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과 같은 86학번이고 학생운동의 한 축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당시 '의장님'으로 통했던 임종석-
의 이름을 요즘 대하는 마음이 참으로 아프고 쓰라리다.
안타깝기도, 창피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하고... 하튼 그렇다.
당시 그에게는 당시 2계급 특진이 걸려있었기에
전국 모든 검,경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경찰, 검찰, 안기부, 보안사, 전경, 백골단 등이 기를 쓰고 그를 노렸다.
하여, 당시 나와 같은 많은 운동권 학생들의 첫번째 임무는
무엇보다 의장님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대협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 굳게 믿었기에.
겹겹이 포위되어 있던 상황에서 체대 출신 경호원들이
온몸으로 막아 결국엔 탈출 시킨 이야기,
가발과 여장을 하고서 도망다닌 이야기,
검문에 걸렸지만 의로운(?) 전경 하나가 모른 척 해 준 덕에
무사히 빠져나간 이야기 등...
언론에선 그를 홍길동이라 불렀지만
사실 그건 그의 능력보다는 그를 지키겠다는
전국 수많은 학생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직접 겪은 것 하나만 소개하자면,
어느 일요일 점심 무렵,
친구를 만나 전심을 먹기 위해 집 근처인 한양대 먹자골목 안에 있었을 때의 일임.
갑자기 닭장차(전경 버스) 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한양대 주위를 포위하기 시작함.
한양대 앞 먹자골목이 그리 큰 규모가 아님에도 전경차 수십대가 오다보니(천명 가까운 병력)
큰길은 물론이고 모든 골목골목까지 전경과 백골단이 빼곡히 배치되어 있었고 ,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불심검문이 이루어졌음(지나가는 사람만이 아니라 가게에 있는 사람들까지)
당시 밥을 먹던 친구와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재빨리 밥집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피신하려고 움직이고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와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고
전경들이 이동하는 군홧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임.
알고보니 한양대 정문에서 데모가 시작된 거였음.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는 데모대와 이를 막는 전경의 대치가 시작되고
최루탄과 돌멩이가 섞여 한양대 앞 거리는 난장판이 됨.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아침에 임종석 의장이 한양대 주변에 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경찰들이 집중 배치가 되었고,
그 안에 포위되어 있었던 임종석 의장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가 한양대에 들어갔지만
그날이 하필 일요일이라 학내에 학생이 거의 없는 걸 알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지금 우리 의장님이 위험하니 빨리 나와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 말에 도서관에 있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맨몸으로 나와서
교문 앞에서 시위를 하게 된 것이었다.
즉, 그날의 갑작스런 시위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학생들이
의장님이 도망갈 수 있도록, 경찰들을 자기 앞으로 불러세운 것이었다.
그 노력 덕에 임종석 의장은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갔다는...
그시절엔 그랬다.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시험 공부, 취업 공부 때문에 도서관에 있던 학생들도
의장님이 위험하다는 한마디에 자신을 경찰들의 미끼로 던질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그런 학생들이었다. 나는 다치고 잡히더라도
우리들의 의장님만은 절대 다치거나 잡히면 안되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지나고 지나 여기까지 왔다.
그때 그렇게 우리가 몸으로 지켜낸 자랑스런 우리들의 의장님이
지금은 '내 지역구'를 돌려달라며 생떼를 부리다가
결국 공천에 탈락해서 지금 대책회의를 하고 있단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수많은 그 학생들은
다치고, 빵에 가고, 제적을 당해
그 의장님처럼 국회의원도 못 되고, 취업도 못 해서
비록 어려운 서민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그 시절 가졌던 의로운 뜻을 버리지 못 해
아직도 그 시절 그 뜨거운 열정을 숨기지 못 해
돌멩이 대신, 화염병 대신 당에 가입을 하고
투표를 하고, 주위 사람을 설득하고,
때론 술먹다가 다투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있는데
누구는 생활고에 힘겨워 노가다를 뛰다 불구가 되고
누구는 일찍 병에 걸려 죽기도 했고
누구는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동지도 있는데
왜, 왜 우리의 그 의장님은
국회의원도 두번이나 하시고,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하셨으면서도
뭐가 아쉬워서,
뭐가 그렇게 욕심이 나서
안 그래도 힘든 우리들까지 쪽팔리게 하는지...
의장님, 동지로서 마지막 부탁입니다.
우리가 그시절 당신을 우리 목숨처럼 지켰던 것처럼
이젠 당신이 우리를 좀 지켜줍시다.
뭘 거창한 걸 하라는 것도 아니오.
무슨 빚쟁이처럼 빚 갚으라는것도 아니잖소,
그냥 떠날 때를 알고 조용히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니겠소.
당신 위해 스러져간 많은 동지를 위해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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