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릴 때 길을 가다가 만원짜리 슬리퍼를 하나 샀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새 신발이 있네 라고 해서
네가 유치원에 간 사이에 말레이시아에 가서 샌들을 사왔다고 말했다.
왜 그랬냐면 신발이 해변관광지에서 파는 신발같이 생겨서였다.
좀 자라긴 했지만 아직 아이였던 아이는 하루만에 어떻게 말레이시아에 갔다오냐 했다가
진짜 갔다왔냐 했다가 긴가민가 했다.
그러다가 그 신발은 <엄마가 말레이시아에서 사 온 신발>로 불리었다.
말하자면 그 신발은 대단했다.
로마시대 사람들의 샌들을 생각하면 된다.
굽이 없이 납작하고 발이 쏙 들어가고 얇은 끈이 발을 잡아 준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너무너무 편한 신발이었다.
만원밖에 안 한다는게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세상의 어디든 그 신발을 신고 다녔다.
다음 해 여름에도. 다음 해 여름에도. 신발이 닳는 걸 걱정하면서
나는 세상 방방곡곡을 그 신발 하나만 신고 다녔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은 어느날 그 수명을 다했다.
그토록 신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버릴 수가 없어서 신발장에 넣어 놓았다.
밑창을 본드로 붙이고 난리를 부렸으나 더이상은 신을 수 없었다.
신발은 가루가 될 정도로 낡았다. 너무나 사랑을 받은 까닭이었다.
너무 사랑받아 신발은 가루가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 나는 인터넷에서 세상에 그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을 보았다.
인터넷으로 살 수 있었다. 당장 두 컬레를 샀다. 기뻐하며 기다렸다.
아. 그런데. 신발이 왔는데 같은 신발이 아니었다.
나의 소중한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은 세상에 더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이후에 더 좋은 신발도 사고 더 예쁜 신발도 사고 더 비싼 신발도 사 보았지만
세상에 다시는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같은 신발을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돈 만원으로 몇 년간이나 나와 함께 여름마다 온 세상. 온 세계. 온 나라 방방곡곡을 그렇게 발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해 주었던 나의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을 추억하며 이 글을 적는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말레이시아에서 산 신발>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터넷을 뒤질 때 나도 모르게 그 신발을 찾아본다.
여름이 오면 늘 그가 그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