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이 저랑 한 살 차이인데 1월생이라 학번이 같고 같은 학교에요. 지금으로부터 이십년도 한참 더 전에(정확히는 안쓰려고요, 혹시 몰라서) 그 사촌 남동생이 제 기숙사 룸메이트를 보고 사랑에 빠졌어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제 사촌동생이 외모는 훨씬 나았어요. 과, 동아리 할 거 없이 여러 여학생이 대시할 정도로요. 제 룸메이트는 외모는 평범 쪽에 가까운데 빨간머리 앤이 떠오르는 분위기였어요. 씩씩하고 솔직하고 긍정적인...제 기숙사 친구들이랑 사촌의 친구들이랑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사촌이 완전히 반했던 것 같아요. 제가 둘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는데, 그 룸메이트가 만나고 오더니 좋은 친구로 지내기로 했대요. 이런 남자가 왜 나를? 싶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지만 연애감정은 안든대요.자기도 이유를 모르겠대요. 뭐 그럴 수 있죠. 만인의 연인 연예인도 호불호가 갈리니까요.
근데 그 후로 사촌동생이 연애를 안하더라고요. 제가 걔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서 종종 마주쳐도 여친이랑 있는 걸 못봤어요. 사촌이지만 어려서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형제처럼 컸는지라 속내 얘기하는 편이었는데 여자 얘기 나오면 말 돌리고 그 아이 어머니인 이모도 저한테 오히려 물어보시더라고요. 몇 년 전에 이모 돌아가셨을 때 제가, 이모가 너 결혼 많이 바라셨다 하니 처음으로 말 돌리지 않고 자기도 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비혼주의냐 왜 결혼 안했냐, 선도 많이 보지 않았냐, 하니(선호도 높은 직업이라 선 자리가 많이 들어온 걸로 들었음) 농담처럼 첫사랑을 못잊어서? 그러더라고요. 첫사랑이 누군데? 하니 누나도 아는 사람, 그러는 거에요. 장례식장에서 상주와 오래 나눌 대화는 아니라 그러고 말았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진담이면 이게 말이 되는 소린지, 그 둘은 두어번 만난 게 다인데 그걸 못잊는다고? 어이가 없었어요.
그 룸메이트와는 지금까지 아주 가끔 연락하는데 얘도 연애사가 순탄치 않더니 12월에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 친구가 몇 년 전에, 자기가 만난 남자들 중에 네 사촌이 제일 괜찮은 남자였는데 그 땐 눈이 나빴나,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그 때라도 둘이 다시 만나게 해줬어야 하나 부질없는 생각이 드네요.
절절한 첫사랑과 결혼해서 소 닭 보듯 하는 사이가 된 저는 사랑이란 게 있기나 한가 싶은데 사회생활 멀쩡히 하고 분명한 이성애자 남자가 저럴 수도 있나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