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은 다가오고
삭신은 쑤시고~
82 보면 안 되는데 저녁 먹고 잠깐 쉰다는 핑계로 보다가 ㅎㅎ
생각난 제 얘기 잠깐 써 봐요. 저는 제가 도와 준 얘기.
몇 년 전이었어요. 잠실역에서 환승하려고 막 가고 있었는데 승강장에 거의 다 와서
이제 기나긴 계단을 내려가면 되는 거였어요.
시간이 급했고, 뭔가 식사를 못 한 상태였던 것 같아요. 던킨 도너츠를 사서 작은 종이봉지를 들고 있었어요.
계단을 막 뛰어내려가려는 찰나
사람들이 정말 많이 내려오고 올라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계단의 가운데 기둥 -왜 한쪽은 올라가는 사람들, 한쪽은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는
양쪽으로 긴 계단 가운데를 가르는 철책 말이죠- 근처에서
조그만 여자애가 머뭇거리면서 서 있는 거예요. 나이는 한 네다섯 살...?
그 꼬맹이는 자기보다 더 꼬맹이인, 이제 겨우 걷나 싶은 아기를 안아 보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꼬마가 아기를 안으려고 하니 바닥에서 1센치도 안 들어올려지고
아기 티셔츠만 말아올려져서 ㅎㅎ 볼록한 아기 배가 자꾸 보이는 상황.
이건 무슨 상황일까 하고 주위를 쓱 둘러보니
아하, 저 아래 중간쯤에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와, 오빠로 보이는, 한 일고여덟 살이나 됐을까 싶은 소년이
유모차를 영차영차 맞잡고 내려가고 있는 거예요.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게.
아이고 저걸 어쩌나 하는데, 사람들이 계단에 정말 많았어요. 아이들이 쓸려 버리면 어쩌나 싶게.
유모차보다는 이 아기들 쪽이 급해 보여서 어쩌지, 하다가
꼬마에게 제가 들고 있는 도너츠 봉지를 건넸어요.
이거 잠깐만 들고 서 있을래? 여기 꼼짝 말고 있어??? 했더니 받더라고요.
꼬마를 철책 옆에 단단히 세워 놓고 아기를 안았어요.
아이코, 무겁더라고요 ㅋㅋ 잘 먹인 통통한 아가였어요.
어쨌든 아기를 안고 헛둘헛둘 내려갔어요. 유모차도 어찌저찌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가는 중인데
어디선가 나타난 청년 둘이 유모차를 번쩍 들고 남은 계단을 내려가 바닥에 놔 주더라고요.
저는 그 옆에 유모차의 주인일 통통배 아기를 내려놓았죠.
그리고 다시 잽싸게 계단을 올라가는데 도너츠 봉지를 든 꼬맹이가 내려오고 있었어요.
그 꼬맹이를 데리고 또 얼른 내려감.
앞에도 썼듯이 제가 좀 바빴어요 ㅋㅋ 지하철은 들어오고 있고!
유모차 주변에 네 식구가 다 모인 걸 보고 저는 제 지하철을 타려고
꼬마에게 손을 내밀어 도너츠 봉지를 받았어요.
이제 줘도 돼, 고마워~ 했더니
양손으로 도너츠 봉지 위쪽을 꼬옥 쥐고 있던 꼬마가 저에게 두 손 그대로 봉지를 내미는데 ㅎㅎ
저를 올려다보던 그 작은 꼬마의 눈동자가 마치...
천사를 보는 것 같은?
만화에 나오는 그렁그렁한 눈 있죠?
그럴 일이 아니었는데 눈이 어찌나 '언니 머시쪄요...'인지, 순간 놀랐어요 ㅋㅋ
봉지 받고, 씩 웃고, 아가야 안녕, 하고 지하철을 탔는데
흠...
지하철을 타고 가며 생각해 보니 도너츠를 주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
오며가며 사소한 거 잘 도와주고 다녀 봤는데 그렇게 순수하게 감동에 찬 얼굴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듯.
그 눈동자가 하도 강렬해서 이따금 생각이 났답니다.
도너츠를 줄 걸... 하고 ㅎ 그럼 꼬마가 참 좋아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