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하다가 할 얘기 떨어지거나 애들이 너무 딴짓하고 졸면 옛날 얘기같은 거 찰지게 해주는 선생님들 가끔 있었잖아요. 고등학교때 국어선생님이 뜬금없이 해주신 얘기가 아직도 기억나요.
어느날 아버지와 아이가 길을 가고 있었대요. 가다보니 길에 무슨 뽑기같은 걸 하는 좌판이 있었는데요, 1등 상품이 자전거였어요. 안그래도 자전거가 갖고 싶던 아이는 아버지에게 뽑기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평소엔 인자하고 왠만하면 오냐오냐 하시던 아버지였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안 된다, 다음에 하자, 하고 허락을 안 해주셨어요. 아이는 낙심해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고요.
그 다음날 또 아버지와 그 길을 가는데 또 같은 좌판이 벌어진 거예요. 아이가 제발 한번만 뽑기를 하게 해달라고 조르자 그 날은 아버지가 그래 한 번 해 봐라 흔쾌히 허락을 하고 돈도 내주셨어요. 아이가 공들여서 뽑기를 하자 1등상이 나온거예요. 그토록 갖고 싶었던 자전거! 아버지도 흐뭇해 하시면서 넌 참 운이 좋은 아이구나! 하셨대요. 아이는 평생 그 순간, 그 말을 기억했겠죠.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그런데, 선생님 말씀은, 물론 그건 아버지의 선물이었다는 거죠. 뽑기 좌판을 본 첫날 아이한테 허락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나중에 좌판에 돌아가서 딜을 하시고 미리 승부 조작을 하셨던 거예요. 자전거 값도 지불하고요. 다음날 아이가 1등에 당첨된건 아버지의 기획과 뽑기 아저씨의 협력으로 이뤄진 행운의 작품이었다는 거죠. 왜 아버지는 그랬을까요. 내 아이가 '나는 운이 좋은 사람, 뭐든 뜻을 가지고 하면 이뤄지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선물해주고 싶어서 그랬다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 이 얘기를 들었을 땐 그게 뭐야? 싱겁네 그러고 넘어갔는데요.
나중에 어느 행복 전도사 강연을 아침 방송에서 들었는데 비슷한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어느날 친구들이 태몽 얘기들 하는 걸 듣고 엄마한테 달려가서, 엄마 나는 태몽이 뭐였어? 물었더니 엄마가 얼버무리면서 글쎄 뭐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그러셨대요. 그러더니 다음날 나 네 태몽 생각났어. 엄청나게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황금 마차가 동네에 들어섰는데 누가 탔을까 궁금해서 다 따라갔다고, 그 안에 탄 사람은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겠지 하고 엄마가 일등으로 따라서 달리는 꿈이었다고. 분명 네가 크게 성공한다는 뜻이 아니었겠냐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태몽은 따로 있었는데, 오이밭에서 오이따던 꿈인가 그런 소박한 거라 그것보단 아이한테 꿈을 심어주고 싶어서 엄마가 하루 걸려서 지어낸 태몽이었다는 거예요. 번쩍번쩍한 황금 마차꿈. 아이가 나는 필히 크게 성공할 사람이라는 희망을 주고 싶어서요.
십대 아이를 키우는 중년이 되고 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다시 생각나네요. 난 잘하고 있나. 우리 부모님은 정말 잘 하셨네. 뭔가 걱정되는 상황이 생겨도 예전에 이모가 유명한 점쟁이한테 가서 물었더니 나는 뭘해도 잘하고 평생 돈 걱정 없이 살고 물흐르듯 편안하게 살 팔자라고 했지. 이번일도 잘 풀리겠지. 길에가다 넘어지면 엄마가 돌뿌리를 손으로 때리면서 막 뭐라고 하셨던 기억나요. 어디 우리 애기 가는 길을 막냐고 천벌을 받으라고요. 누구라도 너 막는 놈 있으면 엄마한테 얘기만 하라고요.
요새 말로 하면 가스라이팅일까요. 하지만 그런 긍정의 에너지가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뭘해도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