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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고 싶어하는 그 분께

조회수 : 733
작성일 : 2026-02-28 04:31:30

엊그제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은 댓글 달아 드릴까...? 하는 중에 지우셨네요.

지난 번에 달린 댓글을 봤는데 댓글들이 별로 친절하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었는데

올리신 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는 내용이 댓글의 주 내용이었죠?

 

지난 번 올린 것에서 달라진 게 없는, 즉 수정한 것도 아닌 걸 다시 올리셔서 왜지? 궁금했고요.

사실은 저도 읽어보고 '하려는 말이 뭐지?' 생각이 들기는 해서, 조금 다듬을 수 있는 길을 알려 드릴까 싶기도 해요.

 

일상의 끄적임을 낙서가 아닌 시로 만들고 싶다면 '내가 이것으로 하려는 말이 뭘까'를 조금만 더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꼭 하려는 말이 있다기보다는) 한 장면을 묘사하려고 한 거다, 하는 대댓글을 다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그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로 포착하고 싶었을 땐,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걸 꼭 줄줄 늘어놓지 않더라도(시는 오히려 함축을 지향하니까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죠) 읽었을 때 은은하게 그 뜻이 느껴져야 해요.

자녀의 먼지 묻은 트레이닝복에서 강아지처럼 뛰어놀았을 사춘기의 무해한 시간을 읽었다든가

낡고 닳은 남편의 옷에서는 고된 일상과 책임감을 읽었다든가.

그리고 빨래 바구니 맨 밑에 깔린 레이스 손수건으로는, 존재감은 작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 있어서 이 가족들을 떠받치고 있지... 하는 주부의 고운 손길을 나타내고 싶었다든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겠죠, 그 장면을 포착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런데 쓰신 것으로만 보면 그냥 물건의 나열이에요.

위에 제가 쓴 건, 혹시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하고 저 혼자 생각해 본 거지 시에는 그런 느낌이 별로 없었어요.

 

파란 하늘

파란 파도

쏴아쏴아 소리 

여기, 양양

 

이런 식으로 나열만 해서는 시가 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사물을 묘사하더라도, 좀더 생각하고,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내가 그 사물을 보고 떠올린 것을 담을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단어/단어/단어를 끊어서 아래로 늘어뜨렸다고 해서 그게 되는 건 아니죠.

 

엊그제 쓰신 글에서는 시 쓰기 시작한 지 보름 남짓 되었다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초보자가 처음부터 아주 잘 쓸 수는 없을 테니까, 한 가지 팁을 드리면

-이렇게 묘사하는 식으로 쓰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그렇게 쓰고 싶다면 맨 끝에 정돈하는 시구를 하나 만들어 붙여 줘 보세요.

예를 들어 그 빨래 바구니 시의 말미에

 

'저마다 살아낸 다른 하루가

한 바구니에 담겨 햇살을 받고 있다'

라든가...

 

'아빠 내가 한 골 넣었어!

먼지에 뒹군 막내의 체육복

 

소매 끝이 닳아빠진 남편의 윗옷이

체육복을 폭닥 감싸안고 있다'

 

이런 걸 써서 마무리했으면 좀더 정돈된 느낌, 그리고 '아, 하고 싶은 말이 이런 거구나' 하는 인상을 주며

시를 마칠 수 있었겠죠.

 

위의 '체육복을 폭닥 감싸안고 있다' 뒤에

'어디선가

웃음소리 들린 듯 만 듯'

이런 걸 붙여도 좋을 거고요. 어떤 선생님은 '그거 사족 같아요, 안 붙이는 게 좋겠어요~.' 할 수도 있고요. ㅎㅎ

 

 

즉, 눈에 보이는 것을/장면을/물건을 

묘사하며 시를 써 보려는 것은, 뭐 좋다, 그러나 시인의 정서를 담은 마무리 문장을 따로 생각해 보시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나아가서, 묘사하며 시 쓰는 것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엔 시를 좀더 발전시켜 보세요.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담는 거예요. 최대한 간결하게.

 

시골에서 한글 이제 배워서 시 조금씩 쓰는 할머니들 얘기가 다큐로 나온 걸 몇 번 본 적 있는데요.
(다 다른 동네, 다른 할머니들 얘기)

어떤 건 정말 눈물나게 좋았어요. 그 할머니들이 시 쓰는 교육을 따로 받아서 그런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었다기보다는,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썼으니 그게 전달된 거 아니겠어요?

그런 식으로... '내 눈에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나아가 

'내가 이 시에 담고 싶은 말'을 해 보는 쪽으로 더 가 보시라고 권해 봅니다.

 

 

할머니들 시를 얘기하다 보니 생각난 영화의 한 장면이 있는데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영화에서(여기서 아마 배우 강말금이 처음으로 대중에 얼굴을 널리 알렸을 거예요. 그 후로 잘 돼서 너무 좋아요.) 배우 윤여정 씨가 찬실이(강말금)의 셋방 주인집 할머니로 나와요. 이 할머니가 서툴게 시를 쓰고, 그걸 아주 천천히 읽어요. 그 중 인상깊은 구절이 이거였어요.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화 속 찬실이도 울고 영화 보고 앉아 있던 저도 울고. ㅎ 

사람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죠. 꽃은 계절마다 피고 또 피는데.

떠나간 그리운 사람(들)을 '그립다'는 말을 하나도 쓰지 않고도 얼마나 절절히 그리워하는지를 말해 주는 한 줄이었어요.

 

물론 이건 실제로 할머니가 썼다기보다는 아마 대본을 쓴 감독이 썼겠지만...

이런 게 시가 된다, 하는 걸 말하고 싶어서 얘기해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잘 쓰고 싶다면(잘 쓰고 싶으신 거 맞죠? 그러니까 봐 달라고 올리시는 거 아닐까요)
시를 많이 읽으세요. 너무 뻔한 얘기 같지만 이만 한 불변의 진리도 없을 거예요.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습니다.

요즘 나오는 젊은 시인들의 시집도 좋고, 유명한 시인들의 오래된 시집들도 좋아요.

많이 읽으면 시가 마음에 다가와 담길 거예요.

충분히 채워지면, 저절로 흘러넘칠 수 있게도 되지요. 그게 시가 될 거예요.

 

 

아까는 잠이 안 와서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 너무 늦었네요. 

늦게라도 보시길 바라며 저는 이만. ㅎ

IP : 112.146.xxx.207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원글은
    '26.2.28 6:33 AM (220.85.xxx.165)

    못 읽었지만 이렇게 애정이 담긴 댓글을 읽을 수 있어 행운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보다 내가 내 이야기를 써냈다는 기쁨도 크지요. 시를 쓰신 원글님 시작하셨으니 정진하셔서 행복한 시 많이 쓰시길 응원합니다. 시쓰기에 대해 이렇게 좋은 생각을 나눠주신 원글님 내내 편안하세요.

  • 2. 엄지척
    '26.2.28 6:34 AM (211.212.xxx.29)

    우와..
    정성글 감사해요.
    어쩜 이리도 따뜻하고 깔끔하고 쉽게 잘 전달하시는지.
    저도 시 많이많이 읽고 싶어졌어요.

  • 3. ㅇㅇ
    '26.2.28 6:52 AM (223.38.xxx.85)

    글 올린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글 읽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참 좋아요
    덕분에 저도 많이 배워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 4. 강이
    '26.2.28 7:35 AM (115.138.xxx.199)

    저 역시 이런 댓글 읽을 수 있는 행운아네요.
    원글님 댓글님들 모두모두 좋은 하루 보내셔요

  • 5. ㅈㅅㅇ
    '26.2.28 8:06 AM (211.234.xxx.168)

    이 또한 어설픈 평가와 조언이네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정신 제대로 박혀야 됩니다. 어떤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그 다음입니다. 똑바로 철학을 해야 뇌가 제대로 돌아가고 그다음에 언어 선택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냥 그 사람이 쓴 신은 자기 감성 또 자기 감상 네 아무렇게나 적은 거고 그래서 이런 평가 또한 무의미한 잘난척입니다.

  • 6. ㅇㅇ
    '26.2.28 8:19 AM (220.82.xxx.66)

    너무 따뜻한 글이네요. 저도 시를 읽어보고 또 써보고 싶어졌어요. 감사드려요^~^

  • 7.
    '26.2.28 8:20 AM (220.117.xxx.100)

    이런 정성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쓰신 글에 고요한 주말 아침부터 어설픈 평가와 버럭질을 거침없이 던지는 사람은 뭔가요
    잘난척이란 말은 본인에게 되돌려드립니다
    말 한마디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음을 확실하게 상기시키는 댓글이네요

    원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시를 쓰려고 해본 적은 없지만 가끔 내 마음이 흘러넘쳐 몇줄 적어봅니다
    물론 시도 아니고 시쓰려는 연습도 안해서 시라고 할 수도 없지만 어설픔 속에 진심이 담겨있는 제 글이 좋을 때가 있어요
    꾸미지 않고 마음 그대로를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천재도 고민을 하고 창작의 고통을 느끼는데 우리같은 사람들이야 열심히 써보고 고민하는게 필요하겠죠
    그런 과정 또한 나름의 가치가 있고 시가 아닌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봅니다
    오늘 새벽 검푸른 하늘보며 음악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떠오른 생각들을 적어두었는데 저도 아침시간에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다듬어서 기록해 두려고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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