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일이예요.
퇴근길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는데, 2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더니 휠체어를 타신 아저씨 한 분이 무릎위에 짐을 가득 싣고 타시는겁니다.
한 눈에 봐도 뭘 팔러다니시는 분이셨습니다.
검정색 가방안에 칫솔, 장갑, 양말... 뭐 이런것들을 상가로 팔러 다니는 분이요.
쓰~윽 둘러보니 제가 필요한 것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 팔아드리려고 쓰지도 않는 행주를 하나 골랐습니다.
다소 비싸다고 느껴지는 가격 3,000 원을 치르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남편이 그러는거예요.
“나, 당신이 그거 왜 샀는지 안다.”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옛날 이야기 하나 할께요.
이제는 12살이 된 저희 아이가 7살 때 일이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예약한 병원에 가는 길...
제과점 앞을 지나가는데 밖에 휴지를 잔뜩 싣고 계신 몸이 불편하신 아저씨가 서 계시고, 가게 안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아마 화장지를 팔러오신 아저씨에게 안 산다고 하시며 화를 내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학원에 앉아있다보면 참 별별 사람들이 하루 걸러 옵니다.
별로 질이 좋지 않은 물건들, 화장지, 작품 팔러오는 미대생들, 선교단체라고 와서 영어로만 떠들다가 가는 필리핀남자, 그냥 도와달라고 오는 사람들...
제과점 주인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죠.
저는 그냥 지나치는데,아이가 궁금해하며 물어보았습니다.
제게 상황을 들은 아이는 아저씨에게 휴지를 사자고 말했지만 병원 예약 시간이 임박한데다가, 커다란 휴지 묶음을 들고 다닐 일도 귀찮고 또 찌는듯한 더위에 약간 짜증이 났던 저는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제 손에 이끌려서 오는 내내 계속 뒤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생각 없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휴지를 사 주겠다고 약속해버렸습니다.
“엄마 꼭 ! 꼭이야.”
병원에서 내내 아저씨가 없어질까봐 안절부절하던 아이는 진료가 끝나자마자 아이는 제 손을 끌며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뛰어서 제과점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저씨가 사라진 뒤 였습니다.
아직까지 그 곳에 계실 리가 없지요.
집으로 가자는 제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한 아이는 정신없이 상가 주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하더니 상가 옆 동 나무그늘에서 쉬고 계시는 아저씨를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
땀범벅이 되어 기어이 5,000원 짜리 휴지를 사서 행복하게 안고 오는 아이를 보고 저도 기뻤습니다.
저희 아이는 남자아이인데도 참 마음이 약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 .... 4살 땐가 그 쯤에 지하철 역 바닥에 있던 아저씨 바구니에 가방속에 있던 음료수 한 캔하고 초코파이 한 개를 넣어 준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웃기도 했었는데요, 항상 그런 분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추운 겨울에 노점상 할머니한테 좋아하지도 않는 옥수수를 몽땅 사오는 바람에 남편과 둘이서 며칠동안 먹어 치워야 했고 학교에서 해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을 할 때마다 저금통을 다 털어가는 바람에 담임선생님께 확인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맨날 반 여자아이들에게 맞고오는 아이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때리는 것 보다는 낫다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의 아저씨를 아이와 함께 만났다면 분명히 뭔가를 사야했을겁니다.
엘리베이터에 아저씨가 타시는 순간 아이생각이 났거든요.
저희아이가 지금은 캐나다에 있는 이모집에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떠났고 올해 여름에 돌아옵니다.
엄마 바쁘니까 혼지 가겠다고 하길래 정말로 혼자 보냈습니다.
난생 처음 타보는, 12시간 걸리는 비행기를 혼자 타고 가게 만든 엄마랍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르침을 주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참 많습니다.
세상살이에 찌들어서 마음을 잃어가는 엄마에게 어쩌다 한 번은 남을 생각하게 만드는 우리 아이가 오늘따라 참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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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약한 아들이야기....그냥 넋두리입니다.
지니큐 |
조회수 : 2,283 |
추천수 : 29
작성일 : 2007-03-10 16: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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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김수열
'07.3.10 5:58 PM참 고운 마음씨네요. 저도 그 비슷한 성격이고 제 아들또한 지니큐님 아드님과 비슷하기에 이해가 갑니다.
또 한편으론 이 험한 세상에 나가 앞으로 얼마나 속상할 일이 많을지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자기만 알고 찬바람 도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혼자 위로합니다. ^^2. ..
'07.3.10 7:32 PM에이 ... 맘 약한 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낄 줄 아는 따뜻한 감성의 아이네요
잘 키우셨어요3. plumtea
'07.3.11 12:58 AM맘약한 아들 이야기라길래 심약한 아들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훌륭한 아드님 이야기였네요^^ 아드님 같은 사람이 세상에 가득했으면 합니다.4. 또로맘
'07.3.11 11:54 AM저도 맘 약한 아들가진 엄마입니다. 늘 맞아서 어떨 땐 너도 같이 때려주라 말 하고싶습니다. 님의 아들은 틀림없이 '아름다운 청년'이 될 것 입니다. 얼마나 보고 싶으실지요..
5. 꿀돼지
'07.3.11 12:01 PM맘이 찡해요~ 우리딸도 그랬음 좋겠어요~ ^^ 부럽네요~
6. 초코봉봉
'07.3.11 2:10 PM많을 걸 소유한다는 게 행복이 아니드라구요.
얼만큼 어떻게 줄 줄 아느냐~~이게 행복으로 가는 길인걸요.~~
아이를 가르치며 나이드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배우며 늙어가는 거 그게 부모인가 봅니다^^7. 늘푸른호수
'07.3.12 4:02 PM저도 비슷한 아들을 두었기에...지니큐님 맘을 알것 같습니다.
8. 피글렛
'07.3.13 1:06 AM지금은 아드님 마음이 약해 보일지 몰라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강한 청년으로 클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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