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미를 잘 몰라. 지금까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어.
그런데 이번에 이 카페와서 페미 이야기하는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쭉 보면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젠더 평등에 대한 문제 의식과 성평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회 구조적 여성차별철폐가 페미니즘의 근본이라는 것. 그 정도는 알고 있었어.
이건 당연하게 온인류가 힘써야 하는 문제니까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는 가끔 이해가 어려웠던 게 그럼 대화를 통해서 해결을 하지 왜 이렇게 서로 격한 언어로 죽일 듯이 싸우는지 이해가 어려웠거든.
정말 미안한데 라떼는 원래 우리, 친구들이랑 있을 때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욕 하잖아.그러면서 일반화시켜서 남자는 어쩌구~ 여자는 어쩌구~ 한단 말이야.
그냥 이렇게 욕하면서 속상한 마음 푸는 거야.하지만 이건 휘발성이지. 옛날에는 이랬단 말이야.그냥 그러고 말았어.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커뮤에 모여서 단체로 떠들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단 말이야.
큰 의미 없었던 남녀 뒷담화가 기록으로 되고 지워지지 않고 그게 쌓이고 쌓이고... 그 덩어리가 엄청 크게 보여.
이제부터는 내가 카페에서 본 너희들의 이야기를내 나름대로 정리한 건데... 이게 제대로 이해한 건가 봐줄래?
여기서 문제가 벌어지는데 일반 커뮤에서 남녀 뒷담화해봤자 그냥 왜 그러는 거야. 미쳤다... 이 정도 하고 마는데.
일베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자극적이고 극단적으로 여자들의 뒷담화가 시작된 거 같아.
원래 일베는 은밀한 공간이었는데 이곳이 슬금슬금 남자들 사이에서 양지화가 되면서 여자들을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뒷담화하는 마치 그 또래 남자들의 '가오'이자 '밈'이 되버린 거지. 그냥 '놀이', 여성 뒷담화가 무지성 '놀이'가 된 거야. 이 '놀이'의 수위가 점점 험악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해갔어.
처음에는 이 온라인 음지를 여자들이 몰랐단 말이야.
그런데 이 음지의 내용들이 슬금슬금 오프라인까지 치고 올라와.
여자들이 촉이 좋으니 뭔가 몇몇 남자들의 대화에서 이상함을 느꼈을 거고 그 근원을 찾아보니 온라인 음지에 모인 남자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성적대상화하고 일반화하여
뒷담화하고 있는지 알게 된 거지. 그것도 아주 끔찍한 언어로.
얼마나 충격이 컸겠어. 나도 너희들 글 보는데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더라고.
이쯤해서 뭔가 사회적 조치가 취해졌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질 못한거야.
그렇게 이 음지가 점점 더 수면 위로 올라오고 그 음지에서 파생된 여자 비하에 참여하는 남자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이걸 지켜보는 여자들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겠어.
"온라인에서 이렇게 여자에 대한 혐오를 떠드는 애들이 나의 삶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는 남자들이다. 그들이 쓰는 그 글처럼 혹시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입에 담지 못할 그런 행동들을 나한테 하지는 않을까?" 이런 불안감이 의식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을테지.
그래서 어른들에게 말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어.
왜냐면 어른들은 그게 자기네 시절 여자친구 욕했던 그런 정도의 무게로 가볍게 여긴거야. 자기네도 한때 그러고 말았으니까. 별 일 아니다.
이렇게 넘어가 버린거야. 나도 그랬거든.
여자들은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커뮤니티에서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결국 어른들이 도와주지 않으니 자기네들 선에서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찾게 됐어.
여자혐오 표현을 쓰는 남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
여기에는 '밀러링(여성혐오 표현을 남자들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것으로 이해함)' 같은 걸 한 거 같애.가끔 내 눈에도 보이는 남성혐오 짤들이 그런 것의 일종 같고.
나는 사실 이런 거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너희의 이 행동은 이런 거 같아. 우리 화나면 무섭고 너희처럼 거칠어 질 수 있으니까 그러지마! 만만하게 보지마!
그런 의미...인 것 같다.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지만...겁에 질린 강아지가 더 악을 쓰고 짖는 것 처럼. 손 대지 말라고.
싸움은 명료하게 청팀, 백팀 2개로 나뉠 때 더 커지고 치열해져.남과 여, 둘로 갈라지기 딱 좋은 카테고리야.
그렇게 이 싸움이 격해지는 가운데 더 격하게 싸우는 여성&남성 커뮤들과 방어적으로 싸우는 커뮤들이 있었던 거고. 여기에 이제 유명 셀럽까지 가세하면서 싸움이 전쟁이 된 거지. 이 전쟁에 아무 관련없는 여초카페, 남초카페를 까지 서로서로 견제하며 대화 자체를 차단하게 되는 상황까지 온 것 같아 보여.
어른들은 몰랐지.
일단 살기 바쁘고 이런 네러티브를 모르니까 어른들 눈에는 오빠&여동생, 누나&남동생 꼭 이렇게 자식들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단 말이야.
그러니까 둘다 똑같아 보이는 거야. 그리고 싸우고 나서 시간지나면 좋아지니까 그러다 말겠지 생각한단 말이야. 자기네들도 그렇게 컸거든.
그런데 이제 더 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거야. 이 여성혐오가 실제 범죄로까지 이어진 거지. 이걸 지켜본 여자들은 온라인에서 혐오가 오프라인의 내 삶까지 연결되는 듯한 큰 공포를 느낀거고. 그래서 너희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거란 말이지?
그런데 어른들이 너희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은거야. 정말 공감했다면 여성혐오를 일삼는 그런 커뮤들을 처리를 해주던가 뭔가 액션이 들어가야 하는데 너희들 눈에는 어른들의 이런 행동이 보이지 않았던 거지.
그래서 더 악에 받쳤던 거고.그러는 와중에 N번방까지....
그럼 이 친구들의 머릿 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생각해봤어.
현실에서보면 멀쩡해보이는 남자들이 뒤에서 이런 행동을 하고 누가 이런 행동과 말을 하는 남자인지 경험하지 못하면 가려낼 방법이 없는데
혹시라도 내가 이런 남자들과 어울리고 있는 거면...앞에서는 웃어주면서 그 음지에 모여 혹시 날 공격하고 있는 건 아닐까?그러다 나에게 실제로 그런 행동들을 하면 어쩌지?난 어떤 남자를 만나고 누굴 믿어야 하지?
아니 상황이 이런데 무슨 서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겠어.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경력단절, 공동육아 이런 문제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어리고 젊은 시절 지켜본 저런 여성혐오에 대한 경험이 여자들이 남자를 바라보는 시각자체를 혐오하게 만드는데 말이야.
거기다 불에 기름을 부은 것 처럼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여성비하를 일삼는 일부 남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여과부 폐지 공략에 찍어준 2번의 젊은 남자들의 표를 보니 더 공포스러웠겠지.
너희 눈엔 여가부 폐지가 여성혐오 지지 같아 보였을테지.
그것도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니 얼마나 경악했을까.
물론 여가부 폐지 공략 때문에 찍지 않은 남자들도 분명히 있을테지만 그걸 어떻게 걸러내? 그러니까 그냥 한 덩어리로 보이는 거잖아. 그래서 너희들이 '생존'이라고 했던 거구나.
여기까지가 이 카페에서 본 페미니즘을 말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나름 정리하고 느낀 내용이야. 이게 물론 다가 아닐 건데... 큰 흐름은 내 눈에 이렇게 보이거든. 이게 맞니?
너희 정말 힘들었겠구나.몰랐어. 정말 몰랐다. 너무 미안하네.
너희 심정을 알고 나니까.나 같은 기성세대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줘야 할지 참 막막하다. 우리는 과연 너희들에게 무엇부터 해줘야 할까. 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생각이 정말 많아지는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