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상에서 남편이 가장 쉽고 편해요.
애초에 만남부터 너무 쉬웠어요.
한 몇개월 작정하고 꼬셔보려고 했는데 삼일만에 넘어왔거든요.
결혼한 지금도 제가 산책하고 싶다고 하면
"나 지금 산책하려고 했잖아"라고 하면서
본인이 뭘 하고 있었든지 벌떡 일어나 옷 갈아입고요,
외식 메뉴 정할때도 제가 먹고 싶은걸 말하면
본인이 하루종일 먹고 싶었던거라고 해요.
제가 누구한테 부탁을 잘 못하고 일을 혼자서 해내는 편인데
번거로운 일 있으면 "남편뒀다 뭐해?"라며 본인 시키라고 하고
길을 갈때도 "난 여보의 가방셔틀"이라며 제 가방을 굳이 굳이 들어줘요.
남편이 그렇게 나오니 가방을 그냥 맡깁니다만
전 지갑이니 핸드폰이니 꺼낼때마다 매우 번거롭긴 해요.
어젯밤에 밖에서 만나 집에 오면서 대화 나누다가
"여보가 나에게 많이 져줘서 우리가 안싸우는것 같아"라고 말하니
남편은 부부사이에 이기고 지는거 없다고, 져도 지는게 아니라고 하네요.
"아니 여보가 약간 억울해도 내가 예민한 상태라서 그냥 넘어가는거 없어?"라고 재차 묻자
본인은 바람이 불면 그런가보다 하고 바람에 기대는 것일뿐
원래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아니라고 가슴을 펴며 얘기하는 모습이
왜인지 정말 웃겨서 까르르 웃었어요.
전 사실은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못받고 자라서 (사는게 고달프고 화가나있는 분들이셨어요)
남편과 시가를 만난 후에야 가족이 이런거구나 알게된 사람인데요,
결혼 후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된게 감사하다고 자주 생각하긴 했지만
봄 밤의 골목, 남편이 말하고 내가 웃음 터지던 그 순간이
별것 아닌데 오래 기억날것 같아요.
뭐 그정도 가지고 그러냐 욕하지 말아주시고
나에겐 더 멋진 남편이 있다고 같이 자랑 해주세요. 듣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