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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줄 알았던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묘비가 실물로 확인됐다. 변변한 묘비도 없이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시에 묻혀 있던 홍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1951년 고려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최초의 묘비다. 묵직한 철로 제작한 묘비의 크기는 세로 44㎝, 가로30㎝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전체 묘비의 앞 부분으로 한글로 ‘저명한 조선빨찌산대장 홍범도 묘’라고 쓰여 있다.
홍범도 장군 묘비는 홍 장군의 삶 만큼 곡절이 많았다. 홍 장군은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홍 장군 집 근처에 임시로 묘지를 만들었다가 종전 후 크질오르다시 중앙공동묘지로 이장했다. 하지만 이내 무덤이 꺼지는 문제가 생겼다. 이를 안타까워한 고려인들이 홍 장군 서거 8주기에 ‘홍범도장군 분묘수리위원회’를 만들고, 묘를 단장한다. 이번에 발견된 묘비는 이때 세운 것이다.홍 장군 서거 40주기를 한 해 앞둔 1982년, 고려인들을 중심으로 묘역을 본래의 구석진 곳에서 조금 더 앞쪽으로 옮기는 이장 작업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흉상 및 추모비 등이 건립됐는데 1951년에 세웠던 묘비가 갈 곳이 없어졌다. 이를 안타까워한 당시 ‘카자흐스탄 홍범도 기념사업회’ 회장 김 레프 니콜라예비치씨가 묘비를 받아 자신의 집에 보관했다. 이후 묘비의 존재는 까맣게 잊혔다.
2000년대 이후부터 홍 장군 유해 송환 추진 등 기념사업이 활발히 진행됐고 2021년 광복절에 홍 장군 유해가 봉환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카자흐스탄 현지 묘역에는 기념관이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숱한 정부 관계자, 정치인, 기자들이 카자흐스탄 현지를 찾아 홍 장군 관련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김 레프 씨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왔지만 정작 홍 장군을 기린 묘비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더라”고 말했다. 40여년 만에 김 레프씨를 찾아 묘비의 행방을 물은 것은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를 찾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김동우 작가였다. 한글날이었던 지난 10월 9일 김 작가는 김 레프씨를 만나 홍 장군의 묘비를 확인했다. 김 작가는 “오래된 흑백사진으로 된 홍범도 장군의 묘비를 본 적 있는데, 거기 쓰여 있는 글귀가 너무 강렬했다. 묘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니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며 “이 묘비가 다시 세상 빛을 보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묘비 행방에 대한 단서를 잡아갔다. 그러다 이번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작업에서 운명처럼 묘비를 찾게 됐다. 묵직한 묘비를 들어 올리는데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리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