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먹는 대통령..
내가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1996년 당시에 러시아는 때마침 대통령 선거기간이었다.
이미 공식적인 술고래로 심각한 알콜중독이었던 옐친은 크레믈린에서 칩거하면서 술로 연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옐친의 배후세력은 이미 언론을 장악했고 다시 선거에 나서자 모든 매체들은 활발한 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문제없다고 광고를 했고, 옐친은 유명인사와 가수를 동원한 유세를 했다.
그때까지 러시아를 혼란으로 빠트린 옐친을 좋아하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배후 마피아 세력들은 모든 언론을 장악했고 수많은 사탕발림이 등장했다.
시골의 촌부들에게 화려한 화보와 어설픈 구호품이 배달되었고 연금 인상 등으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심지어는 하숙집의 은퇴한 연구원 출신의 할머니마저도 옐친이 진정한 '구세주'라고 믿었을 정도였다.
그의 음주벽은 놀라와서 유럽에서 정상회담 중에도 보드카를 무려 8잔이나 쉬지 않고 들이켜서 모든 사람을 대경실색하게 만들었다.
공식석상에서 이럴진데, 집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선거 유세기간 동안에 그를 마리오네트로 만든 올리가르히(쉽게 말하면 기득권의 마피아들)들이 특별한 처방을 해서 몇 달 간 잠깐 기력좋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그는 선거 직전에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정작 투표당일에는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어쨌거나 선거에는 이겼고, 그 직후 그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매일 일정한 술을 적절하게 공급받으며 생을 연명했다.
드물게 인터뷰에 등장해도 어눌하고 힘들게 말을 이었으며 상황판단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의 상황이 올리가르히에게는 너무나 고마웠다(?).
알콜중독자만큼 사람을 컨트롤하기 쉬운 게 없지 않은가.
술을 조금만 안 주는 것으로 고통을 줄 수 있고, 그러다 술 몇 잔 마시게 해주면 어떤 결정에도 쉽게 사인을 할테니 말이다.
1996~1999년 12월까지 그는 술로 연명을 했고, 그의 뒤에 있는 실세들은 끊임없이 총리들을 바꾸어댔다.
내 유학시절(1996~2001)에 제대로 된 그의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고, 30대에서 70대까지 짧으면 3개월, 길어야 1년도 안되는 기간 허수아비 총리들이 대신 나섰다.
그 사이에 마피아와 독점재벌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다.
서방에서도 이런 알콜중독인 옐친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들의 경쟁국이 순식간에 무너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을 것이다.
세계 2대 강대국이었던 러시아는 술먹는 대통령의 10년 통치에 세계 최하류의 빈국으로 전락했고, 사람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다음번 선거에는 그 허수아비 옐친은 도저히 출마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엄밀히 말하면 살아있는게 기적인 상황이었다).
결국 옐친을 대신할 꼭둑각시를 골랐고, 푸틴이 선택되었다.
1999년에 젊은 푸틴이 총리가 되었을때 모두 길어야 6개월짜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소하고 병약해보이는 푸틴이었지만 사실은 영악했고, 그의 뒤에는 KGB라는 실세가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된 다음에 빠르게 옐친의 실세를 정리하고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러시아는 이미 회복불가능한 삼류국가가 되었고, 푸틴도 처음에는 뭔가 개혁을 시도했지만 지금은 그냥 권력을 무한정 이어가는 모습이다.
푸틴은 내가 20대에 대통령이 되었고 5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대통령이다. 이왕 이리 된 거...그냥 내가 환갑이 될 때까지 하시라.
어쨌든 술은 안 먹으니 옐친보다 백 배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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