태에서 이남정부가 북에 대한 경계를 강화한다는 것은 6.15공동선언 1항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하여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것에 대한 정면의 위배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사실에 대하여 완전히 외면한다. 본질에 대하여 외면하고 늘 북한을 공격할 먹이감을 찾을 뿐이다.
사회주의 몰락이후 북한사회가 고립무원에서 어떻게 자력갱생하고 살아남기 위하여 고난의 행군을 걸어왔는가에 대하여서는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북한은 앞으로도 절대로 망할 일은 없을 것이며 그런 북한과 함께 통일하기 위하여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하기 위하여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왔는가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조선일보에게 북은 언제나 ‘곧 망할 조짐이 임박한, 그래서 더욱 호전적이고 미치광이 짓만 일삼게 된 지도자에 의해 다스려지는 상종 못할 집단’일뿐이다. 이런 조선일보의 지독한 편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반론을 내세우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대상이 정부이건 통일운동단체이건 개인이건 간에 모조리 북에 의해 사주당하는 빨갱이로 분류된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일보가 상업성을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것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북에 대한 공격을 할 때는 대단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지만 이것은 상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외세와 수구․반통일세력의 입장을 대변하여 조금이라도 더 반공 반북의식을 강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조선일보는 그런 짓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하면서 외세와 수구․반통일세력의 비위를 맞추어 왔고 그 결과 온갖 특혜를 받으면서 언론권력으로 성장하게되었다. 그들이 기사를 문화적으로 풍부하게 세련되게 또 사람들이 읽어서 재미있게 써서 그렇게 성장한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언론권력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은 철저히 언관유착과정을 통하여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조선일보는 남한 국민들의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의식을 완전히 말살시키고 오로지 지배자의 논리만이 횡행하게 함으로써 지금의 이 말도 안 되는 분단사회구조, 억압구조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힘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일보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모든 부정과 독선과 힘의 근원은 바로 이 반북이데올로기를 생산, 선전보급하고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강한 전파력으로 인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문제점을 규탄하고 폭로하는 그 중심점은 조선일보가 북의 보도와 관련하여 저지르는 온갖 범죄와 비리에 대한 것으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조선일보가 퍼뜨리는 음모와 거짓선전을 무력화시키지 않고서는 이 땅의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문제의 핵심은 남과 북이 서로 존중하고 화해하며 함께 단결할 방도를 모색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가로막는 제반 걸림돌과의 투쟁을 통하여 국민들이 무엇이 건전하고 합리적이며 올바른 견해인가에 대한 진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근거와 힘을 축적시키는 것이다.
그 핵심에 조선일보 영향력 무력화 및 통일 시대의 올바른 대북관은 무엇인가에 대한 기초를 확립하는 투쟁이 있다. 조선일보와의 투쟁은 민족의 운명의 사활을 건 대단히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며 글을 맺는다.
보조 발제2.
MD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의 사설 비교 분석 -
정 욱 식(평화네트워크 대표)
9.11 테러와 미국의 보복 전쟁으로 야기된 ‘테러와의 전쟁’ 국면은 세계 평화 및 국제사회의 안보 논쟁의 중심축을 MD에서 테러리즘으로 옮겨 놓았다. 9.11 테러 발생 직전까지만 해도 부시 행정부는 밖으로는 러시아와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면서 이들 국가가 MD 구축을 위해 필요한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수정, 혹은 파기 및 MD 구축을 용인하지 않을 경우 일방적으로 행동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었고, 안으로는 MD 예산을 삭감하고 ABM 조약을 위반할 수 있는 MD 실험 실시전에 의회 승인을 명문화하려는 민주당과 정파적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와 보복 전쟁은 미국 국내의 정당간의 관계는 물론, 미중, 미러관계의 기본틀을 바꿔 놓고 있는 것이다. 미국 언론 및 민간 싱크탱크들이 주도한 MD 논쟁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국제 사회에서도 MD에 대한 관심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MD가 테러 및 전쟁에 가려져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다고 해서, 부시 행정부가 ‘스타워즈(MD의 별칭)의 꿈’을 접는다거나, MD 구축에 따른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국난 수습을 위해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인 충성 맹세를 강조하는 미국 국내의 분위기가 평온을 되찾고, 국난을 당한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국 및 러시아 등 대표적인 MD 반대 국가들이 MD가 자국의 안보와 국익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닫게 될 경우, MD 논란은 또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9.11 테러 발생 이후 미국 안팎의 일부에서 “MD가 얼마나 한심한 발상인지 증명됐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MD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의 주요 신문들의 MD 관련 보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안에 대한 전문성의 부족과 이 문제를 한반도 평화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자주적 시각의 부재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언론시장에서 보수적 시각을 대변해온 조선, 중앙, 동아와 상대적으로 진보적 시각을 대변해온 한겨레의 사설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 신문의 MD 보도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물론 이 분석이 분석 대상을 4개 신문으로 한정하고, 사설외의 기사를 다루지 못함으로써 한국 신문의 MD 보도 문제점을 일반화하는데 한계가 있다.
다시 보는 ABM 조약 파동
MD 문제가 한국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게 된 계기는 2001년 2월말 한러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한러 공동성명’에서 NMD 구축에 반드시 필요한 탄도미사일방어(ABM)조약 개정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당시 공동성명에서 72년 (미․소간에) 체결된 ABM 조약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핵무기 감축 및 비확산에 대한 국제적 노력의 중요한 기반이라는 데 동의했다며 이를 보존하고 강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를 구축하려는 미국에 대항해서, 러시아와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ABM)조약 개정을 반대하는 선에 선 것은 외교적으로 미숙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조선일보 2월 28일 사설), “(ABM 조약 지지와 NMD 반대는 관계없다는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조항을 공동성명에 굳이 포함시켜 과연 러시아로부터 얻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정부는 외교적 실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중앙일보, 3월 1일자 사설) 등 ABM 조약 지지를 정부의 외교적 실책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의 경우 조선, 중앙이 한러 정상회담 결과를 ABM 조약에 한정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전체적으로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진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고 ABM 조약에 대해서는 “두 정상이 ABM 조약의 보존, 강화를 언급함으로써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추진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것은 러시아쪽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면서, “(미사일방어체제문제가) 러시아 중국 북한과의 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안보에도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사안인 만큼 태도 표명 유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기회에 에둘러 밝힌 것이 오히려 낫다고 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시 ABM 조약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지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언론들은 한국정부가 ABM 조약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결국 NMD에 대한 반대 의사를 나타낸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고, 러시아 언론은 푸틴의 외교적 승리라고 자축하면서, 한국, 러시아,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ABM 조약 관련 내용은 UN, G8 정상회담 등 국제사회의 합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일 뿐, NMD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하면서, '지지'나 '반대'를 명시적으로 표명하지 않고 다만 "미국의 입장을 호의적으로 이해한다"고 입장 정리함으로써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시점이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첫 한미정상회담이 임박한 시기였기 때문에, 해외 언론은 물론 한국의 언론조차도 ‘한국 정부가 러시아의 손을 들어줬다’고 비치는 것이 엄청난 정치외교적인 부담이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미국이 NMD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1972년 구소련과 체결된 ABM조약을 개정, 혹은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ABM 조약에서는 100기 이상의 탄도요격미사일 배치 금지, 요격체제 건설 한 지역으로 제한, 영토 방어용 요격체제 건설 금지 등을 명시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추진된 지상NMD는 적의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보호하기 위해 250기의 요격미사일을 알래스카에 배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기 때문에 ABM 조약을 위반하게 된다. 부시 행정부는 지상NMD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강력한 요격체제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ABM 조약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당시 정부의 해명은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NMD와 ABM 조약, 그리고 이를 둘러싼 미러간의 갈등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외교적 자질 부족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거나, 한겨레가 논평한 것처럼 ‘에둘러서’ NMD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이 미스테리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한러공동성명 발표전에 김대중 정부가 NMD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1월초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NMD에 대한 입장 표명을 피하면서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중재 의사를 강력히 밝힌 바 있고, 이정빈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 역시 "NMD 추진에 앞서 원인제거를 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한 것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우회적으로 NMD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대중 정부가 한러 공동성명에 ABM 조약에 대한 지지를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NMD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은 NMD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했다기 보다 NMD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우려를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NMD 구축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근본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는 김대중 정부의 우려와 NMD 구축으로 미국과의 전략적 균형이 무너질 것을 우려하는 러시아의 국익이 일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당시 한국언론 보도의 문제점은 우선 전문성의 부재를 들 수 있다. ABM 조약에 대한 해설을 물론 NMD가 구체적으로 ABM 조약을 어떻게 위반하는지, 미러간의 주요 쟁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NMD는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정부의 ‘외교적 실책’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심지어 당시 한 방송사는 톱뉴스로 NMD 논란을 보도하면서 NMD의 개념을 "예를 들어 중국이 일본에 미사일 공격을 가하면 공중에서 이를 요격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기본적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NMD는 미국 본토를 방어한다는 개념이고, 이 방송사가 예로 든 것은 NMD에 한발 앞서 추진되고 있는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이다.
한러, 한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ABM 논란이 불거지자, 조선, 중앙, 동아는 김대중 정부의 외교적 실수와 외교팀의 자질을 집중적으로 문제삼았다. 조선일보는 2월 28일 사설에 이어, “反 NMD, 러시아 손 들어준 한국정부”(3월 1일), “실수 연속의 NMD 대응”(3월 3일) 등 계속해서 사설을 내보내면서, 김대중 정부를 집중적으로 성토하고 있다. 특히 3월 1일자 사설에서는 “기회있을 때마다 한․미공조를 내세우던 김대중 정부가 왜 미묘한 문제에서 미국과의 의견교환없이 미국 반대쪽의 손을 들어주는 경솔한 선택을 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며 김대중 대통령에게 반미 혐의를 씌우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NMD에 대한 한국 정부의 딜레마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한미관계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ABM 조약과 NMD 문제를 가장 활발하게 다룬 신문은 중앙일보였다. 사설에 있어서도 “한러외교, 현실을 직시해야”(3월 1일), “NMD논란과 한미정상회담”(3월 5일), “한국외교, 자찬할 때인가”(3월 10일), “외교안보팀 쇄신하라”(3월 13일), “이정빈 장관의 말뒤집기”(3월 24일), “우려되는 부시의 강성외교”(3월 31일) 등을 잇따라 내보내면서, 정부의 외교적 실책을 질타했다. 중앙일보는 다른 신문에 비해 NMD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한국 정부의 딜레마를 적절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와 대북관계를 풀어나가는데, 당시 이정빈 장관과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을 수장으로 하는 외교안보팀은 한계가 있다며 전면적인 쇄신을 주장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 빈도수는 현격하게 적었으나, 중앙일보와 비슷한 논조를 보여주었다.
보수적인 시각을 대변하는 조선, 중앙, 동아가 ABM 조약 및 NMD 파동으로 이어지는 국면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김대중 정부에 압박을 가했다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시각을 보여온 한겨레는 대단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한겨레는 3월 1일자 사설를 제외하곤, 이 문제를 다룬 사설을 내보내지 않았다. 이른바 조중동이 NMD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고, 특히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미관계 우선주의’를 내세워 NMD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이나, 사실상의 지지를 요구한 반면에, NMD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보여온 한겨레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에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지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겨레를 포함해 이 시기에 한국언론이 보여준 가장 큰 문제점은 NMD가 한반도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부시 행정부가 NMD와 북한문제를 어떻게 연관시켜 사고하고 있는지, 이에 따라 한국의 바람직한 대응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거의 다루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NMD에 대한 반대나 비판 논리를 내세우는데 있어서도, NMD가 ABM 조약을 비롯한 국제군축조약을 위태롭게 하고, 새로운 군비경쟁을 야기하며, 막대한 자원 낭비를 가져온다 등 일반적인 평가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NMD 구상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점을 적절하게 비판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를 한반도 문제와 연관시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조선, 중앙, 동아의 경우, 한러, 한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나 김대중 정부의 외교안보팀의 문제점 대한 비판은 적절한 측면이 있었으나, 문제의 본질을 ‘외교적 실책’에만 맞춤으로써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한겨레를 포함한 한국 언론이 이 시기에 NMD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NMD에 대해 우리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적절하게 지적했더라면, 결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안일한 태도와 보수 언론의 ‘DJ 때리기식’ 보도, 그리고 한겨레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도의 부족 및 태만이 불러온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시의 MD 구축 선언에 대한 한국 신문의 시각
2월말과 3월초 한미, 한러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불거졌던 NMD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5월 1일 NMD와 TMD를 통합해, 육-해-공, 그리고 우주로까지 확대되는 대규모의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천명하면서 또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상기한 네 개 신문도 5월 3일에 일제히 사설을 게재해 이 문제를 다뤘다. 조선일보는 “한국의 ‘줄서기’ 압박하는 美 MD"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미국이 이 MD가 단순히 미국의 방어망이 아니라 우방국의 방어’라는 개념까지 확실히 추가한 것은 그만큼 우리를 여기에 포함시키려는 강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군비경쟁을 피하면서 북한과 화해로 가려는 우리의 입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고 평가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어떤 이유와 어떤 계산으로 여기에 대답하고 대응할 것인가를 냉철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사안의 긴박성을 지적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각각 “MD대처, 외교력 발휘해야”, “미국의 MD계획과 한반도”라는 제하의 사설을 내보내면서, 부시 행정부의 MD 추진 배경과 의도, 그리고 그 파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고, 한겨레는 이들 신문보다 훨씬 강한 어조로 MD 구상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신문들 모두 한국이 처한 딜레마의 지엽적인 것만 지적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다만, 중앙일보의 경우 “미국이 대북 포용정책을 다시 정립, 북한을 국제사회의 선량한 이웃으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MD체제 구축보다 훨씬 돈이 덜 들고 평화체제를 한반도에 항구적으로 구축하는 길이라는 점을 정부는 미국 요로에 충분히 설득해야 할 것이다”며 김대중 정부의 대응 방안을 제시해 다른 신문과의 차이를 드러냈다.
이들 신문의 MD 관련 보도에서 드러나고 있는 가장 큰 오류는 NMD와 TMD가 통합된 MD를 대륙간탄도미사일요격용으로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가 “미국이 MD 추진을 공식 천명했지만 실제 배치까지는 갈 길이 멀다”며 “아직은 여유가 있는 만큼 우리 정부는 치밀하고 현명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한 것이나, 중앙일보가 “한반도를 겨냥한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에 대해서는 우리도 물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보호를 상정한 제한적 성격의 미사일 방어망인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로 충분하다고 본다. TMD와 지구적 차원의 MD체제 참여를 구별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7월 17일 사설)며 TMD와 MD를 분리해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나, 조선일보가 “미국정부는 미사일 방어체제를 2004년까지 구축할 것으로 내비치고 있지만 기술적인 문제와 함께 엄청난 자금을 확보하는 문제가 걸린 만큼 이것을 조기에 현실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고 지적한 것은 이들 신문의 MD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반영한다.
부시 행정부의 MD 구상의 요체는 클린턴 행정부 때 분리되어 추진된 중단거리 미사일 요격용인 TMD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요격용인 NMD를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단거리 미사일 요격체제는 2004년이 아닌 내년부터 배치될 예정이다. 2004년은 MD체제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이 시작되는 해이다. 주한․주일미군에 배치될 예정인 패트리어트 최신형 PAC-3와 이지스함에 요격 미사일을 장착하는 해상요격체제, 보잉 747기에 요격레이저를 장착하는 공중방어체제(ABL) 등은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 요격을 위한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미국의 무기 배치 계획은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 요격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혹은 “미합중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미국이 갖는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MD 관련 무기 체계를 한반도와 그 인근에 배치하려는 것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의 MD 구상은 북한위협을 단순히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우선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완전 무력화시키겠다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MD 배치 계획은 “MD를 배치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본질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러한 오판에는 MD와 북한위협론이 얼마나 끈끈한 관계에 있는지, MD 배치 지역에서 한국에 차지하는 군사지리적 이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MD 무기체계에는 10-20년 걸려 배치될 것도 있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배치될 수 있는 무기들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신문들은 이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을 대신해서
이와 같이 MD와 북미관계 사이의 고도의 긴장관계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낳게 하는데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시가 지난 6월 6일 대북대화 재개를 선언한 이후 주요 언론은 왜 부시 행정부가 북한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대화 의제를 제시하고 있는지 통찰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와 미국의 MD 구상이 밀접히 연관된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MD에 얼마나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 및 정책상의 오판은 크게 세 차례에 걸쳐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부시 행정부 출범을 전후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두고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결국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두 번째는 2001년 3월을 전후한 한러, 한미정상회담에서 MD 문제가 불거지자, MD는 본질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머지 않아 북한위협론과 MD는 분리될 수 있으며, 이렇게 되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2001년 6월 부시 행정부가 대북 대화 재개를 선언한 것을 두고 부시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전환한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인식 및 정책상의 오판은 앞서 말한 것처럼 MD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강한 열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 군사전략에 정통한 한 정부기관의 연구자가 “놀랍게도 부시 행정부의 MD 구상은 거시적인 군사안보전략의 한 부분으로 추진되고 있다기보다는 MD를 고정변수로 두고 군사안보전략을 짜맞추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부시 행정부가 최우선적인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MD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한낱 희망사항에 불과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MD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북한위협론’을 강조하고 또 한반도와 그 인근에 우선적으로 MD 무기체계를 배치하려는 것은 북한위협론이 단순히 MD의 명분이 아니라 압도적인 공격력과 MD와 같은 방어체계를 통해 북한위협에 대처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시 행정부가 추구하는 대북포용정책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반도는 어쩔 수 없이 MD 태풍권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MD의 초점이 북한 미사일을 무력화하는데 맞춰짐으로써 북한의 안보딜레마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MD의 우선적인 배치 지역으로 한국이 선택됨으로써 대북관계 개선과 한미동맹관계 유지․강화를 동시에 추구해온 김대중 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은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남북한의 딜레마는 2001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후 숨가쁘게 달려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또한 냉전시대와 유사한 북-중-미, 한-미-일간의 대립구조가 새로운 형태로 부활함으로써 분단을 넘어서려고 하는 남북한의 구심적 노력을 가로막는 결과는 낳게 될 것이다. 이러한 거시적인 상황 변화는 남북한이 냉전시대의 관성대로 동아시아 냉전구조에 기대어 국익과 안보를 추구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관성을 넘어서 자주적인 문제해결방식을 추구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할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플로리다 팜비치의 석연치 않은 개표결과가 한반도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야말로 ‘나비 효과’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조 발제3.
미국과 조선일보
최 민 희(민언련 사무총장)
1. 조선일보 대미관의 변화
1) 1920년대 조선일보의 대미관 - 이념적 반제 반미노선에 기초
“...역사상 일개 미명을 표창함에 과함이 없는 것으로 다만 자기의 국토를 확장코저 할 뿐이요, 평화와 비평화에 하등 관계가 없으며 자기의 국방을 공고코자 할 뿐이요...평화의 천사라 함은 영악한 전신(戰神)이 됨에 과함이 없나니...” (1923년 5월 21일자 사설 ‘열강의 국방과 외교1’)
“...미국이 세계적 패권을 장악하고 서서히 그 고답적인 미국 제일주의를 내두르면서 자못 세셰적 대풍진을 일으킬 의사와 실력을 갖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1925년 1월 4일 - 5회에 걸쳐 연재 ‘금년의 세계, 미국사관(私觀)
“...소위 제 2회 군비축소회의는 아름다운 정의와 평화라는 구실아래서 사실에 있어 미국의 군비를 확장하는 회의에 불과한 것이오 또 일면으로는 신무장평화에다가 신가면을 씌워가지고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영구히 보전하자는 강폭자들의 음험한 계획에 불과한 것을 안다... 아앙 살벌의 참화와 폭력지배의 사실은 언제나 지상에서 영멸할 것인가...” 1925년 6월 ‘제2군축회의 - 신무장평화의 가면극’
“..영미양국이 지금 기(基) 필요에 의하야 혹은 평화와 인도의 가면하에서 협조적 정책을 운위하나 경제적 각축전이 점차 심각 구체화함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는 최후 몰락의 운명로로 질주하게 될 것이다...” 1925년 7월 6일 ‘장래할 영미 자본주의의 충돌’
“...미국인은 기독교를 신봉하고 또 정의 인도를 역설한다. 그들은 현실을 향략하려는 피상적 인도주의 자들이다” 1926년 3월 7일 ‘조선과 기독교전 - 동대문 부인병원사건에 감하여’
이처럼 1920년대 조선일보는 ‘반제’노선에 기초해 미국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다 같은 제국주의로 인식하고 있었다.
2) 일제하 미일 전쟁기의 대미관 - 영미귀축론에 근거한 친일적 반미론
“ 인도에는 삼백년 지나에는 백 년 일본에는 칠십년 이래 영제국의 검은 손길이 뻗혀 있었고 또 뻗히려고 했습니다. 영국은 무력과 자본으로써 침입을 꾀하였습니다. 그들 영미의 제국주의는 일언으로써 말하면 동양을 노예화하고 착취를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동양은 영미의 착취제압의 철제밑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해방운동은 정의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전 동양이 일어서서 싸와야 할 전쟁을 일본이 도맡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대 미영전과 우리의 각오’ 조광 8권 1호 1942년 1월호
이러한 조광의 친일반미적 보도는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하면서 발표한 포고문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동양을 지배하려는 과도한 야망의 실현에 광분한 미영 양국은 장개석 정권에 지지를 보내며 동아시아에 혼란을 가중시켰다...생존과 자위를 위해 우리 제국은 무력에 호소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일제말 본격적인 친일행각에 들어간 조선은 미국을 ‘동양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일본전쟁의 당위를 설파하고 있다.
3) 해방 후 미군정하 - 반공주의적 친미론
“... 그리고 통위부장 발표문 중 다시 우리의 주의를 끄는 바는 폭도측에서는 ‘단서폐지, 경찰 무장해제 등 무리한 요구를 표방’하였다고 했으니 그 맣ㄴ은 폭도 청년들이 과연 어느 정도로 단선반대론에 투철했을 까. 과연 남로당 계열의 책동이랄까 또 공산세력이란 것이 제주도에 그렇게 집중적으로 생사를 결하려고 할 만큼 열렬하게 침투되어 있었을까...” 1946년 8월 17일자 사설 ‘제주사태 수습에 관하여’
해방정국 좌파의 미국관을 잘 보여주는 ‘노력인민’은 “ 미제의 분할 침략으로부터 조국의 민족주권을 방어하기 위해 싸운다”고 평가하며 4.3항쟁을 자세히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그것이 우호적이든 비우호적이든 사실전달이든 4.3에 관한 심층보도가 거의 없다. 가끔 보도되는 기사들은 미군정발표를 단순보도하거나 단신으로 보도하는데 그쳐 민족사의 큰 대사건이었던 사건의 심층보도를 외면했다. 한반도의 ‘종주국’이 미국으로 바뀌면서 조선일보의 태도는 180도 전환하게 된다.
4) 70년대 이후 - 친미적 용미론
해방이후 1990년도까지 조선일보의 대미관은 큰 틀에서 보면 친미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기별 사안별로 미국과 약간의 마찰을 빚기도 한다.
1945년 ~ 1990년 조선 . 동아 사설을 분석한 자료(‘미국에 대한 한국신문의 보도성향에 관한 연구 - 동아일보 .조선일보 사설을 중심으로- 중앙대학 신문학과 박사학위 논문, 1992)에 따르면 미국관련 총 1142개 사설(조선일보 519, 동아일보 623)중 호의적 사설 48.4%, 비호의적 사설 19.1%로 분석되었다. 중립적 사설은 32.5%로 나타났는데 사실 중립적인 사설도 우회적 우호사설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ㄱ. 군사 안보관계 사설 ..대미 우호적 내용으로 일관
ㄴ. 경제 . 무역관련 사설..비호의적 사설이 통상압력이 증가한 5. 6공화국 이후 40 -50%로 증가
ㄷ. 정권별 분류 제 1공화국 (67.83이 호의적 사설.8.70이 비호의적 사설) 제3공화국 (47.57대 8.95) 제 5공화국(46.87대 26.05) 제 6공화국(35.83대 39.17)
그런데 이 논문에서 말하는 비호의적이라고 하는 표현도 전통적 의미의 ‘반미’는 아니다. 여기서 비호의적이라고 분류한 것도 친미적 테두리 안에서의 반미 혹은 용미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비호의적 사설이 많다고 분류된 경제 무역관련 사설에서도 양 신문은 “미국의 지나친 통상압력이 국내의 반미운동에 구실을 주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금하지 않았다.
2. 조선일보 친미 사대주의를 이해하게 해 주는 보도들
1) 보도사례 1
“ ..미국무성도 정치테러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폭력행위가 한국 국민들이나 현재의 한미관계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누가 보아도 지금이 한미관계는 어떤 폭력적 호소나 충격에 영향을 받을 허약한 기반위에 있지는 않다. 올해는 양국의 수교 백주년을 기념하는 댜채로운 행사가 마련되고 있다. ‘팀스피리트 82’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이땅에서 진행되고 있고 이달말께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가 서울에서 열리는 등 그 어느때보다도 양국간의 안보협력체제는 공고하고 긴밀한 형편이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어욱더 한미관계를 이간하려 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깨려는 망상과 다름없다...”
- <누구를 위한 방화인가> 1982년 3월 21일자 사설
“학생들은 반미라는 포괄적 구호속에 주한미군철수 주장을 애써 감추고 있는 듯하다. 미국 대사관이나 미국 문화원에는 화염병과 돌을 던지면서 미군시설에는 일체의 행동을 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군철수’에 대한 국민의 안보인식을 피해가려는 속임수일 뿐이다. 그들이 주장이 ‘반미이기는 하나 미군철수는 아니다’라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말의 뜻이 포괄적인 ‘양키고우홈’은 외쳐도 주한미군 철수를 매일이 구호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주장인 ‘미국의 축출’을 의미하는 것이며 우리가 명백하게 반대하는 것은 미군의 철수이며 한반도 평화의 파괴이다...”
- <반미의 실체> 1988년 5월25일자 사설
전통적 친미관점에서 미국의 광주사태 침묵, 전두환 인정 등에 대한 문제제기로서의 미문화원방화사건을 예단한 사설과 학생들의 미국에 대한 문제제기의 본질이 ‘미국 축출에 있다’고 주장, 학생들의 미국에 대한 문제제기를 ‘극좌적인 것’으로 몰아붙이는 사설이다.
이는 조선일보의 ‘이간적 보도’를 잘 드러내주는 기사들이다.
2) 보도사례 2 ...미국의 대외적 침략주의에 대한 보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건이 그와 같은 결단으로 사태에 대비하고자 한 것은 중남미에서 대소를 막론하고 새로운 쿠바의 출현을 용허할 수 없다는 결심에서 였을 것이 명백하다. ..이러한 대소투쟁의 관점에서 레이건은 만난을 무릅쓰고 그레나다에 상륙명령을 내렸을 것이 확실하다...”
- <미국은 왜 그레나다를 - 레이건 행정부의 결단과 시련> 1983년 10월 27일자 사설
“..페르시아만 전쟁은 바로 그 지역에만 국한되는 남의 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페르시아만의 전쟁에 가답하는 다국적 군은 나름대로 국익을 가지고 있다. 한국도 매 한가지다. 유엔의 결의를 이행하려는 미국의 전쟁목표가 성공될 때 미국의 공약과 미국의 안보우산이 강력함을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유엔과 미국을 도와야 한다. 무력으로 침략하려는 독재자의 야욕은 반드시 분쇄된다는 역사적 교훈이 살아 숨쉴 때 한반도의 일차적인 안보도 튼튼해질 수 있다..”
- <전쟁이 터졌다> 1991년 1월 17일자 사설
“...아무리 명분이 거창하다 해도 테러는 결국 인간성을 거부하는 폭력행위 그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미국 대테러의 귀결> 1998년 8월 10일자 사설 (케냐와 탄쟈니아 미 대사관 테러사건 때 미국의 ‘응징론’에 힘을 실어주며)
위 사설들은 미국의 국가정책적 전쟁과 테러에 대하여는 지지하고 미국에 대한 테러에는 ‘응징’을 주장하는 이중잣대가 잘 드러나는 기사들이다.
3) 보도사례 3 - 주한미군관련보도
“... 마지막으로 용산기지를 시민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지나치게 잡다하고 의욕 과잉적인 시설물을 만드는 것도 재고 있기 바란다. 지금도 남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8군기지는 인접 육본자리에 비해 이미 훌륭한 녹지대이다. 공연히 잘못 건드려 기왕의 역사적 병둔(兵屯) 기념지를 훼손할까 염려스러워 하는 말이다...” 1990년 6월 28일자 사설
“..한국인들은 지금 한국에 와 있는 미국인들로 인해 몹시 감정이 상해있다. 감정이 상했다기 보다 화가 나 있다나 표현이 더 적절할는지도 모른다. 이런 감정은 한국에 와 있는 일부 지각없는 미국인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미국인 전체로 일반화되는 감정의 몰입상태로까지 번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성난 한국인> 1988년 9월 27일자 사설
“...최근 군산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미군병사의 대민범죄는 가뜩이나 전환기를 맞고 있는 한미관계에 대단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이것은 (미군 범법자의 신병에 관한 문제)는 아주 직접적으로 민족적 차별감을 자극하는 악성소재라는 것을 한미 당국은 깊이 인식해야 한다... 한미관계의 본질이나 ‘반미’의 정치적 뿌리는 별개로 하고 미군들이 일반 범죄행위는 엄중히 다스리도록 하되, 상호간에 사실을 과장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는 한미관계 유지에 중요한 흠을 남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이런 사건들이 단순. 우발성에서 조직. 음모성으로 변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조장하는 동기 역시 경계해야할 것이다...”
<법 앞에 평등한 미군범죄> 1989년 2월 24일자 사설
“...한미간에 취할 태도는 이번 사건이나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유사한 사건을 되도록 국지화하고 단순 사건화하는 것이다. 도저히 일상적인 일로 볼 수 없는 인종차별적 저의가 분명한 것을 제외하고는 ‘미군이 한국인을 때렸고 한국인이 미국인을 폭행했다’는 식이 아니라 ‘존이 김을 때렸고 김이 존을 밀쳤다’는 식의 접근방법이 그 어느때보다 요구되는 때이다...”
<이태원사건> 1990년 4월 14일자 사설
“...연일 전개되고 있는 크고 작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과 반미시위는 비판적 여론을 등에 업고 인권. 민족적 긍지, 환경보호라는 가치영역에까지 접합되어 있었다...이들이 생각은 주한미군을 한반도 점령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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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조선일보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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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7
작성일 : 2008-06-18 22: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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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명박아소랑해
'08.6.19 7:26 AM아홉.. 숨차네요...
다 읽기도 힘들어요.
찌라시 주제에 뭔말이 이렇게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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