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이나 노덕술과 같은 친일파들이 이승만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이들이 좌익을 색출한다는 명분아래 이승만의 정적들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친일파에게 독재자의 존재는 구원이었으며, 반대로 민주주의는 공포였다. 이것이 바로 사이비 공안세력의 탄생 배경이다.
종전 후에도 ‘빨갱이’는 거의 다른 인종으로 간주되었다.
이웃 부족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들이 먹을 게 없어지는 사막지대 가뭄 때의 야만스런 부족들처럼, 종족이 다른 부족은 인간으로 보지 않고 먹어 치워버리는 식인종 부족들처럼, 이 땅의 우익들에게 빨갱이는 죽여도 괜찮고 고문을 하고 온갖 인권유린을 해도 괜찮은 다른 인종이었다. 그리고 이 땅의 민초들은 서슬 퍼런 그 기세에 눌러 그에 동조하거나 침묵했다. 심지어는 국가 범죄에 자신의 부모형제자매를 잃은 유족들까지도 자기 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니었다는 말을 거듭거듭 되뇌며 자신을 세뇌시켰다.
대한민국은 반공의 천국이 되었다.
대규모 집단학살과 뒤이어 정착한 맹신적 반공주의에는 당연히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랐다. 일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보신주의,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방어심리, 자기 가족밖에 모르는 가족주의, 사회 문제나 사회적 의무에 대한 무관심과 무소신과 무책임, 가진 자, 힘센 자에게 굴종하는 비굴함, 정도보다는 편법을 좇고 기만도 서슴지 않으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영악한 물신숭배와 권력추구, 웬만한 인권유린에는 눈도 깜빡 안하는 극도의 인권 불감증, 극단적 잣대로 사상과 이념과 양심을 백안시하는 지적 풍조, 민주적 원칙과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지역부터 전국까지 극우패거리들이 판치는 패권사회 등등이 모두 그 유산이었다. 한국전쟁 전후의 100만 민간인학살은 이렇듯 우리 사회를 불구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반공의 천국이 되었고, 이 나라에는 합리적 사고는 물론 중도적 사고조차도 설 땅이 없었다. 대다수의 대한민국인은 일종의 정신적 불구자였다.
한국전쟁은 일종의 '도박' 이었다.
한국전쟁은 해방공간의 난맥상을 세심하게 풀어내는 대신 일거에 폭력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일종의 ‘도박’ 이었다. 그 책임에서는 북도, 남도, 미국도, 소련도, 중국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결과로서, 남북 분단이 고착되고, 남쪽에는 극우반공체제의 기반이 굳혀졌으며, 미국은 여전히 남한의 강력한 후견자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유족회" 부분 발췌 https://goo.gl/Jrrv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