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이예요
성실하지만 자기 일만 너무 열심히 하느라 아내는 그냥 집에 있는 의자처럼 조용히 제자리에 있길 바라는 남편이랑 25년 살았어요. 이제 퇴직 앞두고 한직으로 물러나니 제가 보이는 건지. 아님 제가 아쉬운건지. 눈치를 좀 보긴 하네요.
두 아이 다 대학생이네요.
오랫만에 친정 형제들 만나고 돌아가는 지하철 인데 집에 가기 싫어요. 동생들을 만나니 내 청춘이 소환되고 그래도 나도 한때 빛나던 때도 있었는데....
애써도 소용 없는 융자투성이 전세집에 낡아가는 몸, 의무만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 같나봐요.
왜 집에 가기 싫고 그냥 이밤 밖을 정처 없이 헤매고싶은지 모르겠어요.
어릴적에도 지독히 싸우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참 힘들었어요. 오늘 동생이 그러네요.
언니가 대학을 가서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도 집중을 못하고 막 울었다고.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엄마가 너무 불쌍하고
이렇게 집밖으로 나와있어도 아버지한테 혼나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주사에 이유없이 맞아야하는 따귀며...
오늘 그 아버지가 약해빠진 몸으로 계신 요양원에 다녀왔어요. 아버지가 지독히도 미워하고 못살게군 엄마는 진작에 돌아가시고.
전 술도 담배도 안하는 남편을 골랐는데
24년 벽앞에 서 있는것 같다 제 마음이 다 녹아 없어질 때쯤이야 남편이 저를 돌아다 보네요. 이제 저는 다른 방향을 보고 혼자 걸어가려 하는데. 이혼을 의미하는건 아니지만요.
그냥 집에 가기 싫은 날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