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이다. '
군대 간 아이가 자대 배치받은 후론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훈련병 가족 커뮤니티 앱 '더 캠프'를 13개월 만에 다시 열었다가 이런 울분 섞인 포스팅을 여럿 봤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해병대 채 상병 특검' 부결에만 정신이 팔렸는지, 입대 열흘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육군 훈련병의 기막힌 죽음에 대해선 형식적인 추모 메시지 한 줄 달랑 내놓고 관심을 끄다시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앱의 자유게시판은 지금 훈련병을 죽음으로 내몬 해당 중대장(대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 요구와 함께 온통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상적인 훈련 중 발생한 피치 못할 사고가 아니라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가 벌어진 정황이 속속 사실로 확인된 탓이다. 게다가 군이 사망한 훈련병과 같이 훈련받은 병사들이 아니라 본인 신상이 밝혀질까 불안을 호소하는 문제의 중대장을 보호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왜 입대 10일만에 죽어야 했나
간부의 '화풀이 대상' 삼은 의혹
시대착오적 병사 학대에 분노
지난 26일 밤 육군의 첫 공식 발표는 "훈련병이 군기훈련 중 쓰러져 치료를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해 이틀만인 25일 사망했다"며 "군기훈련이 규정과 절차에 맞게 시행됐는지 면밀히 조사 중"이라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시각 커뮤니티엔 이미 '(완전군장에) 책을 더 넣어 40㎏ 만들어 메고 뺑뺑이와 얼차려를 시켰고, 다리 인대 근육 다 파열됐는데도 게거품 물고 상태가 악화한 후에야 이송돼 골든타임을 놓쳤다, 소변으로 까만 물이 나왔다'는 구체적 내용이 공유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틀 뒤인 28일 부검 결과, 갑작스런 무리한 운동과 과도한 체온 상승 탓에 근육이 녹아내려 콩팥을 망가뜨리고 까만색 소변을 보는 '횡문근융해증' 소견이 나왔다. 또 이날 육군이 해당 중대장과 부중대장(중위) 2명에 대해 과실치사와 직권남용 가혹 행위 혐의 의견을 붙여 강원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하면서,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은 대체로 사실로 드러났다.
그날의 사고를 복기해보면, 문제의 중대장은 훈련병들이 전날 떠들었다는 이유로 한여름 무더위에 맞먹는 섭씨 27.4도 뙤약볕 날씨에 완전군장 상태로 연병장에서 '선착순 뺑뺑이' 구보와 팔굽혀펴기 등을 쓰러질 때까지 시켰다고 한다. 26.5도만 넘어가도 기초체력이 좋지 않은 신병 훈련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온도지수별 행동기준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완전군장 구보 금지 등 군기훈련 규정까지 전부 위반했다.
특히 훈련병을 직접 통솔하는 조교나 소대장도 아닌 중대장이 직접 이렇게 가혹한 군기훈련을 시키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 분노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이라면 훈련 기간 내내 훈련병이 중대장을 직접 대면하는 일조차 드물다.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이전 기수에서도 문제의 중대장이 훈련병 괴롭히기로 악명 높았다는 커뮤니티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그동안 군기훈련을 빙자해 훈련병을 본인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불거지고 있다.
관련 규정이 비록 이번 비극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런 특정인의 일탈이 야기하는 무고한 인명피해 등 심각한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군기훈련과 관련해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런 규정이 더 철저하게 지켜졌어야 할 신병훈련소에서 왜 완전히 무력화됐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사건의 본질은 아니지만 해당 중대장이 여군인 탓에 기 싸움 차원에서 필요 이상의 가혹 행위를 한 게 아닌지도 꼭 확인해야 한다고 본다.
이와 별개로 우리 사회의 군에 대한 잘못된 인식 역시 이번 기회에 바로잡았으면 한다. 훈련병의 안타까운 사망 사고 소식을 전하는 뉴스 댓글마다 "군의 사기" 운운하며 군기훈련 규정을 어긴 간부가 아니라 오히려 해당 훈련병을 탓하는 글이 넘쳐나는 걸 보면 정말 기가 막히다. 주로 자신을 60대 이상이라 밝힌 이들인데, "군대에서 이런 사고는 늘 있는 것"이라거나 "우리 때는 완전군장에 몇㎞ 뛰는 건 예사로 했는데 고작 이런 훈련으로 죽었다는 건 다 억지""요즘 애들이 약해빠져서 군에서는 일상과도 같은 훈련조차 견딜 수 없게 됐으니 한심하다"고 막말을 한다.
훈련을 빙자해 어린 병사들을 '고문'한 중대장에게는 물론, 이런 중대장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현역으로 입대할 정도로 건강했던 청년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다발성 장기 손상과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극심한 고통 속에 사망했는데, 이게 어떻게 정상적인 훈련인가. 그런 군대에 귀한 아들을 보낼 부모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