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v.daum.net/v/20230621182008918
◇일방적인 잠수… 회피, 이기적인 심리
잠수이별은 말 그대로 연인 중 한 쪽의 일방적인 잠수(연락두절)로 연애가 종료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연애기간이 짧은 연인들이 많이 경험하지만, 종종 1년, 2년씩 오래 만난 이들도 잠수이별을 겪곤 한다. 잠수이별을 당해본 사람은 하나같이 ‘최악의 이별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데다, 수많은 궁금증이 미제(未濟)로 남는다는 이유에서다. 연애는 두 사람이 했지만, 이별의 원인은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다.
생각을 직접 들을 순 없으나 추측해볼 순 있다. 기본적으로 잠수이별은 대부분 우발적인 결정이나 행동이 아니다. 잠수이별을 선택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렇다. 꽤 오랜 기간 크고 작은 다툼, 또는 상대방의 어떤 모습들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속으로 몇 번씩 ‘헤어질 결심’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수 있고, 드러냈으나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결심 끝에 ‘잠수’라는 방법을 선택한 데는 여러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별을 통보하면서 미안함, 부담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했던 것일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것 자체가 어렵거나 불필요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평소 연인관계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둘 중 누구든 한 사람이 지나치게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면 ‘안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또는 ‘해봤자’라는 생각으로 설명을 포기한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미리 ‘이별 통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뒤 잠수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상대방에 대한 복수심, 과거 힘들었던 이별 경험 등이 잠수이별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경제적 어려움, 학업 등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잠수이별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잠수이별은 거절하지 못하는 심리와 비슷하다”며 “상대에게 직접 헤어지자고 말할 때 느낄 수 있는 부담감과 미안함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잠수라는 방법을 택한다”고 말했다.
◇자기중심적 성향 강해… 다음 연애에도 잠수이별 가능성
잠수이별의 이유가 단순히 미안함, 부담감 때문이라면 이는 이기적인 처사다. 심리학자들 또한 잠수이별을 선택하는 사람에게서 무책임함, 자기중심적 성향 등이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보니, 그 대상이 연인이었다고 해도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면 상대방이 힘들 수 있다는 건 고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자신만 생각할 수 있다”며 “한편으로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해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잠수라는 방법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성격상 잠수이별을 택한 사람은 다음에도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질 때 잠수이별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에게는 잠수이별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잠수이별 특성상 상대방의 반응에는 관심이 없다보니, 상대방이 오랜 기간 힘들었음에도 정작 자신은 연인관계가 잘 마무리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잠수이별을 해본 사람은 다음에도 잠수이별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며 “잠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도, 결국 무의식적으로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남을 수도… “좋게 마무리하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
잠수이별을 당한 사람에게는 이별이 슬픔 그 이상의 감정으로 다가온다.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해 심한 배신감, 분노 등을 느낄 수 있으며, 함께 한 시간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허한 마음도 생긴다. 당시에 받았던 충격이 크다면 잠수이별 경험이 오랜 기간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임명호 교수는 “잠수이별을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이별이 끝맺지 못한 일처럼 계속 마음 속에 맴돌아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며 “이별의 원인을 모두 자신에게 돌리면 심리적으로 더 큰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이별하는 순간은 늘 슬프고 힘들다. 그럼에도 이별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다. 이유를 설명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게 어렵다면 이별 통보라도 해줘야 한다. 정상적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연인이라면 이 같은 과정이 한 때 좋아했던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배려다. 곽금주 교수는 “잠수이별을 하는 순간 사랑했던 모든 시간이 무효가 된다”며 “연인관계를 좋게 마무리하는 건 성숙하게 사랑했던 나와 상대방, 그리고 둘이 함께한 과거 시간에 대한 예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